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장. 6급 요수
양준이 그녀들을 지킬 때, 그녀들은 온통 기연에 사로잡혀 아무 저항력도 없었다. 만약 그때 양준이 그녀들에게 흑심을 품었다면 자매는 누구도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각성하는 사흘 동안, 양준은 시종일관 꼼짝도 하지 않고 입구만 지켰다. 이 때문인지 호교아는 양준에 대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고, 말투도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이 자식도 그렇게 밉살스럽지는 않군.’
“별말씀을. 일단 여기를 떠나자.”
양준은 며칠 전부터 동굴을 나가고 싶었으나, 자매를 지키느라 생각보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좋아.”
자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준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기이한 약초로 가득한 곳을 지날 때, 두 자매는 되는 대로 그것들을 가득 채집했다.
전에 이것들을 그녀들에게 양보하겠다고 한 만큼, 양준은 그것들을 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음양요삼 한 뿌리면 충분했다.
양준은 지마에게서 음양요삼의 효력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음양요삼은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영물이었다.
음양요삼에는 음기, 양기가 모두 들어있어 약재로 쓸 수도 있고, 단약으로 제련할 수도 있으며, 직접 복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효력은 수련 속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었다. 반드시 음성 공법을 수련하는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고, 음양요삼의 약효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음양요삼은 자발적으로 두 갈래의 기운이 되어 그와 여인의 체내에 분산된다고 했다. 음양요삼의 약효로 두 사람은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 수련하면 둘 다 수련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조건은 좀 막막했다. 세상에서 그런 여자를 찾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런 이유로 음양요삼은 현급 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조건에 부합되는 남녀에게는 그 가치가 헤아릴 수 없이 컸다.
음양요삼은 음양 두 기운이 함께하는 기이한 곳에서만 자라 음기와 양기에 본능적인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양준은 진양결을 수련하여 체내는 모두 진양원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때문에, 음양요삼이 양준의 품속에 넣자 얌전해진 것이었다.
사흘 동안 양준은 음양요삼에게 양액 한 방울을 건넸다. 음양요삼은 양액을 흡수한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더욱더 양준의 몸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잠깐 기다리자 호교아와 호미아가 약초 채집을 끝냈다. 자매는 어떻게 상의했는지 채집한 약초의 절반을 양준에게 건네주었다.
양준은 이를 바로 거절했다.
“우리 서로 각자의 물건을 가졌잖아. 서로 손해 보지 않았으니, 따로 나한테 나눠 줄 필요 없어.”
호교아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방그레 웃었다.
“멍청한 녀석, 싫으면 관둬. 그리고 이것들은 네 것이 아니고 우리가 힘들게 채집한 거야.”
양준도 빙그레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교아 낭자, 혹시 지금 바깥의 상황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어?”
그는 동굴 안에서 십여 일을 머물렀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낭자라고 부르지 마. 이상하잖아.”
호교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름을 불러. 아니면 교아 누님이라고 불러도 돼.”
“그럼 그냥 이름을 부를게.”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자, 가면서 말해줄게.”
호교아가 불만이 담긴 눈길로 그를 힐끗 보았다.
자매가 서로 한마디씩 재잘거리면서, 양준은 십여 일 동안 밖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세 종문의 제자 수천 명이 도착한 지점은 모두 달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두들 한가운데로 천천히 모여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득을 취했지만,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십여 일 동안, 세 종문의 제자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 각 종문 강자들의 인솔 하에, 근처에서 실력이 강한 요수들을 포위해 죽였다.
6급 요수 아홉 마리였는데, 요수들은 봉인된 시간이 너무 오래된 데다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실제 실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세 종문의 제자들은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요수를 죽여 그것들이 지키고 있던 보물을 취할 수 있었다.
양준이 얻은 음양요삼은 바로 그중 한 요수가 지키던 영물이었다. 음양요삼은 영성이 있어 불길함을 미리 알아채고 도망쳤던 것이다. 그래서 두 자매가 이곳까지 쫓아왔고, 양준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들에게 속한 기연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떠날 때, 아홉 마리 중에서 여덟 마리는 이미 죽었어. 한가운데 있던 한 마리만 남았지. 그놈의 실력이 제일 강했어. 아마 6급 절정일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어.”
호교아가 웃으며 말했다.
“요수들이 지키는 보물 때문에 세 종문의 제자들이 거의 다 미칠 지경이야.”
호미아도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넌 사람들이 물건을 빼앗을 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를 거야.”
얼마 안 되어 세 사람은 함께 동굴에서 나왔다.
동굴에서 나서는 순간, 멀리서 분노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였다. 무겁고 침울한 소리에 대지가 진동하는 듯했다.
세 사람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호교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느 종문 제자가 이렇게 담이 큰 짓을 한 거지? 감히 저 요수를 건드리다니…….”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지금 유일하게 남은 요수는 6급 절정이었다. 요수가 6급 절정이면 사람의 신유 경지 절정에 맞먹었다. 설령 오랜 세월 봉인돼 있어, 지금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세 종문의 제자들이 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세 종문의 제자들은 다른 여덟 마리의 요수를 죽이면서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지금 6급 요수를 상대한다면,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뿐이었다.
