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08화 (108/853)

제 108장. 전승동천의 주인

호수의 물은 매우 차가웠다. 다행히 양준은 진양결을 수련한 덕분에 따뜻한 진양원기가 온몸에 흘러 이 정도 한기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양준을 쫓아 호수에 뛰어든 제자가 호수를 따라 한 바퀴 돌더니, 아무 수확도 없자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기어 올라갔다.

또 그들은 근처에서 한참을 찾다가 마침내 자리를 떠났다.

양준은 물속에서 숨을 참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가물거렸다. 이미 개원 경지 7단계에 도달해 일반인보다 숨을 훨씬 오래 참을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양준은 지금 그 한계에 거의 도달한 상태였다. 만약 그들이 떠나지 않고 계속 버텼다면 일이 매우 귀찮게 되었을 것이다.

양준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위로 올라가려고 할 때, 귓가에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에 양준은 경계하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잠시 후 또 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보니 바람소리 같았다.

‘이상하네, 호수 밑에서 웬 바람이지?’

망설임 끝에 양준은 바람소리가 나는 방향을 살펴보았다. 이윽고 그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물을 가르며 아래로 헤엄쳐 갔다.

양준은 호수 밑에 검은 동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굴 옆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니 과연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양준은 눈을 반짝였다. 검은 동굴의 다른 한쪽 끝에 물이 없는 공간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다른 하나의 출입구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바람이 불어올 수 없었다.

생각을 마치고 양준은 검은 동굴을 따라 헤엄쳐 내려갔다.

섭영 무리들이 분명 아직도 밖에서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나갔다가는 잠시는 안전할 수 있으나 들킬 위험도 있었다. 차라리 이 검은 동굴에 들어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는 편이 나을 듯했다. 만약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몸을 숨길 곳이 있을 것이다.

검은 동굴은 매우 깊었다. 깊이가 백여 장 정도는 되어 보였다. 입구는 아래로 뻗어 나가는 듯하다가 다시 곧은 길이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위로 향했다. 숨을 거의 다 소모할 때쯤, 양준은 마침내 수면 위로 나올 수 있었다.

양준은 밖으로 나오자,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그가 생각했던 대로 동굴의 끝에는 하나의 광활한 공터가 있었다.

양준은 전에 호수 옆에 산이 하나 있는 것을 눈여겨본 적이 있었다. 호수 밑의 검은 동굴은 분명 산봉우리 중의 하나의 동굴과 이어져 있는 듯했다. 때문에 바람이 동굴로 불어온 것이고, 양준이 그 바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동굴 안은 이상할 정도로 건조했다. 위쪽에는 몇 년이 되었는지도 모를 종유석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마치 하나 하나가 긴 창 같았다.

근처를 잠깐 살펴본 양준은 그제야 안심하였다. 이곳에는 생명이 움직이는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시름 놓자 양준은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급히 가부좌를 하고 앉아 진양결을 운행해 옷을 말리고, 체내에 흘러 들어온 기운을 없애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력이 양준보다 훨씬 높았기에 양준은 그 기운들을 단번에 없앨 수가 없었다.

양준의 체내 원기는 강하고 순수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침입에도 제때 없애기만 하면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만약 다른 개원 경지 7단계의 무인이었다면, 지금 가만히 앉아 그 기운들이 자신의 경맥을 잠식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시진 정도 지나자, 양준은 입을 벌려 검은 피 한 덩이를 토해냈다. 검은 피를 토하자 체내의 위험 요소도 모두 제거되었다.

그는 조금 무기력해 보였지만, 경맥을 막는 감각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양준은 섭영이 공격을 날릴 때 누군가 그것을 평가하던 것이 기억났다. 그 무공의 위력은 작지 않았다. 특히 공격 뒤에 이어지는 변화는 마치 거친 파도와 같아 염양폭과 비슷했다.

섭영이 날린 청풍장의 위력이 염양폭보다 조금 약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당했을 것이다.

가부좌를 하고 반나절 체력을 회복한 후 양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안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좀 전에는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 그저 대충 훑어만 봤었다. 하지만 체력을 회복한 지금, 다시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양준이 있는 곳은 동굴의 중간쯤인 듯했다. 좌우 양쪽에 모두 길이 있어, 그는 바람소리를 듣고 왼쪽이 출구와 통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바람은 왼쪽에서 불어오고 있었고, 오른쪽은 동굴 안쪽으로 통하고 있었다.

