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장. 흑현과
‘운하종은 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
양준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도망칠 방법도 없었다. 이곳은 남의 종문이고 외딴섬이었다. 스스로 안전하게 배를 구해야만 했다. 그것도 요수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큰 배여야만 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야지!’
양준은 걱정을 내려놓고 침대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과연 누군가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음식은 정성 들여 조리한 것이 눈에 보였다. 음식에서는 옅은 약 향기도 났는데, 모두 약선 음식이었다.
양준은 먼저 음식을 먹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남들이 먹고 아무 일도 없는 것을 보고서야 젓가락을 들었다.
한 끼를 먹고 나니 사람들은 모두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양준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에 들어간 약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 자양강장 하는 것들로 기혈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장기적으로 먹으면 일반인도 백 세까지 살 수 있었다.
며칠간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끌려온 이들은 이제 불만이 전혀 없었다. 그들을 이곳에 데려온 것이 좋은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운하종 제자의 말을 온전히 믿게 되었다.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이들이었다.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 봤겠는가? 끼니마다 산해진미가 넘쳐나니 하나같이 안락한 생활에 애초의 두려움은 잊은 지 오래였다.
잡혀 온 이들은 약선 음식 외에도 매일 약초 즙을 마셔야 했다. 약초 즙은 무척이나 썼으나 신체에 이로운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가냘프고 보잘것없던 이들의 몸이 하나같이 건장해졌다.
그들은 매일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곳이 꼭 천국 같았다. 게다가 행동도 별로 제한받지 않았다. 큰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 외에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양준은 밤에 몇 번 슬그머니 밖에 나갔다 들어온 것 말고는 조용히 지냈다.
이곳을 지키는 제자들은 전부 기동 경지일 뿐이라, 그의 종적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여러 번 알아본 끝에 양준은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건물 말고도 주위에 똑같은 건물이 여러 군데 있으며, 붙잡혀 온 일반인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은 지금 그와 함께 있는 일반인들과는 많이 달랐다. 대다수가 초췌하고 비쩍 마른 모습이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매일 산해진미를 먹고 약초 즙을 복용하지만, 생명력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지마는 그들의 몸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고 양준에게 알려 주었다. 그들 모두 많든 적든 하나같이 몸에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악한 기운은 그들이 수련하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부주의로 감염된 것이었다. 이 사악한 기운이 그들의 생명력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아낸 양준은 운하종의 작태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운하종에 잡혀 온 지 보름이 지났다. 양준과 일반인들은 매일 먹고 자고 몸을 보양하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임무가 추가됐다.
바로 운하종 제자가 가르치는 약초학을 듣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소책자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소책자에는 수많은 천재지보들의 그림과 그에 대한 설명 및 채집 방법이 적혀 있었다.
양준은 매일 한 시진씩 하는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이런 지식은 어느 때든지 유용했다.
강의는 보름 동안 지속되었다.
양준이 운하종에 온 지 어언 한 달이 되었다. 한 달 동안, 그는 몰래 수련하면서 경지를 돌파해 기동 경지 2단계에 이르렀다. 단약을 먹지 않고, 양기를 흡수하지 않고도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니. 이곳의 천지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잡혀온 것이 아니었다면, 양준은 이곳에서 수련하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한 달이 지나고 어느 날 아침, 건물을 지키는 운하종 제자가 모두를 불러 모았다.
‘드디어 때가 된 건가?’
양준은 전에 알아낸 단서들을 통해 운하종이 일반인들을 위험한 곳에 보내 약초를 캐려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곳은 운하종 제자들조차 발을 들여놓기 싫어하는 위험한 곳일 터였다.
과연 운하종 제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운하종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그간 모두들 건강해졌을 것이다. 이는 우리 운하종이 너희들에게 베푼 은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계속해서 편한 생활을 하고 싶다면 운하종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이는 너희들을 시험하는 것이다. 만약 시험에 통과하면 이곳에 돌아와서 계속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을 시킬지 몰라 걱정에 싸여 있었다.
“자, 나를 따라와.”
그는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고 걸어 나갔다.
전에 섬으로 들어왔던 그 길을 따라 족히 한 시진쯤 걸어서 해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큰 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는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양준이 몰래 밤에 외출했을 때 보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배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적지 않은 이들이 공포에 젖은 얼굴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서른여 명이 모두 승선하자 큰 배에는 일반인 백여 명이 모이게 되었다. 먼저 배에 올라 있던 이들이 양준 일행을 바라보는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느껴졌다.
“다 왔어?”
진원 경지의 고수가 물었다.
“다 왔습니다.”
“출항!”
고수가 손을 흔들자 큰 배가 천천히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싫어. 그곳에 가기 싫어.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싶지 않다고요.”
