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장. 너도 와도 돼
이곳은 원래 조용한 곳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두 여인의 웃음소리와 물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양준의 소리는 비록 크지 않았지만, 그녀들에게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말이 떨어지자 저쪽에서 강렬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두 여자가 물에 뛰어든 모양이었다. 섭영도 크게 놀란 듯했다. 그는 재빨리 몇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고개를 돌려 양준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어 신법을 펼쳐 신속히 돌아왔다.
도망치는 그의 눈빛에는 원망과 독기가 가득했다. 그는 양준이 감히 자신을 건드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양준은 멸시하듯 웃었다.
만약 그가 섭영이었다면 어차피 이미 폭로되었는데 차라리 앞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나마 진짜 원하던 것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초접과 두억상이 머리가 흠뻑 젖은 채 저쪽에서 걸어왔다. 두억상은 양 볼이 불룩하고 눈에 한기가 스쳤다. 반대로 남초접은 무덤덤하게 양준을 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양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멀리서 강한 원기의 움직임이 전해져 왔다.
고개를 돌리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눈부신 빛이 상공에 스치는 것이 보였고, 어렴풋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분노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울부짖는 소리는 분명, 요수가 내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 요수가 존재한단 말이야?’
그리고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요수와 싸우고 있는 듯했다.
이내 섭영과 좌안도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들은 엄숙한 얼굴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두억상은 매섭게 섭영을 쏘아보았다. 눈빛에 숨길 수 없는 혐오와 경멸이 담겨 있었다. 남초접은 방금 전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물었다.
“좌안, 무엇이 들려?”
좌안은 청력이 비교적 좋았다. 다른 사람도 여기서 저쪽의 움직임을 들을 수 있지만 그처럼 상세하게 들을 수는 없었다.
좌안이 무겁게 말했다.
“저쪽에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요수 한 마리를 공격하고 있어. 요수의 움직이는 소리를 들어 보면, 적어도 6급 정도 되는 것 같아.”
일행은 일제히 얼굴색이 변했다. 6급 정도의 요수면, 그건 신유 경지의 무인과 같았다.
전승동천에 들어온 사람들은 기껏해야 진원 경지의 고수였다. 신유 경지를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백여 명의 사람들은 바보인가, 왜 스스로 죽으러 갔지?
“요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힘이 없어.”
좌안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들어보니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이곳의 봉인과 연관이 있는 것 같군.”
일행들은 바로 깨달았다.
이곳의 봉인은 며칠 전에 풀렸다. 이곳의 요수들도 분명 오랫동안 봉인되었을 것이고,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놈들은 분명 원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백여 명의 사람들이 요수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요수가 상처를 입은 것 같아.”
과연, 그의 말이 떨어지자 분노가 섞인 요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도 갑자기 조용해졌고, 백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잠잠해졌다.
“무슨 상황이야?”
남초접이 조급하게 물었다.
“몰라.”
좌안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우리 한 번 가볼까?”
남초접은 이마를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참 후에야 고개를 돌려 다른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나는 가 봐도 괜찮다고 생각해. 거기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모두 진원 경지나 이합 경지는 아닐 거야. 아마 기동 경지의 동문도 있을걸. 그들이 거기에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도 당연히 가능해. 하지만 분명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갈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해.”
“가죠, 당연히 가야죠.”
섭영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에 그런 어색한 일을 저질렀으니, 그는 이 무리에 남아 있기가 껄끄러웠다. 당연히 다른 동문들을 찾아가려 했다.
“나도 가겠어.”
좌안이 말했다.
남초접이 양준과 두억상을 바라보자 두 사람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그들은 급히 신법을 펼쳐 움직임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대략 한 시진 뒤, 다섯 사람은 드디어 다른 세 종문의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 두 종문의 사람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각자 인원수가 모두 오십 명 정도였고,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숲이 너무 어두워 다섯 사람은 그들이 도대체 어느 세력인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다가가자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자기, 너희 풍우루도 고작 이 정도군. 내 손에서 물건을 빼앗으려고? 그건 아직 안 되지.”
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섭영은 몹시 기뻐했다.
“해 사형이다!”
남초접도 미소를 지었다. 양준은 도리어 얼굴이 어두워졌다.
멀리 있는 무리 중 한 패는 능소각 사람이었는데, 앞장선 사람은 해홍진이었다. 그는 양준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두억상도 양준과 같은 표정을 했다. 그녀는 풍우루의 제자였다. 해홍진이 말한 방자기는 풍우루에서 젊은 제자들을 대표하는 고수였다.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두억상은 슬며시 남초접 일행과 거리를 두었다. 비록 며칠간 다섯 사람이 연합해 적을 상대했지만, 지금 각자 종문의 큰 무리가 나타났으니 결국 종문을 따라야 했다. 이렇게 되면 서로 적이 되는 것이었다.
