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장. 기동 경지의 특징
‘이 씨앗 두 개를 어디에 심지?’
양준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곳은 전부 암벽이어서 약초가 자라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잠깐 생각해 본 양준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의 동굴 위쪽에 있는 소나무 뿌리 쪽은 비교적 땅이 푹신한 편이었다. 일반적인 소나무도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데, 영초인 적자심은 생명력이 더 강하니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영초는 천지간의 영기를 흡수하고 자라는 것인 만큼, 소나무의 영양을 뺏어갈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양준은 적자심 씨앗 한 알 위에 양액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뜻밖에도 이 씨앗은 양액을 한 방울 흡수한 뒤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양준이 두 번째 방울을 떨어뜨리자 그제야 씨앗이 맑게 변했다. 이건 확실히 지급 상품 영초의 씨앗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양액을 두 방울이나 흡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남초접은 어디서 이런 걸 구해온 거야. 천 냥을 주고 샀지만, 아깝지 않군.’
씨앗 두 개를 심은 뒤, 양준은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부좌를 한 채 동굴 입구에 앉아, 기동 경지에 들어서고 나서 첫 번째 수련에 돌입했다.
그러자 아무런 징조도 없이 온몸의 원기가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양준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춤추기 시작하면서 얼굴의 표정도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원기의 폭주와 함께 양준의 마음속에도 파문이 일었다. 그것은 마치 어딘가에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싶고, 아무나 찾아 싸우고 싶고, 피를 쏟거나 남이 피를 쏟게 하고 싶은 그런 욕구였다.
전에 이런 욕구는 불굴지오를 사용할 때만 나타났는데, 지금은 진양결을 운행하기만 했을 뿐인데도 나타났다.
양준의 문제도 아니고, 진양결의 문제도 아니었다.
바로 기동 경지의 특징이었다.
소안이 전에 양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기동 경지는 모든 무인들에게 특별한 경지였다.
무인은 육체 경지 때부터 체내의 원기가 처음 열리게 된다. 이후 개원 경지를 넘어 다시 기동 경지를 돌파하게 되면 체내에 누적되어 있는 원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는 무인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원기가 폭주하는 것이다. 수련하지 않을 때나, 원기를 움직이지 않을 때는 문제가 없으나, 일단 원기를 움직이게 되면 지금의 양준처럼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건 아주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이 현상으로 인해 기동 경지 무인의 수련은 두 가지 특징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계속해서 원기를 누적하여 경지를 높이고 실력을 강하게 갈고 닦는 것이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목표였다.
두 번째는 누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얻은 힘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달라 원기를 통제할 수 있는 시간도 다 달랐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동 경지 7~8단계까지 수련하면 원기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양준이 전에 마주쳤던 남초접이 바로 그랬다. 그녀가 원기를 운행할 때에는 원기 폭주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두억상이나 좌안, 섭영은 달랐다. 두억상은 비록 기동 경지 6단계의 실력이었지만, 다른 사람과 싸울 때 온화하던 성미가 원기의 폭주로 인해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기동 경지의 특별함으로 인해 무인들은 이 단계에서 쉽게 다른 사람과 마찰이 생기고 성격이 난폭해졌다. 누구에게도 지려고 하지 않고, 의견이 다르거나 서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싸움을 시작해, 유혈 사태가 일어나거나 죽고 다치는 일들이 많았다.
이때문에 무인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경지였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많은 기동 경지의 무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성질을 죽이거나 단약을 복용하거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비보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이것들은 모두 마음속의 충동과 난폭함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때, 냉성 공법을 수련한 무인들의 우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들은 공법의 특성상 몸속의 원기가 차가웠다. 그래서 성질의 변화를 더욱 쉽게 억누를 수 있어 안전하게 이 단계를 지나갔다.
양준은 소안이 기동 경지일 때, 이런 것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이미 얼음에 봉해졌는데 원기가 어떻게 난폭해질 수 있겠는가?
