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21화 (121/853)

제 121장. 진정한 전승지

요단의 회전과 함께 갈래갈래 무형의 흡인력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나갔고, 곧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방자기의 품 속에서 다른 요수의 요단 두 개가 끌려 나왔다.

호미아와 용준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홍진이 품 속에 숨겨 둔 요단도 함께 끌려 나왔다.

이 요단들은 전에 세 종문의 제자들이 요수 여덟 마리를 죽여 얻은 것이었다. 지금, 요단 여덞 개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무형의 힘에 의해 모두 끌려 나왔다.

요단 여덟 개는 현묘한 배열 방식으로 거북 요수의 요단 주위로 모여들더니 함께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때, 전승동천 전체가 뒤흔들리더니, 혼돈에 빠진 듯한 하늘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세계 종말과도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며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 누구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오직 지마의 흥분한 목소리만이 양준의 머릿속에 전해졌다.

“수혼개운진(獸魂開雲陣)!”

양준은 지마가 뭔가 알고 있는 듯하자 얼른 재촉하며 물었다.

“자세히 말해 봐.”

“주인, 이제 알 것 같군. 원래 이곳에 있던 요수 아홉 마리는 바로 이 진법을 치기 위한 거였어. 요수 아홉 마리는 단지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실력을 시험하는 걸세 자네들이 요수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 진법은 가동되지 않았을 것이네. 지금 요수들이 모두 죽어서 진법이 가동된 거지. 이 진법은 요단 아홉 개를 매개로 하여, 요단이 전부 모일 경우 어떠한 물건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네.”

“무슨 물건?”

“저 구름 속에 숨어 있는 물건이라네.”

지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것이야말로 이곳의 진정한 전승일 걸세.”

“진정한 전승이라고?”

양준은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과 땅을 집어삼킬 듯이 점점 거대해지는 소용돌이의 모습은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세 종문의 제자들은 모두 허둥지둥 도망치고 있었고, 아래쪽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찍이 이곳에서는 큰 전쟁이 일어났었지. 그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고수들이 이곳에서 죽었네. 자연스럽게 많은 전승이 남게 되었지만, 이곳에도 주인이 따로 있는 거야. 바로 저 구름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이곳 주인의 전승일 걸세.”

지마가 대답했다.

양준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주인, 어서 피하게. 이 진법은 가동된 다음 기세가 대단할 거야. 피하지 않으면 아마 피해를 입을 걸세.”

지마가 다급하게 말했다.

양준은 그 말에 주저하지 않고 서둘러 옆에 서 있는 호미아에게 말했다.

“언니와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멀리 피해.”

“응!”

호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호교아에게 달려갔다.

양준은 그제야 능소각의 제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죽기 싫으면 십 리 밖으로 피하세요.”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양준은 그들을 상관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튼 자신은 알려 주었으니, 듣고 안 듣고는 그들 몫이었다. 양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쪽으로 달아났다.

소안은 그를 힐끗 보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모든 능소각 제자들은 십 리 밖으로 물러나라.”

대사저의 말은 달랐다. 소안이 말하자, 모두들 서둘러 달아났다.

다른 한편, 호교아는 여동생의 전갈을 받고, 주저하지 않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방자기는 이 광경을 보고 양준을 한참 훑어보더니 크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가자.”

세 종문의 제자들은 빠르게 십 리 밖으로 물러났다.

다시 뒤돌아보니, 요단 아홉 개가 한창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요단과 요단 사이에는 마치 무형의 연계가 있는 듯했다. 요단들이 회전함에 따라 하늘의 소용돌이가 점점 더 커졌다.

한 갈래 거대한 흡인력이 소용돌이 속에서 흘러나와 지면에 있는 거북 요수의 시체를 끌어당겼다. 요수의 시체는 빠른 속도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가더니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보고 모든 이들은 저도 모르게 안색이 급변했다.

방금 전 십 리 밖으로 철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모두들 거북 요수의 시체처럼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남몰래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광풍이 휘몰아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세대 제자로 견문이 넓다고 할 수 없었다. 대다수의 제자들이 먼 길을 떠나본 적도 없는 이들이었다. 이런 공포스러운 광경은 더욱이 본 적이 없었다.

“더 물러나지 않아도 돼?”

소안이 양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담담하게 한마디 물었다.

양준은 그녀를 힐끔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소안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섭영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장로회에 말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양준이 섭영을 죽일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안이 모를 리 없었다. 섬세한 그녀가 그 내막을 모를 수 있겠는가. 그 일에 대해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구름 속에 뭔가 있어!”

별안간 누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양준은 얼른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하늘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천천히 한 줄기 금빛이 나타났다. 금빛은 눈부시게 휘황찬란했다. 그 한 가닥의 빛은 구름을 헤치고서 소용돌이 속에 감춰진 물건을 사람들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저게 뭐지?”

