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10화 (110/853)

제 110장. 만족스러우면 살려 줄게!

“소협, 소협, 내가 잘못했네. 내보내 주게나. 다시는 안 그러겠네.”

목소리는 덜덜 떨며 양준에게 애원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곱지 않은 시선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지난 번 산골짜기에서 금신은 구음응원로를 절반 흡수한 후 아직까지 몸 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양준은 이를 진원 경지를 돌파할 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금신이 이번에는 죽은 고수의 혼을 빨아들였다.

양준은 이미 금신이 양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운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사람의 혼까지 빨아들일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강자의 혼도 일종의 기운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기운이 아닌, 절대적으로 강한 기운이었다.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한 죽은 고수의 혼은 금신에게 있어서 한 접시의 요리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 요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반드시 진양원기로 한 번 순환시킨 후 흡수할 수 있었다.

양준은 잠시 고민한 끝에, 몸속에서 살려 달라고 비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진양결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진양결이 순환하자 죽은 고수의 혼은 끝내 금신 안에서 빠져나왔다. 기뻐할 새도 없이 그는 자신이 양기를 받아 뜨겁고 순수한 기운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내 바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협, 뭐 하려는 건가? 어서 멈추게나. 안 돼!”

그는 양준이 뭘 하려는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

“소협, 이러지 말게. 계속 이러면 나는 곧 흡수될 걸세.”

양준은 흔들리지 않고 진양결을 계속해서 운행했다. 시간이 흐르자 목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마지막에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는 시종일관 살려 달라고 빌었다.

이내 양준은 진양결을 멈추고, 그를 다시 금신 속으로 돌려보냈다.

“고맙네……. 소협, 살… 살려줘서 고맙네.”

한참 후에야 목소리는 조금씩 원기를 되찾고 덜덜 떨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내가 당신을 살려두면 좋은 점이 뭐가 있지?”

양준이 담담하게 물었다.

이제 죽은 고수의 혼의 생사는 양준의 생각에 달려 있었다.

사실 양준은 혼을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비록 접촉한 것은 잠깐뿐이었지만, 양준은 이 혼이 생전에 마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실력이 너무 낮아, 이 혼을 남겨둬 봤자 좋은 점이 없었다.

문제는 이 혼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혼을 흡수하는 방법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 혼을 흡수하게 되면 자신이 한 사람의 영혼을 먹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준은 그게 왠지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점? 좋은 점은 있네. 당연히 있고 말고!”

고수의 혼은 양준의 말을 듣고 서둘러 대답했다.

“어디 한번 말해봐.”

양준이 여유 있게 말했다.

“혹시… 소협은 어떤 좋은 점을 바라는가?”

“하?”

양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고수의 혼은 부들부들 떨며 서둘러 말했다.

“소협, 오해하지 말게. 나는 죽은 지 아주 오래됐다네. 또 후에 이곳에 봉인돼 있다 얼마 전에야 깨어난 걸세. 아직 예전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 좀 생각할 시간을 주게나. 틀림없이 좋은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네.”

양준은 침묵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절한 목소리에서 이 자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고수의 혼이 기뻐하며 말했다.

“지금 자네는 실력이… 큼큼, 높지 않지 않은가. 방어하는 무공을 배워야 하네. 방금 위력이 강한 무공이 생각났네.”

“그래?”

양준은 흥미가 생겼다. 그는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어떤 것들이 있는데? 자세히 말해봐. 만족스러우면 살려 줄게!”

그 말에 고수의 혼은 긴장을 풀더니 다급히 말했다.

“틀림없이 만족할 걸세. 내 무공은 가장 낮아도 현급이라네.”

양준은 호흡이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무공은 등급이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범급, 지급, 현급, 영급, 성급으로 나뉘고, 급은 다시 상중하로 나뉘었다. 현급 무공은 대한에도 몇 개 없는 것이었다.

양준은 전에 남초접 일행과 나눠 가졌던 지급 무공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그러나 현급은 그때 얻었던 지급 무공보다 무려 두 단계나 높았다.

양준의 욕구를 알아차린 고수의 혼은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었다. 그는 양준을 만족시켜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서심인(噬心印)이라는 무공이 있네.”

양준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름이 왠지 이상했다.

“배우기 쉽다네. 열 살 아래의 어린 아이의 심장을 매일 세 개씩 먹고 심장의 피로 수련하면 되네. 백 일이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을 거야. 서심인을 쓰면 상대는 심장이 터져 단번에 죽는다네!”

고수의 혼은 이 무공의 수련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목소리에서는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양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른 거!”

고수의 혼이 이 무공의 위력을 다 말하기도 전에 양준이 싸늘하게 말을 끊었다.

“음, 다른 무공도 있지. 화낙홍(花落紅)!”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듣기에 그럴듯했다.

그는 허허 웃더니 말했다.

