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장. 시련
양쪽에서 두 줄기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혈전방의 자매들이 양쪽에서 양준과 동행했다. 한 명은 방긋방긋 웃고, 다른 한 명은 요염한 눈에 살기를 품고 있었다.
“보호해 준다고 했으니 꼭 보호해 줄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 자매는 이미 한 가지 전승을 얻었으니, 이번에 무슨 이득이 있든지 너하고 다투지 않을 거야.”
양준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소안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쁜 자식, 지금 나랑 말하고 있잖아.”
호교아는 양준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화가 치밀었다.
“들었어.”
양준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흥, 너 같은 자식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호교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기에 양준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얼마 안 가 세 사람은 휘황찬란한 계단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건물 옆에는 흐릿한 빛의 장막이 한층 더해져 있었고, 어렴풋이 문 같은 것이 보였다.
세 종문의 제자들은 혼자 혹은 여럿이 모여, 각각 문을 찾아 빛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빛의 장막 앞에 서면 계단의 광경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의 장막에 들어간 제자들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자매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양준, 다들 어디 간 거지?”
호교아가 긴장하며 물었다.
“모르겠어.”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문 앞에 다가가 손을 문 안으로 들이밀었다. 그러자 잔물결만 일뿐 안쪽의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들어갈까, 말까?”
호미아는 담이 작아 벌써 벌벌 떨고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들어 구름 속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곧장 문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과감한 행동에, 호교아는 입술을 깨물며 동생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도 들어가자.”
빛의 장막에 들어서자 바깥에서 본 것과 똑같은 전경이 보였다. 안에는 끝없이 위로 뻗은 계단이 있었다. 앞서 들어간 양준도 1층 계단 아래에 서서 계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좌우를 살펴보니 확실히 다른 사람의 종적은 없었다. 문마다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통하는 듯했다. 오직 같은 문으로 들어온 사람만이 함께할 수 있었다.
양준이 고개를 돌려 문에 손을 대자마자 잔물결이 퍼지면서 장막 위의 문이 사라졌다.
뒷길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양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첫 번째 계단을 밟았다. 계단에 올라선 뒤, 그는 저도 모르게 양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이야?”
걸음을 멈춘 양준을 보고 호교아가 물었다.
“올라와 봐.”
양준이 자매에게 말했다.
자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한발 내디뎠다. 양준의 곁에 서자, 자매는 동시에 움찔했다.
“느꼈어?”
양준이 물었다.
“원기가 발바닥으로 밀려드는 것 같아.”
호교아가 대답했다.
“뜨거운 원기야.”
호미아가 말을 이었다.
“맞아. 이게 아마 시련인 것 같아.”
양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매의 느낌과 달리, 그는 발바닥으로 흘러드는 원기가 양성임을 알아챘다.
진양결이 가동되면 이 원기는 그에게 손상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원기를 보충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매는 상황이 달랐다. 그녀들은 반드시 운기조식해서 발바닥으로 밀려드는 원기를 막아 내야만 했다. 그에게는 득이지만 그녀들에게는 실이었다.
“그런데 원기가 너무 미약해. 시련이 이 정도라면 아무것도 아니네.”
호미아는 살짝 흥분했다. 그녀의 실력은 겨우 개원 경지 2단계밖에 안 되지만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방심하면 안 돼.”
호교아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단은 몇 층까지 있는지 몰라. 위로 올라갈수록 원기가 강해진다면, 아마 나중에는 우리가 막아 낼 수 있는 강도가 아닐 거야.”
“추측이 맞을지, 아닐지는 올라가 보면 알겠지.”
양준은 다시 걸음을 내디뎌 두 번째 계단에 올랐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네 번째…….
자매는 그 뒤를 바짝 따랐다.
그들은 단숨에 백 층까지 올라갔다. 그제야 세 사람은 좀 전에 호교아의 짐작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밀려드는 양성 원기가 점점 더 강해졌다. 따라서 그들이 소모하는 원기도 더 많아졌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하늘과 땅 사이로 이어진 계단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자매는 마음속으로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녀들과 달리, 양준은 이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백 번째 계단을 지나자 그의 단전에는 양액 한 방울이 더해졌다. 발바닥으로 흘러드는 양성 원기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양준과 자매는 삼백 층의 계단을 한가로이 산책하듯이 올라갔다. 한 계단씩 밟을 때마다 양성 원기가 그들의 체내로 흘러 들어왔다. 계단의 층수가 증가함에 따라 원기가 점점 강해졌지만, 세 사람을 멈추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양준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진양결 자체가 양성 원기를 필요로 했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호미아였다. 그녀가 개원 경지 2단계의 실력으로 삼백 층을 거뜬히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러나 삼백 층 이후부터 계단의 원기가 훨씬 더 강해졌다. 세 사람은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숨을 돌려야 다시 올라갈 수 있었다.