해홍진이 비웃자 방자기가 담담하게 말했다.
“해홍진,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이제 갓 진원 경지에 올라 내 상대가 안 되거든. 스스로 굴욕을 자초하지 마.”
“뭐라고?”
해홍진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한편에서 적지 않은 능소각의 제자들이 아우성쳤다. 그들은 해홍진더러 방자기에게 본때를 보여주라고 소리쳤다.
“흥, 능소각에는 소안을 제외하고 내 눈에 차는 사람이 없어.”
방자기가 가볍게 웃었다. 태도가 매우 방자하고 오만했다.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야?”
“싸우고 싶으면 기꺼이 상대해 주지.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면 체면이 말이 아닐 텐데.”
이 말은 해홍진의 정곡을 찔렀다. 그와 방자기는 모두 진원 1단계였지만, 한 명은 방금 진급했고, 한 명은 돌파한 지 오래되었다. 진짜로 싸운다면 상대가 안 될 수도 있었다.
해홍진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마침 밀림에서 뛰쳐나온 섭영이 소리쳤다.
“해 사형!”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해홍진은 급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가 긴장을 풀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섭 사제!”
“드디어 만났어.”
섭영은 너무나 감동했다. 그는 신속히 다섯 사람의 작은 무리를 벗어나 능소각 제자들 쪽으로 달려갔다.
나머지 네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두억상과 좌안은 능소각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건너가지 않았다. 양준은 해홍진과 원한이 있어 건너가지 않으려 했다. 남초접은 양준과 해홍진의 원한에 대해 알고 있기에 조금 망설이면서 양준을 힐끔 보았다.
“양준, 나는 방 사형 쪽으로 갈 거야. 그동안 고마웠어.”
두억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잘 가.”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좌안, 어쩔 거야? 나와 함께 갈 거야, 아니면 남 언니와 함께 갈 거야?”
두억상은 가기 전에 좌안에게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곳에 혈전방 쪽 사람은 없어, 그는 어느 쪽으로든 가기 애매했다.
좌안이 시무룩해하며 말했다.
“너하고 같이 갈게.”
풍우루의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며칠간 지내면서 좌안은 두억상이 마음씨가 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초접을 따를 바에는 차라리 두억상을 따르는 편이 나았다. 적어도 그녀는 앞뒤가 다르진 않을 것이다.
두억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좌안과 함께 풍우루의 무리 쪽으로 갔다.
“우리도 가자.”
남초접이 말했다.
양준은 대답하지 않고 능소각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사저는 가세요. 전 가지 않겠어요.”
그는 사람들 속에서 소무영도, 소안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응상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은 해홍진이 거느리는 무리였다. 그가 건너가면 스스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었다.
“사제, 조금만 참으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 여긴 위험이 가득해서 너 혼자 대처하지 못할 텐데.”
남초접이 그의 우려를 알고 낮은 목소리로 설득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표정이 매우 확고했다.
섭영이 오자 능소각의 제자들은 기뻐하며 서로 인사했다.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어 섭영은 해홍진 앞으로 가 낮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는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양준과 남초접이 있는 곳을 봤고, 이내 그의 얼굴에 차가운 적의가 서렸다.
이십 장 정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해홍진이 경멸과 의기양양함이 섞인 눈빛으로 양준을 보았다.
다른 쪽에서는 방자기가 상황을 모른 채 재촉하고 있었다.
“해홍진, 나하고 싸우려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 두 종문이 연합해 저 요수를 죽이자. 요수가 지키던 보물은 그때 다시 말해도 늦지 않으니까.”
해홍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은 잠시 후에 다시 말하지. 먼저 집안일을 처리해야 해서.”
말을 마친 해홍진은 부드러운 눈길로 남초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 사매, 오는 길에 수고 많았어. 이제 우리랑 만났으니 어서 건너와, 이쪽에 있으면 안전해.”
남초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양준의 옷을 잡아당겼다. 양준은 꼼짝하지 않았다.
해홍진이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양 사제, 너도 와도 돼. 모두 동문이잖아. 이곳은 위험이 많고 네 실력이 낮으니 내가 너를 보호해야지.”
섭영이 분노하며 말을 이었다.
“해 사형, 저런 놈은 사제로 보지 않아도 돼. 전에 종문에서 그가 한 일을 잊었어? 사형한테 조금도 존경심이 없는데 돌봐줄 필요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