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6장. 운하도에 들어서다
양준은 두 명의 운하종 무인과 함께 이미 멀리 가고 있었다.
그는 원래 기회를 봐서 둘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날 밤, 운하종에서 나온 무인은 둘만이 아니었다. 총 스무 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는 심지어 진원 경지의 고수도 있었다.
양준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진원 경지 고수까지 있는 상황에서 움직여 봤자,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운하종에서 나온 진원 경지 고수는 장정과 같은 야호선(野狐禪)이 아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장정과의 싸움에서도 그는 유리한 상황에서야 겨우 이길 수 있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양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운하종 무인들의 눈에 그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이는 그에게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기회만 찾으면 금방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기회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법이었다.
운하종 무인들은 양준을 해변에 세워 둔 큰 배에 데리고 간 뒤,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전에 보이던 상냥한 태도를 바꿔, 수시로 비웃는 듯한 냉소를 던졌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어쩔래?’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양준은 이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큰 배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끌려왔다. 그들은 통곡하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연신 애원했다. 배에 있던 운하종 제자들은 마치 늘 있는 일인 것마냥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끌려온 이들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남녀 모두 섞여 있었다. 대다수는 거지들이었고, 일부 어부 차림을 한 이도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운하종이 끌고 온 이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가난한 이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반항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을 무렵, 운하종에 잡혀 온 이들은 이미 서른여 명이나 되었다. 무인들 역시 서둘러 돌아왔다. 고수들의 지휘 하에 큰 배는 해가 뜨기 전에 돛을 올려 바다로 출항했다.
파도가 출렁이는 가운데 큰 배는 해면을 헤치고 평온하게 먼 곳을 향해 나아갔다.
잡혀 온 서른여 명의 울부짖음과 욕하는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그들이 목이 터지게 소리쳐도 운하종 제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질만 당할 뿐이었다.
그들은 때려도 뼈는 다치지 않게, 고통스러울 정도로만 때렸다.
양준은 갑판 한구석에 앉아 차가운 눈초리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자유를 제한받지 않았다. 울고불고하지 않았기에 이목도 끌지 않았다.
배가 출발한 지 한 시진이 지나자, 해성에서 거의 백 리는 족히 떨어져 있었다.
양준은 줄곧 묵묵히 진원 경지 고수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았다. 만약 지금 배에서 뛰어내려 도망친다면 살 확률이 얼마나 될지 궁리했다.
그의 기동 경지 실력으로 물에 빠져 죽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체력 또한 충분했다. 다만 진원 경지 고수가 배에서 내려 쫓아올까 두려웠다.
그가 근심 어린 얼굴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잡혀 온 늙은 어민 하나가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서 양준보다 먼저 배에서 뛰어내렸다.
‘풍덩’ 하는 소리가 전해지자, 잡혀 온 서른여 명은 하나같이 흥분해 뱃전으로 몰려갔다. 늙은 어민을 뒤따라 배에서 뛰어내리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하종 제자들은 그들을 막지 않고 냉소적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양준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애써서 잡아온 일반인들을 이렇게 쉽게 놓아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처절한 비명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방금 전 배에서 뛰어내린 늙은 어민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뱃전까지 몰려들었던 사람들도 모두 발걸음을 멈춘 채, 눈을 크게 뜨고 해면을 바라보았다.
“뭐야?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아래에 괴물이 있어.”
“배 밑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어!”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순식간에 뛰어내릴 용기가 사라졌다.
운하종 제자 중 한 명이 냉소를 던지더니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사람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한쪽에서 횃불을 가져다 해면에 던졌다.
잠깐 동안의 빛을 빌려 많은 이들이 공포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붉게 물든 해면 위에는 늙은 어민이 여러 조각으로 찢겨 있었다. 바닷물 아래에는 언뜻언뜻 보이는 흉악하고 무섭게 생긴 물고기 요수들이 노닐고 있었다. 놈들은 배의 주변을 맴돌며 늙은 어민의 시체를 물어뜯는 중이었다.
“이게 바로 배에서 뛰어내린 결과다.”
운하종 제자가 냉소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구역질했다. 그들은 모두 일반인이었다. 언제 이리 피비린내 나고 역겨운 광경을 본 적이 있겠는가?
양준은 배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는 생각을 바로 접어야 했다. 배 옆에 뒤따르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운하종에서 사육한 요수가 분명했다.
물속에서는 이 요수들이야말로 왕이었다. 기동 경지의 실력으로 놈들에게서 도망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다들 똑바로 들어!”
운하종 제자가 일갈했다. 그러고는 눈으로 인파를 휙 둘러보았다.
“죽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 한두 시진 지나면 운하도에 도착할 것이다. 잡혀 와서 고생할 거라 생각하지 마. 이는 우리 운하종에서 너희들에게 주는 기회다. 섬에 가면 산해진미와 비단 옷이 넘쳐날 것이고, 너희들이 운하종의 시험을 통과하면 제자로 받아들일 것이다. 때가 되면 너희들도 대성한 무인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말은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운하종 제자도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한차례 위협만 주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나 방금 전의 일을 거쳐 끌려온 사람들도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배 밑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는데 무슨 용기가 나겠는가?
