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12화 (112/853)

제 112장. 지마를 굴복시키다

양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이 만약 보물을 숨겼다면 틀림없이 이곳에 숨겼을 텐데, 그럼 그냥 당신을 흡수하고 나서 내가 찾아도 되는 거 아니야? 왜 굳이 당신을 살려줘야 하지? 솔직히 말해 당신 같이 사악한 혼을 살려주는 일에 관심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남겨둘 수도 없으니 당신을 흡수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가 서둘러 말했다.

“제발 살려주게나. 살려만 준다면 소협을 주인으로 모시겠네. 어차피 소협의 한 가닥 혼이 내 혼에 남아 있는 한, 내 생사는 소협의 생각에 달려 있네. 그러니 자비를 베풀어 나를 흡수하지 말게나.”

“당신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아?”

“자네 몸속에 무슨 이상한 물건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상한 물건이 나를 제어하고 있다네. 내가 어찌 자네를 기만할 수 있겠는가?”

양준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는 마두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으나, 전승동천의 비밀을 알고 있을 테니 바로 죽이기도 아쉬웠다. 적어도 자신이 얻고 싶은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이 자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양준이 침묵하자 그는 더욱 불안해져, 계속해서 말했다.

“소협이 내 목숨을 살려주면 내 보물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네. 내 보물은 확실히 이곳에 있지만, 만약 내가 없으면 소협이 찾았다 한들 쓸 수 없을 걸세.”

“왜지?”

양준이 물었다.

“그 보물은 사악한 물건일세! 만약 내 혼이 이어주지 않은 상태로는 소협의 원기 속성으로, 혼자서 그 보물을 움직일 수 없다네.”

양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목숨이 걸린 문제라 감히 입을 더 놀려 미움 살 짓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양준이 말했다.

“당신이 나를 주인으로 모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긴장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지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자네 머릿속에 들어가 신식을 한 가닥 끌어내 내 혼에 새길 거라네.”

순간 양준의 입가에 냉소가 번지자, 그가 서둘러 설명했다.

“소협은 아직 신유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의 신식을 움직일 수 없다네. 이 늙은이의 진심을 믿어주기 바라네.”

“그럼 어디 한번 해봐.”

양준은 말을 마치더니 긴장을 풀었다.

그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내심 양준의 결단력에 그를 더 높이 보게 되었다. 입장을 바꿔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에 이해득실을 따지기 바빠, 양준처럼 이렇게 바로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딴마음을 먹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양준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신식을 한 가닥 끌어낸 후, 자신의 혼과 융합시켰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말했다.

“주인, 됐네. 오늘부터 내 생사는 주인의 결정에 달렸네.”

양준은 눈을 뜨고 열심히 살펴보았다. 곧 자신과 마두 사이에 신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신이 많이 회복됐나 보네?”

양준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고수의 혼이 답했다.

“주인의 혼이 한 가닥 융합되었으니 당연히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걸세.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네. 이 혼은 주인이 언제든지 거둬 갈 수 있다네. 주인은 조금도 손해 보지 않을 걸세.”

양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의념을 발동했다.

곧바로 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기름 가마에 넣고 튀기는 것처럼 비명소리는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주인, 살려 주게나.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야. 조금도 숨긴 것이 없다네.”

그는 연거푸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는 양준의 체내에서 끊임없이 나뒹굴었다.

그를 한참 괴롭히고서야 양준은 하던 걸 멈추고서 조용히 말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꼼수를 부리면 죽이지 않고, 방금 전 했던 것처럼 내 미움을 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로 그는 양준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 그의 주인은 매우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를 완전히 굴복시킨 뒤, 양준은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이름이 뭐야? 앞으로 뭐라고 부르면 돼?”

양준이 물었다.

그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내 이름이 도대체 뭔지 나도 잘 모르겠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지마(地魔)라고 불렀던 건 어렴풋이 기억나는군. 이름인지 호칭인지는 모르겠다만.”

“지마…….”

양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과연 마두로군.”

지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아주 오래 전의 일이네. 오늘부터 나는 주인 한 사람의 명령만 들을 걸세.”

“네가 말한 보물은?”

“내 해골에 있네.”

지마가 알려주는 대로 양준은 바닥에 널려 있는 해골을 다시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뼈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 뼈는 가슴 사이의 갈비뼈 같아 보였지만 다른 뼈들과 달리 까만색을 띠고 있었다. 양준이 그 뼈를 손에 쥐는 순간, 안에서 처참하게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눈앞이 또 한 번 아찔해졌다.

“살기가 대단한데.”

양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지마가 말했다.

“이건 파혼추(破魂錐)일세. 내가 흡수해 내 뼈로 만든 것이지. 이것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을 죽였네. 그러다 보니 살기가 좀 심하다네.”

