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장. 운하도의 비밀
흑현과였다.
양준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먼저 달려가 흑현과를 땄다.
손으로 가늠해 보니, 한 송이가 대략 반 근 정도는 되는 듯했다. 그러니까 여섯 송이만 찾으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앞에서 달리던 이도 양준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양준을 보자 깜짝 놀라더니 곧이어 사납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자식, 그거 이리 내놔!”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자도 원래는 그저 가난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곳에 출입한 뒤, 사악한 기운에 젖어 점차 본성을 잃은 것이다. 지금은 오직 악랄함과 광기뿐이었다. 마치 양준이 흑현과를 내놓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것 같았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면, 너에게 줄게.”
정보를 알아내려는 생각이 없었다면, 양준은 굳이 일반인과 물건을 다투지 않았을 것이다.
“빨리 내놔!”
그자는 고개를 반쯤 숙이고, 양준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운하종에서는 이 열매로 뭘 하려는 거야?”
이 자는 이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 양준은 그가 이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먼저 흑현과나 내게 줘. 그러면 가르쳐 주지.”
양준은 웃으면서 흑현과를 그에게 던졌다.
그자는 흑현과를 받고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흑현과를 바구니에 넣은 뒤,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눈에 비쳤던 악랄함도 점차 사라졌다. 그는 잠깐 침묵하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도 조금밖에 몰라. 이 열매를 물고기에게 먹인다고 들었어.”
“물고기한테 먹인다고?”
“특별한 물고기래.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말을 마치고 그는 이상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비쩍 마른 걸 보니, 나와 같이 가는 건 어때? 여긴 위험해.”
‘나를 이용하려고?’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같이 움직인다면 틀림없이 먼저 이 자의 임무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기껏 호의를 베풀었더니!”
그자는 양준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인성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라 콧방귀를 뀌고는 떠나갔다.
*양준은 홀로 오른쪽 섬을 훑으며 걷고 있었다. 점점 더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섬에 들어온 지도 이미 하루가 지났다. 길에는 적지 않은 흑현과가 있었으나 양준은 운하종을 도와 임무를 완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채집하지 않았다.
운하종 제자가 제시한 사흘 간의 기한은 일반인들이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일 것이다. 하지만 양준은 지마의 도움으로 사악한 기운에 잠식될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반면 지마는 사악한 기운을 흡입해 회복해야 하므로 정신없이 들이켰다.
양준은 우선 오른쪽 섬에 도대체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는가를 탐색한 뒤, 운하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운하도 오른쪽은 면적이 꽤 넓었다. 산봉우리가 몇 개 있었고,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꽤 가팔랐다. 일반인은 아예 등반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양준의 목표는 바로 이 몇 개의 산봉우리였다. 그곳에 틀림없이 천재지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양준은 한참 걷다가 문득 멈춰 섰다. 공기 중에 향긋한 약 향기가 풍겨 오고 있었다. 향기가 코를 찌르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양준은 약 향기가 풍겨 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 되어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화초 한 그루가 앞에 나타났다.
화초의 끝부분에는 분홍색의 작은 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향기가 그윽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송이는 마치 미소 짓는 미인의 얼굴 같았다. 게다가 꽃줄기도 요상했다. 마치 여인의 아름답고 굴곡진 몸매와 흡사했다.
“미인예(美人蘂)!”
양준은 눈이 번쩍 띄었다. 들어온 지 하루밖에 안 되어 이리 좋은 물건을 찾아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운하종의 제자가 준 소책자에 따르면, 미인예는 지급 상품 영약이었다. 다른 약재와 함께 단약으로 만들어 여인이 복용하면, 설령 추녀를 미녀로 만들지는 못해도, 용모를 한층 아름답게 해주었다.
양준은 얼른 미인예를 꺾어 등 뒤 바구니에 넣었다.
양준은 계속해서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곳은 이전에 일반인들이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곳인지 연이어 신묘한 약초를 캘 수 있었다.
운하도 오른쪽 섬에 깊숙한 곳은 개발되지 않은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다.
운하종 제자들은 사악한 기운이 무서워서, 일반인들은 이리 깊숙이 들어올 방법이 없어서, 결국 인적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양준은 덕분에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산봉우리 하나하나를 넘으면서 바구니 안의 진기한 약초와 영과들도 점점 많아졌다.
다만 아쉽게도 오른쪽 섬의 면적이 작지 않다고 하나, 3일 만에 거의 다 훑어볼 수 있었고, 바구니는 이미 거의 다 차 있는 상태였다. 약초 중 가장 못한 것도 지급 하품이고, 심지어는 천급도 있었다. 이 물건을 내다 팔면 쉽게 수십 내지 백만 냥에 달하는 은자를 바꿀 수 있었다.
또한 이곳은 흑풍산처럼 큰 위험도 없었다. 흑풍산에는 실력이 낮은 이가 들어가면 요수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양준은 이곳에서 며칠 동안 돌아다녔지만 늑대 두세 마리밖에 만나지 못했다.
