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40화 (140/853)

제 140장. 변고

“너 또 너희 아가씨에게서 먹을 것을 훔쳐 온 거야?”

양준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물었다.

취아는 눈을 흘기더니 말했다.

“훔치다니? 이건 아가씨께서 주신 거야. 아가씨는 내게 참 잘 대해 줘. 뭐든 먹을 것이 있으면 나에게 나누어 준다니까.”

“그런데 넌 왜 남아서 시중을 들지 않는 거야?”

양준은 밤을 까서 입에 넣었다.

“아가씨와 부인께서 오랜 여정에 피곤하니 쉬겠다고 하셨어. 그래서 내가 시중을 들 필요가 없는 거야.”

취아는 말을 하다가 눈을 굴리며 양준을 힐끗 보았다.

“거지야, 해성에 도착하면 넌 어디로 갈려고?”

“몰라, 도처에 돌아다니는 거지.”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취아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기는. 망가진 그릇 들고 구걸할 거잖아? 이 누님이 못 해본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양준은 웃기만 할 뿐, 해명하지 않았다.

“이러는 건 어때? 앞으로 우리를 따라다녀. 아무튼 우리도 해성에 도착하면 하인이 필요한 데, 네가 똘똘하고 영리해 보이니 머슴으로 부리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장담한다면 부인과 아가씨 쪽도 분명 별말 없으실 거야. 네가 돈을 모은다면 색시도 얻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

취아가 그를 꼬드겼다.

그녀는 얼굴이 요염하게 생긴 데다가 자태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애틋한 느낌이 어려 있어 유혹의 느낌이 더욱 짙어졌다.

양준은 덥석 받아들였다.

“좋아, 너처럼 좋은 색시를 얻으면 좋겠네.”

취아는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정말 못됐어. 너를 끌어들이는 게 화를 자초하는 건 아닌지 잘 생각해 보아야겠어.”

“그럼 잘 생각해 봐.”

양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도 대충 대답한 것이었다. 사실 그는 이번에 수련하러 나온 것이어서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 머슴 일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거절하기에는 해명하기도 귀찮았다.

“그래, 너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래. 너처럼 입만 산 거지는 처음 보네.”

취아는 양준을 흘겨보더니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하루만 더 지나면 우리는 해성에 도착해. 오늘 밤 푹 쉬어. 나도 피곤하니 이따가 너한테 밥을 가져다주지 않을 거야.”

“응.”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며칠간 먹은 밥은 모두 취아가 그에게 갖다 준 것이었다. 무인들이 그를 괴롭힐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취아가 세 번째 마차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양준은 계속해서 손으로 풀을 휘두르며 오씨 노인이 채찍을 휘두르던 느낌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이 다 되었고, 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많은 무인들이 일제히 몰려갔다.

양준도 일어서서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한 사람이 걸음을 내디뎌 양준의 앞길을 막았다.

양준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바로 첫날 그를 데려왔던 중년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요?”

양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꺼져, 오늘 밤에 네 밥은 없어!”

중년 남자는 경멸의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그의 시선에는 협박의 의미가 다분했다.

양준은 입가에 냉소를 짓고는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살아 있네.”

중년 남자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협박했다.

“네가 만약 죽고 싶다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양준은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서 앉았다.

그는 이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는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였고, 취아도 그를 잘 대해 주고 있었다. 밥 한 끼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한 끼 안 먹는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눈치는 있네!”

중년 남자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착각인지 몰라도 양준이 몸을 돌리는 순간, 그의 눈에서 안도의 기색이 스치는 것을 얼핏 본 것 같았다.

그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양준은 깜짝 놀랐다. 곧이어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지마를 불러 경계를 취하게 하고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양준은 더더욱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비록 이곳은 평소에 쉬는 곳과 마찬가지로 황량한 벌판이었지만, 평소보다 배는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쉬는 곳은 그나마 사람들이 지나가며 남긴 흔적이라도 있었는데, 이곳은 누구도 지나지 않는 곳이 분명했다.

안 좋게 말하면,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설마?’

양준은 의심이 들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주변은 온통 새카맣고,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람을 죽여도 모를 컴컴한 밤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무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면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오씨 노인은 비록 마차를 모는 마부였지만, 신분이 낮은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 밥을 떠서 그에게 늘 건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차 옆에 앉아 술을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밥을 배불리 먹고 쉬고 있었다. 걱정하던 일이 줄곧 일어나지 않자, 양준은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닌가 자조했다.

사람들은 밥을 먹은 뒤, 한담을 나누다가 그 중년 남자의 부름에 몇 명이 남아서 당직을 서고 다른 사람들은 모닥불을 둘러싼 채, 옷을 껴입고 잠을 청했다.

양준도 점차 마음을 놓고 멀리 떨어진 곳에 누워서 자려고 했다.

한 시진 뒤, 지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주인, 상황이 심상치 않네.”

