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0장. 섭영의 죽음
섭영은 순간 흠칫 놀라, 멈춰 섰다. 그러고는 간담이 서늘해져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준이 어떻게 자신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상대방이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왠지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졌다.
양준은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섭 사형.”
양준이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양 사제.”
섭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약간 뒤로 물러섰다.
“날 죽이러 온 건가요?”
이 말은 직접 섭영의 마음속 생각을 까발린 것이었다. 섭영은 깜짝 놀라 당황한 가운데 연신 손을 내저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양 사제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우리 동문 사제잖아. 내가 어떻게. 허허허…….”
섭영은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였다.
한 주먹에 6급 절정의 요수를 때려 눕힌 사람을 마주하고서 그가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하물며 그는 자신과 철천지원수였다.
말하는 사이에 섭영은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두 손을 위로 쳐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악의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뒷걸음질 치는데 그의 종아리가 후들거렸다.
“섭영!”
양준이 얼굴에 살기를 잔뜩 띠더니, 분노하며 고함을 질렀다.
섭영은 속이 켕겨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급히 뒤돌아 달아났다. 그가 몇 발짝 뛰기도 전에 등 뒤에서 갑자기 흐느끼는 것 같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는 순간, 섭영은 혼비백산했다. 한 자 정도 되는 길이의 시커먼 송곳이 양준 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송곳에서는 소름 끼치는 괴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웃음소리는 괴이했으며, 사악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웃음소리는 섭영의 머릿속에 전해져 더욱 공황에 빠지게 했다.
십여 장 떨어진 거리에서 송곳은 순식간에 섭영의 앞으로 들이닥쳤다. 섭영은 서둘러 뒤돌아 송곳을 막아 냈다. 접전 가운데, 섭영은 기쁘게도 송곳의 위력이 생각처럼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실력으로 막아 낼 수는 없지만, 한 방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섭영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양준의 현재 상황이 겉보기처럼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준도 이미 힘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섭영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싸우면서 물러났다. 하지만, 아무리 송곳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해도, 기이한 검은 송곳은 끊임없이 그를 쫓아왔다. 낄낄거리는 괴이한 웃음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물건이지? 설령 보물이라 해도 사람이 조종해야만 움직이는 게 아닌가? 양준은 꼼짝도 하지 않고 저기 서 있는데, 이건 왜 여전히 나를 공격하는 거지?’
당황해하는 사이, 문득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섭영이 뒤돌아보니 남초접이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얼굴에는 냉정함 가운데 한 가닥의 결연함이 섞여 있었다.
섭영은 무척이나 기뻤다.
“남 사저, 구해 줘.”
남초접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섭영은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의 뜻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가운데, 남초접이 갑자기 그의 등에 공격을 날렸다.
“으악!”
섭영은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달아났다. 정면으로 날아오던 검은 송곳의 웃음소리가 더욱 방자하고 득의양양해졌다. 섭영은 그 와중에 한 줄기의 의아함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송곳이 섭영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남 사저는 왜…….”
섭영은 몸을 심하게 떨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이 생기를 잃더니 스르르 쓰러졌다.
남초접은 숨을 헐떡이며 섭영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의 가슴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다. 가슴을 뚫고 지나간 송곳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곧이어 송곳이 다시 튀어나왔다.
섭영의 애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남초접은 저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양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양준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초접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입을 오므리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널 죽이려고 했어!”
양준은 말없이 손을 들었다. 송곳은 까만빛이 되어 그의 손끝에 감기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마주 보았다. 이윽고 양준이 먼저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시종일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초접은 쓸쓸하게 웃더니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하하하!”
양준의 몸속에서 지마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웃음소리는 광적이고 피비린내가 났다. 그리고 너털웃음과 함께 지마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씹고 있는 듯했다.
양준은 지마가 무엇을 씹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섭영의 혼백이었다. 양준은 파혼추가 이런 기괴한 효력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지마는 섭영의 혼백을 씹으면서 흥분해서 소리쳤다.
“참, 오랫동안 아름다운 소리를 듣지 못했어. 그리고 이리 싱싱한 맛도 오랜만이야. 주인, 또 죽일까? 나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네.”
양준이 의념을 발동하자 지마의 너털웃음은 한순간에 비명으로 바뀌더니 애처롭게 용서를 빌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지마는 겨우 조금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는 방금 전처럼 방자하지 못했다. 지마는 숨을 헐떡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인, 내가 뭘 잘못했는가?”
“파혼추의 실제 효력에 대해 왜 말하지 않았어?”
“주인이 묻지 않았으니까.”
지마는 억울했지만 신중하게 대답했다.