“이 무공은 수련하기 더 쉽다네. 그러나 반드시 처녀와 사랑을 나눌 때 심법을 운행해 낙혈을 받고 그 여인의 정기(精氣)를 배합해야 한다네. 이 무공은 조건만 되면 아주 빨리 수련할 수 있을 걸세. 게다가 사랑을 나누는 여인의 실력이 높을수록 수련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네. 대략 백 명 정도만 있으면 크게 성과를 이룰 수 있지. 소협은 강하고 힘이 세니, 하룻밤에 열 명의 여자들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면 열흘 정도의 시간으로 화낙홍을 수련할 수 있다네.”

양준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그건 음기를 빼앗아 양기를 보충하는 거 아니야?”

“맞네. 소협, 현명하군.”

“다른 거!”

고수의 혼은 양준이 계속 거절하자,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말했다.

“다른 무공은 환희권(歡喜拳)…….”

“다른 거!”

“…….”

“또 다른 거!”

고수의 혼은 당황한 듯했다. 만약 그의 실체가 있었다면 이마의 땀을 닦았을 것이다. 그가 말한 무공들은 모두 양준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았다.

전부 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비상식적인 수단으로 연마하는 무공이었다. 수련을 위해 해야 하는 행동들도 양심을 버리고 천벌을 받을 만한 짓이었다.

양준은 그 무공들의 위력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렇다고 인간성을 버릴 수는 없었다.

연이어 7~8개를 거절하자 고수의 혼은 당황하는 듯했지만, 양준은 연신 냉소를 지었다.

“소협,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두 이런 무공일세. 진짜 속이지 않았네.”

“당신이 만약 이 정도 가치밖에 안 된다면, 당신을 살려둬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양준의 목소리에 음산한 기운이 서렸다. 그가 말하는 무공들을 듣고, 양준은 이 자가 생전에 극악무도한 마두였다는 것에 더욱더 확신을 가졌다.

“소협, 화를 푸시게나. 내가 더 생각해 보겠네.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억이 좀 혼란스러운 것뿐이네.”

“기회는 한 번뿐이야. 알아서 잘해!”

“소협을 실망시키지 않겠네.”

양준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차피 이곳은 현재 폐쇄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 이 자는 생전에 틀림없이 고수인 동시에 대마두였을 테지만, 지금은 별 볼일 없었다. 양준은 그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지금 양준에게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좋은 약이 없었지만, 이런 상처는 얼마 안 돼 금방 치료될 수 있었다. 양준은 품에 넣어두었던 작은 석상을 꺼내고는 원기를 운행해, 안에 있는 금실의 순환 방식을 느끼며 그 속의 오묘함을 탐지했다.

염양폭 한 가지 무공만으로는 부족했다. 양준은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을 이용해 두 번째 무공을 수련하려고 했다.

그가 강해지지 않는 한, 밖으로 나가봤자 그의 처지는 여전히 똑같을 것이다.

작은 석상 안의 금실은 수가 아주 많았다. 족히 칠팔십 갈래는 되는 듯했다. 아마 천급, 심지어는 현급 무공일 수도 있었다.

하루에 걸쳐 양준은 금실의 운행 방식을 완벽하게 기억했다. 지난 번 작은 석상처럼 양준이 원기를 거둬들이자 석상은 가루가 되었다.

하루 동안, 고수의 혼도 어떤 무공으로 양준의 마음을 움직여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이미 생각을 끝냈지만, 양준이 먼저 말을 걸지 않으니,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벌벌 떨며 금신 안에 숨어 있었다.

양준은 모든 정신을 작은 석상 안에서 얻은 무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금실의 노선에 따라 체내에서 진양원기를 움직였다.

양준은 원기를 한 바퀴 돌리고 난 뒤, 염양폭을 얻었을 때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지금은 공격을 하고 싶은 욕망이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손등에서 어렴풋하게 기운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운행하는 노선이 틀렸나?’

양준은 의문이 들었다.

그가 틀렸을 리는 없었다. 그는 분명 석상 안의 금실의 순환 방식에 따라 운행했고,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

다시 한번 운행하니 또 손등에서 기운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이건 무공이 아닌가? 왜 공격을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지 않지? 염양폭을 쓸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 무공은 도대체 얼마나 현묘하기에 다른 것들과 다른 거지?’

한참 생각했지만 양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실천 속에서 천천히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긴장을 풀고 계속해서 원기를 운행했다. 매번 순환할 때마다 손등에는 같은 반응이 전해졌다. 그 툭툭 뛰는 느낌은 점점 더 분명하고 뚜렷해졌다. 마치 뭔가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양준은 원기를 몇백 번은 운행한 듯했다. 한 번은 원기를 운행하는데 손등이 갑자기 아파오더니, 손등에서 계속 느껴지던 뛰는 느낌도 족쇄를 벗은 듯 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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