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장. 한 번만 더 도와줄 수 있겠어요?
양준은 그녀를 위로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자신이 의문투성이인 만큼, 부인이 자신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 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족히 반 시진이 지나서야 부인은 겨우 흐느낌을 멈췄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그녀의 무서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껴안고 벌벌 떨자, 양준은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 주었다.
“고마워요.”
고난에 처해 있음에도 부인은 여전히 교양이 몸에 밴 듯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부인은 회상에 잠겨, 낮은 목소리로 양준과 헤어진 뒤 그녀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해 주었다.
“딸애, 그리고 취아와 함께 묘화성을 따라 묘씨 저택에 갔어요. 처음 며칠 동안은 우리를 잘 대해 주었죠. 다만 딸애의 혼사를 이야기하면 줄곧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었어요.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마음에 두지는 않았어요. 며칠이 지나 내가 다시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바로 승낙했어요. 그런데 본인의 아들은 신분이 존귀해 우리 딸애와 맞지 않다는 거예요. 묘씨 집안에 시집와도 좋으나 첩으로 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나는 화나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뭐라고 하지는 못했어요. 다음날, 나는 딸애와 취아더러 짐을 챙기게 했어요. 묘씨 저택을 떠나려 했죠. 우리 모녀가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해성까지 온 것은 결코 묘씨 가문의 첩 노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하물며 남편은 생전에 묘화성과 혼사를 맺은 것이었는데, 그자가 어찌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고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그러나 묘씨 저택을 나서기도 전에 묘화성은 안면을 싹 바꾸고 우리를 가두었어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부인의 얼굴에는 두려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일로 크게 놀랐던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처연한 표정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나도 물론 묘화성이 왜 이리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죠.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그제야 모든 일이 그자의 농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남편의 죽음도 그가 통주에 자객을 풀어 한 짓이었어요. 그러고는 나에게 전갈을 보내, 딸애를 데리고 해성으로 와서 혼인하라고 한 거죠. 우습게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딸애를 데리고 늑대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갔던 거예요.”
“그자는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남편분과 묘화성은 절친한 사이가 아닙니까?”
양준은 어렴풋이 이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날 그녀들과 헤어질 때, 그는 묘화성을 직접 봤었다. 그때 당시 그의 비통한 말투와 표정은 꾸며 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양준의 질문에 부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묘화성이 왜 우리 모녀를 이리 대하는지 무척이나 알고 싶었어요. 갖은 질문을 통해서, 모든 근원이 예전의 남편과 묘화성이 얻은 물건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무슨 물건인가요?”
“거북 등딱지에요!”
부인이 대답했다.
“남편과 묘화성은 그때 당시 해성 근처에서 거닐다가, 이상한 거북 등딱지를 얻게 되었어요. 거북 등딱지에는 섬 지도가 그려져 있었죠. 오래 전의 이야기예요. 당시 두 사람은 근처의 섬을 모두 조사해 봤지만, 거북 등딱지에 그려진 지도와 같은 곳은 하나도 없었어요. 둘은 그 지도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 등딱지를 두 개로 갈라서 각각 하나씩 나눠 가졌어요.”
부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계속해 이야기를 이어 갔다.
“후에 남편은 통주로 가서 사업을 차리고, 묘화성은 해성에 정착했죠. 이 몇 년 동안 아마 둘 다 반쪽 거북 등딱지를 연구했을 거예요. 최근에서야 마침내 단서를 찾게 됐고요. 그러나 둘이서 나누기 싫어진 묘화성이 자객을 풀어 남편을 죽인 다음, 내가 가족을 이끌고 해성으로 오게 유인한 거였어요. 나도 남편이 가지고 있는 반쪽 거북 등딱지를 본 적이 있어요. 물론 그것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번에 올 때 가지고 왔고. 소협, 그날 밤 호위 장정의 반란을 기억하고 있나요?”
“그 역시 묘화성이 시킨 짓인가요?”
양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맞아요.”
부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묘화성은 그래도 남편과 절친한 사이여서 직접 손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장정에게 시킨 것이었어요. 만약 그날 밤에 소협이 없었더라면 나와 딸애, 취아는 아마 벌써 남편을 따라갔을 거예요.”
“정말 친한 친구네요!”
양준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곧 의아해서 물었다.
“세 분은 일반인일 뿐입니다. 묘씨 저택에 들어간 뒤, 묘화성이 당신들에게서 뭔가를 얻으려 했다면 매우 쉬운 일 아닙니까? 왜 처음에는 잘 대해 준 거죠?”
부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한참 뒤에 생각해 보니 결국 모두 소협의 덕분이었어요.”
“제 덕분이라고요?”
“그래요.”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묘화성이 우리를 맞이하러 왔을 때, 소협의 뜻에 따라 길 가던 고수가 우리를 도와 장정을 죽여 무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죠. 묘화성은 신중한 인간이에요. 처음에 우리를 잘 대해 준 건, 바로 존재하지 않는 고수가 혹시라도 주위에 숨어 있을까 두려웠던 거예요. 그래서 감히 손쓰지 못한 거였죠. 내가 떠나기로 결심하고 나서야 급한 마음에 본색을 드러냈던 거죠.”
