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04화 (104/853)

제 104장. 절대로 훔쳐보면 안 돼!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주먹을 쥐었다. 방금 전 주먹을 휘두를 때의 느낌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작은 석상은 무공의 수련 방식이 담겨져 있을 뿐 무공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스로 무공의 이름을 지어야 했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잠깐 생각하던 양준은 이 무공을 염양폭(炎陽爆)이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서른여섯 갈래 경맥의 원기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이는 꽤나 괜찮은 공격 수단으로, 상대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의 체내 원기로는 이 무공을 세 번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세 번을 다 쓰고 나면 온몸의 원기가 완전히 소모되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함부로 이 무공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준은 단전 내에 비상용 양액을 많이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양준이 염양폭을 제약없이 수련할 수 있는 동시에, 수련 효율이 다른 사람들보다 수백 배 더 빠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염양폭은 아마 지급 상품의 무공일 것이다. 양준은 자신의 운이 그래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권법의 무공을 가졌으니 말이다.

만약 검이나 봉을 쓰는 무공을 가졌더라면 양준은 아마 매우 상심했을 것이다. 현재 무기가 없는데 설령 무공을 가졌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음을 가다듬은 후 양준은 하루라는 시간을 이용해 염양폭을 조금이라도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수련하여 전투력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자 염양폭이 어느 정도 숙련되었다. 일행 다섯 사람은 다시 한데 모였다.

낙심한 사람은 섭영뿐이었고, 다른 네 사람은 모두 자신이 얻은 무공에 비교적 만족했다. 양준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며칠을 고생했지만 그래도 드디어 지급 상품의 무공인 염양폭을 얻었고, 또 아직 수련하지 못한 작은 석상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무공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색을 보니 수확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오직 섭영만이 투덜거리며 불만이 많았다. 그가 얻은 것은 채찍을 쓰는 무공으로 실로 답답하다고 했다.

두억상이 양준의 옆에서 실눈을 하고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겁한 사람은 벌을 받는 법이지. 쌤통이야!”

양준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남초접이 좋은 말로 몇 마디 위로해 주니 섭영은 금방 기분이 풀린 듯했다.

다섯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났다. 걷다가 남초접이 문득 고개를 돌려 양준을 보며 말했다.

“네가 전에 주웠던 양염석은?”

“버렸어요.”

양준이 대답했다.

“흥, 끝까지 고집 부리더니.”

섭영은 양준이 괜한 짓을 한 것을 알고 기분이 좋아졌다.

양준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섭영이 어찌 그 양염석들이 이미 양준의 단전에 축적되었다는 걸 알겠는가?

*그들이 있는 곳은 해도, 달도, 별도 없어 시간의 흐름을 알 방법이 없었다. 양준은 족히 이틀을 걸어서야 드디어 그곳을 빠져나온 것 같다고 짐작했다.

오는 동안 그들은 길에서 세 종문 제자들의 시체 몇 구를 보았다. 그들이 그곳에서 어떤 위험에 부딪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양준 일행은 오는 내내 무사했다.

밖으로 걸어 나오자 다섯 사람은 모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승동천에 들어온 후부터 그들은 줄곧 같은 환경에 처해 있었다. 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보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밀림이었다. 무성한 숲이 쭉 이어져 울창했다.

밀림에는 위험이 많다고 하지만, 이미 밖으로 나왔는데 어찌 다시 안으로 돌아가겠는가? 게다가 위험이 존재하면 반드시 기회도 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렇게 큰 밀림에 영초 묘약(靈草妙藥)은 적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일행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주위를 경계하면서 밀림으로 들어갔다.

얼마 걷지 않아 좌안이 낮게 소리치면서 고개를 숙여 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좌안이 일어서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 전에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어. 수도 적지 않아.”

그 말에 섭영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세 종문의 다른 제자들도 여기로 온 걸 거야.”

좌안이 이마를 살짝 찌푸리더니 말했다.

“확신할 수 없어. 전승동천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전승동천은 봉인된 지 적어도 천 년은 됐는데, 만약 이 안에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좌안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급히 덧붙여 말했다.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아마 세 종문의 제자가 맞겠지.”

“그럼 우리 뒤쫓아 가자.”

섭영이 제안했다.

“만약 앞에 있는 사람이 해 사형이거나 소 사저라면 얼마나 좋겠어.”

남초접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했다. 다섯 명의 작은 무리에서 그녀가 잠시 통솔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실력이 높지 않았다. 만일 진짜 큰 위험에 부딪히면 아마 모두 피해를 입을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인원으로 돌아다닐 바에는 차라리 능소각 동문들을 찾는 것이 나았다. 그들의 보호가 있다면 훨씬 안전해질 터였다.

