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28화 (128/853)

제 128장. 음양합환공

“어디 가?”

소안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나가야죠.”

양준이 가볍게 웃었다.

“전승을 얻을 것도 아닌데 왜 여기 계속 머물겠어요?”

“누가 싫다고 했어? 여기까지 온 마당에 왜 빈손으로 돌아가?”

소안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미소 속에는 약간의 교활함도 묻어 있었다.

“지금 저를 놀리는 거예요?”

양준은 안색이 침울해지더니 발끈해서 말했다.

“이렇게 사저를 믿는데, 저를 속일 필요가 있나요.”

“사소한 시험일 뿐이야. 이렇게 화낼 필요는 없지 않아? 너희 남자들은 늘 자신들이 도량이 넓다고 하잖아, 여자의 농담도 받아들이지 못해?”

소안은 가볍게 입술을 오므리고는 담담하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화도 내지 못하고, 소안의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탄식했다.

“소안, 이건 정말 사저로서의 자세가 아니잖아요.”

“지금 내 이름까지 함부로 부르면서, 내가 무슨 사저야?”

양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문이 막혔다. 얼음같이 차디찬 여인이 이리 달변가일 줄은 미처 몰랐다.

‘여인의 타고난 본성인가?’

몇 마디 입씨름을 하고 나니, 둘은 많이 가까워졌다. 양준이 소안을 구해주던 그날도 이런 효과는 없었다.

양준은 쓴웃음을 짓고 손을 들어 항복했다.

“네, 그래, 맞아요. 제가 틀렸어요!”

그가 능글맞게 나오자, 소안은 도리어 엄숙해지며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면, 지금 바로 시작하자.”

그녀는 여전히 긴장한 상태였다. 그러나 조금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어떻게 할까요?”

양준이 정색하고 물었다.

“넌 양성 공법을 운행해.”

소안은 눈을 감고 빙심결을 운행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

양준도 서둘러 진양결을 운행했다. 뜨거운 진양원기가 경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확연히 상반되는 두 가지 공법이 펼쳐지자, 대전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마치 천둥이 치는 듯, 요란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기척에 소안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판단이 정확했던 것이다. 그녀나 양준, 둘 중 어느 한 명의 힘으로는 이곳의 전승을 얻을 수가 없었다. 오직 둘이서 동시에 운기조식해야만 비로소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머리 위에 떠 있던 원기 덩어리가 점차 반응을 보였다. 마치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는 것처럼 원기 덩어리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원기 덩어리 속의 용과 봉황의 무늬 또한 끊임없이 움직이며,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눈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족히 반 시진이 지나서야 십여 장 높이에 있던 원기 덩어리가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용과 봉황의 무늬는 더욱 빠르게 반짝였고, 홍백의 두 빛은 끊임없이 흘러나와 자욱한 빛 안개를 형성했다.

우렁찬 용과 봉황의 울부짖음과 함께 원기 덩어리가 폭발하며 돌연 두 개로 나뉘었다. 그것은 다시 화룡(火龍)과 빙황(氷凰)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아래위로 흩어지며 각각 양준과 소안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다.

둘 다 몸을 흠칫 떨며, 눈빛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서렸다.

양준은 화룡이 체내에 들어오는 순간, 몸속에 양성 원기가 많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와 동시에 정보가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양준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진양결을 미친 듯이 돌려 원기를 양액으로 응결시키려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진양결은 원기를 양액으로 응결시키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기는 평소처럼 양액으로 응결되어 단전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

원기가 들끓음에 따라 경맥과 피와 살이 불에 타는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의 오감이 예민해지며, 양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전해지는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이는 소안의 몸에서 나는 향기였다. 그녀의 향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듯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양준은 깜짝 놀라, 서둘러 화룡이 들어오며 머릿속에 녹아 든 정보를 살펴보았다. 한참이 지나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가 눈을 떠보니, 때마침 소안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의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과 달리, 소안은 창백한 얼굴로 가냘픈 몸을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떨고 있었다.

빙심결을 수련한 그녀에게 있어서 추위는 그녀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지금의 추위는 그녀의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평소에 볼 수 없던 모습을 보였다. 다른 한쪽에서 열기가 양준의 한계치를 넘은 것과 같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양준은 그녀의 지금 상태도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상대방의 기운을 갈구하고 있었다.

양준은 그녀의 냉기가 자신의 열기를 식혀 주기를 원하고, 소안은 그의 열기가 자신의 추위를 몰아내 주기를 바랐다.

“소안, 우리가 얻은 전승이…….”

양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아.”