큰 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또 한 시진쯤 지나자, 누군가 입을 열었다.
“집에 도착했군.”
“아이고, 힘들어 죽겠어. 한 달에 한 번씩 꼭 나가야 한단 말이야. 인간들이 왜 이렇게 명이 짧아?”
“일반인이잖아. 아무리 잘 관리해도 오래 못 버텨. 쉿, 이제 그만 말해. 그들이 들으면 또 소란을 피울 거야.”
양준은 눈을 뜨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섬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섬은 해성을 네다섯 개 합쳐 놓은 것만큼 컸다. 다만 섬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섬의 왼쪽과 오른쪽이 많이 달랐다. 오른쪽은 마치 자욱한 안개에 싸여 있는 듯해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배는 섬 왼쪽으로 가고 있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배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더니 마침내 기슭에 닿았다.
운하종 제자들은 갑판에 줄사다리를 내리고는 덜덜 떠는 일반인들을 불렀다.
“내려.”
사람들은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일사불란하게 배에서 내렸다. 육지에 오르는 순간 많은 이들은 다리 힘이 풀려 땅바닥에 쓰러졌다. 배 아래의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
잡혀 온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물고기를 잡았어도, 한 번도 그런 괴물은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너희 둘, 이들을 배치해.”
배 위의 유일한 진원 경지 고수가 두 제자에게 분부했다.
“네, 사숙(師叔).”
두 제자는 공손히 대답했다. 그들은 바로 양준을 잡아온 무인들이었다.
“자, 이제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자.”
운하종의 두 제자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양몰이 하듯 그들을 앞으로 내몰 뿐이었다.
양준은 일부러 맨 마지막에 남아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형들, 저는 언제 입문할 수 있나요?”
그중 한 명이 양준에게 냉소를 보냈다.
“누가 네 사형이야?”
다른 한 명도 귀찮지만 설명해 주었다.
“조급해하지 마. 배에서 너도 들었을 거 아니야? 만일 너희들이 운하종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면, 모두 입문해 무공을 수련할 수 있어.”
“어떤 시험인가요?”
양준이 계속해 물었다.
“시험은 말이다. 헤헤, 아주 간단해. 그냥 물건을 채집하는 거야. 너무 많이 묻지 마.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그는 양준이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고, 말하는 한편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영리하게 행동하면 언젠가 형제가 될 수 있을 거다. 이제 막 운하도에 왔으니 아무것도 신경 쓸 것 없어. 매일 산해진미를 가져다줄 거니까. 시험할 시간이 되면 너희들을 부를 거다.”
“네.”
양준은 그들에게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운하도는 확실히 수련하기 좋은 곳이었다. 천지 기운이 짙어 능소각보다 훨씬 나았다. 해변의 종문들이 섬에서 문파를 개설하기 좋아할 만도 했다. 섬을 점령하고 그곳에서 수련하는 자체가 이점이었다. 게다가 많은 섬에는 내륙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천재지보가 있었다.
운하도의 산 좋고 물 좋은 환경에 끌렸는지, 잡혀 온 사람들도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어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다.
운하종의 두 제자 중 한 명이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섬에서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 여기에도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다. 함부로 돌아다니다가는 시체도 못 찾을 줄 알아.”
일반인들에게 요수라고 말하면 위압감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하면 확실하게 위협을 줄 수 있었다.
과연, 이 말에 많은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전에 배에서 뛰어내린 늙은 어민의 말로를 떠올린 것이다.
섬 길을 따라 족히 한 시진 정도 걸어서야 비로소 목적지에 이르렀다.
앞쪽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운하종 제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사람들을 거대한 건물에 들여놓으며 가볍게 웃었다.
“사형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에는 수확이 좋으시네요.”
“그래. 전에 몇 달보다 사람을 좀 더 구했어. 이들은 사제에게 맡길게.”
“사형, 걱정하지 마세요.”
이내 사람들을 데리고 왔던 두 제자가 떠났다.
그들이 떠난 뒤에야, 사람들을 넘겨 받은 운하종 제자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를 따라와.”
양준은 뜰에 들어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면은 모두 담장이었다. 부지는 족히 사방 몇 리는 되었다. 안에는 작은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서른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작은 집에 각각 배치되었다. 양준도 독채를 차지했다.
방 안의 장식들은 호화롭다고는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대로 괜찮았다. 침대와 침구가 있었고, 침구는 가지런하게 접혀 있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곳에 머무를 것이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 매일 세 끼는 누군가 가져다줄 것이다. 너희들의 유일한 임무는 배불리 먹고, 잘 자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여 운하종의 시험을 기다리는 것이다.”
운하종의 제자가 말했다.
양준은 이 말에 왠지 돼지 우리가 떠올랐다.
돼지를 기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배불리 먹이고 잘 재워 살찌웠다가 명절이 되면 도살하지 않는가?
그는 운하종이 일반인들을 잡아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