양준은 한참 생각하다가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지금은 쫓기고 있는 처지였으니 서둘러 동굴을 떠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은 약 냄새를 맡았다. 어두운 빛을 빌려 보니 통로 양쪽에 이상한 꽃과 풀들이 가득했다.

얼핏 봐도 등급이 평범하지 않아 보였으나, 독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역시 전승동천은 다르구나!’

양준은 이것들이 도대체 무슨 약초인지,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모두 가치가 낮지 않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양준은 그것들을 바로 채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어떻게 채집하는지 몰랐기 때문이고, 둘째로, 채집해도 보관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곳에는 자신밖에 없으니 그대로 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안쪽으로 걸어가면서 살펴보니 이곳에는 보물이 적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들과 약초들로 가득했다.

족히 한 시진 정도 걸어 양준은 앞쪽에 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귓가에는 마치 꿈결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잔뜩 긴장한 채 빛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고, 얼마 안 돼 그는 빛이 반짝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엔 주먹만 한 구슬이 있었다. 구슬은 부드러운 빛을 내뿜으며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양준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곳은 동굴의 가장 안쪽이었는데, 그와 멀지 않은 곳에 해골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해골은 화려한 보라색 두루마기를 입고서, 눈은 그가 걸어온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하고 음험한 느낌을 주었다.

이 해골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양준은 왠지 이 자가 생전에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골에서 사악하고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승동천은 이 자가 만들어 낸 걸까?’

양준은 전승동천의 내력이 떠올랐다.

‘만약 진짜라면 이곳에 이 자의 전승이 있겠지?’

양준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왔던 길이 막혀 있었다. 동굴 안에 커다란 돌이 굴러 떨어져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빛이 나던 구슬이 갑자기 깜박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방 십여 장 밖에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산한 바람이 휙휙 불어오는 것이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몸이 싸늘해졌다. 순간, 체내의 진양원기가 미친 듯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양준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말없이 그저 실눈을 뜨고 주위의 움직임을 살폈다.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얼마나 울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소리는 계속 양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만약 의지가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굽힐 줄 모르는 강인한 의지력이 양준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고작 소리 하나로 그를 흔들 수 있을 리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준은 울부짖는 소리가 조금씩 조급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방금 전과 확실히 달랐다.

마치 양준의 침착한 태도에 매우 화가 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점을 발견한 양준은 더욱더 냉정해졌다. 그는 아예 가부좌를 하고 앉아 마음을 안정시켰다.

소리는 점점 더 다급해졌다. 음산한 바람이 좁은 공간에서 사납게 몰아쳤고, 구슬에서 나는 빛도 더욱 빠르게 깜박거리면서 동굴 안은 점점 더 음산해졌다.

그럼에도 양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숨소리가 고르고 낯빛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족히 몇 시진이 지난 뒤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이상한 빛을 내던 구슬도 끝내 안정되었다. 돌아가는 길이 돌에 막힌 것 말고는 그가 들어왔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끝났어?”

양준은 비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곧이어 그는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가 교활한 술수를 부리는 거야. 당장 나와!”

양준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에서 메아리 쳤다.

그때, 갑자기 낄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산한 웃음소리에 양준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놀라서가 아니라 소리가 너무나 듣기 거북했던 탓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오장 육부가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몸만 불편한 게 아니라 머릿속에도 윙윙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정신 공격?’

양준은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원래 누군가 먼저 이곳에 와서 귀신인 척하며 그를 놀라 달아나게 하고, 이곳의 보물들을 혼자 차지하려는 속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웃음소리에 정신이 흔들리다니!’

이것은 평범한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신유 경지 이상에 도달한 고수들만 펼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곳에는 분명 기괴한 것이 있었다.

“젊은이, 끈기도 있고, 담도 작지 않군. 감히 이렇게 이 늙은이와 말하다니!”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말했다. 양준은 소리가 나는 곳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누구십니까?”

양준이 냉담한 표정을 짓고는,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

거북한 웃음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이내 웃음을 멈추더니 그 목소리가 양준의 물음에 답했다.

“내가 누구냐고? 나도 까먹었어. 내가 누굴까? 아마 이곳의 주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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