제 97장. 너는 기동 경지 몇 단계야?
능소각 진영,
해홍진과 소안을 선두로 뒤에는 전승동천으로 들어가려는 제자들이 줄을 섰다. 그들은 일제히 장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양준과 소무영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소무영은 긴장한 듯 손을 계속 비볐다. 양준도 살짝 긴장했지만 설렘과 기대가 더 컸다.
“안에 들어가서 양 사형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소무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길 바라야지. 그런데 대장로도 말했다시피 장막에 들어서면 사람마다 도착하는 곳이 다르다고 했잖아. 아마 만날 가능성이 적을 거야.”
“사형, 이 안에 어떤 전승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알아?”
“안에 무슨 위험이 있을까요?”
“나도 잘 몰라.”
“떨려 죽겠어요!”
“…….”
양준은 원래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소무영이 계속 재잘거리자 그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앞쪽에서는 세 문파의 장로들이 각각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들은 자신의 제자들을 전승동천으로 들여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막은 매우 커서 제자들이 들어가는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양준과 소무영이 들어갈 차례가 됐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는 아래로 뛰어들었다.
양준은 실눈을 뜨고 있었지만, 장막에 들어가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곧 그는 자신이 지면에서 오 장 정도 떨어진 공중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준은 상체를 내밀고 숨을 들이마시며 떨어졌다.
안전하게 착지한 뒤, 양준은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가 착지한 곳은 매우 기묘한 공간으로 해와 달, 별, 흰 구름이나 파란 하늘이 없었다. 그의 주변은 온통 공허함과 적막함뿐이었다. 하지만 빛이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있었다.
주위에는 여러 돌기둥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돌기둥들은 높낮이가 같지 않았다. 어떤 것은 몇십 장 높이였고, 어떤 것은 사람 키 정도 높이였다. 땅바닥에는 돌멩이와 흙으로 가득했다.
기운을 감지해 본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의 천지 기운은 지극히 짙었다. 밖과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만약 이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밖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서너 배 이상 높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전승동천이었다. 이곳에 들어와서 미지의 보물을 포기하고 수련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무영은 역시나 다른 곳에 떨어진 것 같았다. 주위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들어올 때 모두들 흩어진 것 같았다.
한창 정신을 집중해 탐지하고 있을 때, 십몇 장 되는 곳에서 문득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 사람도 양준이 여기로 들어올 때처럼 허공에서 뛰쳐나오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그 사람은 똑바로 착지한 후, 고개를 돌려 좌우를 둘러봤다. 그리고 한눈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양준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양준은 깜짝 놀랐다.
“사저였군요.”
“응. 공교롭게 여기서 만나네.”
그 사람도 기뻐하며 급히 양준에게로 걸어왔다.
전에 흑풍시장에서 양준에게 씨앗을 팔았던 그 사저였다.
동문인데 여기서 만나니 이것도 인연이었다.
“너 혼자야?”
여인이 물었다.
“네, 저도 금방 왔어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왔는데 모두 어디로 흩어졌는지 모르겠네. 우리 여기서 다른 사람이 오는지 조금 더 기다렸다 같이 움직일까?”
그녀가 제의했다.
“그래도 돼요!”
양준도 동의했다. 이곳은 위험이 많아 한 사람이라도 많으면 힘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익을 나눠야 하지만, 이처럼 위험한 곳에서는 당연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곳의 정황을 좀 더 살펴보고 적절할 때 다시 홀로 움직여도 늦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정을 내린 후,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세 명이 근처에 떨어졌다. 세 사람 중에 한 명만 능소각의 제자였고, 나머지는 혈전방과 풍우루의 제자였다.
다섯 사람은 한데 모였다. 이렇게 특수한 곳에 있으니 오히려 문파의 구분이 별로 심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으나 더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능소각의 여제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우리 탐색하면서 혼자 떨어진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자. 너희들 생각은 어때?”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표정은 그녀를 더욱 당당하고 아름답게 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이 이어 말했다.
“그전에 우리 먼저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할 거 같아. 적어도 각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지. 그래야 위험에 처했을 때 다들 행동하기 편해. 모두 자기소개를 하자. 내가 먼저 할게. 난 남초접(藍初蝶)이야. 능소각의 제자이고 기동 경지 7단계. 너희는?”
말을 마친 그녀는 아름다운 눈으로 네 사람을 훑어봤다.