사백 층에 이르러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자매는 매층마다 한 번씩 쉬어야 했다. 장시간 동안 뜨거운 양성 원기의 영향을 받다 보니 그녀들의 몸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양준은 가는 내내 묵묵히 계단의 층수를 셌다.
그는 이번 시련이 단지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만약 정말 이 정도에 그친다면 단순한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반드시 어떤 변고와 미지의 위험이 있을 것이다.
사백구십 층에서 자매가 멈췄다. 호교아는 느긋한 양준을 보자 속으로 오기가 생겼다.
‘분명 저 자식을 보호해 주겠다고 했는데. 왜 내가 더 힘든 것 같지? 저 자식은 즐기고 있잖아?’
“잠깐 쉬었다 가자.”
양준은 그녀들을 힐끗 보았다.
“필요 없어!”
호교아는 이를 악물고 양준 앞으로 걸어갔다.
연이어 계단 열 개를 올라 오백 층 계단을 디디는 순간, 호교아는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양준은 눈치 빠르게 그녀를 와락 끌어내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호교아가 말했다.
“왜 변했지?”
양준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더 자세히 묻지도 않고 오백 번째 계단에 올라서서 느껴 보았다. 이번에 발바닥으로 흘러드는 것은 더 이상 뜨거운 양성 원기가 아니라, 차가운 냉기였다. 이는 살을 에는 듯이 차가웠다.
열기가 냉기로 변한 것이 호교아가 의아해한 원인이었다.
“이거야말로 시련인 건가?”
양준은 빙긋 웃었다. 그는 원래부터 모든 계단이 자신에게 필요한 양성 원기일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양성 공법을 수련한 사람일 경우, 시간만 충분하다면 모두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오백 층이 넘어가자, 양기가 아닌 냉기가 흘러 들었다. 이는 양성과 완전 대립되는 존재였다.
몸으로 흘러드는 냉기에 대해, 양준은 두 가지 방법을 취할 수 있었다.
하나는 체내의 진양원기로 그것을 해소하고 중화시키는 방법이었다. 다른 하나는 진양결을 운행하며 그것을 정제해 뼛속으로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방법을 취하든지 원기 소모는 불가피했다. 후자의 방법은 소모가 더 크고 그냥 해소하는 것만큼 쉽지 않았다.
만약 단전에 양액을 충분히 비축하지 않았다면, 그는 첫 번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단전에는 양액 백여 방울이 있었다. 그는 뒷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대담하게 두 번째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진양결을 운행하면 체내로 스며든 냉기가 순식간에 제련되어 금신에 흡수될 수 있었다.
“가자.”
양준은 고개를 돌려 자매에게 미소를 짓고는 계속해 앞서 나갔다.
호교아는 뽀로통해서 양준을 슬쩍 쳐다보더니 동생에게 속삭였다.
“쟤는 왜 저리 잘난 체하는 거야?”
호미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난 척하지 않았어.”
“잘난 척한 거 맞아. 이 자식이 감히 날 무시해!”
호교아는 이를 악물고 동생과 함께 공법을 운행해 체내의 냉기를 해소하면서 양준의 뒤를 따라갔다.
첫날, 세 사람은 모두 계단 천 개를 올랐다.
천 번째 계단에 이르렀을 때, 양준은 한 걸음 올라가 느껴 보았다. 짐작했던 것처럼 천한 번째 계단에 내재된 원기는 또다시 양성으로 바뀌었다.
오백 층 단위로 바뀌면서 열기와 냉기가 어우러졌다. 점점 더 강해지는 기운에 세 종문의 제자 중 구 할은 천 층 내에서 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
오직 실력이 높은 제자만이 자체 경지에 의지해 천 번째 계단을 밟을 수 있었다.
이치대로 하면 호미아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까지 무리없이 올라왔고, 또한 피로감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진원 경지의 호교아가 얼굴에 다소 피곤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세 사람은 이곳에서 반나절 동안 쉬기로 했다.
*이와 동시에, 삼천 층 정도의 높은 곳에는 흰 그림자가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에는 시종일관 탈속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스며 있었다. 마치 계단에서 흘러드는 기운이 그녀에게는 아무 지장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옷자락을 나부끼며 걸어 올라갔다. 이따금 손으로 귀밑머리를 정리하기도 하며, 호흡이 안정적이고 헐떡이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발밑에서 전해지는 기운은 그녀의 체내에 침투하는 순간, 마치 초봄의 눈 녹듯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얼굴은 얼음과 옥처럼 맑고 깨끗해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얼음 인형 같았다.
그녀는 바로 소안이었다.
빙심결을 수련한 그녀는 양준과 마찬가지로 열기와 냉기가 교차되는 시련에서 우세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세 종문의 제자 칠팔백 명 가운데서 양성, 냉성의 공법과 무공을 수련한 사람은 양준과 소안뿐이 아니었다. 이 시각, 그들은 자신의 강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력의 차이와 공법의 우열이 있어 소안처럼 삼천여 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천 층이 채 안 되는 곳에도 몇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