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9장. 자네 몸은 내가 가지도록 하지
“당신이 전승동천의 주인이라고요?”
양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 종문의 제자 수천 명이 한 곳에 모여 전승동천에 들어온 것은 신비한 전승을 얻기 위해서였다. 만약 이곳의 전승을 얻게 된다면 틀림없이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양준은 자신이 전승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여기 들어온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저 보물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곳에 들어온 이상, 전승에 관심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목소리가 이곳의 주인이라고 하자, 침착하던 양준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참 지나서야 말했다.
“맞네. 내가 바로 여기 주인이지. 젊은이, 자네는 내 전승을 받고 싶은가?”
양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이 말이 진실인지 고민했다.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누구에게 당한 것이지?”
그 목소리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복수하고 싶지 않아? 너를 다치게 한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그들에게 네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
음산한 바람이 양준의 귓가에서 맴돌았지만, 양준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복수하고 싶어요.”
“마음속 깊은 곳에 한이 맺혔군. 남들은 눈치챌 수 없는 한이지! 자네는 강해지고 싶어 하네. 그리고 자네를 깔보는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싶어 하지. 아닌가?”
양준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이마에 핏대가 섰다. 물론 양준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가 하는 말에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그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네! 내 전승을 받을 텐가?”
목소리는 계속해서 양준을 유혹했다.
“원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그럼 내 전승을 물려주겠네! 이건 엄청난 행운일세.”
“…….”
“원해, 원하지 않아?”
“…….”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만 하면 되네. 아주 쉬운 일이지…….”
“…….”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자네는 후회할 걸세…….”
한마디, 한마디가 보슬비가 내리는 것처럼 부드럽고, 봄바람이 귓가를 스치듯 양준의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그 목소리는 비할 데 없이 유혹적이었다.
양준의 시선이 흐릿해지고, 입술도 살짝 움찔거렸다. 그 목소리에 대답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신음소리와 함께 양준의 눈이 갑자기 맑아졌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상대방이 방금 무슨 수단을 썼는지 그는 하마터면 걸려들 뻔했다.
“아이쿠.”
목소리는 꽤 놀란 것 같았다.
“스스로 혀끝을 물어 아픔으로 신경을 건드리다니. 근성이 대단하군!”
“도대체 정체가 뭐야? 방금 무슨 방법으로 나를 현혹한 거지?”
양준이 싸늘하게 물었다.
“그걸 느끼다니. 젊은이 대단하군! 내가 누구냐면… 내가 과연 누굴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 바로 해골이지.”
양준의 시선이 앞에 있는 해골로 옮겨 갔다. 그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서 천천히 말했다.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들은 신식을 수련하여, 육신이 없어져도 신식이 살아 있는 한, 다른 이의 육체를 점령할 수 있다고 들었어. 당신은 아마 오래전에 이곳에서 죽은 고수일 테고, 지금 내 몸을 차지하려는 거겠지. 나를 현혹한 이유도 내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서고!”
양준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주변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러고는 한참 지난 후에야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군, 대단해! 겨우 개원 경지 7단계 애송이 주제에 그걸 꿰뚫어 보다니.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군.”
목소리는 말하면서 음산한 기색을 띠었다.
“사실을 알았는데 두렵지 않은가?”
양준이 경멸하듯 웃었다.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지? 당신이 만약 내 몸을 차지할 능력이 있다면 지금 나와 이렇게 헛소리할 필요가 있겠어? 당신이 고수인 건 맞지만, 그건 당신이 죽기 전의 실력이지! 지금의 당신은 그저 이렇게 헛된 수작이나 부릴 뿐인데, 내가 왜 당신을 두려워해야 하지?”
양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오히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찾아내면, 당신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젊은이, 너무 당돌하군.”
목소리가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 자네를 현혹하기 위해서라고? 하하, 내 신식 세 갈래가 이미 자네 머릿속에 스며들었네. 설령 자네가 반항하고 싶다고 해도 반항할 수 없을 거야. 그럼 자네 몸은 내가 가지도록 하지.”
