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27화 (127/853)

제 127장. 전승의 비밀

얼음 장벽이 깨지는 순간, 끝없는 계단 쪽에서 해홍진의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그는 갖은 애를 써서 이제 막 정상에 올라, 구름 끝에서 백 장의 거리만 남겨 두고 있었다. 성공을 목전에 둔 찰나, 뜻밖에도 정면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며칠 전의 호씨 자매처럼 바람에 휘감겨 아래로 보내졌다.

“안 돼!”

해홍진은 크게 소리치며 두 손을 내밀었다. 마치 마지막 계단을 잡고 여기에 남으려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계단의 끝은 그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안 돼!”

해홍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었다.

며칠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결과, 이제 코앞이 종착지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지막 순간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해홍진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한발 앞서 결승점에 도착한 것이다.

전승은 오직 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실패자로 낙인 찍혀 바람에 실려 내보내졌다.

‘누굴까?’

해홍진의 벌겋게 달아오른 눈에는 한 명, 한 명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소안의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았다.

‘소안이 맞나?’

해홍진은 마음속의 씁쓸함이 많이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비통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낯선 곳에 있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니 여전히 전승동천 안이었고, 주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해홍진은 그 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냉소가 피어올랐다.

“소안, 정말 네가 이곳의 전승을 얻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해홍진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바람에 내보내진 사람들 중 다른 세 종문의 제자들도 있었다. 이번에는 모두 남자였는데, 바로 며칠 전 세 종문의 여제자들의 상황과 똑같았다.

여제자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전승동천의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내보내졌다는 점이었다. 많은 이들은 잠시 낙담하다가 다시 일어나 탐색에 나섰다.

전승을 얻을 수 없다면, 이곳에서 다른 좋은 것이 없나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구름 위, 화려한 궁전이 양준 앞에 나타났다. 십여 장 높이의 대문이 활짝 열린 채로 마치 그를 맞이하는 듯했다.

양준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눈을 감고, 오는 동안의 과정을 되새겨 보았다.

첫 번째 단계의 끝없는 계단이 사람의 심성과 의지를 시험한 것이라면, 두 번째 단계의 백 층 계단은 양성 원기에 대한 통제력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오직 아흔아홉 개 계단에 있는 붉은 실의 형상을 한 원기를 확실히 제어해야만 마지막 계단의 얼음 장벽을 단숨에 뚫을 수 있었다.

한참 지나서야 양준은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 시각 그는 체내 진양원기가 달라졌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열린 대문을 지나 궁전 안으로 들어서자, 가슴 쪽의 양원인이 갑자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전에도 양원인은 양성의 원기를 느끼면, 원기의 강약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이렇게 가슴이 뜨거울 정도로 강렬하게 느꼈던 적은 없었다.

양준은 무거운 표정으로 양원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 되어, 땅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공중에 붉은색과 흰색이 서로 엇갈린 거대한 원기 덩어리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양원인은 지름이 무려 석 자가 넘는 원기 덩어리에 강렬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원기 덩어리에는 뜨거운 양성 원기뿐만 아니라 살을 에는 차가운 냉성 원기도 담겨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원기가 한데 섞여 있지만 서로 어우러져 조금도 충돌하지 않았다.

원기 덩어리에는 수시로 흐릿한 그림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양준은 자세히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용고구천(龍翶九天), 봉명구소(鳳鳴九霄)의 형상이었다. 용과 봉황의 무늬는 전에 전승동천이 나타났을 때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게 전승인가?’

양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자세히 훑어보고 있을 때, 옆쪽으로 흰 빛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다음 순간 한 가닥의 시선이 그의 몸에 닿았다.

양준은 얼른 고개를 돌려, 흰 빛 쪽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두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소안 사저?”

양준은 이곳에 자신 외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소안이었다.

그 시각, 소안은 원기 덩어리 아래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온몸이 눈처럼 희고 옥처럼 맑았다.

“너였어?”

소안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의아함과 동시에 궁금증을 해소한 뒤의 후련함도 있었다. 양준이 나타나면서 궁금증이 풀린 듯했다.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여기서 소안을 만나게 되자 의외인 동시에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걸음을 옮겨 소안에게 다가갔다. 그는 소안의 앞에 멈춰 선 채, 고개를 들어 공중에 떠 있는 원기 덩어리를 보다가 다시 그녀를 보면서 물었다.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사나흘 정도 되었어.”

소안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매몰찬 거부감은 없었다.

‘사나흘이라…….’

양준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역시 능소각의 기린아야.’

