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25화 (125/853)

제 125장. 두 자매의 결정

닷새째 되는 날, 계단에서 내려온 세 종문의 제자들이 절반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빛의 장막 옆에 모여 아직 안에서 계단을 오르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한편,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러나 화제의 중심은 누가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가였다.

의심할 바 없이 소안이 일등을 따냈다.

계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서 냉기와 열기가 번갈아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안이 수련한 공법은 아주 큰 우세를 차지했다. 세 종문의 젊은 제자들 가운데서 최강 실력인 그녀가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의견에 많은 능소각 제자들은 얼굴이 환해지고 긍지를 느꼈다. 능소각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소안의 지위는 낮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같았다.

소안의 강함과 고귀함은 그들의 부러움과 질투심을 벗어났다. 그녀에 대해서는 오직 우러러보고 숭배할 뿐이었다.

*오천 층 정도 되는 계단에서 양준과 호씨 자매는 여전히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양준은 여전히 전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자매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어우, 더워!”

호교아는 위로 올라가면서, 옷깃을 젖히고 가볍게 부채질했다.

호미아도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우리 좀 더 쉬다 가자.”

호교아는 살짝 화가 나 앞서 걸어가는 양준을 보며 한마디 했다. 그녀보다 실력이 훨씬 뒤떨어지는 양준은 지금까지도 평온한 기색이었다. 이에 그녀는 화가 나면서도 감탄했다.

그녀의 말에 앞서가던 양준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걸으면 덥지 않을 거야.”

호교아는 자신의 추태를 알아챈 듯 재빨리 옷깃을 여미고 손으로 꼭 감싸며 양준을 흘겨보았다.

“보긴 뭘 봐?”

양준은 싱겁게 웃었다.

“계속 볼 거야?”

호교아는 잔뜩 경계하며 여동생을 뒤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으로 동생을 보호했다. 그녀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더니 화가 나서 양준을 노려보았다.

“하하!”

양준은 다시 뒤돌아 계속 앞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가는 내내 지루하잖아. 길가에 간혹 눈길을 끄는 풍경이 있는데 주저하지 말고 멈춰서 감상해야지.”

“정말 사람 잘못 봤어.”

호교아는 원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당당한 사내인 줄 알았더니, 내 눈을 파서 네 얼굴에 던지고 싶어.”

양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그리고 화가 나면 내 눈을 파야지, 본인 눈을 파서 뭐 하게? 교아, 너무 화가 나서 앞뒤를 분간 못 하는 거 아니야?”

호교아는 울화통이 치밀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 꼭 한 대 맞아야 입 다물 거야?”

“계단에 올라올 때 날 보호해 주기로 한 건 잊었어?”

양준이 홱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눈썹을 찡긋해 보였다.

그 말에 호교아의 얼굴이 붉어지며, 그녀의 온몸을 휘감던 흉악한 기운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 일은 말하지 않으면 안 돼? 부끄럽단 말이야.”

전에 그녀는 자발적으로 양준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제 보니 양준은 보호가 전혀 필요 없었다. 오히려 그들 자매가 양준이 속도를 내지 못하게 짐이 되고 있었다.

이 일을 떠올리면, 호교아는 난처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만, 말 좀 적게들 해. 그럴 힘이면 계단을 몇 개라도 더 오르겠어.”

호미아가 나서서 수습했다.

“고개 좀 돌려. 아직도 보는 거야!”

호교아가 양준을 노려보았다.

양준은 피식 웃더니 더는 그녀와 다투지 않았다.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호교아가 작은 목소리로 여동생에게 말했다.

“저 자식은 좋은 물건이 아니야. 앞으로 조심해. 너를 뼈도 남기지 않고 홀랑 삼킬지도 몰라.”

“언니…….”

호미아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한 시진이 지나 양준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매는 빠른 걸음으로 양준이 있는 계단에 이르렀다. 그녀들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너무 추워!”

호교아는 손등을 비볐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몸에 났던 땀도 한순간 얼어붙어 버렸다.

계단 오백 개를 넘으면서 다시 냉기가 흐르는 구간으로 변했다.

