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장. 소안의 위기
양준이 눈빛을 반짝이더니 입을 열었다.
“해홍진이 뭘 가져갔길래?”
만약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요수가 어찌 끝까지 그들을 쫓겠는가?
용준은 양준을 거만하게 바라보더니 귀찮은 말투로 물었다.
“넌 누구야?”
“질문에 대답해. 나도 알고 싶어.”
호교아가 담담하게 용준을 흘겨보았다.
용준은 재빨리 거만한 태도를 거두고 말했다.
“잘 모르겠어. 해홍진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어. 요수가 뛰쳐나온 뒤에 내가 가서 살펴보아도 물건은 확실히 없었어.”
호교아가 냉소했다.
“물건이 없을 리가 없어. 해홍진이 본인이 취하고 나서 내놓지 않으려는 게 분명해.”
용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지금 해홍진이 내놓지 않고 있으니, 능소각 제자들이 요수의 분노를 감당할 수밖에. 소안도 능소각 제자들이 죽어 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전투에 뛰어든 거야. 참, 소안의 실력이 해홍진보다 한참 더 높더라고. 만약 소안이 나서지 않았으면 능소각 제자들은 진작 전멸했을 거야.”
“흥, 겨우 여자 덕에 고비를 넘기다니. 해홍진도 쓸모없군.”
호미아는 자신의 경멸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그래, 맞아.”
용준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나하고 풍우루의 방자기 역시 그렇게 생각해. 원래는 우리도 능소각을 도와주려 했거든. 그런데 해홍진이 끝까지 보물을 가져간 걸 인정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화가 나서 돕지 않기로 했어.”
거북 요수의 실력은 소안조차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세 종문의 고수들이 손잡고 싸우는 것 말고는 달리 요수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해홍진이 요수가 지키는 곳에서 무슨 이득을 취했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데, 그들이 왜 도와준단 말인가. 아무 조건도 없이 멍청하게 도와줄 수는 없었다.
‘도와줄 수는 있어.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서 무엇을 취했는지는 솔직하게 밝혀야 돼.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도 말해야지.’
혈전방과 풍우루의 제자들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흩어지지 않은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은 능소각 쪽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다시 한번 거래해 볼 생각이었다.
양준의 시선은 줄곧 공중에 떠 있는 새하얀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소안의 안색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기력 소모가 너무 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능소각 수백 명 제자들의 생사가 그녀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그녀가 물러서는 순간, 적어도 능소각 제자 수십 명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지금 거북 요수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은 모두 그녀 덕분이었다.
소안은 공중에 서서 하늘을 무대 삼아 춤을 추는 듯했다. 아름다운 자태는 마치 나풀거리는 나비 같았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작은 얼음 꽃 몇 송이가 날아가 거북 요수의 몸에 내려앉았다.
우지직-
얼음 꽃이 순식간에 족히 몇 장 둘레로 커졌다. 이와 동시에 한기가 퍼지면서 거북 요수의 거대한 몸뚱이는 얼음으로 뒤덮였다. 요수의 속도는 한 단계 더 느려졌다.
무수한 공격이 요수의 몸에 떨어졌지만, 두꺼운 등껍데기에 약간의 불똥만 튕길 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소안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해홍진, 마지막으로 물을게. 도대체 요수의 무엇을 가져간 거야?”
소안은 아름다운 눈동자로 아래쪽에 있는 거북 요수를 노려보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옆에 있는 해홍진에게 물었다.
정감 없는 차가운 말소리가 들려오자, 해홍진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그는 소안의 말속에 숨은 분노를 알아챘다.
소안은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 일로 수많은 능소각 제자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면서 대사저인 그녀가 어찌 무덤덤할 수가 있겠는가?
해홍진의 표정은 여러 감정들이 뒤엉킨 듯했으나 곧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소안, 아직도 나를 의심해? 내가 뭘 얻었다면 어떻게 너한테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의 말에, 소안의 맑은 두 눈에는 분노와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 능소각 제자들의 귓가에 차갑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능소각의 제자는 속히 물러난다!”
거북 요수를 이길 수 없으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요수가 쫓아온다 하더라도 당장은 그 방법만이 유일한 살 길이었다.
소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많은 능소각 제자들은 주저없이 신법을 펼쳐 재빨리 거북 요수 곁을 빠져나갔다.
