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장.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장정은 놀라서 넋이 빠져버렸다. 그는 오장육부가 다 파열되어서야 방금 전의 거지가 때린 주먹 몇 대에 큰 힘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다급히 체내의 진원을 운행하면서 뜨거운 원기의 움직임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펑- 펑- 펑-
연속해서 굉음이 들리며, 장정의 가슴팍이 피범벅이 되었다. 장정은 비명을 지르며 마차에서 떨어져 나갔다.
진원 경지의 고수는 역시 달랐다. 체내에 축적되어 있는 진원의 양은 일반 사람들과 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양준이 염양폭 네다섯 발을 쉬지 않고 연속으로 쏘았는데도 그저 중상만 입혔을 뿐, 목숨을 취하지 못했다.
장정의 가슴팍에서 터져 나오는 피와 살의 파편들은 세 여인의 얼굴에 가득 튀었다. 장정이 뒤로 물러났을 때, 그들도 따라서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장정의 수하는 칼을 들어 양준의 몸을 찔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양준의 모습이 허상처럼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의 공격은 모두 허탕을 치고 말았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터득한 보법이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에 쓰이게 된 것이다.
지마는 파혼추에 들어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로 변했다. 그것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동시에 장정의 수하들 사이를 누비며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게 뭐야?”
누군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준은 몸을 움직여 그의 뒤에 나타나더니 주먹으로 거세게 그의 등을 내리쳤다.
실력이 장정만큼 높지 않았던 장정의 수하들은 염양폭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장정처럼 막아내지 못했다. 이내 뜨거운 원기가 몸속에서 솟구치자 그들의 안색이 하나같이 상기되었다.
지마는 이 틈을 타 파혼추와 함께 정정의 수하 중 한 명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파혼추가 다시 나왔을 때, 그 사람의 몸은 폭발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안개가 되었다.
“낄낄…….”
괴상한 웃음소리는 점점 더 섬뜩해졌다. 지마는 만 년이 넘은 마두였다. 비록 지금 그의 영혼의 힘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웃음소리에는 여전히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양준과 지마는 함께 협조하며 하나둘 적을 쓰러뜨렸다.
양준이 움직임을 멈추자, 장정의 수하들은 이미 온전한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전멸한 상태였다.
그제야 겨우 뜨거운 원기를 가라앉힌 장정은 일그러진 얼굴로 양준을 노려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거지 놈,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평범한 거지인 줄 알았던 놈이 그들의 계획을 망치는 가장 큰 방해물이 될 줄이야. 이를 본 장정이 어찌 침착해질 수 있겠는가? 더구나 방금 전, 그는 방심으로 인해 양준에게 큰 봉변을 당했다. 지금 그는 시뻘개진 두 눈으로 죽일 듯이 양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양준은 조용히 서서 그를 바라보더니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전투력이 몇 할 남았어?”
만약 장정의 전투력이 온전했다면, 양준은 성흔을 사용하지 않고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흔은 위력이 대단한 데 비해 힘을 모으는 시간이 너무 긴 탓에 지금과 같은 생사를 거는 싸움에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장정은 전투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앞서 그는 오씨 노인과 크게 싸움을 벌였고, 나중에는 양준에게 습격당해 가슴팍이 피로 물들었다. 지금 그의 실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그가 두렵지 않았다.
“이 할밖에 남지 않았다 해도 너를 죽일 수는 있다.”
장정이 분노하자 손에 든 장검에서 전류가 흘렀다. 그는 신법을 펼치며 양준을 향해 다가와 검을 찔렀다.
그가 검술을 다 펼치기도 전에 지마는 파혼추에 들어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귀에서 맴돌았다. 부상을 입은 장정은 지마의 술수에서 벗어날 수 없자, 저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
“이건 무슨 비보냐!”
그도 전투 경험이 꽤나 풍부하여 식견이 짧지 않았지만, 파혼추처럼 괴이한 비보는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사람이 움직일 필요도 없이 스스로 공격을 펼치는 데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영혼이 깃든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네 목숨을 취할 비보지!”
양준의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왔다. 장정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방금 전에 양준이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다는 말인가?
다시 살펴보니 앞에 있는 거지는 흐릿한 것이 잔영에 불과했다.
장정은 다급히 검을 뽑아 뒤로 찔렀다. 하지만 또 허탕이었다.
