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장. 위험에 부딪치다
말을 마친 남초접은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며 갔다. 다른 사람들은 부랴부랴 그녀를 따라나섰다. 섭영은 심지어 남초접과 나란히 걸었다. 걸으면서 온갖 아첨을 다 하며, 각종 찬사를 늘어놓았다.
남초접은 시종 얼굴에 미소를 띠고서 가끔 몇 마디 대답할 뿐이었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태도에 섭영은 점점 더 신바람이 난 듯했다.
그들의 뒤로는 건장한 좌안이 따르고 있었는데, 닭살 돋는 단어들에 그는 저도 모르게 섭영을 째려봤다.
양준은 맨 뒤에서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았을 때, 두억상이 걸음을 늦추어 옆으로 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양준에게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수련을 열심히 하면 너도 꼭 기동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야.”
양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끔 보고 말했다.
“난 괜찮아.”
“그래.”
두억상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양준이 줄곧 말이 없자, 좌안이 방금 그를 무시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위로해 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되려 자신이 괜한 친절을 베푼 것 같았다.
“하하, 너는 나이가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어떻게 실력이 그렇게 높아?”
양준은 두억상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녀는 풍우루의 제자였지만 성격이 온화하고 성품이 착해, 모르는 사이인데도 자신을 위로해 주었다.
“난 열아홉이야. 어떻게 너보다 어려?”
두억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정말 그렇게 돼 보이지 않았다. 양준은 되려 난처해졌다.
다섯 명의 작은 무리에서 두 사람은 앞에서 낮은 소리로 웃고 떠들고, 두 사람은 맨 뒤에서 살랑살랑 속삭이고, 가운데는 좌안 혼자였다. 그는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졌다.
한참 걷던 양준은 문득 가슴의 양원인이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앞쪽을 보았다.
백여 장 밖에 양성의 물건들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섯 사람이 나아가는 방향이 바로 그쪽이었기에 그가 따로 귀띔할 필요가 없었다.
잠시 뒤, 길을 안내하던 남초접이 갑자기 놀라 소리를 질렀다. 섭영도 서둘러 앞을 보더니 소리쳤다.
“양염석, 음원석?”
앞에는 돌멩이가 가득했다. 이것들은 일반적인 돌이 아니었다. 전부 양염석과 음원석이었다. 이 돌들은 혈전방이 흑풍시장에서 팔던 것과 모양도, 크기도 비슷했다.
돌 하나의 가격이 오백 냥이고 천 개가 넘으니, 금전적 가치는 오십만 냥에 달했다.
다섯 사람은 각자의 종문 내에서 모두 부유한 층이 아니었다. 누가 오십만 냥이나 되는 재물을 본 적 있겠는가?
다섯 사람 모두 호흡이 가빠졌다.
남초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주위에 위험이 없는지 확인해 봐!”
그녀는 그나마 냉정한 편이었다. 여기가 평범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이렇게 큰 재물이 한 무더기 놓여 있는데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었다.
다섯 사람은 급히 흩어져 근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모였는데 모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남초접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경계하듯 장풍을 몇 번 날렸다. 장풍이 한 무더기의 양염석과 음원석을 쳤으나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전해.”
다섯 사람은 서로 쳐다보다가 서둘러 앞으로 걸어가 양염석과 음원석을 마구 주워 담았다.
다른 사람들은 두 가지를 모두 주웠으나 양준은 달랐다. 그는 오직 양염석만 주웠다.
한참 줍던 남초접이 쓴웃음을 흘리더니 허리를 펴고 조금 아쉬운 듯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돌을 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들을 던져 버렸다.
“남 사저, 왜 그래요?”
섭영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고 물었다.
“줍지 마.”
남초접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만약 돌을 가득 지니고 길을 떠난다면 힘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만약 위험에 부딪히게 됐을 때 오히려 짐이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마찬가지로 버려야 해.”
이 말을 듣자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방금 전에는 많은 재물을 보고 흥분한 나머지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었다.
남초접은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 오자마자 이 돌멩이들을 발견했어.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 돌들은 여기서 가장 가치가 낮은 것일 거야! 다시 말하면 이것들은 그저 하찮은 수준이고, 진정한 보물은 아직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지.”
“남 사저의 말이 맞아요.”
섭영이 곧바로 동조했다. 좌안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두억상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돌을 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하며 버렸다.
오직 양준만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양염석을 줍고 있었다. 마치 남초접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를 본 남초접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하, 위험에 부딪혔을 때 버려도 늦지 않아요.”
양준이 주우면서 설명했다.
“네 맘대로 해.”
남초접도 막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너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다 주우면 따라와.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네. 먼저 가세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초접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돌무더기를 넘어 앞으로 걸어갔다.