그자는 말하는 한편, 울부짖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더니 비틀거리며 운하종 제자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고, 두 눈은 마치 악마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운하종 제자를 꽉 깨물며 소리쳤다.
“나를 죽이려고. 내가 먼저 너를 죽일 것이다!”
“저 자는 사악한 기운에 심신이 잠식되었네. 미쳐 버린 거야.”
지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덩이가 부었군.”
운하종 제자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닌 듯했다. 그는 그대로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그자의 가슴을 찌른 후, 발로 차서 배 아래로 던져 버렸다.
배 밑에서 요수가 시체를 뜯어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인 운하종 제자가 차가운 눈초리로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그들에게 일갈했다.
“설치지 마. 물고기 밥이 되는 수가 있어!”
그는 살기등등했다. 그의 눈길을 감히 마주 보는 이도 없었다.
배 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큰 배가 가는 곳은 멀지 않았다. 안개에 가려진 운하도의 오른쪽 반도였다. 배는 한참 빙 돌아서 기슭에 닿았다.
양준은 배에서 이미 이번 출항의 임무를 알게 되었다.
섬에서 흑현과를 따는 것이었다. 흑현과에 대해서는 운하도에 온 지 보름 만에 운하종의 제자가 설명했었다. 바로 소책자의 첫 장에 적혀 있는 천재지보였다. 이는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새까만 열매로 운하도의 특산물이었다. 근처 해역에서는 오직 운하도에만 자라는 열매였다.
그때 당시 운하종 제자는 흑현과를 설명할 때 여러 번 반복해 설명했었다. 당시에는 왜 그런가 싶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운하종에서 일반인들을 잡아온 것은 바로 이 흑현과를 따게 하기 위해서였다.
흑현과는 등급이 높지 않았다. 약리로 따지면 기껏해야 범급이었다. 운하종에서 왜 이것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마다 바구니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고, 한 사람당 적어도 세 근을 따야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천재지보를 채집할 수 있다면, 그것의 가치에 따라 대체할 수도 있었다.
이는 운하종이 일반인들에게 보름 동안 약리 지식을 가르친 이유였다. 일반인들이 천재지보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인 백여 명이 배에서 내몰렸으나, 운하종의 제자들은 배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섬 오른쪽은 그들에게 금지 구역인 모양이었다. 누구도 감히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진원 경지 고수가 말했다.
“사흘의 시간을 줄 것이다. 사흘 뒤 다시 이곳으로 와 너희들을 맞이할 것이니,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돌아올 필요 없다. 안에서 알아서 살거나 죽거나 해라. 가자!”
사람들은 큰 배가 떠나는 모습을 침울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양준과 함께 붙잡혀 온 서른여 명은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그 외에 다른 이들은 이 임무가 처음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 자리에 잠깐 머문 뒤, 많은 이들은 말없이 바구니를 지고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점차 남은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양준은 기슭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무기력하게 탄식할 뿐이었다.
해면 아래에는 요수들이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고 있어, 전혀 도망갈 길이 없었다.
양준도 하는 수없이 뒤돌아 오른쪽 섬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인, 이곳은 사마의 기운이 아주 짙네. 운하종의 제자들이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게 당연하군.”
지마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런 사악한 기운은 조금 빨아들인다고 해도 몸에 그다지 큰 해가 없었다. 그러나 장기간 흡수하다 보면 사람의 심신이 무너져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운하종이 일반인들을 잡아와서 오른쪽 섬에 들여보내 약초를 캐게 하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을 한 달 동안 보양시키는 것도, 섬에 들어가자마자 미쳐 버리지 말고 좀 더 오래 버텼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네가 좋아하는 거 아니야?”
양준은 놀라지 않고 농을 건넸다.
“주인의 말이 맞네.”
지마가 킬킬 웃었다.
“내가 있으면 주인은 사악한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네. 그리고 이곳은 기이한 땅이니, 한번 탐색해 보는 것도 좋을 걸세. 생각지 못한 수확이 있을 수도 있다네.”
“나도 그럴 생각이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딴섬에 한 달 동안 잡혀 있었다. 산해진미를 먹으면서 호사를 누렸지만, 그래도 이자를 받아야 했다.
양준은 바구니를 지고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깥쪽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흑현과의 성장 주기가 아무리 빨라도 이렇게 자주 채집하면 이미 동이 났을 것이다. 오직 내부로 깊이 들어가야만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양준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는 아주 많았다. 사람들은 모두들 무리지어 다녔고, 혼자 다니는 이는 드물었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이들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길을 걷던 중, 앞쪽에서 인영 하나가 한 곳으로 질주하는 것이 보였다. 그가 달리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려 보니 덩굴에 포도 같은 열매가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