“이 효력은 너무 사악해서 주인이 알면 좋아하지 않을 거 같았네!”
“지금도 싫어.”
양준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주 싫어.”
지마는 금세 부들부들 떨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양준이 말했다.
“이번에는 잘했어. 기억해. 이번만이야. 다음번에 또 숨기려 하면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내가 어찌 감히.”
지마가 금세 굴복하더니 곧 또 한마디 했다.
“방금 주인을 도운 계집애가 결단력 있더군. 손속도 잔인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계집애가 괜찮다고. 주인이 걔한테 말해서 내가 몇 년 가르치면 차후에 꼭 주인의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을 걸세.”
“난 싫어.”
양준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래, 모든 건 주인이 결정해야지.”
지마는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섭영의 죽음에 호미아는 그 자리에 놀라 멍해 있었다. 한쪽에서 치료하고 있던 능소각 제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은 양준의 고함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곧이어 섭영이 당황해 도망치고, 검은 송곳이 그를 추격해 갔다. 섭영과 검은 송곳이 접전하는 와중에, 남초접이 기습적으로 섭영을 공격했다. 그다음 섭영이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쾅-
때마침 덩치가 산 같던 거북 요수가 무너져 내렸다. 포위 공격하던 세 종문의 제자들은 그 광경에 환호성을 질렀다.
호교아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자기, 마지막 한 방은 내 것이야.”
방자기가 뚱해서 말했다.
“억지를 부렸잖아. 이렇게는 인정 못해.”
호교아가 냉소를 던졌다.
“지고도 인정 못 해?”
방자기가 대노했다.
“뭐가 지고서 인정 못한다는 건데?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네가 몇 대를 더 치지 않았으면 이길 수 있었겠어? 여자랑은 상대하지 않을 거야.”
“더 이상 따질 낯이 없는 거겠지.”
호교아가 계속해 방자기를 몰아붙였다.
그녀의 말이 심사를 적중하자, 방자기는 부끄러워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니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런 것 따위를 따질 게 아니라, 먼저 요단(妖丹)이나 취해야지!”
말하는 한편, 방자기는 거북 요수의 정수리 속을 더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섞인 동그스름한 황갈색 요단 하나를 꺼냈다.
방자기는 손바닥 위의 요단을 보며 눈빛이 뜨거워졌다.
“6급 절정 요수의 요단이야. 이게 도대체 얼마짜리야?”
용준은 그를 담담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방 형이 독식할 생각은 아니겠지?”
거북 요수 체내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바로 요단이었다. 등껍데기도 무기를 제련하는 재료이므로 틀림없이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다만 너무 커서 누가 가져갈 수나 있겠는가?
이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방자기의 손에 집중되었다. 방자기는 헤헤 웃으며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나도 생각이 있다만.”
용준은 금세 안색이 바뀌었다. 오히려 호교아가 방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감히 가질 엄두도 못 내겠군!”
방자기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만약 내가 이것을 가지면, 당신들이 나를 가만두겠어?”
용준이 냉소했다.
“방 형은 현명한 사람이군.”
“그런데 요단은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나눠야 하지?”
방자기가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번 전투는 다른 요수 여덟 마리를 죽일 때와는 달랐다. 다른 요수들은 세 종문이 제각기 싸워 죽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 종문이 손을 잡고 함께 죽였으니, 전리품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몫이 있었다.
방자기의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요단 하나는 정말 나누기 어려웠다.
그것을 현금으로 바꾼 다음, 세 몫으로 나누어 세 종문에서 각각 한 몫씩 가지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용준이 입을 열려는 순간, 방자기가 먼저 말했다.
“이번에 거북 요수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능소각의 양준 덕분이었어. 아니면 이걸 그에게 주는 건 어때?”
아래쪽에 서 있던 양준은 이 말을 듣자 미간을 찌푸리며 이상한 눈길로 방자기를 바라보았다.
용준이 바로 불만을 터뜨렸다.
“그가 큰 공을 세우긴 했지만, 우리 혈전방에서도 놀지 않았어. 제자들도 많이 다쳤고. 그런데 아무 이득도 없다는 말이야?”
“요수의 껍데기를 원한다면 가져가. 우리 풍우루에서는 아무 의견 없어.”
방자기가 옆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준은 말문이 막혀 눈을 희번덕였다. 요수의 껍데기는 세 종문의 제자들에게 여태까지 맹공격을 당했지만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재질은 무척이나 좋았지만, 누가 그것을 잘라 가져갈 수 있겠는가.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다투고 있는 와중에, 방자기가 순간 안색이 변하더니 손에 있던 요단을 공중에 던져 버렸다.
황갈색의 요단은 허공을 향해 날아가더니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