“그럼 그들을 찾으러 가자.”

일행은 며칠 전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반나절이 지나자 눈앞이 탁 트이더니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옆에는 발자국이 적지 않게 남겨져 있었다. 보아하니 세 종문의 제자들이 여기서 잠깐 휴식했던 것 같았다.

앞서 간 이들이 여기서 휴식했었으니, 이곳은 위험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침 양준 일행은 계속 걸어오느라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그들은 간단한 상의를 거쳐 이곳에서 쉬면서 정돈한 후 다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다섯 사람은 주위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 가부좌를 하고 체력을 회복했다. 얼마 뒤, 남초접이 두억상의 곁으로 와 낮은 소리로 몇 마디 했다. 두억상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망설이더니,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낯빛이 조금 붉어졌다.

그 다음 남초접은 양준 앞으로 가 가볍게 그의 어깨를 쳤다.

“무슨 일 있어요?”

양준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나를 따라와 봐.”

남초접이 슬그머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섭영과 좌안을 보더니 양준에게 손짓했다.

양준은 이마를 찌푸렸다. 그녀가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따라 나섰다.

쉬고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양준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두억상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야?”

양준은 그녀들이 모여서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두 여인의 사이는 그다지 좋아 보이는 편은 아니었다.

남초접이 조금 부끄러운 듯 웃었다.

“나와 두씨 동생이 여기서 목욕을 하려고.”

양준은 눈빛이 이상해졌다. 그는 앞에 있는 두 여인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두억상은 얼굴이 붉어졌고 남초접도 조금 부끄러운 듯 발을 구르며 말했다.

“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그저 다른 사람들이 여기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망 좀 봐달라는 거야.”

양준이 실소를 금치 못하고 말했다.

“남 사저, 사람을 잘못 찾은 것 같은데요? 이 일은 섭영을 찾아야죠. 섭 사형은 무조건 좋아할 거예요.”

남초접은 양준이 요 며칠 자신이 한 행동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그를 믿는다면 뭐 하러 너에게 부탁했겠어?”

“사저가 저를 믿는다고요?”

양준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몰래 훔쳐볼지 몰라요.”

남초접이 사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럴 용기가 있어도 난 신경 쓰지 않아. 어차피 두씨 동생이 너를 혼낼 거니깐.”

양준이 마른기침을 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도 더 사양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두억상도 함께 가니 그녀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좋아요. 그런데 최대한 서두르세요.”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대답하자 남초접은 미소를 지었다.

“너는 여기에 있으면 돼. 나와 두씨 동생은 다른 쪽으로 갈 거야.”

남초접은 말을 마치고는 두억상의 팔짱을 끼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가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부탁했다.

“너 절대로 훔쳐보면 안 돼!”

“네, 네.”

양준이 대답하면서 호수 반대편을 살폈다. 여기는 지켜보기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저쪽 호숫 가에서 십여 장 되는 거리에 커다란 돌이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천연 병풍과도 같았다. 두 여인이 돌 뒤에 숨으면 양준이 설령 훔쳐보려고 해도 볼 수 없었다. 남초접이 그를 부른 것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그녀들이 이미 장소를 찾았으니 양준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호수를 마주하고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명상하던 양준이 눈을 떠보니 큰 돌 위에 여자들의 옷이 가득 놓여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초접과 두억상은 몸을 돌 뒤에 숨기고 있었다. 시력이 돌을 꿰뚫지 않고서는 모두 헛짓이었다.

양준은 남초접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또 동문이기에 며칠 전 그녀가 일을 처리하는 태도에 불만이 있을 뿐 다른 건 괜찮았다.

양준은 기회를 찾아 자신도 이 무리를 떠나 홀로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소무영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양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섭영이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다. 눈길은 호수의 다른 한쪽의 암석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에 광기를 띤 채 호흡도 조금 거칠었다.

양준이 자신을 바라보자 섭영은 그저 경멸하듯 웃더니 신속히 그의 옆으로 와 위협하듯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조용히 여기 앉아서 꼼짝 말고 있어. 만약 말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양준이 무덤덤하게 그를 보았다. 섭영은 양준이 겁먹은 줄 알고 코웃음을 치며 양준의 앞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호수에서 두 여인의 웃음소리, 그리고 물장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귀를 파고들어 사람을 현혹시켰다. 섭영은 피가 들끓었다.

몇 걸음, 몇 걸음만 더 가면 암석 뒤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양준이 콧방귀를 뀌며 여유 있게 손나발을 만들어 입가에 대고 단전의 기를 모아 소리쳤다.

“섭 사형, 거기서 뭐 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