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장. 우리가 보호해 줄게
시간이 지나자, 다른 세 종문의 제자들도 모두 회복에 돌입했다. 이따금 눈을 떠 하늘 위 구름 속의 변화를 살펴볼 뿐이었다.
이틀이 지난 뒤, 양준은 누군가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떠보니 풍우루의 두억상과 풍채가 늠름한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남자는 바로 거북 요수의 요단을 양준에게 주자고 제안했던 방자기였다.
“상처는 어때?”
두억상의 눈에는 진심 어린 걱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
“괜찮아.”
양준은 그녀에게 웃어 보이고는 눈길을 방자기에게 돌렸다.
“방 사형, 맞지?”
양준은 원래 방자기를 몰랐지만, 이틀 전 일로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때문에 그에게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 내가 방자기야.”
방자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틀 전 양 사제의 주먹 한 방은 그야말로 기세가 대단했어. 감탄해 마지않는 바야. 모든 이가 주목하는 영광을 내가 누렸으면 하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아니야. 과찬이야.”
방자기가 말을 이었다.
“너야말로 책임감 있는 사내대장부지. 나는 평생 너 같은 사람을 존경해 왔어. 종문이 다르지 않았다면 정말 너와 의형제를 맺고 싶을 정도야.”
호교아는 방자기를 매섭게 흘겨보며 말했다.
“오글거려!”
방자기가 눈썹을 찌푸렸다.
두억상이 방자기의 팔을 잡아당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형…….”
그녀는 양준에게 시선을 돌려 한마디 건넸다.
“신경 쓰지 마. 사형은 머리가 좀 이상해.”
“사매, 무슨 소리야?”
방자기는 곧장 두억상을 노려보았다.
“괜찮아. 방 사형은 분명 호방한 사람일 거야. 그래서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 거고!”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풍우루의 방자기가 이리 괴짜일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양 사제가 나를 이해해 주는군.”
방자기는 크게 감동했다.
이때 호교아가 옆에서 참견하며 나섰다.
“양준, 너 그 사람 조심해. 그 사람은 여자를 아주 하찮게 여기거든. 오직 남자만 그의 눈에 들 수 있어. 그 사람한테 너무 예의를 차리지 마. 혹시… 너를 각별히 좋아할 수도 있어.”
말을 마치자 그녀는 입을 가리고 깔깔거렸다.
호교아의 말에는 뼈가 있어 남의 오해를 사기 쉬웠다.
양준은 그 말을 듣고 얼굴빛이 새파래졌다.
방자기는 화가 나서 말했다.
“이봐, 사람을 그렇게 헐뜯으면 어떡해? 양 사제, 저 여자가 하는 허튼소리는 듣지 마. 이 방자기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양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헛기침을 했다.
방자기는 다급한 나머지, 이마의 핏줄이 솟아올랐다. 이윽고 좌우를 살펴보더니 옆에 서 있는 두억상을 와락 끌어당겨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짜고짜 입을 맞추었다.
양준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호교아와 호미아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억상이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소리가 귀에 전해지자 두 자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방자기는 한참이 지나서야 두억상을 놓아주었다. 그는 입가를 쓱 문지르고 웃으며 말했다.
“양 사제, 이젠 믿겠지?”
양준은 방자기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방 사형이야말로 진정한 사나이군.”
마음에 쏙 드는 칭찬에, 방자기는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 속에서 두억상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 방자기의 따귀를 냅다 후려쳤다.
“나쁜 놈!”
두억상은 발을 동동 구르고는 양손으로 뺨을 감싸 쥐고 달려갔다.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뛰어가!”
방자기는 따귀를 맞은 뺨을 잡고서 그녀에게 소리쳤다.
“방 사형… 쫓아가지 않아도 돼?”
양준은 두억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냥 내버려 두면 돼. 계집애가 조금 토라졌다가 금방 돌아올 테니까.”
방자기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과연 얼마 안 되어 두억상은 얼굴이 빨개진 채 스스로 돌아왔다. 그녀는 고개를 푹 떨구고 두 손으로 옷자락을 비틀며 얌전히 방자기 앞에 나타났다.
“하하.”
방자기는 양준에게 눈짓하며 아주 득의양양해했다.
“사혀엉…….”
두억상은 용기를 내 방자기의 팔을 잡아 끌었다.
“왜?”
방자기는 짙은 눈썹을 휘날리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의 모습에서 사나이의 기개가 넘쳐났다.
두억상은 재빨리 방자기의 다른 한쪽 따귀를 마저 후려치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진짜 나쁜 놈이야!”