“가 보자.”
양준은 눈빛을 반짝이며 앞장서서 달려갔다.
두 자매도 신법을 펼쳐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자매는 뜻밖에도 양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힐끗 보았다. 그는 왠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매는 달릴 때, 호흡 빈도마저 완전히 일치했다. 또한 보법에 무슨 현묘함이 숨겨져 있는지 실력이 가장 낮은 호미아가 언니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헐떡이지도 않았다.
‘이 둘은 동굴에서 무슨 기연을 얻은 거지? 이런 기묘한 효과가 있다니.’
양준이 지켜보는 시간이 좀 길어지자 왼쪽에 있던 미인이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어… 교아야, 아니면 미아야?”
지금 양준은 둘을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미인이 가볍게 웃더니 추파를 던졌다.
“나 미아야.”
그러자 다른 쪽에 있던 여인이 급히 말했다.
“내가 미아야. 언니, 장남 좀 그만쳐.”
“왜 날 언니라고 불러? 너야말로 언니잖아.”
왼쪽 미인이 화를 냈다.
“장난 그만쳐. 양준이 정말 못 알아보잖아.”
“나 장난치지 않았어. 언니야말로 좀 헷갈리게 하지 마.”
양준은 머리가 어질어질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때 두 자매가 나란히 웃기 시작했다. 그제야 양준은 그녀들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장난친 거야. 화난 건 아니지?”
호교아인지 호미아인지 누군가 양준에게 물었다.
“아니.”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얼굴이 뚱해? 한 번 웃어봐.”
양준은 마른기침을 한번 하고서는 냉담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족히 몇십 리를 달려서야, 세 사람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이르렀다. 자세히 살펴보는 순간, 양준뿐만 아니라 두 자매도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체구가 비할 바 없이 거대한 거북이처럼 생긴 요수가 있었다.
요수는 높이가 십여 장, 길이가 삼십 장에 달해 몸뚱이가 마치 움직이는 산 같았다. 놈은 한창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는데,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끊임없이 진동했다.
요수의 등짝에는 두꺼운 등껍데기가 있었다. 등껍데기 사이에 깊은 골과 종횡으로 교차된 무늬는 시간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등 뒤에는 유성추(流星錘)와도 같은 기다란 꼬리가 달려 있었다.
요수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 걸음 내딛는 폭이 족히 십여 장은 되었다. 요수는 작은 산만 한 몸뚱이로 종횡무진하며 유성추 같은 꼬리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비할 데 없이 강한 꼬리 힘 때문에 여기저기 광풍이 일었다.
놈은 끊임없이 포효했다. 공중에서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요수를 맹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놈을 막아 낼 수가 없었고, 놈은 파죽지세였다. 놈이 공격하고 포효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양준은 하늘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다.
소안, 해홍진, 남초접 등이 눈에 띄었다. 다른 이들도 대부분 낯이 익었다.
뜻밖에도 모두 능소각의 제자들이었다.
혈전방과 풍우루 제자들은 멀리 한쪽으로 피한 채, 앞쪽 전장을 두고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능소각 제자 중에서 소안의 실력이 가장 강했다. 소안의 그림자가 지나는 곳마다 하늘 가득히 눈보라가 일었다. 그러나 소안의 실력으로도 거북 요수에게는 효과적인 상처를 입힐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전력을 다했으나 원기로 요수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춰, 능소각 제자들의 사상을 줄일 수 있을 뿐이었다.
요수의 방어력은 너무나 강했다. 속도가 느리지만 등껍데기와 몸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가죽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어 보물이었다. 진원 경지의 무인들도 놈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장내에는 이미 많은 시체가 널려 있었다. 모두 능소각 제자들이었다.
“뜻밖에 능소각에서 요수를 건드렸군? 소안은 그런 경솔한 사람이 아닌데.”
호교아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의아해하던 중, 한 청년이 급히 달려왔다. 눈에는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사모의 정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자매가 양준과 다정하게 함께 서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교아?”
청년은 자매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어찌해도 어느 쪽이 호교아인지 분간할 수 없어 느낌이 닿는 대로 그중 한 사람에게 말했다.
“용준, 무슨 일이야?”
다른 이가 불쑥 물었다.
‘아, 이쪽이 호교아였군.’
용준은 난감해하지 않고 고소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능소각에서 먼저 요수를 건드렸어. 어찌된 일인지 요수가 그들을 끝까지 쫓아다니는 거야.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거지.”
“소안이 요수를 건드렸다고?”
호교아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소안이 아니라 해홍진이야.”
용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멍청한 자식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요수가 쉬는 틈을 타서 보물을 훔치려고 한 거야. 그런데 보물을 얻기는커녕 여러 명이 죽고서야 볼품없이 겨우 도망쳐 나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