호씨 자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준의 옆에 다가섰다. 그녀들은 마치 추운 겨울의 메추리처럼 끊임없이 떨었다.

삼천 층부터 지금까지 셋은 모두 이렇게 지나왔다. 양기 범위에서 자매는 양준의 뒤를 따랐고, 냉기 범위에 이르면, 양준에 기대어 몸을 녹였다. 내내 걸으면서 고생을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셋이 다시 쉬고 있을 때, 호씨 자매는 서로 마주 보며 마치 무슨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

호교아가 불렀다.

“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양준은 의외라는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호교아가 씁쓸하게 말했다.

“네 체력이면 더 빨리 계단을 오를 수 있을 거야. 우리를 돌보지 않았다면 여기 있지 않았을 테지. 우리가 계속 너와 함께하면, 너의 짐만 될 뿐이야.”

호미아가 한쪽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원래 너를 보호하려 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이곳의 시련은 우리가 너를 보호해 줄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양준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녀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호교아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포기할 것 같아? 우리는 너와 함께 가지 않을 뿐이야. 네가 먼저 가면 우리도 알아서 쫓아갈 거야.”

“결정한 거야?”

양준이 물었다.

“그래.”

양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미 결정했다면, 잡지 않을게.”

자매는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좋은 사람이었다. 여기서 더 권유하는 것은 위선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들어 구름 위의 정상을 보며 말했다.

“오는 동안 함께해 줘서 고마워. 요 며칠 지루하지 않았어.”

호미아의 얼굴에는 기쁨이 스쳐 지나갔고, 예쁜 눈에는 부끄러움이 비쳤다. 호교아 마음속의 적의와 경계심은 이 한마디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정상에 오를 거야. 정상에 뭐가 있는지도 한 번 보고 싶어.”

양준은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갔다. 속도는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나중에 얘기해 줘.”

호교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양준의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자매는 몸을 일으켰다.

둘은 시련을 이겨내며 계속 위로 올라갔다.

그녀들이 겨우 몇 걸음밖에 올라가지 않았을 때, 공중에서 별안간 부드러운 바람 두 줄기가 불어왔다. 바람이 불면서 자매는 저도 모르게 몸이 뒤로 젖혀졌고, 이내 몸이 가벼워지면서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두 줄기 바람에 떠밀려 계단이 있는 곳에서 내보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들은 이미 빛의 장막 밖에 내려와 있었다.

놀란 나머지 고개를 돌려 보니, 많은 제자들이 모두 그들 자매와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전에 내보내진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얼굴에 공포감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한 명도 없이 모두 여자들이었다.

“양준은?”

호미아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양준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직 안에 있어!”

호교아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록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양준이 없다면, 그는 틀림없이 아직 계단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자들만 밖으로 내보내졌을까?’

한순간 많은 여인들이 나타나자, 먼저 내려와 있던 세 종문의 제자들은 한동안 당황하여 넋을 잃고 있었다.

이윽고 세 종문의 제자들은 서둘러 그녀들을 에워쌌다. 어떤 이들은 살갑게 몸 상태를 물어보고, 어떤 이들은 안쪽의 상황을 물었다.

주위의 대화를 듣고서야 호씨 자매는 그녀들도 자신들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바람에 실려 내보내졌고,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인파 속에서 남초접은 온몸이 시퍼렇게 되어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눈에는 불굴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 눈빛은 마치 양준의 눈빛과 흡사했다.

“실패한 건가?”

남초접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했다. 그녀는 기동 경지 8단계 실력으로 삼천여 계단을 올랐다. 이런 성적은 세 종문의 제자들 가운데서 유일했다.

그녀가 의지한 것은 바로 마음속 불굴의 의지와 강해지려는 집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불가항력의 원인으로 밖으로 내보내졌다. 그녀는 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째서? 충분한 시간만 있었다면 반드시 정상에 오를 수 있었어. 왜 나를 밖으로 내보내는 거야?’

남초접은 주먹을 꽉 쥐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톱이 손바닥 살까지 파고들었다.

아픔만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사매, 괜찮아?”

호교아가 남초접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남초접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떨군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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