양준은 이미 보법으로 그의 왼쪽에 나타나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장정은 무방비 상태로 주먹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팔 전체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양준의 주먹 한 방에 그의 견갑골이 부서졌다. 그리고 몸속으로 침입한 원기도 상당히 순수했다. 기동 경지의 무인이 가지고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장정은 이 점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양준은 소안과 같이 수련한 횟수는 적었지만, 수련은 원기의 순도를 높이는 데 뚜렷한 효과가 있었다. 양준 몸속에 있는 원기의 순도는 그의 지금 경지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 모든 것은 수련의 공로였다.
지마는 이 틈을 타 장정에게 다가갔다. 파혼추와 장정의 장검이 부딪히며 끊임없이 마찰음이 들렸다.
양준과 지마, 둘은 전혀 허점이 없이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며 장정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결국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장정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휘청거렸다.
마음이 크게 흔들린 장정에게는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었다. 도망가지 않았다가는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도망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던 양준은, 지마와 앞뒤로 장정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양준이 다시 한번 염양폭을 날리자 장정은 선혈을 왈칵 토하며 정신이 흐트러졌다. 지마는 이 기회를 틈 타 파혼추로 그의 몸속을 꿰뚫고 들어갔다.
장정의 안색이 순간 흐려지더니, 두 눈이 점점 풀렸고 곧이어 땅에 고꾸라졌다.
잠시 뒤, 지마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검은 연기로 변해서 양준의 손끝으로 사라졌다.
이번 전투로 지마는 영혼을 몇 개나 삼킬 수 있었고, 그에 무척 만족스러웠다.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번에 그는 불굴지오를 쓰지 않았다. 장정과의 전투에서 압력과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자신의 실력이 매우 낮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장정이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습격에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단전 안에 저장된 양액이 없었더라면… 그가 어찌 이런 고수와 정면승부를 할 수 있었겠는가?
염양폭을 펼치는 것만 해도 그랬다. 염양폭을 세 번만 날려도 경맥 안의 원기가 다 소진되었다. 하지만 양준은 장정을 죽이는 데 무려 염양폭을 열 번이나 날렸고, 더욱이 지마와 협력해서야 겨우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양준은 한참 동안 무력감을 가라앉힌 뒤에야 천천히 세 번째 마차로 걸어갔다.
발걸음소리가 가까워지자 마차 안의 세 여인은 또 긴장되기 시작했다. 취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지야……?”
“응.”
양준이 맥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취아의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의 뒤로 부인과 아가씨도 긴장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취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었어.”
취아는 입을 틀어막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부인과 아가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은 힘이 빠져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한시름 놓이자 마차 안의 세 여인은 모두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나 살펴볼게요.”
양준은 당부를 남기고 모닥불 옆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이 차가운 표정을 한 채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느냐?”
부인이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다 죽었어요.”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장정과 그 수하들은 수단이 매우 깔끔했다. 잠결에 죽은 사람들은 모두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전투 중에 죽은 사람들도 살아날 희망이 없었다.
오직 양준과 세 여인만이 살아남았다.
아가씨의 흐느끼는 소리가 마차 안에서 들려왔다. 취아도 힘껏 눈을 문질렀다. 부인은 아마도 큰 풍파를 많이 겪은 탓에 마음이 쓰려도 눈물을 참을 수 있는 듯했다.
“새는 먹이 때문에 죽고, 사람은 돈 때문에 죽는다더니…….”
부인은 자조하듯이 가볍게 읊조렸다.
세 여인이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한참을 내버려 둔 뒤, 양준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해성으로 가실 건가요?”
부인은 고개를 들고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녀는 희망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협께서 우리를 해성까지 데려다줄 수 있나요?”
이곳은 황량한 벌판인 데다, 방금 전에 그런 처참한 일까지 겪은 그들은 감히 독자적으로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취아도 양준의 팔을 붙잡고 가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지야, 우리를 버리면 안 돼.”
“취아.”
부인이 엄하게 취아를 혼냈다.
“예의를 지키거라.”
아까까지 사람을 못 알아봐 양준을 거지 취급한 것은 그렇다 쳐도, 목숨까지 빚진 마당에 그를 거지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양준은 취아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 하루 정도의 거리가 남았으니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소협, 감사합니다.”
부인은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우리를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
조심스러운 부인에 비해 취아는 훨씬 대범했다.
줄곧 말이 없던 아가씨도 모기소리만 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이곳에 피비린내가 진동하여 들짐승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우리도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내일 날이 저물기 전에 아마도 해성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양준이 말했다.
부인은 뭔가를 말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소협,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