목소리에 말을 듣고, 양준은 낯빛이 변하더니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앞에 있는 해골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웃기지마!”
죽은 지 얼마나 됐는지도 모를 해골은 양준의 주먹에 산산조각 났다.
양준은 얼굴의 긴장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어졌다.
“과감하군. 그런데 목표물을 잘못 찾았네!”
이때, 구슬에서 불현듯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험상궂은 사람의 얼굴을 한 형상이 구슬에서 튀어나왔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형상은 검은 연기에 뒤덮여 입을 쩍 벌린 채 양준을 향해 덮쳤다.
‘혼이 해골에 숨어 있지 않고 빛이 나는 구슬에 숨어 있었다니!’
양준이 다시 손을 내밀어 공격하려는데, 날아오던 사람 얼굴의 형상이 입을 벌린 채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 소리가 양준의 귀에 들어오자, 순간 머릿속이 마치 천만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파왔다.
비명소리와 함께 양준은 저도 모르게 행동을 멈췄다. 방금 그 목소리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닌 듯했다. 그 자가 자신의 머릿속에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 틈에 사람 얼굴을 한 형상이 크게 웃으며 양준의 체내에 들어왔다.
양준은 몸이 부르르 떨리고는 곧 굳어졌다. 그는 눈꺼풀조차 움직일 수 없었고, 마치 자신의 몸을 지배하는 능력을 잃은 것만 같았다.
목소리가 몸속에서 전해졌다.
“하하하, 무지한 놈. 감히 나에게 반항하다니! 보게나, 내가 자네의 의식을 지우고 자네의 몸을 차지했네!”
양준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눈에는 불굴의 빛이 반짝거렸다.
“음, 몸이 너무 약하고 실력도 떨어지는군. 그래도 괜찮네. 그럭저럭 쓸 만해. 나중에 나가서 다른 좋은 몸을 찾아도 늦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자네 몸을 차지하게 되면 자네 한을 다 풀어주지. 자, 이제 그만 포기하게나. 그래야 자네도 고통을 덜 받고, 나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웃기지마!”
양준은 머릿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아직도 반항할 생각인가? 내 눈에 든 건 자네의 행운이야. 사람이 만족할 줄 알아야지.”
목소리는 양준의 생각을 듣고 음흉하게 웃었다.
“됐네. 자네가 협조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좀 참게나. 의식을 지우는 아픔은 평범한 사람이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야.”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게 일깨워줬다. 그리고 무슨 수를 부렸는지 양준의 머리에서 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이윽고 방금 전보다 천만 배나 더 아픈 고통이 전해졌다.
그 아픔은 몸에 나는 상처와 달리,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가냘픈 비명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그는 땀범벅이 되어 온몸을 덜덜 떨었다.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다니. 나를 탓하지 말게나.”
목소리는 콧방귀를 뀌었고, 양준은 더욱더 큰 고통을 느꼈다.
양준은 자신이 붕괴되는 것 같았다. 의식도 흐리멍덩하고 비바람 속의 촛불처럼 언제든 꺼질 것 같았다. 그러나 붉어진 눈에는 여전히 고집과 끈기가 서려 있었다.
“응?”
목소리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자네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거지? 진짜 이상한 일이군.”
양준은 자신의 뼈에서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내 뜨거운 기운이 온몸에 퍼지자 흔들리던 영혼이 안정을 되찾았고, 아픔마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흡인력이 머리에 전해졌다.
“이게 뭐지?”
목소리는 순간 날카로워지더니 곧이어 두려움에 떨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에 맞닥뜨린 것처럼 경황실색했다.
“이게 뭐지? 안 돼. 안 돼. 악!”
비명소리와 함께 양준은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금신에 뭔가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맑아지자 양준은 숨을 가다듬었다.
방금 일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러나 양준은 마치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목소리의 공격을 막고 나서, 끈기가 더욱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참한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목소리는 마치 쥐가 고양이를 만난 것처럼 덜덜 떨며 계속해서 살려 달라고 빌고 있었다.
조용히 살펴보던 양준은 그 목소리가 지금 금신의 한쪽 구석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한 채 당황한 표정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