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장. 네가 유인하는 것이 어때?
“웃기는 소리…….”
섭영이 또 투덜거리려는데 두억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평온한 얼굴이 싸늘해지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
“입 좀 다물어!”
섭영은 어리둥절해져 겁에 질린 듯한 얼굴로 두억상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안중에 두지 않았지만 두억상은 실력이 자신보다 두 단계나 높았다. 실제로 싸우면 자신은 그녀의 상대가 안 되었다.
좌안도 경멸하듯 섭영을 힐끔 보더니 무뚝뚝하게 말했다.
“너 너무 시끄러워.”
이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양준을 도와 분풀이를 하는 게 아니었다.
섭영은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는 이 사람들 중에 양준을 도와주는 사람이 두 명이나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양준을 보는 섭영의 눈빛은 더욱더 원한이 가득 찼다.
남초접은 그 광경을 못 본 척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작은 석상을 꼭 쥐고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내가 이 물건을 살펴볼게. 정말 양준이 말한 대로라면 달리 계획해야 할 거 같아.”
사람들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이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남초접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살펴볼 동안 좀 지켜 줘.”
말을 마치자 그녀는 체내의 원기를 운행해 손에 쥐고 있는 작은 석상 안에 주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초접이 기뻐하며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양준을 보고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이 작은 석상 안에 확실히 무공이 담겨 있어.”
네 사람은 일제히 얼굴색이 변했다.
“자세히 알아보지는 못해서 이것이 어떤 무공인지는 몰라. 하지만 급이 절대 낮지 않을 거야. 적어도 지급 중품의 무공이야!”
작은 석상 안에는 서른여 개의 홍실이 있었다. 그것은 이 무공이 서른여 개의 경맥을 쓴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초접이 지급 중품이라고 한 것도 단지 어림짐작한 것이었다. 지급 상품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 말을 듣자 다른 세 사람의 호흡이 가빠졌을 뿐만 아니라 양준도 흥분되었다.
그날 밤 산골짜기에서 싸운 뒤, 양준은 자신의 단점을 깨달았다.
바로, 무공이 적은 것이었다.
그는 내놓을 만한 공격 수단이 없었다. 모든 공격은 체내의 양액에 의지했는데, 이것은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불굴지오는 매우 훌륭한 무공이었으나, 그것은 공격 수단이 아니고 보조적인 무공이었다.
만약 그때 산골짜기에서 그에게 지급 정도의 공격 무공만 있었더라도, 싸움이 그토록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준은 공헌치가 많지 않고 문파에서의 지위도 낮아 제대로 된 무공을 사서 수련할 방법이 없었다.
지급 하품의 무공도 4~500점의 공헌치는 있어야 바꿀 수 있었다. 게다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무공을 발견한 것이다.
석상 안에서 작은 석상이 하나 나왔으니 두 개, 세 개, 심지어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이곳에는 무려 석상이 백여 개나 있었다.
지급 무공은 사람들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
남초접은 속으로 자신이 애초에 정확한 결정을 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두 개의 석상을 부술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작은 석상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이 석상 안에 숨겨진 비밀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남초접은 흥분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녀의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묻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해보자!”
좌안은 말수가 적어 그저 한마디만 했다.
“저 석상에 무공이 숨겨져 있는 걸 알았는데 당연히 가만둘 수 없죠.”
섭영은 눈이 반짝거렸다. 흥분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색이었다.
“역시 전승동천은 다르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다니!”
양준과 두억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들 동의하니 우리 계획을 좀 세워보자!”
남초접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작은 석상은 일단 내가 보관할게. 많이 모이면 그때 나누자. 걱정하지 마. 나 혼자 그 안에 숨겨진 무공을 탐하지는 않을 거니까.”
“남 사저, 저는 사저를 믿어요.”
섭영이 바로 충성을 표했다.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봤다.
“남 사저는 능소각에서도 유명해. 내가 보장하는데 사저는 너희들을 속이지 않을 거야.”
이렇게까지 말하니 좌안과 두억상도 더 이상 이견이 없었다. 또 이 방법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지금 작은 석상은 하나뿐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지 토론하는 일만 남았다.
모두 방금 전 석상과의 결투로 어느 정도 석상의 실력을 파악했다. 석상 하나의 전투력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더 강했다. 석상의 장점은 명확했다. 속도가 빠르고 힘이 셌다. 그리고 단점은 더욱더 뚜렷했다. 반응도 느리고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돌기둥을 돌며 달아나면 따돌릴 수 있었다.
이런 약점에 대응해, 방금 직접 경험하기까지 했으니 전투 방법이 매우 빨리 결정되었다.