기동 경지 단계에서 무인들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동시에 몸속의 원기와 싸워야 했다. 성공한다면 원기가 심성에 영향을 줄 수 없게 자신의 힘을 통제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힘이 폭주하는 쾌감에 젖어 천천히 본성을 잃어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邪)와 마(魔)는 모두 이렇게 온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에 방향을 잃어, 사람을 죽이는 희열을 느끼며 사악한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기동 경지를 돌파하면 무인의 심성에 따라 양극화로 나뉘었다. 그래서 이 경지를 ‘이합 경지’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지는 지금의 양준에게 조금 먼 거리였다.
지금 양준은 진양결을 운행하자 몸속의 원기에 기동 경지의 징조가 나타났다. 하지만 원기의 영향을 받은 심성은 순식간에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가슴속에서부터 시원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것은 바로 소안이 양준에게 선물한 한빙옥수의 효능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한빙옥수가 작용을 일으켜서 마음이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원기에 좌지우지된 적이 없었다.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양준은 불편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체내의 원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고, 통제를 받지 않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었다. 기동 경지인 그는 다른 무인들과 겉으로는 같은 징조를 앓고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확연히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애써 자신을 억눌러서야 힘을 얻는 데 비해 양준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원기는 처음부터 그의 통제 하에 있었고, 조금도 말을 듣지 않는 기미가 없었다.
한참 생각한 양준은 이 모든 것이 그가 불굴지오에 적응된 것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했다. 불굴지오를 사용할 때, 그는 광기가 넘치고 흥분되었으나, 속으로는 아주 평온하고 자신이 뭘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광기의 영향으로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았다.
이건 좋은 일이었다. 기동 경지의 무인은 두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양준은 이미 그중 첫 번째를 완수한 셈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실력을 쌓으면 되는 일이었다.
향로를 꺼내 향을 피운 양준은 계속해서 가부좌를 하고 동굴 입구에 앉아 진양결을 운행했다.
양액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적으로 양성을 띠는 영과를 복용하거나 양염석 중의 원기를 흡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양준은 진양결을 수련했다.
그는 향로의 작용을 이용하여 진양결의 운행 속도를 억제하는 것으로, 몸속의 원기가 향의 억제 작용에 적응하게 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투할 때 원기의 운행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고, 전투력도 더 강해질 것이다. 억제라는 것은 필요한 때에 폭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양준이 이틀을 수련했지만 향로에 약재를 넣는 것 외에 조금도 움직인 적이 없었다.
체내의 원기는 조금밖에 많아지지 않았고, 진양결을 운행하기도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양준은 여전히 힘든 것을 기꺼이 견디고 있었다.
이틀 뒤 늦은 밤, 앉아서 수련하고 있던 양준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귀를 기울이고 한참을 살피던 그는 얼굴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그는 위에서 누군가 싸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를 들었다.
비명소리가 은근히 익숙한 것 같았는데,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양준이 머뭇거리던 찰나, 앞에서 돌멩이가 우수수 떨어졌다.
돌멩이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분명 이 동굴을 지은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새 다른 사람에게 발각된 건가? 내려오는 사람은 누구지?’
머리 위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양준의 경계심은 사라지고, 오히려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양준은 지금 내려오는 사람이 소안일 거라 짐작했다. 몸속의 불안한 원기와 빠른 속도로 순환하는 피가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어쩌면 공법의 영향으로 인해 두 사람의 원기가 융합되어 이런 연결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을 때, 서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이제 겨우 열흘이 넘었을 뿐인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양준은 마음속으로 지마에게 당분간 돌아오지 말라는 지령을 내리고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새하얀 모습이 가볍게 날아 들어왔다.
그녀가 착지하기 전에 양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으려고 했다.
“혼자 온 게 아니야.”
소안은 어색한 표정으로 양준을 힐끗 바라보았다.
양준은 그제야 소안이 손에 한 사람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얼굴을 땅에 향한 채로 축 늘어져 있는 것이 기절한 건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소안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양준은 그 사람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어리둥절했다.
‘소안이 날 찾아왔는데 왜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 거지?’
“아는 여인이야?”
소안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 이상했는데, 자책과 어색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어디 볼게요.”
양준은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들려고 했다.
“조심해, 여인이야!”
소안은 책망하는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았다.
양준은 순간 어색해져, 다급히 소안이 데려온 이름 모를 여인의 얼굴을 돌려봤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양준은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이 굳어졌다.
“꼬마 사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