양준은 눈을 번쩍 떴다. 지마의 말이 아니었어도,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잠을 자던 무인들은 지금 숨소리가 매우 무거웠다.

보통 먼 길을 가는 무인들은 떼를 지어 다니더라도 경계심을 시시각각 유지해야 했다. 밤이 되어도 너무 깊게 잠들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는 눈을 감고 옅은 잠을 자면서 체력과 정력을 보충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 며칠 동안, 그들은 항상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은 전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양준이 그들을 깨우고 싶어도 크게 소리를 내야 할 것 같은 수준이었다.

수비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렇게 방심할 수 없었다. 그럼 유일한 가능성은 약에 당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

저녁에 밥을 먹으려고 할 때, 중년 남자가 자신을 대하던 태도와 찰나의 표정 변화를 떠올린 양준은 뭔가 짐작이 갔다.

저녁밥에는 약이 들어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보기에 양준은 평범한 거지에 불과했다. 만약 그가 무인들과 함께 밥을 먹었더라면,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을 것이다. 보통 사람의 저항력은 무인들처럼 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가 먼저 기절해 버리면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사실 그럴 리는 없었지만 이것은 중년 남자가 우려하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흉악한 시선으로 양준을 위협하며 밥을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또 그것 때문에 양준이 돌아설 때, 한시름을 놓은 것이었다.

‘아무리 경계를 더해도 내부의 적은 막기 어렵다더니 그 중년 남자가 바라는 게 뭐지? 돈? 아니면 여자? 아니면 다른 것?’

양준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기를 바랐다. 이 집안의 아가씨는 마음이 착했고, 취아도 그를 잘 대해 주었다. 선한 사람은 복을 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가 몰래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을 때, 그만 소름이 오싹 끼쳤다.

흔들거리는 모닥불 옆에 수상한 그림자 몇 개가 어슬렁거리며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들은 이 며칠간 그들과 함께 먹고 잤던 동료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었다.

양준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비록 그는 이미 기동 경지까지 진급했지만, 강도들의 수가 적지 않았고, 그 중년 남자 역시 진원 경지의 고수였다. 섣불리 움직이다가 자신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이 강도들이 사람들 사이에 더 숨어 있지 않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씨 노인도 이들과 한편인가? 오씨 노인의 실력이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봉변을 피하기 힘들 거야.’

실눈을 떠서 오씨 노인의 마차 쪽을 힐끔거린 양준은 마음이 놓였다가 곧바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년 남자가 경계 어린 표정으로 오씨 노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살금살금 발걸음소리를 극도로 죽이고 장검을 손에 든 채 오씨 노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오씨 노인은 그들과 한편이 아니구나! 하지만 지금 그 역시 목숨이 위험해.’

마음이 조급해진 양준은 몰래 손을 뻗어 땅에서 조약돌 하나를 집고는 손끝에 끼워 튕겼다.

오씨 노인을 건드려서 깨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기를 많이 써 자신을 노출할 수는 없다 보니 그만 방향이 잘못 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조약돌은 우연히 중년 남자의 검에 맞았다.

챙-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밤에 이 소리는 더없이 크게 느껴졌다.

중년 남자는 이런 변수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지라 소리가 울리는 순간, 표정이 확 바뀌면서 뜸들이지 않고 장검으로 오씨 노인을 향해 찔렀다.

바로 그 순간, 오씨 노인은 흐리멍덩하던 눈을 번쩍 뜨고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홱 돌렸다.

피가 튀며 오씨 노인의 어깨가 관통되었다. 그는 아픔에 정신을 번쩍 차렸는지 중년 남자를 겨냥하여 손에 든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우레와 같은 호통을 쳤다.

“장정(張定),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중년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검을 다시 뽑았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오씨 노인과 엉겨 붙었다.

양준은 몰래 사방을 둘러보았다. 곯아떨어졌던 무인들이 모두 깨어난 것을 보고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정이라 불린 중년 남성이 그들에게 약을 탈 때 신중을 기하다 보니 독성이 강한 약을 쓰지 못한 듯했다.

이런 약들은 약효가 강한 만큼 냄새도 강해서 발각되기 쉬웠다. 하지만 그의 이런 신중한 계획은 방금 전의 검 소리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방금 전의 소리가 없었더라면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마도 장정과 그의 수하들에게 조용히 살해되었을 것이다.

깊은 잠에 들었던 무인들은 깨어난 후, 사방을 둘러보며 한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이 들렸다.

“손견명(孫堅銘)이 죽었어! 누가 한 짓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은 가슴팍에서 차가운 통증을 느끼고 고개를 숙여 살펴보았다. 그러자 검이 가슴을 관통한 것이 보였다.

“조굉(刁宏),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비명소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하는 것이었다. 몇몇 무인들은 깨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장정의 수하들에게 바로 죽임을 당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무인들은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며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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