한 사람이 석상들을 유인해 내면, 남은 사람들이 기회를 봐 하나 혹은 두 개 정도의 석상을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전력으로 공격해 가장 빠른 속도로 석상을 부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누가 석상들을 유인하느냐였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왜냐하면 석상을 유인하는 사람은 큰 모험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여 개의 석상이 동시에 쫓아오니, 조심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다들 이 임무의 험난함을 알고 있었기에 서로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섭영이 음산한 눈길로 양준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석상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실력이 높은 사람을 남겨야 해. 그럼 석상을 유인할 사람은 실력이 좀 낮아도 괜찮은 거지. 도망칠 노선을 잘 선택하면 속도가 좀 늦더라도 돌기둥을 빙빙 돌아 뒤따라오는 석상을 따돌릴 수 있어. 아까 보니 양준이 속도가 빠른 것 같던데 네가 유인하는 것이 어때?”
양준은 섭영의 말을 듣고 그를 보며 웃었다.
“좋아!”
“양준…….”
두억상이 양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좀 전에 그녀는 두 개의 석상에게 쫓기며 간담이 서늘했었다. 그 감각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한데, 양준이 스스로 그 일을 맡다니. 그녀는 양준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양준이 담담하게 웃었다.
남초접은 양준을 힐끔 보며 엄숙하게 물었다.
“석상들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자신 없으면 모험하지 마. 번갈아 돌아가며 유인하면 돼. 위험한 일을 혼자서 하게 할 순 없어.”
“확신은 없지만, 할 수 있어요.”
양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방금 전 상황은 위험했지만, 그것은 양준의 가장 빠른 속도가 아니었다. 그날 밤 산골짜기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양준은 체내 진양원기의 사용법을 일부 터득해 냈다. 진정한 무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속도를 대폭으로 높일 수 있었다.
석상과 싸우는 것에 비교하면 양준은 그래도 그것들을 유인하는 쪽이 더 끌렸다. 방금 전 한차례의 싸움에서 그는 자신의 지금 실력으로는 석상들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불굴지오를 쓰면 당연히 실력을 높일 수는 있지만 이는 비장의 무기이기에 쉽사리 사용할 수 없었다.
“네가 고집을 부리니 그럼 우리 한 번 해보자. 도저히 안 되면 다시 사람을 바꾸면 되지.”
남초접이 결정을 내렸다.
상의를 마친 후 다섯 사람은 방금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갔다. 가는 도중에 남초접은 비교적 좋은 싸움터를 발견하고 일행들에게 일러두었다.
“양준, 아까는 고마웠어.”
두억상이 낮은 목소리로 양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양준이 위험한 순간에 그녀를 잡아당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별거 아니야. 마음에 두지 마.”
양준이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고마워.”
방금 전 석상들이 모여 있던 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석상들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양준은 조용히 아까 핏자국이 있었던 곳을 살펴봤다. 그곳에는 시체 두 구가 누워 있었다.
어떤 문파의 제자들이 이곳에 잘못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했는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준비됐어?”
남초접이 긴장해서 물었다.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쫓기면 여기로 달려와. 그러면 나와 섭영이 맨 마지막 한 개의 석상을 남길 거야. 두씨 동생과 좌안은 기회를 봐서 움직여. 만약 기회가 되면 두 번째 석상도 남기고, 어려우면 무리하지 마. 안전이 가장 중요해. 석상을 남기면 방금 내가 말했던 곳으로 유인해서 싸우자. 그리고 양준, 너는 절대 그곳에 가까이 와서는 안 돼. 나머지 석상들을 모두 따돌린 후에 돌아와야 해.”
남초접이 일목요연하게 지시를 내렸다. 각자의 임무가 명확하며 간단했다.
모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움직이자. 양준, 조심해.”
남초접은 격려하듯 양준을 힐끔 보았다.
양준은 양염석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땅에 버리고 성큼성큼 석상들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긴장한 채 그를 주시했다. 무공의 유혹 때문에 섭영도 이제 양준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만약 양준이 실패해 죽는다면 방금 전 자신이 말한 대로, 다음에 석상을 유인할 사람은 그 자신이었다. 남은 네 사람 중에서 그의 실력이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너 이것도 못하면 안 돼!”
섭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과 같이 양준은 석상들 앞으로 갔다.
그 시각 석상들은 여전히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러나 양준은 자신이 그들의 경계 범위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앞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이미 손으로 석상을 만질 수 있는 거리였다.
양준은 걸음을 멈췄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했다. 이내 석상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컥-
그들의 동작이 점차 빨라지더니 눈 깜짝할 새에 날렵해졌다.
양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 다른 사람들이 매복해 있던 곳을 지나며 그들에게 손짓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백여 개의 석상들이 양준을 쫓아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