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43화 (143/853)

제 143장. 해성에 도착하다

“뭔가요?”

양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 밤에 죽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모두 우리를 보호하다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전 그들의 시체가 벌판에 버려져 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요. 그래서…….”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준은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들게 다수와 전투를 벌인 양준에게 시체까지 묻어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억지였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부인은 바로 양준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소협을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지요. 취아야, 나와 딸애랑 함께 오씨 노인이라도 묻어 주자꾸나. 다른 사람들은… 하는 수 없지.”

“네.”

취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인과 아가씨를 부축해 마차에서 내렸다. 세 여인은 벌벌 떨며 창백한 얼굴로 시체에서 검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검을 꼭 쥔 채, 근처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오씨 노인은 이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인도 굳이 그를 묻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 여인이 땅을 팔 동안 양준은 밖을 둘러보며 사체들을 뒤졌다.

다 둘러보고 여인들 곁으로 돌아왔을 때, 양준은 세 여인이 한 척도 안 되는 깊이의 구덩이밖에 파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 부인과 아가씨는 서투른 솜씨로 땅을 팠는데, 서로에게 흙을 튀기기까지 했다. 게다가 검을 잘못 휘둘러 하마터면 서로를 다치게 할 뻔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양준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이곳은 피비린내가 너무 심해요. 늑대 무리라도 온다면 우리는 누구도 살아나갈 수 없어요.”

양준이 말했다.

부인과 아가씨는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취아는 화가 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내팽개친 채 씩씩거리며 양준 앞에 다가와 그의 가슴팍을 마구 두들겼다. 그러면서 투덜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꼭 재수 없는 소리를 해야 해? 이 며칠 동안 내 간식 괜히 먹였어.”

취아가 욕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양준이 했던 말에 적잖은 신빙성이 실렸다. 그러자 취아도 감히 더 방자하게 굴지 못하고 살며시 양준에게 기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진짜 늑대가 있는 거야?”

“됐어요, 가서 귀중한 재산을 챙기세요. 여긴 제가 할게요.”

양준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실 전에 부인이 만약 오씨 노인만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면 양준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며칠 동안 그도 오씨 노인 옆에서 일부 무도를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은 쏟은 물과 같아서 주워 담기 민망했다. 지금에야 비로소 성의를 보일 기회를 찾은 것이었다.

“소협, 감사해요.”

부인은 한숨을 돌리고 딸과 취아를 불러 두 번째 마차에 가서 짐을 정리했다.

양준은 짧은 시간에 큰 구덩이를 파서 오씨 노인의 시체를 묻었다.

다른 쪽에서 세 사람도 준비를 마쳤다. 귀중한 물건은 챙기고 귀중하지 않은 물건은 내버려 두었다.

“갑시다.”

양준은 그들을 마차 안으로 들여보낸 다음, 마차 밖에 앉아 오씨 노인의 채찍을 들고 며칠 동안 터득한 대로 휘둘렀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들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었다.

양준은 비록 처음 마차를 모는 것이었지만, 꽤나 익숙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이튿날 아침, 취아가 잠시 멈춰서 쉬자고 했다. 양준도 그들의 말에 따랐다.

불을 피우고 밥을 짓는 등 취아는 분주히 움직였다. 어젯밤의 그런 일을 겪었던 탓에 그들은 안심이 되지 않아 밤새 눈을 붙이지 못했다. 비록 지금도 입맛이 없었지만, 뭐라도 먹어서 체력을 보충해야 했다.

다시 길을 떠날 때, 취아는 마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양준의 옆에 앉아 그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너 거지 아니지?”

한참이 지나도 양준이 그녀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자, 취아는 참지 못하고 다시 말을 꺼냈다.

“당연히 아니겠지.”

양준은 눈을 흘겼다.

“내 생각에는 넌 분명 명문가의 귀공자야! 혼사를 피하려고 도망쳤다가 돈을 다 써서 이런 꼴이 된 거지.”

취아가 대담하게 상상을 펼쳤다.

양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실소를 터뜨렸다.

“어렸을 때,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거 아니야?”

