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장. 동굴을 만들다
오늘따라 그의 오두막은 떠들썩했다. 소무영이 왔다 가자마자 하응상도 찾아왔다.
생각해 보니 양준은 전승동천에서 하응상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지난번 구음 산골짜기에서 돌아온 뒤로 그녀는 한 번도 양준을 찾아오지 않았다.
“사제!”
하응상은 양준을 보더니 소무영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바로 오두막으로 걸어 들어왔다.
“돌아왔어?”
“네, 방금 전에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전승동천에 들어갔다면서… 그런데 난 널 보지 못했어.”
하응상은 여전히 수줍음이 많았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도 그날 사저가 들어가는 것을 봤어요. 몽 주인의 위세가 대단하던데요.”
양준은 그날, 오만방자하던 몽무애를 떠올리자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응, 스승님께서 나더러 들어가라고 하신 거야. 참, 거기서 양염석을 찾아서, 너에게 주려고 단약을 좀 만들어 왔어.”
하응상은 약병을 건네주었다.
“사제가 수련하는 공법에는 이게 필요하지?”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고마워요!”
하응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좀 앉았다 가실래요?”
“아니, 그냥 사제가 무사히 돌아왔는지 보러 온 거야.”
하응상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다 큰 남녀가 한 방에 있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 먼저 갈게. 사제도 푹 쉬어.”
“네.”
양준은 그녀를 잡지 않았다.
“사저도 힘들 테니 푹 쉬세요.”
하응상은 생긋 웃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아서서 입구까지 걸어간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뭔가를 물어보려는 듯 한참 머뭇거렸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지난번 구음 산골짜기에서 벌어진 일들은 아직도 그녀의 눈앞에 선했다.
하응상도 꿈속에서 자주 떠올리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오래도록 잠잠해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뒤척거리며 잠을 설쳤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피투성이가 된 양준의 모습이 계속 남아 있었다.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그 기분은 양준과 마주할 때마다 수줍음과 당황스러움으로 변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응상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 양준은 움켜쥔 약병에서 따스한 기분을 느꼈다.
능소각으로 돌아온 첫날 밤, 양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잠을 잤다.
이튿날, 양준은 흑풍시장에 가서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를 샀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사려고 했지만, 전승동천이 나타나 그의 계획을 망쳐 놓았다.
전승동천의 일로 흑풍시장은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시장에서 세 종문의 제자들은 전승동천의 각종 기연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요수 아홉 마리와 마지막의 전승 계단 얘기도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승동천으로 들어가지 못한 터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현재 소안은 흑풍시장을 지키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기세가 뜨거워서 능소각을 떠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세 종문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다들 그녀가 진정한 전승을 얻었는지 궁금해했다.
양준은 필요한 약초와 도구를 구입한 뒤, 바로 흑풍시장을 떠났다.
능소각으로 돌아온 양준은 바로 곤룡골로 향했다.
그는 평소에 앉아서 수련하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삼양과 나무는 여전히 바람에 가지를 흔들었다. 아마 몇 년 지난다면 그것들은 또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하지만 머나먼 나중의 일이었다.
양준은 손을 비비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고 했다. 다만 그때, 그는 실력이 너무 낮아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기동 경지에 도달했으니 드디어 자격을 갖춘 셈이었다.
부근에서 커다란 바위를 찾은 그는 사온 밧줄을 거기다 묶었다. 그리고 밧줄의 힘을 빌려 천천히 곤룡골 밑으로 내려갔다.
곤룡골 아래에 무슨 보물이 있기에 벼랑 위에서도 양기를 흡수하며 수련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보물이 무엇이든, 아래로 내려갈수록 양기가 점점 더 짙어지는 것은 확실했다.
양준도 굳이 곤룡골 깊숙이 내려가서 그 보물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그때 십일 장로가 엄숙하게 절대 곤룡골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된다고 당부했었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 않았다.
신유 경지쯤 되어 보이는 십일 장로도 위험하다고 하는 곳인데, 자신의 실력으로 내려가봤자 무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양준은 그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가 더욱 많은 양기를 흡수하며 수련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곤룡골 옆에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쳐 수련하기에는 많이 열악한 환경이었다. 만약 절벽에 동굴을 만든다면 바람과 햇볕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흑풍시장에서 사온 밧줄을 엮으니 백 장의 거리는 충분히 내려갈 수 있었다.
밧줄 끝까지 내려갔을 때, 양준은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곤룡골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아래쪽 상황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지금 밧줄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하지만 이곳의 양기는 위쪽보다 훨씬 짙었다.