좌안은 더욱 멸시하는 눈길로 양준을 힐끔 봤다. 섭영은 직접적으로 침을 뱉으며 말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가난뱅이 같으니라고! 어차피 버릴 건데 시간만 낭비하고 힘을 빼는구나.”
“내가 기다렸다 같이 갈게.”
그래도 두억상이 좋은 마음으로 남았다.
“그럴 필요 없어. 먼저 가!”
말하면서 양준은 자신의 웃옷을 벗었다. 보아하니 마음껏 주우려는 모양이었다.
그가 고집하는 것을 보고 두억상도 더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사람들을 쫓아갔다.
주위에 사람이 없자 양준도 더 이상 조심하지 않았다. 그는 미친 듯이 진양결을 돌려 양염석의 기운을 신속히 흡수하는 한편, 웃옷으로 만든 보자기에 돌을 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에 양액이 스무여 방울 많아지고, 보자기에도 돌이 가득 담겼다.
이 정도 모았으면 됐다. 아직도 양염석이 엄청 많았지만 양준은 그것을 모두 주울 필요가 없었다. 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남초접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 돌멩이들은 아마 이곳에서 가치가 가장 낮은 물건일 것이다. 그러니 이것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긴 시간이 지나 양준은 드디어 네 사람을 따라잡았다. 그 사이에 양준은 또 몇 개의 양염석의 기운을 흡수했다.
그들과 합류한 후 두억상을 제외하고 다른 세 사람은 양준을 보는 낯빛이 별로 좋지 않았다.
실력으로 따지면 양준은 그들 중에서 가장 낮았다. 기동 경지도 안 되니 짐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동문이 아니었다면 남초접과 섭영은 양준과 같이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껏 걸었는데 아직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어.”
남초접은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 다시 살펴보자. 만약 나갈 방법이 없으면 어디 자리를 찾아 좀 쉬자.”
“좋아!”
사람들은 오는 내내 모두 남초접의 지휘를 받았으므로 이번에도 당연히 반박하지 않았다.
“한 시진이 됐어. 이제 누가 앞에서 길을 안내할 거야?”
남초접의 아름다운 눈이 네 사람을 훑어봤다.
이곳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떤 위험이든 제일 앞에서 걷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건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출발하기 전에 한 시진이 지날 때마다 사람을 바꾸어 길을 안내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섭영이 말했다.
“지금 세 문파의 제자가 모두 있는데, 능소각에서 이미 한 사람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혈전방 아니면 풍우루에서 길을 안내해.”
그는 말하면서 좌안과 두억상을 힐끔 봤다.
좌안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억상이 나서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할게.”
양준은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다섯 사람은 잠시 하나의 무리를 이루었지만 그들 중에 마음이 가장 착한 두억상만이 조금의 계략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양준을 포함해 모두 각자의 의도가 있었다.
이 무리는 결코 단결되지 않았다. 진짜로 큰 위험에 처하면 아마 바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대략 반 시진 정도 걷자 앞에 큰 공터가 나타났다. 그들은 들어와서 지금까지 줄곧 많은 돌기둥에 둘러싸여 있다가 드디어 다른 곳을 발견하게 되니 매우 흥분되었다.
두억상의 인솔 하에 다섯 사람은 신속히 그쪽으로 접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공터에 다다랐다. 여기도 여전히 같은 공간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다른 곳과 조금 달랐다. 그리고 공터에는 석상들이 여러 개 우뚝 솟아 있었는데 모두 사람의 형상이었다.
석상들은 대부분 진짜 사람만큼 컸다. 어떤 것은 빈손이고, 어떤 것은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손에 들려 있는 무기들의 모양은 괴상한 데다 종류도 다양했다.
대충 세어 보니 석상들은 백 개가 넘고 조형이 모두 달랐다.
먼저 남초접과 섭영 두 사람이 함께 탐색한 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두억상이 앞장서서 석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준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러웠지만 매우 뚜렷한 느낌이었다. 양준은 심장박동마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별다른 기색 없이 한창 석상들의 생동감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양준은 문득 한 석상 뒤로 짙은 붉은색이 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공기 중에 은은한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짙은 붉은색의 옆에는 천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사람 옷 같아 보였다.
“위험해!”
상세히 설명할 새도 없이 양준이 급히 소리 질렀다.
그때, 주위의 백여 개의 석상들이 까딱까딱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다른 네 사람은 넋이 나갔다. 남초접과 섭영 그리고 좌안은 반응이 빨랐다. 그들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뒤돌아 뛰었다. 반대로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두억상은 멍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도망칠 기회를 놓쳤다.
그녀의 옆에 있던 두 개의 석상이 그녀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