사나흘 전이면 그가 호씨 자매와 막 헤어진 때였다. 그때 그는 끝없는 계단의 절반 정도를 걷고 있었는데, 소안은 이미 이곳에 당도해 있었다.

속도는 그보다 월등하게 빨랐다.

양준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소안이 시련을 이겨 내고 대전에 들어왔기에 여제자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이끌려 내보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이곳에 도착하자, 계단을 오르던 남제자들도 동일하게 모두 내보내진 것이다.

이제 이곳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앉아서 말해.”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두 사람의 거리가 생각보다 너무 가까워, 소안의 얼굴에 어색함이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 마주 보았다. 양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만 개의 계단에 이어, 또 백 개의 계단을 걸어서 이곳에 왔어요. 만 개의 계단에서는 오백 층마다 양기와 냉기가 교차되면서 앞길을 막았어요. 백 개의 계단에서는 아흔아홉 갈래 양성 원기를 모아 얼음 장벽을 뚫었죠.”

소안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만 개의 계단을 걸었어. 그리고 너와 같은 상황에 부딪혔지. 또한 백 개의 계단도 넘었어. 그곳에서 나는 아흔아홉 갈래 냉성 원기를 모아 얼음으로 불바다를 봉인했어.”

그녀의 미소는 그야말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나머지 양준은 그 모습을 넋을 잃은 채 바라봤다.

소안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곧 시선을 돌렸다.

“웃는 모습이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어요.”

양준은 칭찬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난 아직 네가 낯선데.”

소안의 얼음같이 깨끗한 얼굴이 약간 붉어졌으나 얼굴빛은 담담했다.

“한 번 보면 초면이고, 두 번 보면 구면이죠.”

양준은 세 종문의 제자들이 모두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여신을 앞에 두고 아무런 부담 없이 얘기했다.

소안은 그와 계속 농담을 주고받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내 의견을 말해 볼 테니 잘 들어봐.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말해 줘.”

“네.”

양준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안이 이곳 전승에 대해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 온 지 이미 며칠이 지났으므로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 터였다.

소안은 생각을 다듬은 다음, 붉은 입술을 가볍게 뗐다.

“우리 생각이 다 틀렸어. 세 종문의 제자들은 이곳의 전승을 오직 한 사람만 얻을 수 있다고 짐작했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아 이곳은 두 사람이 전승을 받을 수 있어. 끝없는 계단의 냉기와 양기가 어우러진 것이 바로 가장 큰 증거야. 그곳은 한 사람의 심성과 의지를 시험할 뿐만 아니라, 전승할 사람을 선발하는 관문이기도 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에 대해 그도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짐작만 했을 뿐 확신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시련은 서로 다른 경험을 했지만 결국 비슷한 관문이었어. 자체 속성 원기를 제어하는 우리의 통제력을 시험한 거야. 이 두 단계 시련을 거쳐야만 이곳에 이를 수 있어.”

소안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가냘프고 흰 목이 드러났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오기 전에는 감히 단정 지을 수 없었어. 하지만 네가 온 것을 보자 몇 가지 결정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물건을 봤어?”

“네.”

“며칠 동안 저것을 취하려고 노력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어. 저것은 나에게 거부감을 보여. 만약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반드시 우리 둘이 함께 운기조식해야만 저것을 끌어내리고 이곳의 전승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

소안의 말은 매우 간단하지만 핵심을 찔렀다.

“어떻게 하려고요?”

양준은 듣고 나서 한마디 물었다.

이곳의 전승은 더는 혼자의 일이 아니라, 그와 소안 둘의 일이었다. 누구 하나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곳의 전승을 얻은 뒤,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전승이 두 사람의 몫이기에 그때가 되면 분명 이전처럼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양준은 당연히 소안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소안은 겉모습이 차갑지만, 속이 따뜻하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양준은 물론 그녀가 싫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의견만 기다릴 뿐이었다. 만약 소안이 그와 함께 이곳의 전승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양준도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소안도 이 점을 염두에 두었기에 주저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그녀는 전승을 받은 뒤, 그녀와 양준의 사이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양준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거북 요수로부터 자신을 구해 낸 것을 떠올리니, 그녀의 갈등과 망설임도 줄어들었다.

양준이 침묵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나서야 소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마치 양준의 얼굴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결연한 말투로 말했다.

“만약 내가 전승을 얻기 위해 잘 모르는 사람과 함께 묶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너는 실망할 거야?”

양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소안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사저의 선택을 존중할 거예요. 우리 서로 각자의 자유가 있어요. 사저가 싫으면 안 가지면 되죠.”

양준은 솔직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천천히 일어나 소안에게 말했다.

“정말 싫다면, 우리 그냥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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