사흘째 되는 날, 운하종의 큰 배가 약속대로 도착했다. 양준은 한 산등성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살아서 돌아가는 일반인들은 육칠십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사악한 기운에 심신이 사로잡혀 광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섬을 헤매다 끝내는 생명력까지 잠식당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흘째 되는 날, 양준은 작은 산등성이에 서서 눈앞에 있는 높이가 삼백 장이나 되는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이는 마지막 산봉우리였다. 여기까지 오르고 나면 오른쪽 섬은 완주한 셈이었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지마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 이 산봉우리가 바로 오른쪽 섬에 퍼져 있는 사악한 기운의 근원인 것 같네.”
“확실해?”
양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역시 이곳의 사악한 기운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이지. 내 영혼이 떨리고 있다네.”
“두려운 거야?”
양준은 생전에 마두였던 지마가 사악한 기운에 떨린다는 것이 괴이쩍었다.
곧이어 지마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겁먹은 게 아니라, 흥분한 걸세! 주인도 한번 생각해 보게나. 오랫동안 굶주리다가 눈앞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어떨 거 같은가?”
“먹어야지!”
“주인, 제발 나한테 기회를 주게.”
양준은 심지어 지마가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가파른 벼랑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 역시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운하도의 오른쪽이 왼쪽과 이렇게 다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양준은 위로 올라가면서 혹여나 천재지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주위를 살폈으나 정상에 오를 때까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산 정상에서 그는 몸을 곧게 펴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반듯한 산봉우리였다. 멀리서 볼 때도 벌거숭이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직접 올라와 보니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뜻밖에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게다가 땅은 모두 핏빛이었고, 공기 중에는 비린내가 진동했다.
순간, 사악한 기운이 양준의 얼굴을 덮쳤다.
양준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산봉우리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바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바위 역시 핏빛이었다. 한눈에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혈기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양준은 경계심을 한껏 높이고 천천히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바위에 가까이 다가가도 여전히 아무 위험이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울처럼 반듯한 바위 한가운데는 피 같은 액체 몇 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걸쭉하고 피비린내가 났다.
“응혈주(凝血珠)로군!”
지마는 말투가 담담했지만 혀를 내둘렀다. 양준은 함께한 시간이 짧지 않아 지마가 안목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마가 혀를 내두를 정도면 그에게는 극히 훌륭한 보물이었다.
“주인, 이제 알겠네. 원래 이곳에는 소마두가 떨어진 거였군. 그래서 사악한 기운이 짙은 걸세.”
지마가 입을 열었다.
“소마두라고?”
“음… 나에 비하면 소마두일 뿐이네. 이곳의 무인 수준으로 보면 실력이 대단한 거지.”
지마의 말투에는 의기양양함과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데?”
양준은 호기심이 동했다.
“신유 경지에서 하나의 더 큰 경지를 넘어선 수준이라네.”
지마는 양준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양준은 이마를 문질렀다. 그는 지금 겨우 기동 경지였다. 기동 경지 다음에는 이합 경지, 그리고 진원 경지, 그 다음에야 신유 경지였다.
‘소마두가 신유 경지보다 하나의 더 큰 경지를 초월했다고? 그럼 이 세상에서 놈과 견줄 자가 없다는 거잖아. 그냥 천하 제일이네. 그런데 이곳에서 죽었다니!’
“소마두의 육체는 죽었으나 사악한 기운이 여전히 이곳에 모여 있네. 그래서 오른쪽 섬 전체에 사악한 기운이 넘쳐나는 것이지. 내가 소마두가 남긴 사악한 기운을 모두 흡수할 수 있다면, 혼백의 힘을 얼마간 회복할 수 있을 걸세. 안타깝게도 소마두가 죽은 지 한참 된 거 같군. 제길, 내가 이곳에 온 다음 죽었으면 얼마나 좋아?”
지마는 말끝마다 소마두를 입에 담았다. 양준은 왠지 긴장되었다.
“응혈주는 무슨 효능이 있어?”
양준은 눈앞의 핏빛 액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혈주는 소마두의 육체와 정기가 응결된 것으로, 거대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네. 난 육신이 없어 흡수할 수 없지만, 주인이 흡수한다면 실력을 대폭적으로 올릴 수 있네. 다만 주인이 그 기운을 견뎌 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응혈주에 숨겨진 힘은 일반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양준도 이 말에 한참 망설였다.
실력을 대폭 높이는 것은 그가 바라는 바였다.
“내가 응혈주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양준의 질문에 지마가 음흉하게 웃었다.
“주화입마에 빠지는 거지! 주인, 사실 마두가 되는 것도 나쁠 게 없다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누가 눈에 거슬리면 죽여도 되고.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고 구애받는 것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물며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마두인가? 애초에 인간과 마두를 서로 다른 것처럼 딱 가른 것부터가 잘못됐네. 운하종의 작태를 보게나.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인간으로서 너무 뻔뻔스럽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운하종을 마로 보지 않지. 고로 인간과 마두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네.”
양준은 느끼는 바가 있었으나 여전히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뒤쪽에서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때, 지마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주인, 조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