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29화 (129/853)

제 129장. 기동 경지

공법을 빌려 양준은 소안의 강함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체내에 있는 한빙경(寒氷勁)의 기운은 양준이 체내의 비축해 둔 진양원기의 백 배 이상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그는 갓 걸음마를 뗀 어린애나 마찬가지였다.

소안도 이런 상황을 틀림없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때문에 공법을 펼칠 때, 그녀는 속도를 늦춰 모든 것을 양준의 기준에 맞추었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양준이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한 것이다.

공법의 운행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이질감마저도 순간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둘은 상대방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일 주천, 일 주천씩 순환됨에 따라 양준의 체내에 있던 화룡과 소안의 체내에 있던 빙황이 점차 사라졌다. 방대한 원기는 경맥에도, 단전에도 머물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사명은 마치 양준과 소안이 쌍수공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인 듯했다. 지금 둘이서 수련을 시작하자 그들 역시 각자의 사명을 마친 것이다.

양준은 그들이 사라진 게 아니고 어딘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공법은 계속 펼쳐졌다. 화룡과 빙황 대신 양준의 진양원기와 소안의 한빙경 기운이 경맥에서 흐르며 어우러졌다.

그런데 둘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양준의 원기가 소안의 체내에 흘러 들자, 마치 바닷속의 모래알 같이 너무 보잘것없어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양준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천천히 해, 서두를 필요 없어!”

그의 머릿속에서 소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양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위로해 주었다.

양준은 조용히 단전에 있던 양액 열 방울을 터뜨렸다.

이내 양준의 경맥 속 진양원기가 들끓더니, 순식간에 소안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소안은 깜짝 놀라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양준이 어떻게 이리 방대한 원기를 쏟아낼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개원 8단계 경지로는 이렇게 많은 양의 원기를 보유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양준은 모두 양액 서른 방울을 터뜨렸다. 그의 경맥도 극한에 이르렀고, 시큰하게 아픈 느낌이 밀려왔다. 이제 조금이라도 더 넘쳐나면 경맥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합환공이 없었다면, 양준도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온몸의 원기를 응결시켜야 한 방울의 양액을 만들 수 있었다. 반대로 양액 한 방울만 터뜨려도 경맥에 원기가 넘쳐났다. 평소라면 양액 세 방울만 동시에 터뜨려도 그의 경맥은 이미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든 원기는 둘의 체내에 공존했다. 소안의 능력으로는 물론 양액 서른 방울의 원기를 견뎌 낼 수 있었다.

눈을 뜨니 마침 양준이 의기양양하게 그녀를 보고 웃고 있었다. 소안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숙이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깨물었다.

“간지러워요.”

양준이 어깨를 흠칫 떨며 말했다.

“네 몸에 비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

소안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저의 미소가 세상의 빛을 잃게 할 만큼 눈부시다는 말, 들어 보신 적 있으세요?”

양준이 황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안은 얼굴이 상기되더니 손을 뻗어 흐트러진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나는 한 사람에게만 웃어줄 거야…….”

양준은 묵직한 행복감에 잠겼다.

“먼저 수련하자고요!”

양준은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양액 서른 방울은 순식간에 소안의 한빙경 기운에 삼켜졌다. 그리고 다시 양준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갈 때, 금신에게 흡수당했다.

이 발견에 양준은 무척 기뻤다.

양액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금신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원기와 힘 사이의 전환은 양준이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양준은 다시 한번 양액 서른 방울을 터뜨렸다. 그는 이전과 같이 속이 더부룩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또 양액 다섯 방울을 더 터뜨렸다. 그러자 익숙한 더부룩함과 함께 시큰거리는 통증이 그제야 밀려왔다.

이번 수련을 거쳐 그의 경맥은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게 아니면 이런 효과가 나타날 리 없었다.

‘이 수련 공법은 역시 대단하네!’

서른다섯 방울의 양액은 원기로 전환되어 소안에게 삼켜져 융합된 뒤, 다시 양준의 몸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금신에게 흡수되자 그는 몸이 살짝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대전 안에서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더니, 보이지 않는 힘이 양준을 중심으로 폭발했다. 순간 원기의 파동이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참 뒤에야 이런 이상한 현상이 점차 잦아들었다.

양준은 경지를 또 돌파했다.

개원 경지 9단계!

지난번에 돌파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소안도 이 점을 깨닫고 함께 기뻐했다.

양준은 마음이 평온했지만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이번 수행으로 기동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까?’

잠깐 생각을 해본 양준은 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액 예순다섯 방울에 소안과 함께 힘을 써서야 겨우 작은 경지 하나를 돌파했다. 더욱이 수련을 거친 뒤에 얻은 원기는 양액보다 훨씬 값지고 순수했다. 단전 안에 남은 모든 양액을 다 써버린다고 해도 기동 경지를 돌파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찌 되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했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단번에 양액 쉰 방울을 터뜨렸다.