“나 어렸을 때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어. 최근 몇 년 동안에야 아가씨한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거지. 주로 이런 내용이 많았어. 그리고 망한 귀공자들은…….”

그녀가 열심히 말을 하는 와중에 마차 안에서 부인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취아는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양준은 가볍게 웃고는 계속해서 채찍을 휘둘렀다.

한 시진 뒤, 지마의 경고를 들은 양준은 멀리 내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앞에 누군가 길을 막고 있는데,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부인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묘(苗)씨 가문 사람인 것 같아요.”

묘씨 가문은 바로 부인이 가려고 하는 곳이었다. 취아와 며칠 간의 한담을 통해 양준도 이 집의 아가씨와 묘씨 가문의 도련님이 소싯적에 혼인을 약속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번에 해성으로 온 것은, 첫 번째로는 피난을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아가씨를 혼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해성에 정착하여 살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전에 묘씨 가문에 소식을 전했나요?”

양준이 물었다.

“네.”

“그럼 그들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면, 저는 더 이상 동행하지 않을게요.”

양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취아가 긴장해서 물었다.

“거지야, 너 그냥 가는 거야?”

“아쉬워?”

양준은 그녀에게 눈썹을 치켜세워 보였다.

“죽어!”

취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양준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부인, 어젯밤에 일어난 저에 관한 일을 발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부인은 깜짝 놀랐다. 취아가 방금 전에 상상한 대로 이 사람이 정말 혼인을 피해 도망쳐 나온 귀공자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신분을 드러내기 싫은 것일까?’

이렇게 생각한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협, 걱정하지 마세요. 어젯밤 우리 세 사람은 귀인에 의해 우연히 구해진 것입니다.”

“그러는 게 제일 좋겠네요.”

양준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길을 막고 있는 사람들 앞에 멈춰 섰다.

그 사람은 다가와 공수하더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차 안에는 강(姜)씨 가문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마차 안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말에서 내렸다.

“저는 묘화성입니다. 형수님을 뵙습니다.”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바뀌었다.

“강 형님과 십 년이나 보지 못했는데, 영원한 이별이 되었네요. 예전 일들이 어제처럼 눈앞에 선합니다.”

마차 안에서 부인과 아가씨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취아의 눈도 빨개졌다.

부인이 먼저 그를 다독였다.

“동생, 슬픔을 거두세요.”

“형수님께서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한동안 그들 사이에 슬픈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묘화성이 입을 열었다.

“형수님께서 먼 길을 오시느라 힘드실 텐데 반나절만 더 참아 주십시오. 곧 해성에 도착합니다.”

그는 말하면서 양준을 힐끗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웬 거지가 같이 있는 거죠?”

총명한 부인은 두어 마디로 어젯밤의 상황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세 사람이 마차를 몰 줄 모르는데 우연히 거지를 만나게 되어 마차를 몰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쳐 죽일 장정! 정말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묘화성은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양준을 다시 보더니 입을 열었다.

“거지, 이만 내려와. 그동안 수고했어.”

양준은 곧바로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묘화성이 수하에게 눈짓하자 수하가 앞으로 다가오더니 양준에게 은자를 보수로 주었다. 양준도 사양하지 않고 거지처럼 굽신거리며 은자를 받았다.

“갑시다.”

묘화성은 다른 사람을 시켜 양준의 자리를 대체하고 손을 휘저어 사람들을 이끈 채, 해성으로 향했다.

마차가 지나가며 먼지바람이 뽀얗게 일었다. 양준은 제자리에 선 채 차창에서 그를 바라보는 세 쌍의 눈을 마주 보았다.

마음속으로 이번 강씨 가문 여인들과의 만남이 안타까웠지만,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 앞으로는 그들을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양준도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길을 걸었다.

반나절 뒤, 그는 드디어 해성에 도착했다.

해성은 오매진보다 훨씬 컸다. 공기 중에 약간의 비릿한 내음이 섞여 있었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냄새였다.

양준은 처음으로 해변의 성곽으로 온 것이었다. 그는 흥분되었으나 그래도 먼저 옷을 사고 잠시 묵을 객잔을 찾았다.

어젯밤 사체들에게서 한몫을 톡톡히 챙긴 탓에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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