양쪽 따귀를 모두 때리고서야, 두억상은 속이 후련한 듯 그대로 돌아서 가 버렸다.
방자기는 넋이 나간 채, 뺨을 어루만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눈빛이었다.
“호호……!”
두 자매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일이 이런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고는 그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두억상이 다시 돌아왔을 때, 두 자매는 마음속으로 두억상을 경멸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사매는…….”
방자기가 중얼거렸다. 그는 착잡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고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좀 있다 가서 혼내줘야겠어. 이거 완전 하극상이군.”
호교아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속 시원하게 잘 구경했어. 너도 오늘 같은 날이 다 있군.”
방자기는 입가를 실룩거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양준은 헛기침을 했다. 그는 더 이상 장난칠 생각이 없어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방자기는 그 말에 낯빛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십 리 밖을 바라보더니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한마디만 물을게. 저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그의 물음에 호교아와 호미아의 얼굴빛도 진지해졌다.
양준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방자기가 말을 덧붙였다.
“나는 뒤에서 말하는 것을 싫어해.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믿을 거야.”
양준은 방자기를 힐끔 보았다.
‘내가 십 리 밖에 떨어져 있으라고 사람들에게 알려 줄 때 무슨 낌새를 알아챈 모양이군.’
이곳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사전에 물러나라고 말해 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말하든 안 하든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말해 주지 않아도 구름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 완전히 땅에 내려오면, 세 종문의 제자들이 모두 나서서 살펴볼 것이다.
양준이 다시 호교아와 호미아를 바라보니, 그녀들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전승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아는 것이 많지는 않아. 구름 속에 물건이 다 내려오면 나도 가서 살펴볼 생각이야.”
방자기는 그 말에 다시 물었다.
“위험해?”
양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질문 상대를 잘못 찾은 거 같은데?”
방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공수하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대답해 줘서 고마워.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풍우루에 놀러 와. 내가 꼭 술 한잔 대접할게.”
“괜찮아.”
방자기가 떠난 뒤, 양준은 빙그레 웃으며 자매들을 바라보았다.
“알고 싶은 건 이제 다 알았지? 계속 여기 앉아서 나를 혈전방 남제자들의 공공의 적으로 만들 거야?”
“우리를 쫓아내려고?”
호교아가 양준을 노려보았다.
이에 호미아가 급히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니야… 그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교아가 말을 가로챘다.
“그것 때문에 너한테 접근했다면 또 어쩔 건데?”
그녀는 양준이 자신들을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우리 자매가 그 정도로 밖에 안 보이나?’
양준은 그녀가 화난 것을 알아채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호교아가 말을 이었다.
“그 물건이 내려오면 우리는 너와 함께할 거야. 아무튼 네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잖아. 네가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우리가 너를 보호해 줄게. 어때, 괜찮은 거래잖아?”
“날 보호한다고?”
양준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네 몸 상태면 보호가 필요하지 않겠어? 그리고 너 실력도 형편없잖아. 혹시 거기서 위험에 처하면 어떡할 거야?”
호교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능소각의 소안이 너를 보호해 줄 거라고 말하지는 마. 걔는 요 며칠 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어. 그날 넌 정말 헛수고한 거야.”
“마음대로 해.”
양준도 더 이상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때가 되면 모두가 함께 들어가야 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서로 도울 수 있었다.
“흥!”
호교아는 콧방귀를 뀌더니 여동생을 끌고 양준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하루를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구름 속에 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며 땅에 착지하려고 했다. 모든 이들이 일어서서 십 리 밖의 물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었다. 다만 사람들의 눈에 각인된 것은 한 층 또 한 층의 끝없는 계단뿐이었다.
그리고 맨 위쪽의 구름 끝에는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저곳이 전승지인가?’
양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세 종문의 제자들 모두 흥분하여 긴장한 상태였다. 그들은 비록 양준보다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이런 거대한 건물 속에 틀림없이 보물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 어린 주목을 받으며 거대한 건물이 마침내 지면에 닿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지가 흔들리고, 하늘의 거대한 소용돌이도 한동안 괴이하게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묵직한 소리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진정되었다.
건축물은 이미 땅 위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세 종문의 제자들 가운데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몇백 명이 일제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양준도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남들처럼 서두르지는 않았다. 지마가 말했듯이, 전승은 기연에 맡겨야 했다.
언뜻 옆으로 하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양준이 고개를 들어 보니 소안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유유자적 걷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는 고귀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양준의 눈빛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려 힐끗 돌아보았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양준에게 말을 할 듯 말 듯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은 전승지로 달려가는 제자들에 의해 차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