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1장. 새로운 무공
양준이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니, 손등에 문양이 나타났다.
손등의 절반을 차지한 밤하늘의 별들을 닮은 성도(星圖) 문양은, 원기를 운행하자 마치 생기가 돌듯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몸속에 자신이 볼 수 없는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의 체내 원기는 운행하면서 그 공간으로 흘러 들어가 저장되었다.
한참 시험해 보던 양준은 온몸의 원기를 손등의 성도 문양에 주입하며 손가락으로 땅을 짚어 보았다.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 살짝 땅만 짚었을 뿐인데, 손등의 성도 문양에서 원기가 터져 나오며 손가락 끝에 별빛이 반짝이더니 동굴을 대낮처럼 환히 비췄다. 이내 대지가 격하게 흔들리며 동굴 벽의 흙 부스러기들이 떨어졌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한 번으로 온몸의 원기가 모두 소진되었지만, 살상력은 그 이상으로 컸다. 양준은 아마 평범하게 온몸의 원기를 그냥 뿜어냈었더라면, 방금 전과 같은 위력을 내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무공이야!’
양준은 뭔가 좀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협, 소협…….”
몸 안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양준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소협, 나는 자네가 수련하려는 무공이 뭔지 알 것 같네. 내 말을 한 번 들어보겠나?”
양준이 아무런 반응도 없자, 몸 안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더욱 조급해졌다. 그는 지금 양준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기 급급했다. 양준이 자신을 흡수해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그는 양준이 나이는 어리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악한 면도 있었는데, 이 사악함은 그를 두렵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양준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뭘 알고 있는 거지? 어디 말해봐.”
고수의 혼은 마치 큰 은혜를 입은 듯, 감격하며 서둘러 말했다.
“내 기억 속에 소협이 수련하고 있는 무공과 비슷한 무공을 본 적이 있네. 이 무공은 수련할 때 몸속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이 무공이 발휘하는 위력은 그 공간 안에 저장된 원기와 연관이 있다네. 평소에 원기를 그 공간에 저장해 둘 수 있지. 이런 무공은 잘 사용하면 위력이 엄청나지만, 잘못 사용하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네. 이는 평소에 그 공간에 저장해 둔 원기의 양에 달려 있다네. 원기가 많을수록 살상력이 크고, 원기가적으면 어린아이의 주먹보다도 못할 걸세. 이런 무공은 단 한 방에 승부를 걸어야 하네. 평소에 열심히 모아 두었다가 그 한순간의 위력과 바꾸는 거지. 이것도 일종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무공이라 할 수 있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냉큼 다 털어 놓았다.
양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수의 혼이 알려준 내용들은 자신이 알아낸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이어서 자신이 몰랐던 점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에 열심히 모아 두었다가 한순간의 위력과 바꾼다고? 이건 마치 나를 위해 맞춤 제작한 무공이나 다름없잖아!’
양준은 소리내서 크게 웃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원기를 오랫동안 열심히 모아야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어.’
“좀 더 연구해 볼 테니 방해하지 마.”
양준이 그에게 말했다.
“알았네. 소협…….”
“당신이 말한 건 나도 다 알고 있던 내용이라 별 가치가 없었어. 자신이 살 길을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양준의 말을 들은 그는 바로 절망했다. 양준의 일 처리가 이렇게 노련하고 침착하다니. 그는 마치 자신이 늙은 여우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왜 하필 저 자의 몸을 뺏으려 했을까…….’
한숨을 쉬며 스스로를 원망하던 그는 양준이 몸 안의 원기를 움직여 성도 공간(星圖空間)에 주입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원기를 주입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양준의 모습에, 그는 좀 천천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원기를 너무 빨리 소모하면 몸에 부담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말을 도로 삼켜 버렸다.
‘흥. 나더러 방해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니야. 온몸의 원기를 다 쓰고 나면 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다시 시도해 보자. 자식, 아직 어리다니까.’
양준의 원기는 수련을 통해서만 얻으려고 한다면 적어도 사흘에서 닷새 정도는 수련해야 꽉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두 시진 만에 온몸의 원기를 모두 새로 생긴 성도 공간에 주입해 버렸다.
양준의 몸 안에 있던 고수의 혼은 그것을 느끼고 속으로 환호했다. 그는 현재 양준의 몸이 더없이 허약한 데다, 원기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가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때, 움직이려던 그는 순간 멈칫 했다.
