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4장. 바로 저기입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흠모하던 미인은 삽시간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유오청은 옷과 머리카락이 모두 흠뻑 젖은 채, 오물 냄새를 맡자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양준도 땅바닥에서 뒹굴며 일반인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보였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미인이 날아오는 순간 그녀를 받아 안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본인이 다치더라도 절대 미인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다만 유오청이나 묘림이나 모두 어진 인간이 아니었다. 만약 방금 전에 유오청을 받아 안았다면, 양준은 아마 두 사람의 노기를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유오청은 일반인, 그것도 비천한 하인이 몸을 만졌다고 분노할 것이고, 묘림은 질투로 인해 살기를 품을 것이다. 그러면 양준은 결코 내일 아침 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오청을 피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묘림은 다급히 유오청 곁으로 달려갔다. 끝내 접근할 기회를 찾아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놀라서 말했다.
“사저, 괜찮아?”
“꺼져!”
유오청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에 바로 이 구역질나는 남자가 끌어안으려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날아갈 리 있었겠는가? 또한 오물을 흠뻑 뒤집어쓸 리가 있었겠는가? 이처럼 체면을 구기고 온몸에 악취를 풍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순간, 유오청은 살기가 일었다.
그녀의 호통에 묘림은 당황해서 급히 두 발짝 물러섰다.
이때, 선실에서 많은 무인들이 물밀 듯이 올라왔다. 그 중에는 유수평도 있었다. 그는 갑판에 뛰어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더니 얼굴빛이 급변했다.
“요수다. 싸울 준비!”
다시 고개를 들어 더러워진 유오청을 본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청아, 다친 데는 없느냐?”
유오청은 이를 꼭 깨물었다.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묘림을 노려보고 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먼저 돌아가서 쉬거라. 여기는 상관하지 말고.”
유수평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사저, 내가 데려다 줄게!”
묘림은 즉시 그녀를 따라가려 했다.
“필요 없어!”
유오청은 거의 한 글자씩 내지르다시피 뱉어 냈다. 예쁘면서도 지저분한 그녀의 모습이 재빨리 갑판 위에서 사라졌다.
배 위, 잡일을 하던 일반인들도 신속히 철수했다. 운하종의 제자들은 지금 그들의 생사를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갑판 위에 남아 있으면 위험했다.
배 옆에서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파도가 솟아오르더니 큰 배를 가격했다. 배는 또 몇 차례 더 흔들렸다.
양준은 재빨리 기어 일어나 일반인들과 함께 선실로 철수했다.
모두들 한데 모여 부들부들 떨었다. 많은 이들이 제발 큰 배가 침몰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배가 가라앉으면 신유 경지인 태상장로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양준은 귀를 기울여 바깥의 소리를 들었다. 잠시 뒤 긴장했던 마음이 점차 풀어졌다.
운하종의 두 태상장로가 출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요수의 등급이 높지 않아 유수평 선에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다만 요수의 수가 매우 많았다. 사방팔방에서 탕탕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는 한 시진 정도 지속되다가 끝났다. 습격해 온 요수들은 죽거나 격퇴되었다. 소란스러운 소리도 가라앉고 다시 잠잠해졌다.
운하종의 승리에 일반인들은 마치 그들이 승리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양준은 이 광경을 보며 슬픔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하종의 제자들이 일반인들을 불러 갑판을 청소하게 했다. 사람들은 갑판에 올라와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갑판 위는 온통 피범벅이었다.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물고기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커다랗게 벌린 요수의 입안에는 예리한 이빨이 가득 했다.
운하종에는 죽은 이가 없었다. 실력이 좀 뒤처지는 몇몇만 부상을 조금 입었을 뿐이었다.
양준은 일반인들과 함께 갑판의 핏자국을 씻어 냈다. 죽은 요수들을 청소하느라 땀투성이가 되고, 온몸에 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미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인지 처음 요수의 습격을 받은 뒤 며칠 간격으로 요수들이 습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요수들의 실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요수들을 대처하기 위해 많은 일반인들이 가차 없이 바다에 버려졌다. 요수의 주의를 끌기 위한 용도였다.
유수평의 얼굴은 날로 엄숙해졌다. 묘림도 늘 그의 부름을 받고 갑판에 나왔다. 두 사람은 맷돌만 한 거북 등딱지를 마주하고 항로를 연구했다.
