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50화 (150/853)

제 150장. 강씨 부인과의 재회

지마는 양준의 조롱을 알아채고,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맞네. 맞아. 소마두는 확실하네. 하지만 나는 녀석보다 일찍 죽었잖는가. 전승동천에 봉인되어 영혼이 흩어질 뻔했지.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녀석에게 먹힐 수도 있네.”

양준는 이 말에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색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돼?”

“하늘 높은 줄도 모르는 요 녀석의 잔혼이 주인의 육체를 차지하려고 하네. 저번에 동굴에서 날 흡수했던 것처럼 녀석에게 주인의 육체를 살짝 내어 주게.”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양준은 바로 땅굴에 손을 들이밀었다.

순간 서늘한 기운이 팔을 타고 체내로 흘러들었지만, 양준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진양결이 운행됨에 따라 서늘한 기운이 순환하면서 제련되었다.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결국 양준의 체내로 흘러들었던 기운은 약간의 정수만 남아 금신에게 흡수되었다.

양준의 도움을 받아 지마는 형세를 만회할 수 있었고, 한 시진 뒤에는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그쯤이면 충분하네. 이제 내가 녀석을 흡수할 테니 옆에서 잘 지켜보게.”

지마는 양준이 사악한 기운을 너무 많이 빼앗아 갈까 두려워 얼른 말렸다.

‘거 참, 이상하군. 주인은 어떻게 어떤 원기든 다 흡수할 수 있는 거지? 주인이 수련하는 게 양성 공법이 아니었나.’

지마의 말에 양준도 땅굴에 넣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더는 지마의 일을 상관하지 않고, 바구니에서 약초 한 포기를 꺼내 입에 넣었다.

양준은 자신이 아는 약초들만 채집했다. 모두 독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이것들을 가져다가 단약으로 만들면 약효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그로서는 약초를 단약으로 만들 기회가 없었다. 직접 복용하는 것은 단약보다 약효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당장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지마와 검은 연기의 접전은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검은 연기 두 덩어리가 하나로 되어서야 전투가 겨우 끝이 났다.

이 전투로 지마의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지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고맙네.”

양준은 저도 모르게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소인은 잠시 며칠 동안 폐관 수련을 하겠네.”

말을 마친 뒤, 지마는 재빨리 양준의 체내로 들어갔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지마는 폐관 수련에 들어갔고, 양준은 반 바구니 정도의 천재지보를 모두 섭취했다. 어쨌든 채집한 약초는 모두 독성이 없는 것이었고, 금신도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으니 서로 다른 원기들이 체내에서 충돌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십여 일 동안, 양준은 백만 냥어치의 천재지보를 말끔히 먹어 치웠다.

노력한 만큼 수확도 있었다. 그는 순조롭게 기동 경지 4단계에 도달했다.

운하도에 온 지 겨우 두 달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연이어 경지를 돌파했다. 이번 걸음은 헛걸음이 아니었다.

오른쪽 섬의 천재지보는 거의 남지 않았고, 사악한 기운의 근원은 지마가 모두 삼켜 버렸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오른쪽 섬은 더는 운하종 제자들의 금지 구역이 아니게 될 것이다.

‘떠날 때가 되었군.’

양준은 산 정상에서 내려와 해변으로 걸어갔다.

운하도를 떠나려면 배를 타야만 했는데, 이것이 양준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스스로 배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지금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운하종의 배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들의 배를 어떻게 빼앗을 것이고, 또 빼앗은 다음에 어떻게 추적을 벗어나야 할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양준이 한창 세부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들어 보니 거친 숨소리와 더불어 여자가 저항하며 애원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서둘러 그쪽으로 달려갔다.

소리가 나는 곳에 도착해 보니, 건장한 사내가 한 여자의 몸을 타고 앉아 있었다. 그자는 여인의 옷을 마구 쥐어뜯으며 황소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여자는 그에게 깔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애원하며 울고 있었다.

양준은 사내의 몸에서 사악한 기운을 느꼈다.

그는 곧 몸을 날려 달려들었다. 양준이 사내의 허리를 발로 감아 차서 날려 버렸다. 여자는 사내의 손에서 벗어나자 얼른 땅바닥에서 기어 일어났다. 그녀는 헤쳐진 옷섶을 잡고는 벌벌 떨면서 양준의 뒤로 숨었다.

사내는 공중에서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그는 땅바닥에 떨어진 뒤, 급히 일어나 사나운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사나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몸에 스며든 사악한 기운에 의식이 거의 다 잠식된 상태였다. 그는 사납게 눈을 부릅뜨고 콧구멍으로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사내는 원래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하도 오른쪽에 여러 번 드나들다 보니 지금은 본성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바로 이 때문에 방금 전에도 양준은 무공을 펼치지 않고, 그저 발로 걷어찼던 것이다.