능소각의 다른 제자가 급히 말했다.
“사저의 명성은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오늘 보니 참 아름다운 분이군요.”
이 말은 아첨이 뻔했다. 양준과 다른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그를 경멸했다.
‘이 자식은 남초접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해. 그러니 이렇게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끼어들지.’
그럴 만도 한 것이 남초접은 예쁜 데다 몸매도 매우 성숙했다.
남초접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신경 쓰지 않고 그를 보며 말했다.
“너는…….”
그 자는 가슴을 쭉 펴고 믿음직스러운 척하며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섭영(聶詠)이에요. 저는 대장로의 제자이고, 기동 경지 4단계예요!”
말을 마친 그는 또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저. 가는 길에 만약 위험이 있으면 제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저를 위해 나설 거예요.”
“마음 써줘서 고마워.”
남초접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었다.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바로 눈길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이 자는 철탑 같은 사내였다. 기골이 장대해 양준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용모가 호방하고 순박해 보였다.
남초접이 자신을 보는 것을 느끼고 그 자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좌안(左安), 혈전방 제자야. 기동 경지 5단계고.”
말을 마친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더 말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편인 것 같았다.
남초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눈길을 다른 여인에게 돌렸다.
그녀는 몸매가 가늘고 키도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매우 청순해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시종일관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난 두억상(杜憶霜)이라고 해. 풍우루 제자야. 그냥 두씨 동생이라고 불러 줘. 사형과 사저들은 모두 나를 두씨 동생이라고 부르거든. 그리고 기동 경지 6단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힐끔 봤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 열네댓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녀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남초접 다음으로 실력이 높은 기동 경지 6단계일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음, 재미있네.”
남초접이 입을 오므리고 웃으며 말했다.
“설마 여기로 들어올 때 실력에 따라 떨어질 곳이 정해진 건가?”
그녀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에 잠겼다. 여기 있는 네 사람 중 남초접의 실력이 가장 높았다. 각각 기동 경지 7단계, 6단계, 5단계, 4단계였다. 서로 간에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그녀가 이렇게 판단한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맞다. 너는? 너는 기동 경지 몇 단계야?”
남초접이 고개를 들고 양준을 보며 물었다.
이 사람들은 실력이 양준보다 높았지만, 신식이 없기 때문에 양준이 자신의 원기 파동을 드러내지 않는 한, 그들도 양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두 기동 경지였기에 남초접은 양준도 당연히 기동 경지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양준은 코를 만지더니 쑥스러운 듯 말했다.
“난 양준. 능소각의 제자이고, 개원 경지 7단계.”
좌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눈에 저도 모르게 멸시하는 기색이 나타나더니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네가 양준이야?”
남초접은 눈을 반짝이더니 의아해하며 그를 보았다. 섭영마저 깜짝 놀라더니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마치 양준을 꿰뚫어 보려는 것만 같았다.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일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능소각 내에서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양준은 자신의 이름을 들었을 때, 섭영의 눈에 한 가닥의 적의가 스치는 것을 예리하게 감지했다. 반대로 남초접은 마치 무슨 신기한 물건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섭영이 자신에게 적의를 가질 거라는 것을 양준은 이미 예감했었다. 그는 대장로의 제자라고 했으니 분명 위장, 그리고 해홍진과 같은 편일 것이다. 지난번에 자신이 그 둘의 원한을 샀으니 대장로의 제자들이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전승동천 안에서 그도 감히 소란을 피우지는 못할 것이다. 때문에 양준은 그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눈길을 거두고 남초접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됐어. 이제 모두 서로에 대해 알았으니 우리 출발하자. 이곳의 보물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 모르겠어. 미리 말해 두는데, 만약 무슨 좋은 물건을 찾게 되면 다들 각자 힘을 낸 만큼 분배할 거야. 만약 진짜 분배할 방법이 없으면 은자 혹은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자. 어때?”
섭영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남 사저가 결정하면 돼요.”
양준과 좌안도 이의가 없었다. 두억상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반대하지 않았다.
남초접은 실로 주견이 있는 여인이었다. 몇 마디 말로 잠깐 사이에 이미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에서 통솔자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그녀와 거래할 때만 해도, 양준은 그저 그녀를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사람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녀는 야심이 있고, 다른 사람의 밑에서 복종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가자. 내가 먼저 길을 안내할게. 한 시진이 지날 때마다 한 사람씩 바꾸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