양준은 매우 만족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꼼꼼하게 근처의 암벽을 두드려 보며 괜찮은 위치를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은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암벽 위에 비스듬히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촘촘한 솔잎은 거대한 우산 같았는데, 만약 이 소나무 아래에 공간을 뚫는다면 이 나무가 비바람을 막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점이었다.
동굴의 위치를 정한 양준은 양액 한 방울을 손끝에 모아 칼날로 변하게 했다. 그리고 눈앞의 암벽을 그었다.
저항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양액 칼날의 날카로움은 양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바로 암석 하나를 베어냈다.
양준이 개원 경지 3단계일 때, 양액 칼날은 범급 중품의 수비 비보를 망가뜨릴 수 있었다. 지금 양준의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 암석을 베는 것 따위는 쉬운 일이었다.
단전 안에는 양액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전승동천 안에서 얻은 것은 대부분 이미 소안과 수련을 할 때 써버리고, 지금은 4~5방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무려 양액 세 방울을 소모하고 나서야 양준은 절벽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동굴을 파낼 수 있었다.
동굴로 들어간 양준은 계속해서 암석을 파내며, 파낸 암석을 곤룡골 밑으로 던졌다.
한참 뒤에야 곤룡골 바닥에서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가 울리기까지의 시간을 통해 양준은 곤룡골의 깊이를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계산해 본 양준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곤룡골의 깊이는 무려 만 장이 넘었던 것이다.
반나절의 수고를 거쳐 동굴은 많이 커졌고, 단전 안의 양액도 다 써버렸다.
양액 없이 양준의 힘만으로는 계속해서 굴을 팔 수 없었다.
양준은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 이건 어제 하응상이 양준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단약 몇 알을 먹고 양액을 만들어낸 양준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동굴을 파기 시작했다. 동굴을 파면서 양준은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운이 샘솟고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점점 확장되는 동굴의 내부를 바라보며 양준은 고수가 자신만의 신비한 동굴을 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동안 양준은 줄곧 동굴을 파는 데 힘을 썼다. 양액이 없으면 하응상이 제련한 단약으로 보충하고 목이 마르면 새벽마다 소나무에 맺히는 이슬을 마셨다. 그는 전혀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실력이 기동 경지에 이르면 한 달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도 끄떡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그래도 보충해야 했다.
일주일 뒤, 동굴은 대충 완성되었다.
양준은 동굴 안에 서서 자신이 힘들게 이룬 걸작을 바라보았다. 만족감이 샘솟는 기분에 그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동굴은 이미 양준의 오두막보다도 두 배나 컸다. 동굴 안에 앉아 있으면, 그는 곤룡골에서 기승을 부리는 광풍이 느껴지지 않았고, 오로지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위에서 수련을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환경이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굴 입구 왼쪽에는 돌로 된 자그마한 석실(石室)이 있었다. 양준이 잡다한 물건을 둘 곳이었다. 흑풍시장에서 사온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도 이곳에 놓았다.
오른쪽의 석실은 좀 더 컸는데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안에는 양준이 깎아낸 돌침대도 있었는데 평평하고 매끄러웠다. 양준이 세심하게 오랫동안 갈아서 만든 것이었다. 위에서 잠을 자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중간에도 석실이 있었는데 아직 비어 있었다. 이곳에는 아직 무엇을 둘지 정하지 못했다.
이 동굴은 마치 저택과도 같았다. 비록 간소하지만 아주 아늑했다. 오두막보다 훨씬 오고 싶은 곳이었다.
곤룡골에는 보통 오는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 몸에 지니고 다니기 불편한 것이 있으면 마음껏 이곳에 저장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발견될까 봐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었다.
생각을 마친 양준은 다시 밧줄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는 위로 올라가면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을 하나하나 칼로 베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내려올 때, 굳이 밧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내려올 수 있었다. 괜히 나중에 누군가 밧줄의 존재로 그의 동굴을 발견할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바위에 묶은 밧줄을 푼 양준은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이토록 여러 날 동안 고생하여 드디어 자신만의 수련 거점을 만들어냈다. 이런 수련 환경은 능소각의 제자들보다도 훨씬 조건이 좋았다.
수련에 급히 돌입하지 않고, 양준은 동굴 입구에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이 고요함과 아늑함을 한껏 느꼈다.
이때, 갑자기 뭔가 떠오른 양준은 손을 품에 넣어 그것을 꺼냈다.
바로 음양요삼이었다. 이것은 영성을 가진 천지 영물이었다. 양준이 거둔 다음 줄곧 품에 넣고 있었는데 도망치지도 않고 몸부림을 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