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장. 추격
해홍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가 어찌 전의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많은 집법당 제자들 앞에서 소안이 양준의 손을 잡았던 것을 생각하면, 해홍진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해홍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매우 억지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담담한 척 말했다.
“그래도 사제가 어리니 내가 이해해 줘야지. 너희들도 어리석은 짓을 할 때가 있잖아?”
해홍진의 얼굴이 가볍게 파들거렸다. 양준을 보는 눈빛이 더욱더 차가워졌다.
그러나 그의 이 말은 도리어 일부 능소각 제자들을 감동시켰다. 양준의 비열하고 염치없는 성정에 비하면, 해홍진은 너그럽고 의리가 있으며 품격이 있었다.
“양준, 속히 달려와 해 사형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지 않고 뭐 해!”
해홍진을 둘러싼 무리들이 하나둘 소리치기 시작했다.
“양준, 해 사형이 너 하고의 일을 따지지 않고 넘어가 주었지만, 우리가 너를 용서한다는 건 아니야. 만약 네가 오늘 해 사형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원수다. 우리도 너를 사제로 여기지 않을 거야.”
“너는 정말로 낯도 두껍다. 실력도 낮으면서 자기 분수를 몰라.”
사형들뿐만 아니라 그중의 사저 한 명도 양준을 성토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양준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
양준의 표정은 담담했다. 마치 그들이 하는 말들이 바람에 날려 귓가를 스쳐가는 것처럼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초접이 양준을 다시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제, 고집 부리지 마. 사내가 굽힐 줄도 알아야지. 사과하는 것뿐이잖아? 큰일 아니야.”
양준은 고개를 돌려 무덤덤하게 남초접을 보았다.
냉정한 그의 눈빛에 남초접은 깜짝 놀라 이마를 찌푸리고 물었다.
“왜?”
“해홍진의 의도를 모른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건너가면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죠.”
양준의 목소리가 한층 싸늘해졌다.
양준의 말을 들은 남초접은 도리어 화를 냈다.
“너희들 일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사저와 사제로서 요 며칠 동고동락했지만, 우리가 정을 쌓은 것도 아니고, 저를 여기 버려둔다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혼자 가세요. 제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요.”
남초접은 속내를 들키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너는 왜 이리 사리분별이 안 돼?”
그녀는 발을 크게 구르더니, 더는 양준을 아는 체하지 않고 해홍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몇 걸음 걷다가 멈춘 채,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에게 빚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잘난 척하지 마.”
말을 마친 그녀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능소각 쪽에서는 양준에 대한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해홍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우쭐거리며 양준을 주시했다. 그의 모습은 마치 구름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오만함이 가득했다.
지금 이 상황은 양준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모두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 무리에 들어와 자신을 보호하려고? 좋아. 순순히 와서 사과하고 무릎을 꿇어! 그러길 원하지 않는다면 너 혼자 위험한 전승동천에서 떠돌아다녀 봐. 네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보자.’
해홍진도 양준이 어떠한 선택을 하기를 기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때, 양준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세에 빌붙는 아첨꾼들, 난 내 길을 가련다.”
한창 해홍진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남초접이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어쩐지 양준의 말이 자신을 놓고 하는 말인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굴욕감이 치밀어 올랐다.
곧이어 남초접은 화가 났다.
‘내가 뭘 어디에 빌붙어 출세하려 했어?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당연히 실력이 높은 사람을 따라다녀야 안전하잖아. 그렇다고 개원 경지 7단계밖에 안 되는 사제를 따라 모험해야 해? 남의 호의를 무시하고 원망하다니. 재주가 있으면 제 실력이나 높일 것이지. 그럼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주위에 모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도 양준 쪽에 섰을 거야. 내가 권유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내가 진짜 버리고 신경 쓰지 않은 것도 아니잖아. 스스로선택한 길인데 왜 나를 원망해?’
이런 생각을 하자 남초접은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양준에 대한 미안함도 많이 줄어들었다.
곧이어 양준의 모습이 밀림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그 한마디는 마치 끓는 물에 소금을 한 줌 뿌린 격이었다. 섭영이 버럭 하며 소리쳤다.
“양준, 너 감히 여러 사형, 사저들에게 이렇게 말해 놓고 가려고? 거기 서!”
섭영은 말하면서 양준이 떠난 방향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이내 양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홍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을 거다. 그 빚은 내가 언젠가 받아 낼 거야.”
그 말을 듣자 해홍진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당연히 양준이 뭘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지난 번에 그가 사람을 시켜 용휘에게 몰래 양준의 거취에 대해 알린 일이었다. 그때 해홍진은 용휘가 완벽하게 양준을 죽일 줄 알고 행동한 것인데, 예상과 달리 실패하고 말았다.