“넌 뭐야? 썩 꺼져!”

사내는 양미간에 고통이 서려 있었다.

양준은 냉담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한참 뒤에야 사내는 으르렁거리며 마치 미친 소처럼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얼굴에는 악랄한 기운이 감돌았다.

“빨리 해탈하는 것도 좋을 것 같군.”

양준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사내가 눈앞으로 달려와서야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찍었다.

진양원기가 주입되자 순간 사내의 심장이 멎었다. 사내는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고, 땅에 쓰러지더니 곧 숨이 끊겼다.

뒤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착잡한 마음으로 뒤돌아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다. 시선으로 여인의 얼굴을 훑은 다음, 그는 그 자리에서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여인은 중년의 부인이었다. 희고 부드러운 피부에서 원래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외모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인의 얼굴은 험상궂고 무서운 상처 자국이 얼기설기 나 있었다. 상처 자국들은 모두 손가락 길이만큼 길었다. 상처는 모두 얼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지른 상태로 분홍빛 살갗이 밖으로 뒤집혀 있었다. 상처는 비록 아물었지만, 흉터는 얼굴에 남아 그녀의 아름다움을 파괴했다.

여인도 지금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찢어진 옷깃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감싼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울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녀는 인사하는 한편, 쭈뼛쭈뼛 뒤로 물러섰다. 양준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랄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양준은 온몸이 차가워졌다. 그는 냉엄한 표정으로 한 손을 내밀어 여인의 손목을 꽉 잡았다.

“아니… 안 돼요…….”

여인은 다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양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다른 한 손을 천천히 여인의 턱 쪽으로 가져가 얼굴을 들어 올렸다.

“제발, 제발 안 돼…….”

여인은 눈물로 두 뺨을 적시며 힘없이 양준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의 흉터가 더욱더 험상궂어 보였다.

양준의 눈에는 정욕이 없었다. 오직 안타까움뿐이었다. 그는 턱을 쥐고 있던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살짝 넘겼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훤히 드러났다.

여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흉측한 용모를 남에게 보인 자괴감인지, 아니면 양준의 행동에 놀란 것인지 끊임없이 눈물만 흘렸다.

양준은 한참 동안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엉겁결에 불렀다.

“부인?”

여인은 오래간만에 이 호칭을 듣고, 천천히 눈을 떴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에는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다시 눈앞의 사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의혹은 점차 사라지고, 곧 놀라움과 기쁨으로 바뀌었다.

“정말 부인이십니까?”

양준은 믿을 수가 없었다. 여인을 첫눈에 보았을 때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금 전처럼 경솔해 보이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눈앞에 여인이 자신이 아는 그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여인도 양준의 목소리를 금방 기억해 냈다. 머릿속에는 두 달 전 봤던 먼지투성이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그 거지 소협인가요?”

양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여인이 거지 소협이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인은 정말로 강씨 부인이었다.

양준이 거지 소협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취아 외에 강씨 부인과 아가씨뿐이었다.

“부인께서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 그리고 얼굴은…….”

양준은 의문투성이였다.

‘취아를 포함해 그녀들은 해성의 묘씨 가문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날 헤어질 때 묘화성은 직접 마중을 나왔었다. 두 집안은 혼약이 있으므로 강씨 아가씨는 이미 묘씨 집안에 시집갔을 터였다. 부인도 묘씨 집안에서 편히 지내고 있어야 했다.

‘왜… 왜 일이 이렇게 됐지?’

“소협……!”

양준이 예전에 자신을 구해 준 거지 소협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부인은 털썩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쿵쿵 소리 나게 절을 했다. 그러고는 비통하게 말했다.

“소협이 우리 강씨 집안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양준은 재빨리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이미 부인의 이마에는 혈흔이 생겨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힘 있게 절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이야기할 만한 장소가 아닙니다. 일단 빠져나가죠.”

양준은 그녀를 부축해 오던 길로 바삐 걸어갔다.

‘부인은 왜 이렇게 되었지? 또 어쩌다 운하도에 끌려온 것이고? 취아와 아가씨는 어디에 있을까? 해성 묘씨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양준은 착한 사람은 복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일들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때 강씨 부인과 며칠 동안 함께 지냈고, 더욱이 취아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

한참을 걸어서야 둘은 근처의 한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이곳은 운하도 오른쪽의 깊숙한 곳으로,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둘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절망에 빠졌던 부인은 기적처럼 다시 양준을 만나게 되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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