소안의 심장이 크게 떨렸다.

양준이 처음으로 몸속의 방대한 진양원기를 폭발시켰을 때도 그녀는 깜짝 놀랐다. 두 번째로 폭발시킬 때는 살짝 무뎌졌는데, 세 번째로 이 무시무시한 힘을 폭발시켰을 때,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원기가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소안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옅은 따뜻함이 일었다.

이 남자는 그녀와 깊은 관계를 가진 남자이고, 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여생을 함께 보낼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강할수록 소안은 기뻤다.

사흘의 시간이 걸려서야 양준과 소안은 첫 번째 수련을 마쳤다. 사흘의 시간은 충분히 길었지만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으니 짧게만 느껴졌다.

사흘 뒤, 두 사람은 함께 눈을 떴다. 소안은 이번의 수련을 거쳐 몸속의 한빙경 기운이 더욱 순수해졌으며 전보다 등급이 훨씬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 양준의 고통스러운 표정도 사라졌고, 경맥 안에서 느껴지던 시큰함도 사라졌다. 대량의 원기가 계속해서 들어오다 보니 다친 곳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경맥이 더욱 넓어지고 단단해졌다. 이미 몸은 이 원기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느껴지는 속박감은 양준이 천지의 힘을 돌파하는 것을 가로막는 기운이었다. 마치 저번에 개원 경지를 돌파할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 속박을 돌파해야만 기동 경지에 진급할 수 있었다.

양준은 정신력을 집중하여 세세히 그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느낌에 따라 안색이 점차 평온해졌으나 몸속의 원기는 점차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뼛속으로 솟아오르는 원기를 느낀 양준은 다시 한번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이를 지켜보는 소안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한참 뒤, 이런 사악한 기운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바로 이때, 양준 몸속의 원기 파동은 이미 최대치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가 살며시 눈을 떴을 때,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기동 경지다.’

소안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양준은 순조롭게 경지를 돌파하게 된 것이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쳤다. 동시에 전승동천 전체가 흔들리며 구름과 바람이 변화무쌍해졌다. 이 이상한 기운은 모조리 없애 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기세로 대전 밖에서 모여들었다가 양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건 복운(福運)이었다. 무인들이 큰 경지를 돌파할 때마다 모두 복운이 생겼다. 천지위능(天地威能)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피와 살, 그리고 근골을 수련하여 무인들의 몸을 더욱 강해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결국 그의 노력에 달렸다.

지난번에 개원 경지를 돌파했을 때, 양준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몸속으로 스며든 천지위능은 훨씬 더 방대했다.

눈을 뜨자 그는 소안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마주하게 되었다.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줄 게 있어요!”

그는 말하면서 줄곧 금신에 보존하고 있던 구음응원로를 절반 나누어 소안의 몸속에 흘려보냈다.

시원한 느낌이 전해지자 소안은 기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뭐야?”

“구음응원로예요. 진원 경지의 무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대요!”

양준이 말했다.

“연화시키세요. 전 몸을 수련할 테니까요.”

“좋아!”

소안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구음응원로를 연화한다면 하응상이 전에 했던 것처럼 효과가 아주 좋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천지 영물이니 소안의 실력에는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의 효능만 발휘해도 양준을 돕느라 소모한 원기를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다.

또 연속 사흘은 따분하고 지루한 수련이었다.

양준은 이틀 전에 이미 자신의 수련을 마쳤다. 천지위능의 절반은 살과 근골을 단련시키는 데 사용하여 몸이 더욱 강해지게 했다. 이제 지금 경지의 원기 흐름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금신에 흡수되었다.

사흘 만에, 눈을 뜬 소안의 얼굴은 온통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

양준과 눈이 마주치자 소안이 말했다.

“고마워!”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몸속에서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음응원로를 연화하며 그녀가 양준을 돕느라 소모한 원기가 보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체내에 있는 원기가 더욱 순수해졌다. 더욱이 이번에 수련한 성과까지 더해지자 경지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실력이 훨씬 향상됐다는 것이 느껴졌다. 원기가 온몸의 사지와 뼛속으로 퍼져 나가자, 굳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몸의 각 세포는 마치 원기에 잠겨 있는 것처럼 전례 없던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소안의 얼굴에 성스러운 빛이 드리웠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이번 수련과 구음응원로의 연화는 이십 년 세월이 그녀의 몸에 남긴 각종 흔적들을 완벽하게 없애 버렸고, 그녀의 피부는 한층 더 투명하고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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