운하도를 떠난 지 보름이 지난 뒤, 배는 방향을 잃은 듯했다. 유수평은 조급한 나머지 입가에 물집이 생겼다. 그는 거북 등딱지를 관리하면서 사람들을 데리고 은도를 찾는 일을 책임졌다. 배 위 사람들의 생명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어깨가 무거웠으나, 지금 정확한 항로마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지자, 그는 더는 전처럼 차분하게 묘림을 대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유수평이 갑판 위에서 묘림에게 소리 지르며 파악한 정보를 캐묻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묘림도 감히 숨기지 못하고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바다 요수들의 습격은 갈수록 빈번하고 맹렬해졌다. 운하종 태상장로 두 명도 자주 전투에 참가했다. 만약 그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배는 진작 요수들에 의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운하종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데리고 온 오십여 명 제자 가운데 열몇 명이 죽었고, 칠십여 명 정도 되었던 일반인들도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 절반은 모두 위기일발의 순간, 운하종이 바다에 던져 요수들의 주의를 끄는 용도로 버려졌다.
이 배에서는 아프면 곧 버림을 받았다.
양준은 잔인하고 악랄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알게 되었다. 운하종 제자들은 반항할 힘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 끊임없이 울부짖고 애원해도 마치 짐승을 버리듯 바다 속 요수의 먹이로 그들을 내던졌다. 그것도 단지 순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는 사람 목숨이 지푸라기같이 천했다.
남은 일반인들은 매일 가슴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사흘이 더 지났다. 배의 인원은 더욱 적어졌다. 그러나 배는 바다에서 빙빙 돌면서 여전히 은도로 가는 정확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분노한 유수평은 묘림의 따귀를 연신 갈겼다. 묘림은 입안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감히 원망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지나고 동쪽에서 해가 뜰 무렵이었다. 선실에서 쉬고 있던 양준은 갑판에서 들려오는 기쁨의 외침을 듣게 되었다.
“은도, 은도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 희열과 흥분으로 가득한 고함소리는 거의 모든 이의 귀에 울려 퍼졌다.
탁- 탁- 탁-
운하종의 모든 제자들은 급히 갑판으로 달려 나갔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양준은 인파를 따라 갑판에 올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갓 떠오른 태양 아래, 배에서 몇백 장 떨어진 곳에는 공중에 떠 있는 섬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이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곳은 무릉도원 같았다. 높은 산과 흐르는 물. 높고 험준한 산세. 하늘에서는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귓가에는 샘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이는 경치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곳곳에 속세를 벗어난 기운이 스며 있었다.
그곳은 마치 수천, 수만 년 동안 인적이 닿지 않은 보물창고 같았다. 수많은 진귀한 화초와 당대 제일의 영약이 바람을 맞으며 건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숲이 울창하고 새들이 지저귀며 꽃향기가 그윽했다.
또 이름 모를 동물들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동물들이 달리는 와중에 오색찬란한 빛이 일기도 했다.
신기루!
양준은 전에 해성에서 운 좋게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 다시 보게 되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신기루의 경치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로, 일부 특수한 원인으로 굴절되어 수천 리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본 신기루는 지난번에 보았던 신기루와는 좀 달랐다. 눈앞의 신기루는 너무 생생해 마치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유수평은 감정이 격해졌다. 그는 두 손으로 거대한 거북 등딱지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알겠군, 알겠어. 신기루가 나타나는 시점이 바로 섬에 들어갈 수 있는 때군. 그러니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지. 이런 거였구나!”
운하종의 두 태상장로도 지금 이 순간 흥분된 표정이었다. 정갑자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평, 어떻게 되었는가?”
곽향란도 시선을 돌렸다.
유수평은 감히 그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흥분된 미소를 띤 채 공손하게 말했다.
“이미 은도에 도착한 듯합니다.”
“어디 있나?”
곽향란의 탁한 눈동자에 예리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유수평은 앞쪽의 신기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기입니다.”
말을 마치고 서둘러 거북 등딱지를 두 태상장로에게 건넸다.
“사숙들께서는 열쇠에 원기를 주입해 주십시오. 열쇠가 있어야 섬에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정갑자와 곽향란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곧 망설임 없이 함께 거대한 거북 등딱지를 받아 들더니 원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거북 등딱지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아주 큰 비밀이 있었다. 평소 사람들이 아무리 시험해도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으나 지금 이 순간, 정갑자와 곽향란이 원기를 주입하기 시작하자 등딱지는 밑 빠진 항아리처럼 미친 듯이 그들의 진원을 삼키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나이 지긋한 두 태상장로는 낯빛이 창백해지며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큰일이군!”
정갑자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운하종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뭘 보고만 있느냐. 어서 와서 돕지 못할까.”
운하종 제자들은 그 말에 급히 달려가 원기를 거북 등딱지에 주입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정갑자와 곽향란은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 얼마 안 되어 평범하던 거북 등딱지에서 무지갯빛이 줄기줄기 피어났다. 그리고 거북 등딱지 위에 새겨진 지도에서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끊임없이 빛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