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26화 (126/853)

제 126장. 정상에 다다르다

양준은 줄곧 위로 나아갔다. 그의 눈은 오직 구름 속의 정상만을 보고 있었기에, 등 뒤에 호씨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남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자 양준의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냉성 원기 범위였다. 그는 쉬지도 않고 한 걸음씩 걸어가며 신속하게 올라갔다. 냉성 원기가 체내에 스며들면 진양결이 운행하며 원기가 금신에 흡수되었다.

오백 층을 지나 원기의 성질이 바뀌자 양준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냉성 원기는 몸속에 들어가면 해소 과정이 필요했지만, 양성 원기는 간단하게 흡수하기만 하면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층 한 층, 올라가다 보니 구름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나 이와 함께 압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체내에 들어오는 원기의 압력도 강해졌다. 양준이 아직까지도 차분하게 오를 수 있는 이유는 수련한 공법이 이곳에 적합하고, 단전에 많은 양액을 비축했기 때문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양준은 의구심이 들었다.

시련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확실했지만,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정말 전승의 시련이라면 이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참 생각하다가 양준은 의념을 발동해 봉인했던 지마를 풀어주었다. 지마는 계단을 오르던 초반에 너무 시끄럽게 주절거렸다. 계속해서 호씨 자매를 이용해 사악한 무공을 수련하라고 양준을 유혹했던 것이다. 양준은 화가 나서 지마의 혼을 봉인했다가 이제야 비로소 풀어주었다.

지마는 봉인에서 풀려나자, 다시 그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양준이 그에게 자신의 마음속 의구심을 말해 주었지만, 지마도 딱히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마가 또 시끄럽게 굴어 심경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한 양준은 곧 지마를 다시 봉인했다.

어떤 시련이든 목적지로 가면 자연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고민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점을 깨닫자, 양준은 순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따라서 몸도 많이 가벼워졌다. 방금 전 심경 변화에 따라 이곳의 시련이 더욱 쉬워진 듯했다.

하루 또 하루의 등반을 거쳐 세 번을 휴식한 뒤, 양준은 드디어 정상 바로 밑에 다다랐다.

그곳은 온통 구름과 안개가 감싸고 있어 마치 선경에 들어선 것 같았다. 뒤돌아보자 오면서 걸었던 계단이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양준은 순간 보이는 것들이 꿈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이제 마지막 열 개의 계단이 남아 있었다. 이 열 개를 걷고 나면 드디어 정상이었다.

양준은 걸음을 내디뎌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홉 개, 여덟 개, 일곱 개…….

양준의 머릿속에는 걸어오는 동안, 첫 며칠 간의 즐거움과 마지막 며칠 간의 단호함이 떠올랐다.

여섯 개, 다섯 개, 네 개…….

기억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글자 없는 검은 책을 얻은 뒤, 자신의 변화가 떠올랐다.

세 개, 두 개…….

삼 년 전의 상황도 떠올랐다. 순간 양준의 평온하던 심경에 파문이 일었다.

양준은 들었던 발을 마지막 계단에 올려놓지 않고 허공에서 멈췄다.

마지막 한 걸음만 내딛으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양준은 감히 발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왠지 지금 심경으로 발을 내려놓으면 죽지는 않더라도 중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이것은 일종의 직감이었다.

양준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묵묵히 진양결을 돌렸다. 한 발을 허공에 내디딘 채, 정지된 자세를 취했다. 그는 얼굴을 스치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마음속 파문이 천천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양준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눈동자에는 이미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확고함만 남아 있었다.

양준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천지가 윙윙 소리를 내더니 무형의 압력이 양준의 몸에 떨어졌다. 이는 천하를 굽어보는 위압감이었다.

양준은 순간 위압감에 눌려 두 다리가 굽혀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땅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 하지만 무릎이 땅에서 반 자 정도 떨어졌을 때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순식간에 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온몸의 피와 살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면서 떨려 왔다. 위압감은 그가 검은 책의 육체편을 수련할 때 느꼈던 천지간의 압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비교해 보면, 육체편을 수련할 때의 느낌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그 당시에는 천지의 속박을 저항하는 느낌이었고, 지금 느끼는 것은 일종의 강자의 위압감이었다.

양준은 마치 하늘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숙였던 몸이 천천히 펴지며, 이마에 핏줄이 드러나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저항에, 느껴지는 압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입안은 피 냄새로 가득 찼다. 이미 내상을 입었던 것이다.

“천지간의 압력도 이겨냈어. 하물며 이건 천지의 힘도 아니잖아.”