그는 양준의 체내의 텅 비어 있던 경맥이 한순간에 다시 꽉 찬 것을 발견했다.
‘젠장.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다 보니 정신이 흐릿해 환각을 보는 건가. 아닌데… 방금 전 느낌은 엄청 생생했는데……. 온몸의 원기가 분명 모두 없어졌었어. 그런데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회복된 거지? 틀림없이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그는 스스로 위로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양준의 행동을 관찰했다.
또 두 시진이 지난 후, 양준의 체내 원기가 다시 깨끗이 사라졌다. 양준이 원기를 모두 주입하자, 손등의 성도 문양이 알 수 없는 규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혼을 걸고 맹세했다. 이번에는 절대 틀림없었다. 양준의 원기는 확실히 이미 깨끗하게 소진되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틀림없어. 이번에는 확실해!’
그러나 다음 순간 일어난 변화에 그는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텅 비었던 경맥이 다시 한번 가득 차올랐다. 양준의 체내 원기는 아무리 써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깜짝 놀랐다. 비록 지금은 많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실력이 아무리 높다 해도 이렇게 빨리 원기를 회복할 수 없었다.
‘만약 누구나 다 이렇게 빨리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면 세상이 혼잡해지지 않겠어? 저 자식은 무슨 공법을 수련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그는 더 이상 양준을 얕잡아보지 못했고, 대신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아무리 써도 끝이 없는 원기라니. 이 자식이 앞으로 수련하면 얼마나 놀라운 실력으로 성장할까? 이 자는 거리낌 없이 살상력이 큰 공격을 할 수 있는 데다, 원기가 줄어들까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전투력이 아마 다른 사람 열 명, 백 명, 아니 심지어 천 명분은 될 거야.’
그는 어쩌면 양준을 너무 높게 본 것이었다. 양준이 원기를 써도 써도 끝이 없는 것은 평소에 양액을 축적해 둔 결과였다.
진양결과 그 이름 모를 무공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모두 저장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진양결은 온몸의 원기를 양액으로 제련해 단전에 저장할 수 있는 반면, 이 무공은 원기를 특별한 공간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위력을 펼칠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전 내에 저장할 수 있는 양액은 한계가 없었다. 조건이 허락한다면 저장하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저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 터득한 무공의 공간은 그와는 달리 한계가 있었다.
양준이 이틀이란 시간을 들여 양액 열 방울 정도를 원기로 전환해 공간에 주입하자, 공간이 이미 꽉 찬 느낌을 받았다.
이틀간 양준은 진양결을 운행해 상처를 치료하기만 하고, 의식적으로 성도 문양 공간 안의 기운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체내의 원기가 스스로 그 공간으로 흘러 들어갈 뿐이었다.
이는 좋은 일이었다. 평소에 수련하면서도 그 무공이 알아서 축적되고 있으니, 양준이 특별히 따로 시간을 들여 수련할 필요가 없었다.
양준은 눈을 뜨고 고개를 숙여 손등을 봤다. 성도 문양은 처음보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마치 커다란 밤하늘의 별들이 그의 손등에 박혀 있는 듯했다.
양준이 의념을 발동하자 손등 위의 문양이 사라졌다.
문양은 너무 눈에 띄었다. 계속 손등 위에 문양이 나타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틀림없이 의심할 터였다.
한참 생각하던 양준이 몸 속에 있는 고수의 혼에게 물었다.
“당신 기억 속에 이 무공과 비슷하다던 무공은 이름이 뭐였지?”
“기억나지 않네.”
“기회를 줄게. 이 무공의 이름을 지어줘.”
양준은 지난 번 염양폭의 이름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 부릴 사람이 생겼으니 당연히 이 문제를 그에게 떠넘겼다.
‘이 놈은 오래 산 데다 견식도 넓으니 이름을 짓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지?’
“알았네!”
그는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문양이 별 모양이고, 무공을 사용할 때 별이 반짝이니 성흔(星痕)이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성흔이라…….”
양준은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네. 그럼 성흔이라고 할게!”
“소협, 성흔 무공을 습득한 걸 축하하네. 앞으로 백전백승, 천하무적일 걸세!”
양준은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의 살 길은 잘 생각해 봤어?”
양준이 갑자기 물었다.
고수의 혼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만약 목숨을 살려주면 소협에게 보물을 선물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