누군가 소리쳤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실눈을 뜨고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양준은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그것이 계단, 즉 금빛 계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단은 길이가 족히 십여 리는 되는 듯했다. 계단이 땅에 내려옴에 따라, 또 하나의 계단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뒤이어 또 하나의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아주 느리게 내려왔다. 계단이 땅에 닿으면서 하늘의 소용돌이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십여 개의 계단이 소용돌이 속에서 나타났다. 그 뒤에 계단이 또 얼마나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지마, 이게 네가 말한 전승이란 말이야?”

양준이 의념으로 물었다.

“주인, 이게 전승이 있는 곳이 맞을 걸세. 최종 시련을 통과한 자만이 진정으로 전승을 얻을 수 있을 거고.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계단은 적어도 만 개는 될 거야. 만 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것이지. 물론, 계단 만 개는 내 짐작일 뿐이고. 혹여 만 개가 안 될 수도 있고, 또는 만 개를 넘을 수도 있네.”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전승지가 이미 눈앞에 드러났다. 다만 그것이 지면에 닿으려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현재 양준의 실력은 너무 뒤처져 있었다. 세 종문의 제자들 중에서 하위에 속했다.

‘칠팔백 명이 이곳에 있는데 나한테 기회가 올까?’

마치 양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이 지마가 또 말했다.

“주인, 너무 걱정하지 말게. 전승이라 하면 대부분 기연이 닿아야 하네. 인연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실력이 낮아도 얻을 수 있지. 만약 인연이 없다면, 탁월한 수단이 있어도 하등 소용이 없네. 주인도 며칠 전 두 자매의 기연을 보지 않았는가?”

양준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호교아 자매의 기연은 그가 직접 지켜본 것이었다. 그는 같은 동굴에서 십여 일을 머물렀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전승을 발견했다. 바로 인연이 닿은 것이었다.

“음, 알았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하늘을 보지 않고 돌아서서, 근처의 조용한 구석을 찾아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기왕 전승을 빼앗으려면 먼저 제대로 회복해야 했다.

짐작하건대 구름 속의 물건이 완전히 지면에 내려오려면 2~3일은 걸릴 듯했다. 다시 말해 그에게 회복할 시간은 2~3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소안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그녀도 인파를 떠나 양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양준과 소안이 이렇게 차분하고 침착한 것을 보자, 한두 사람이 헛기침을 하며 한껏 멋들어진 모습으로 각자 자리를 찾아 좌선했다. 일반 제자들만이 한데 모여 고함을 지르며 떠들어댔다. 그들 사이에서 놀라움과 탄성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호교아와 호미아 자매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양준 곁에 와 앉았다.

양준은 눈을 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두 자매는 모두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금세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왜 그래?”

양준은 표정과 태도를 보고, 말을 한 사람이 호교아라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가 여기에 앉아 주면 네 복인 줄 알아. 그 떫은 얼굴은 누굴 보고 그러는 거야?”

양준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경국지색의 자매가 내 옆에 있어 주면 나야 더없는 영광이지. 내가 어찌 감히 떫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겠어.”

자매들과 몇 번 어울리다 보니 양준도 그녀들과 점점 친숙해졌다. 서로 간에도 이전처럼 낯설지 않아 농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호교아는 그 말에 방그레 웃더니 양준을 쏘아보며 말했다.

“말은 참 잘해!”

호미아도 말했다.

“점잖은 줄 알았는데, 역시나 말이 번지르르해.”

양준이 정색하며 말했다.

“진담이야. 아부가 아니라니까.”

자매는 더욱 즐거워하며 웃음꽃이 만발했다.

양준이 화제를 돌렸다.

“혈전방 사람들이 나에 대한 불만이 아주 크단 말이야.”

자매는 서로 마주 보더니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겁나?”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겁나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괜히 이유도 없이 원한을 받을 필요는 없잖아?”

호교아가 말했다.

“어차피 너는 이미 능소각 남제자들의 미움을 사게 됐어. 혈전방 하나가 많아지는 게 뭐 어때서?”

그녀는 방금 전 양준이 소안의 몸에 기대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양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호교아는 실실 웃으며 양준에게 요염한 눈빛을 보냈다.

“아니면 내가 너한테 뽀뽀해 줄까? 남들이 너를 더 부러워하게?”

양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좋아.”

호교아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 얼른 말을 바꿨다.

“꿈 깨.”

“됐어. 언니 그만해. 우선 양준은 회복부터 해야 해. 아직 상처가 안 나았어.”

호미아가 언니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양준이 언니한테 괴롭힘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호교아는 그제야 양준을 흘겨보더니 얌전하게 눈을 감았다.

양준과 호미아는 서로 눈을 마주 보고는 피식 웃더니, 곧이어 각자의 몸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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