양준은 이를 악물었다. 온몸의 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그는 천천히 다른 한쪽 발을 조금씩 움직여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천신만고 끝에 두 발을 마지막 계단에 올려놓는 순간, 양준의 몸도 곧게 펴졌다. 한순간 온몸이 가벼워지며, 양준은 무형의 속박을 깨뜨렸다.

공기 속에서 엄청난 원기가 그의 체내로 세차게 흘러 들면서 체내 원기가 한동안 요동을 쳤다.

잠시 뒤, 양준은 웃으며 입가를 닦았다.

개원 경지 8단계!

끝없는 계단을 지나자 그의 경지가 한 단계 돌파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수확을 얻게 된 것이다.

다시 고개를 들자, 구름 속에 감춰진 궁전이 보였다.

그러나 궁전 아래쪽에는 여전히 계단이 있었다. 계단 수는 전에 걸었던 것처럼 많지는 않았다. 양준은 한번 훑어보고 백 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련인가?”

양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첫 번째 계단을 디디는 순간, 뜨거운 양성 원기가 뜬금없이 그의 곁에 나타났다. 원기는 마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한 가닥의 붉은 실 같았다.

양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진양결을 돌려 곧장 원기를 흡수해 버렸다.

“이상한데?”

양준은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은 며칠 전에도 수없이 겪었다. 전에는 원기가 발바닥에 압력을 주고, 이번에는 눈앞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별 차이가 없었다.

양준은 더 깊이 파고들지 않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걸어 올라갔다. 계단을 지날 때마다 몸 주위에는 양성 원기가 나타났다. 양준은 걸으면서 그것들을 모두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백 층의 계단을 오르고 나니, 단전에는 양액 두 방울이 더해졌다.

양준은 아흔아홉 번째 계단에 올라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백 번째 계단에는 얼음 장벽 하나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 보니 너무 차가웠다. 게다가 장벽은 차가울 뿐만 아니라 이상한 힘까지 더해져 있어, 진양결로도 쉽게 제거할 수가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양준의 손이 얼음 장벽에 닿자, 백 층 계단을 걸으면서 흡수했던 양기가 통제할 수 없이 단전으로부터 흘러나와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다음 순간, 양준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첫 번째 계단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양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방금 전에 걸었던 백 층 계단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다시 내려왔을까? 백 번째 계단의 얼음 장벽이 바로 이번 시련의 관문인가? 그렇다면 반드시 얼음 장벽을 뚫어야 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겠지. 어떻게 뚫어야 될까? 양기는 얼음 장벽의 천적일 거야. 한번 시도해 봐야겠어.’

한참 동안 생각하고서야 양준은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계단마다 양성 원기가 나타났고, 양준은 또다시 모든 양기를 흡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얼음 장벽에 도착했다.

양준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원기를 운행한 다음 곧바로 염양폭을 날렸다.

굉음과 함께 세찬 원기가 얼음 장벽으로 흘러 들었다. 그러나 마치 바다에 가라앉은 돌덩이처럼 잔물결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양준은 또다시 아래로 보내졌다. 금방 흡수한 원기도 아흔아홉 가닥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염양폭도 아무 소용없군. 그렇다면 성흔을 사용해도 얼음 장벽을 뚫지 못하겠지.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되지?’

양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했다. 이때, 무언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 번째 시도에서 양준은 계단을 지날 때마다 한참 동안 머물면서 허공에 나타난 실 같은 원기를 손에 쥐었다.

그는 더 이상 흡수하지 않고, 원기를 그냥 잡고만 있었다.

층수가 늘어남에 따라 손에 쥔 붉은색 실도 갈수록 많아지고 포악해졌다. 심지어 양준의 손도 데인 것만 같았다. 이는 진양결을 수련하는 무인에게 있어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은 이곳의 양기가 남달리 이상했다. 흡수하지 않으면 요동을 치며 수시로 양준을 공격하려 했다.

양준은 손의 통증을 참으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손에 쥔 양기가 점차 안정되어 갔다는 것이다. 마치 보금자리를 찾은 듯 더는 발악하지도, 저항하지도, 공격하지도 않았다.

양준은 방법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끝에 가까워짐에 따라 양준의 손에 모여든 양기는 불덩어리를 이루었다. 그래도 더는 손이 데이는 일은 없었다.

양준은 다시 아흔아홉 번째 계단 앞에 섰다. 그는 손에 든 불덩어리를 가볍게 눈앞의 얼음 장벽 속에 밀어 넣었다.

이번에 양준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양기를 흡수한 얼음 장벽에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수많은 금이 가더니 와르르 흩어졌다. 이어 화려한 궁전이 양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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