양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죠.”
부인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을 쏟으며 말을 이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는 거북 등딱지 반쪽을 내주었어요. 그러나 묘화성은 우리를 얌전히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죠.”
그녀는 말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묘화성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딸애를 자신의 아들과 혼인시키겠다며, 끌고 나갔어요. 딸애는 한사코 따라가려 하지 않았죠. 취아도 나서서 거들었어요. 생각과 달리 묘화성은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수단이 잔인했어요. 취아는 그날 그들에게 맞아 죽었어요.”
양준은 몸을 움찔했다.
부인은 울면서, 계속해 말했다.
“다음날, 묘화성은 나를 찾아와 딸애가 견디지 못하고 혀를 깨물어 자결했다고 알리더군요.”
양준은 온몸이 차가워졌다.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귀엽고 예쁘장했던 취아는 맞아 죽고, 부끄럼을 잘 타고 앳되던 아가씨도 혀를 깨물어 자결했다.
두 달 전, 그는 그녀들과 함께 마차에 앉아 유람했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뜻밖에도 그녀들은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묘화성은 나를 덮치려고 했어요.”
부인은 울먹이며, 띄엄띄엄 말했다.
“하지만 딸애와 취아의 선례가 있어 감히 험하게 하지는 못했어요. 나를 며칠 동안 가둬 놓은 뒤에도 전혀 기회를 찾지 못하자 결국 화가 나서 나를 천금매취루(千金買醉樓)에 팔아넘겼어요.”
양준은 자세히 물을 필요도 없이 그곳이 기루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나를 때리고 복종을 강요했어요. 나는 가위로 내 얼굴을 그어 버렸죠. 이제 어떤 남자도 내 모습에 관심이 없을 거예요.”
부인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훗날 나는 다시 운하종에 팔렸어요. 나도 당연히 죽어야 했어요. 남편도 죽었고, 딸애도, 취아도 먼저 갔어요. 내가 홀로 연명해서 뭘 하겠어요? 하지만 난 죽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죽으면 그들의 억울함을 아무도 모를 거 아니에요. 그래서 살아야만 했어요. 나는 나약한 여자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들 대신 복수해야 했어요!”
양준은 긴 한숨을 토해 내며 그녀를 위로했다.
“부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어머니입니다.”
때로는 죽는 것이 훨씬 쉽다. 사는 것이 더욱 힘들 때도 있었다.
“소협, 한 번만 더 도와줄 수 있겠어요?”
부인은 눈물을 머금고 기대에 찬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산등성이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양준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 실력이 너무 낮습니다.”
양준이 탄식했다.
부인의 얼굴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실력을 키울 겁니다. 어쩌면 몇 년은 더 걸릴지 모릅니다. 혹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성 묘씨 집안은 꼭 방문할 겁니다.”
부인의 부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지 취아가 그때 이따금씩 그에게 가져다준 간식 때문이었다.
부인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크게 기뻐했다. 그녀는 바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소협, 너무 고마워요!”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몸을 펴고 입을 열었다.
“소협이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비록 묘화성이 나서서 일을 주도했지만, 배후에는 운하종 장로의 사주가 있었어요.”
“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묘화성의 아들 묘림(苗林)은 운하종의 제자지만, 지위가 그다지 높지는 않아요. 묘화성이 갖은 방법을 다해 완전한 거북 등딱지를 얻으려 한 것도 결국에는 운하종에 바쳐 운하종에서 아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묘화성이 신의를 저버리고 우리 강씨 집안을 이렇게 대한 것은 아들이 부추긴 탓도 있어요. 묘림은 운하종에서 출세하려 했지만, 따로 연줄이 없었어요. 거북 등딱지가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거죠.”
“운하종! 알겠습니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협!”
부인은 가볍게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떨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협이 너그럽고 의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 강씨 집안을 위해 복수하는 것도 사실 취아의 선의를 기억해서라는 것도 알아요. 그러나 우리 강씨 집안은 보답할 길이 없으니…….”
“괜찮습니다.”
“소협, 내 말을 마저 들어 보세요.”
부인이 고집했다.
양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남편도 거북 등딱지 반쪽을 얻은 뒤, 이 몇 년 동안 계속 연구해 왔어요. 묘화성이 일부 단서를 찾아냈다면 남편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북 등딱지 반쪽에서 지도 한 장을 얻었어요. 그 지도로 유추해 봤을 때, 등딱지 두 개를 합치면 섬으로 가는 항해도이고, 남편이 가지고 있는 것은 섬 내부 지도였어요.”
“네?”
양준이 놀라서 말했다.
“그럼 지도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건… 제 몸에 있어요…….”
부인이 다소 어색한 말투로 대답했다.
양준은 금세 의문이 들었다.
‘연약한 부인이 어떻게 중요한 지도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거지? 묘화성이 몸수색도 하지 않은 건가?’
오랜 침묵 끝에 부인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소협의 의로운 행동에 저희 강씨 집안은 보답할 길이 없으니 지도를 사례로 드릴게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서 손을 뻗어 바지를 잡아 쫙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