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30화 (130/853)

제 130장. 전승을 내가 얻었다고 생각하겠지

“우리 사이에 고맙다고 할 필요가 있어요?”

양준의 말을 듣고, 소안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통하는 감각은 매우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서로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참, 방금 전 기동 경지를 돌파했잖아. 이 경지는 아주 특별한데…….”

소안이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을 채 하지도 못했는데 양준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지금 기동 경지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소안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얼굴이 상기되었다.

대전 안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으나, 양준과 소안은 옷을 깔끔하게 차려 입었다.

그들 앞에는 소안이 그녀의 원기로 제련한 얼음 거울이 놓여 있었다. 소안은 거울 앞에 앉아 조용히 거울 속의 자신을 비춰 보았다.

양준은 그녀의 뒤에 서서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 장면은 매우 따스했다.

소녀에서 여인이 되자 소안의 얼굴에는 차갑고 요염한 느낌이 한층 더해졌다. 아름다운 눈에 드리운 차가운 느낌은 전보다 훨씬 강해졌지만, 유독 양준을 바라볼 때는 이 차가움이 부드럽게 변했다.

양준은 소안이 넘겨준 비녀를 받아 그녀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예전에 하던 소녀의 차림새와는 달리 소안은 이번에 머리를 전부 틀어서 위로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이건 혼인한 여자들만 하는 머리 모양이었다.

“예뻐요!”

양준이 칭찬했다.

“마음에 들어?”

“네.”

양준은 대답하면서 두 손을 소안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함께 수련을 했지만, 다시 소안을 마주하게 된 양준은 여전히 살짝 긴장되었다. 이건 소안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껴오던 감각이라 당분간은 떨치기 어려웠다.

“그만!”

소안이 다급히 말했다.

“우리 본론을 얘기하자고.”

“본론? 좋아요!”

양준은 경망스러운 표정을 거두더니 그녀의 옆에 앉았다.

소안은 한 손으로 양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황홀한 눈빛을 하였다. 그녀는 그렇게 그를 한참 쳐다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올해 몇 살이야?”

양준은 코를 훌쩍이더니 대답했다.

“스무 살이에요!”

그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말을 마친 뒤,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짓말 아니에요!”

소안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

양준은 바늘 방석에 앉은 것처럼 온몸이 불편해졌다. 한참 뒤,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열다섯 살이요……. 곧 열여섯 살이 되요.”

“난 스무 살이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 앞으로 내 말을 들어야 해.”

“작은 일은 사저 말을 들을 테니, 큰일은 제 말을 들어야 해요.”

양준이 입을 벌리고 헤벌쭉 웃었다.

소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백옥처럼 희고 보드라운 손을 양준의 얼굴에 얹고는 입을 열었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양준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넌 이제 막 기동 경지에 들어섰어…….”

“그건 저도 알아요.”

양준은 그녀가 계속해서 말하지 못하게 했다.

소안은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됐어. 이 경지는 특별해. 모든 무인들한테 다 마찬가지야. 꼭 신중해야 돼.”

말하면서 소안은 목 부분을 더듬더니 잠시 뒤, 옥으로 된 목걸이를 풀어서 양준의 목에 걸어 주었다.

양준이 고개를 숙이고 보니, 목걸이에는 네모 반듯한 옥이 걸려 있었다. 만지면 시원한 느낌이 들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이건 한빙옥수(寒冰玉髓)야. 내가 어려서부터 몸에 지니고 다니던 거지. 여기에는 내 진원이 많이 흡수되어 있어. 이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중요한 순간, 너의 원기가 폭발하는 것을 가라앉혀 줄 거야.”

“이건 정을 나눈 증표 같은 건가요?”

양준은 소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안은 상기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은 양준은 재빨리 몸을 뒤적거려 보았지만 내놓을 만한 것이 없었다.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해보았자 파혼추와 음양요삼밖에 없었다.

파혼추는 너무 사악해서 그녀에게 줄 수 없었다. 게다가 안에 지마의 혼까지 깃들어 있으니 소안에게 주면 그녀를 해치기만 할 뿐이었다. 음양요삼은 괜찮았지만, 천지 영물일 뿐이라 증표의 의미는 없었다.

양준은 코를 훌쩍이며 어색함을 감췄다.

“나중에 줄게요.”

소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에게 준 구음응원로만으로 충분해.”

“사저는 참 따뜻해요!”

양준이 진심으로 말했다.