양준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걸 흡수할 때도 많은 사람들의 혼을 썼겠지?”

지마가 웃으며 말했다.

“주인, 현명하군. 때문에 이 보물은 주인이 가지고 있기에 적합하지 않네. 주인이 만약 억지로 이걸 흡수하려 하면 의식이 영향을 받을 걸세. 그러나 내 혼이 가운데서 다리를 놓아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네. 대신 원기를 좀 더 많이 소모해야 하지. 다만 이것도 사용한지 오래되다 보니 지금 발휘할 수 있는 살상력이 아마 그렇게 세지는 않을 걸세.”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보물은 지금 기껏해야 지급 하품 정도쯤 되는 듯했다. 실력이 좀 강한 무인이라면 손쉽게 그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거둬들이지?”

지마는 서둘러 거둬들이는 방법을 양준에게 알려 주었다.

며칠의 시간을 들여 양준은 파혼추를 거둬들였다. 새까만 뼈는 한 줄기 검은 연기로 변해 양준의 손가락 끝에서 영성이 있는 것처럼 빙빙 돌았다. 양준은 자신과 검은 연기 사이에 한 층의 옅은 연계가 이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마의 혼도 그 속에 섞여 있었다.

몇 번 시험해 보고 나서 양준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양준이 짐작한 바와 같이, 파혼추는 지금 그저 지급 하품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원기를 많이 소모시켰다. 지마라는 다리를 거쳐야 하다 보니 더 낭비되는 부분이 있었다.

지마가 말했다.

“주인이 이걸 흡수해도 되네. 그런데 좀 시간이 걸릴 걸세.”

이 말을 하는 지마는 매우 불안했다. 그는 양준이 바로 대답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흡수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이건 네가 써.”

“주인, 고맙네.”

지마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양준이 흡수하지 않으면 그는 이 보물 속에 숨어 있을 수 있었다. 더는 양준의 금신 안에 숨어서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었다. 금신 안에 있을 때 지마는 마치 도마 위에 오른 고깃덩이가 된 기분이었다.

양준이 손가락 끝의 검은 연기를 몸속에 거둬들이자 지마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금신 안에서 나와 파혼추 속으로 숨었다.

양준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구슬 외에 다른 물건이 없었다.

“보물이 하나뿐이야?”

양준이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지마는 생전에 틀림없이 고수였을 터인데 파혼추 하나만 남았을 리가 없었다.

지마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주인이 몰라 그러는데 이곳에는 과거에 큰 싸움이 있었다네. 나도 그 전쟁에 참가했었지. 전쟁에서 다른 물건들은 모두 부서지고 내 뼈로 정제한 파혼추 하나만 남은 것이라네.”

“큰 싸움?”

양준은 호기심이 생겼다.

“자세히 말해 봐.”

“알겠네.”

지마의 얘기를 듣고 양준도 과거의 일을 조금 알게 되었다.

지마는 아직 기억이 뚜렷하지 않아, 그가 알려준 내용들은 그저 자잘한 기억들뿐이었다. 그러나 종합해 보면, 그 당시 그가 어떻게 전쟁에 휘말렸는지 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전쟁은 두 명의 남녀와 수많은 사람들이 맞서 싸운 전투였고, 나중에는 그 둘을 포함한 모두가 전장에서 싸우다 죽었다고 했다.

“나는 중상을 입고 도주하다가 여기서 죽었다네. 내 기억에…….”

지마가 말을 하다 멈칫 했다.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기억나는 게 있어?”

“용이 있고, 봉황이 있었네. 용과 봉황이 하나로 합쳐져 천지를 파괴했지……. 나는 그 공격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양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얼마 전 전승동천이 열릴 때 하늘에서 날아다니던 용형봉인(龍型鳳印)이 생각났다.

여기까지 말한 지마는 더 이상 생각해 내지 못했다.

“네 말대로라면 이곳은 네 전승이 아니잖아?”

양준이 물었다.

“주인, 화를 풀게나. 전에는 내가 내키는 대로 뱉은 말일세. 그러나 전승도 있다네. 주인이 갖고 싶으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주겠네.”

“됐다. 네 물건엔 관심없어.”

양준이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지마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생전에 고수였던 것은 분명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려고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하필이면 양준에게 잡히게 되었고, 양준은 그를 하찮게 대했다.

‘휴, 털 빠진 봉황은 닭보다 못하구나!’

지마는 속으로 한탄했다.

한 바퀴 돌아봐도 더 이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양준은 길게 한숨을 쉬고는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밖은 또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가 진정한 전승동천이라면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곳을 막은 커다란 돌 앞으로 간 양준은 지마가 가르쳐 주는 대로 길을 열었다.

이때, 그가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맞은편에서 홍백이 엇갈린 빛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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