소안은 이를 악물었다. 얼굴에는 씁쓸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이미 사전에 이번 전승은 둘이서 함께 얻을 수 있으며, 얻은 뒤에 둘 사이가 전처럼 낯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음양합환공(陰陽合歡功)!

이름만 들어도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공법이었다.

이 공법의 등급을 알 수는 없지만 결코 낮지 않을 것이다. 소안이 수련하고 있는 빙심결은 먼 옛날부터 전해진 현급(玄級) 공법이었다. 그런데 빙심결마저 이 추위를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음양합환공의 등급이 얼마나 높은지를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쌍수공법(双修功法)이죠?”

“응.”

소안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사공 아닌가요?”

양준은 속상했다. 소안과 함께 이런 전승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뻤지만, 만약 사공이라면 문제가 많았다.

소안은 그의 얕은 식견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틀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쌍수공법이라고 다 사공은 아니야. 음기를 취해 양기를 보충하거나 반대로 양기를 취해 음기를 보충하는 거야말로 사공인 거지.”

“아, 그런가요.”

양준은 저도 몰래 마음이 놓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소안을 훑어보았다. 소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도도하고 차가웠으며 고결했다. 이런 연약한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왠지 보호하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어떤 경우, 남자는 항상 여자보다 쉽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나 여인은 태생적으로 강인함을 지니고 있었다.

“소안……!”

양준이 그녀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아니야…….”

소안은 고통으로 양미간이 찌푸려졌으나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양준은 한숨을 내쉬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 체내 원기를 해소할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봐요.”

소안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다시 눈을 감고 각자 공법을 운행해 체내의 냉기와 열기를 해소하려 했다.

체내에 파고든 화룡은 마치 추위와 어울리지 못해 안달이 난 듯 노하여 포효했다.

양준은 온몸의 피부가 마치 달군 인두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온몸이 열기에 휩싸였지만 여전히 이를 악물고 버텼다.

화룡은 마치 그를 질책하며 독촉하듯이 울부짖었다. 양준의 저항과 거부가 화룡을 화나게 했다. 이러한 울부짖음이 마음속에 전해지면서 양준은 점차 의식을 잃어 갔다. 그의 두 눈은 화난 황소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 박동 수가 전례 없이 빨라졌다. 심장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힘차고 또렷하게 들렸다. 숨소리도 점점 뜨겁고 거칠어졌다.

의식이 없어지려는 찰나, 양준은 오랫동안 억눌렀던 불굴지오를 서둘러 펼쳤다.

불굴지오!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것, 일종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뼈에서 따뜻한 열기가 흘러나오면서 흐릿해지던 의식이 점차 돌아왔다.

양준은 급히 눈을 떠 보았다. 소안의 창백한 얼굴이 상기된 것처럼 발그레해졌다. 그녀는 하얀 이로 붉은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끊임없이 떨렸고, 몸도 경련을 일으키며 떨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소안의 향기보다도 더 사람을 취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향기로 가득했다.

“소안, 소안!”

양준이 그녀를 소리쳐 불렀다.

소안은 흠칫 떨었다. 촘촘하고 긴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더니 몽롱해진 두 눈을 떴다. 그녀는 양준을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 아직 견딜 만해……. 너도… 좀 더 견뎌 봐.”

“네!”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계속해 체내의 사나운 원기를 해소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금신이 효력을 발휘해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금신의 강력한 효력에 힘을 입어 양준은 계속 저항하고 거부했다. 끊임없이 온몸의 경맥, 그리고 피와 살이 타는 듯한 아픔을 견뎌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체내의 원기가 점점 더 거세졌고, 이제 거의 한계치에 다다른 듯싶었다.

생각해 보면 참 웃기는 일이었다. 진양결을 수련한 무인이 양성 원기에 타 죽다니. 그야말로 먼 옛날의 전설이라 말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양준에 비해 소안은 더욱더 심각했다. 양준의 정신이 또렷해질 때마다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녀는 진작에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소안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양준은 또 한 번 정신을 차렸다. 그가 미처 입을 열어 소안을 부르기도 전에, 소안은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소안!”

양준은 전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목소리는 방금 전보다 훨씬 작아졌다.

이런 낮은 외침에도 소안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총기를 회복했다.

“아마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소안이 처음으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다.

양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합환공을 운행하세요!”

양준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 소안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비록 두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눈빛에는 여전히 일말의 신중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안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리고 양준과 함께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공법을 펼쳤다.

공법을 펼치자 체내에서 포효하던 화룡과 조급하게 날뛰던 빙황이 일시에 안정을 되찾았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상쾌함이 찾아왔다.

둘은 자세가 친밀했지만, 표정이 장엄하고 엄숙했다. 열심히 원기를 이끌어 돌릴 뿐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