“날 너무 칭찬하지 마. 네가 칭찬만 하면 내 심장이 빨리 뛴단 말이야!”

소안은 숨을 들이쉬더니 가슴팍을 움켜쥐며 말했다. 수련을 마친 뒤, 그녀의 빙심결은 양준의 앞에서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는 마치 상극처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그녀의 혼을 쏙 빼놓았다.

“하하!”

양준은 더없이 해맑게 웃었다. 세상에 어떤 남자가 이렇게 소안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 수 있겠는가? 오직 그밖에 없었다.

전승동천 안에서 벌어진 이 기연이 없었다면 양준과 소안은 큰 접점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대한 전체에서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양준도 스스로 소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건 스스로를 낮추는 게 아니라 소안이 너무 오를 수 없는 위치에 있던 탓이다.

“여기서 나가면 어떡할 거야?”

소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뭘 어떡해요?”

“앞으로의 계획 말이야!”

소안은 마치 책임감이 넘치는 가장처럼 양준도 생각하지 못한 미래를 걱정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쉽게 말해 줘요.”

소안은 나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말할게. 난 널 위해 두 가지 앞길을 생각했어. 첫 번째는 우리 사이를 공개하는 거야. 종문 안의 내 지위와 신분으로 우리의 관계를 공개한다면 넌 종문에 발탁되어 전폭적으로 양성될 거야. 더 이상 공헌치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고, 앞으로 무공, 단약, 비보 등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겠지.”

“지금 저를 떠보시는 거예요?”

양준이 웃으면서 소안을 바라보았다.

소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난 진지해.”

양준은 저도 모르게 감동받았다. 그는 소안과의 관계가 공개되면 종문에서 어떤 풍파가 일어날지 상상이 되었다.

그와 소안은 하늘과 땅 차이로 절대 이어질 수 없는 한 쌍이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의 앞에 정정당당하게 나타난다면, 양준은 당연히 세상 사람들의 시기를 받을 것이고, 소안의 처지도 분명 좋지 못할 것이다. 선배들이 말리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동문 제자들도 소안의 선택을 비웃을 게 뻔했다.

양준은 소안이 이렇게 태연하게 사람들의 비난에 맞설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너도 부담을 가지지는 마. 난 그저 내 남자를 위해 수련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뿐이야!”

양준은 정신을 차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아주 혹하는 제안이지만 저한테 맞지 않아요.”

소안은 그가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예상한 듯,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양준은 두 손을 꽉 잡은 주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제 모든 것을 스스로 이뤄낼 거예요. 사저에게 기대는 것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소안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해서 내가 좀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뻐. 그렇다면 넌 두 번째 길을 갈 수밖에 없겠어.”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저 반드시 빨리 강해질 거예요!”

두 번째 길은 바로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었다.

“날 보호해 주기를 기다릴게!”

소안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양준은 소안의 손을 입가에 가져가더니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다가 뭔가가 떠오른 듯, 갑자기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 참, 사저, 이번에 나가면 골치 아플 거예요.”

“응?”

소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엄숙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세 종문의 제자들이 이곳에 온 것은 바로 이곳의 전승(傳承)을 얻기 위해서에요. 그리고 다 같이 요수 아홉 마리를 죽여 진법을 가동시키고, 전승이 나타나게 했었죠. 세 종문의 제자들 모두 계단에 올랐고, 시련을 이겨냈어요. 사저의 실력은 세 종문의 제자들 중 가장 강한 데다, 수련한 것도 냉성 공법이죠. 그 사람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소안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양준의 일을 고민하느라 그 생각을 아예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양준의 말을 들은 그녀는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이곳의 전승을 이미 내가 얻었다고 생각하겠지!”

“맞아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죠.”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소안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가 전승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얻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에게 해명할 필요는 없잖아.”

“인정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 누구한테도요! 이건 큰일이에요. 제 생각에는 전승동천의 출현은 근처의 세 종문만 끌어들인 게 아닐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소안도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근처 세 종문의 고수들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대한 전체의 고수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전승을 얻은 자를 노린다면 소안은 많이 번거로워질 것이다.

소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하지만 소안은 또 안도가 되기도 했다. 세 종문의 모든 이목을 자신한테 집중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양준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들 전승을 얻은 사람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두 사람이 나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안은 감탄 어린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너는 생각이 참 깊어.”

양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세력이 강한 사람들의 꼬인 마음과 남을 끌어내리려는 수단을 수없이 봤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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