양준이 능소각으로 돌아온 뒤, 해홍진은 며칠 동안 걱정했었다. 양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몽무애가 두려운 것이었다. 어쨌든 당시 그들 세 사람은 함께 능소각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몽무애는 그를 찾아와 따지지 않았다. 때문에, 해홍진은 자신이 완벽하게 처리하여 탄로나지 않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양준의 말을 듣고서야 일이 이미 들통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살기가 꿈틀거렸다. 해홍진은 급히 섭영에게 눈짓했다.
섭영은 보복할 기회가 생기자 좋아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남초접과 두억상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 보려다가 양준에게 걸려 망신을 당했었다. 그 일에 앙심이 남아 있던 섭영은 양준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지금 해홍진이 허락하자, 그는 곧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양준, 너 감히 사형에게 그 따위로 말해? 혼 좀 나야겠다.”
그는 동시에 팔을 휘두르며 크게 소리쳤다.
“누가 나와 함께 해 사형의 분풀이를 해 줄 거야?”
몇 사람이 섭영을 따라 달려갔다.
남초접은 손을 내밀며 무언가 말하려다가 말을 다시 삼켰다. 그녀는 눈을 빤히 뜨고 몇 사람이 양준을 쫓아 밀림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히려 풍우루의 두억상이 양준을 도우려 했다. 그러나 방자기가 단번에 막았다.
“방 사형, 양준은 며칠 전에 나를 구해 준 적이 있어!”
두억상이 조급해하며 말했다.
“남의 집안일이다. 너는 상관하지 마.”
“하지만…….”
방자기가 싸늘하게 그녀를 보더니 한쪽에 있는 풍우루의 사매들에게 말했다.
“얘를 잘 지켜. 저쪽으로 가지 못하게 해.”
“네.”
두 명의 사매가 부랴부랴 양쪽에서 두억상의 팔을 꽉 잡았다.
방자기는 흥미진진하게 양준이 사라진 방향을 보다가, 다시 해홍진 쪽을 보며 낮게 말했다.
“여기서 내분을 일으키다니. 능소각도 별거 아니군.”
두억상이 발버둥 쳤으나 끝내는 두 사저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좌안도 안쓰러워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양준은 개원 경지 7단계밖에 안 되지만, 요 며칠 나는 오히려 그에게서 위험한 느낌을 받았어. 어쩌면 이번에 당하게 될 사람이 그가 아닐 수도 있어.”
“확실해?”
두억상은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어. 그저 직감이야.”
좌안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러한 직감 때문에 그는 요 며칠 줄곧 양준을 건드리지 않았다.
*밀림 속, 양준이 빠른 속도로 앞에서 달리고 있었고, 뒤에는 그를 뒤쫓는 그림자가 여러 명이었다. 그중 섭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 동문인 정을 봐서 고분고분 잡히면 덜 고생하게 해줄게. 그렇지 않으면 톡톡히 고생하게 될 거야.”
“정?”
양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난 너와 어떤 정도 없는데.”
“좋아. 그 말은 네가 한 거야.”
섭영은 화를 버럭 내며 크게 소리쳤다.
“양준은 며칠 전에 지급 상품의 무공을 얻었어. 저 자식을 붙잡아 그 무공의 수련 방법을 얻어내면 우리 모두 이득을 볼 수 있어.”
“뭐라고? 지급 상품의 무공?”
한 사람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의 눈에는 바로 탐욕이 가득 찼다. 그들도 전승동천에 들어와서 요 며칠 동안 수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많다 보니 똑같이 나누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양준이 지급 상품의 무공을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 어느 누가 부럽지 않을 수 있을까?
이익이 눈앞에 보이자 뒤를 쫓던 사람들은 속도가 확연히 빨라져 단숨에 양준과의 거리를 대폭 좁혔다.
“양준, 계속 저항할 거야!?”
한 사람이 소리치며 검을 뽑았다. 검은 번개처럼 양준의 등을 향해 덮쳤다.
위험을 느낀 양준은 급히 몸을 피했다. 아직 제대로 서지도 못했는데 이어서 또 누군가 공격해 왔다.
양준은 제자리에서 구르며 두 번째 공격을 피하고 다시 일어섰다. 이내 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뒤쫓아온 사람들은 이미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섭영을 제외하고 총 네 사람이 있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기동 경지였지만, 실력은 섭영보다 높았다.
다섯 사람은 하나의 원을 이뤄 양준을 중심으로 둘러싼 채, 모두 냉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중 섭영이 가장 기뻐했다. 그는 음침한 눈길로 양준을 주시하며 말했다.
“내 일을 망칠 때, 너에게도 이런 때가 올 줄 몰랐어?”
“여자가 목욕하는 걸 훔쳐보는 게 네 일인가 보지?”
양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섭영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이런 일은 확실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왔던 네 사람마저 의미심장하게 그를 보자 더욱 난처해졌다.
왼쪽에 있던 사람이 눈길을 거두고 낮게 말했다.
“양준, 너는 우리의 사제다. 우리는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 스스로 무공의 수련 방법을 넘겨. 우리가 너를 데리고 해 사형에게 가서 좋게 말하면, 해 사형이 너의 무례를 용서해 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