공중에서 공격하던 사람들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제자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소안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소리쳤다.
“어서 도망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요수를 뒤덮고 있던 단단한 얼음층이 굉음을 내며 부서졌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거북 요수도 속박을 벗어나자 순식간에 속도가 급상승했다.
거대한 유성추 꼬리가 허공을 한 번 휩쓸자, 싸우면서 미처 물러서지 못하고 있었던 능소각 제자들이 아래쪽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재수 없는 몇몇은 꼬리에 정면으로 맞아 검붉은 고깃덩이로 변해 버렸다. 더욱 많은 이들은 꼬리가 일으킨 광풍에 휩쓸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거북 요수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발걸음을 내디디며 소안에게 돌진했다.
요수는 몇 번이나 얼음으로 자신을 봉인시킨 눈앞의 여인에게 분노했다. 그러니 그녀부터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안은 두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손짓의 변화에 따라 하늘에서 냉기가 내려왔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서 땅 위에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소안에게 집중되었다. 이 순간, 그녀는 선녀처럼 세상과 거리를 멀리하고 하늘에 단정하게 서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오직 존경의 눈빛으로 올려다볼 뿐이었다.
거북 요수는 빠른 속도로 달리며 포효했다. 이내 소안과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양쪽의 크기 차이는 마치 수박과 참깨와도 같았다. 그러나 소안은 당황하거나, 망설이는 기색 없이 그저 차분할 뿐이었다.
천지를 꽁꽁 얼릴 것 같은 한기가 순식간에 걷히면서 사나운 기세로 소안에게 몰려갔다.
다음 순간, 거대한 하얀 그림자가 소안의 등 뒤에 나타났다. 그것은 거대하게 확대된 소안이었다.
새하얀 치마, 아름다운 몸매, 경국지색의 용모, 모든 것이 거대하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기만 했다.
거대한 그림자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눈을 뜨자, 그녀의 눈에는 우뚝 솟은 설산과 끝없이 쏟아지는 하얀 눈이 비쳐 온통 흰색뿐이었다.
소름 끼치는 한기가 다시 찾아왔다. 방금 전의 느껴진 한기보다 몇 배나 더 차가웠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자신이 얼음에 봉인된 듯한 착각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소안이 마지막 동작을 날리는 순간, 거대한 그림자는 거침없이 거북 요수에게 달려들었다.
쌍방의 간격은 불과 십여 장 밖에 안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하얀 그림자가 거북 요수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내 다시 얼음막이 요수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얼음막은 조금 전보다도 더 두꺼웠다. 요수는 얼음 속에 완전히 봉인되었고 달리던 사지도 얼음에 의해 정지되었다.
왈칵-
소안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방금 전 초식에 그녀는 상당한 기력을 소모했다. 가녀린 몸이 허공에서 가까스로 지탱하다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이와 동시에 얼음에 갇힌 거북 요수는 여전히 관성을 유지하며 소안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돌진해 왔다.
놈의 몸집은 너무나 컸다. 달리는 와중에 얼음에 봉인된 터라 움직임은 단시간에 멈춰지지 않았다.
아래로 떨어지는 소안의 안색은 평온했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거북 요수가 거꾸로 비쳤다. 그녀의 눈빛에서 유감, 아쉬움, 미련 등이 느껴졌지만, 유독 증오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모든 이들은 비로소 방금 전의 충격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지금 모두가 여신으로 여기던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비명소리 속에서 조금은 연약해 보이는 그림자가 재빨리 소안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번쩍였고, 달리는 가운데 붉은 빛이 옅게 일었다.
곧이어 그림자는 온통 붉은 빛에 싸여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처럼 변했다. 그러자 한 단계 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림자는 소안이 곧 떨어질 곳으로 달려가 두 발로 땅을 힘껏 구르더니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위로 튀어 올랐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소안을 받은 다음, 몸을 구부려 가슴으로 그녀를 보호했다. 동시에 자신의 등으로 거북 요수와의 충돌을 막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망연한 눈빛이 미처 맑아지기도 전에, 그들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영이 쏜살같이 달리며 남긴 붉은 빛의 잔영이 미처 사라지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붉은 빛의 이동 궤적을 따라가면 그 사람이 어디에서 뛰쳐나왔고, 또 어디에서 뛰어올라 떨어지는 소안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거북 요수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