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56화 (156/853)

제 156장.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너…….”

운하종 제자는 놀라는 한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양준의 옷차림은 배에 탄 일반인들의 복장이었다. 그는 일반인에게 이런 실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그자는 너무 뜻밖이라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해수면 위로 날아갔다.

곧바로 촉수가 그를 휘감았다. 새된 비명과 함께 그는 온몸의 뼈가 으스러졌다. 부서진 뼈가 다시 오장육부를 찌르면서 순식간에 절명했다.

양준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경계를 높여 허공에 있는 촉수를 지켜보았다.

한참 동안 있다가 촉수는 유유히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역시 그의 짐작이 정확했다. 심하게 움직일수록 촉수의 목표물이 되기 쉬웠다. 양준처럼 움직이지 않고 숨을 쉬지 않는 것이 가장 정확한 탈출 방법이었다.

한동안 기다린 다음에야 양준은 계속해서 앞으로 헤엄쳐 갔다.

은도는 큰 배가 사고를 당한 곳에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었다. 대략 십 리 남짓 되는 거리였다.

해변에서 오래 생활한 무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도 쉽게 헤엄쳐 건널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이상한 촉수의 공격이 없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양준은 꼬박 한 시진 동안 천천히 헤엄쳐 은도에 도착했다. 그는 모래사장을 밟는 순간, 곧바로 땅바닥에 ‘대(大)’ 자를 그리며 드러누웠다. 맑고 짙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몸서리치며 숨을 헐떡였다.

짧은 한 시진 동안, 그가 느꼈던 두려움은 오직 하늘만이 알 것이다. 헤엄쳐 오는 내내 등 뒤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휘감거나 후려치지 않을까 너무 두려웠다.

다행히 그는 대응 방법을 제대로 찾아냈다. 촉수는 시종일관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도망칠 때에는 주위 사람들의 기척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서야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를 확인하고서 마음속으로 재수 없다고 욕했다.

그와 서른 장 넘게 떨어진 해변에는 운하종의 유오청이 땅바닥에 반쯤 꿇고 있었다.

그녀도 방금 전에 도망쳐 나온 듯, 한창 바닷물을 토하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늘어져 있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창백한 것이 무척이나 가련해 보였다.

양준은 도도하고 악독한 이 여인에게 어떤 호감도 없었다. 그녀가 미모를 이용하여 묘림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쯤은 괜찮았다. 그런데 일이 끝나면 묘림을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니, 정말로 악독한 심보였다. 물론 양준도 묘림이 죽기를 바라는 입장이기는 했다.

양준은 그녀와 어울리고 싫지 않아, 조용히 일어서서 은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너 거기 서!”

공교롭게도 유오청이 양준을 보고 뒤에서 소리쳤다.

양준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앞으로 걸어갔다.

“서라고. 못 들었어?”

유오청은 대노하여 재빨리 땅에서 기어 일어났다. 신형이 두어 번 번쩍이더니 양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양준은 냉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배에서 살얼음을 밟듯이 조심했지만, 이곳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유오청은 이합 경지 실력으로 그의 경지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그녀를 이길 수는 없어도, 도망칠 수는 있었다.

유오청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배에서 잡일을 하던 양준에 대한 인상이 조금 남아 있었다. 지금 양준은 그녀를 마주하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얼굴빛도 매우 침착했다.

‘열대여섯 살 된 소년일 뿐이잖아? 담력이 대단하군!’

유오청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원기를 돌려 흠뻑 젖은 옷을 말렸다. 그녀는 다시 예전의 도도한 모습을 찾고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더 못 봤어?”

“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 명도 못 봤어?”

“한 명 있어요.”

“어디 있는데?”

“그쪽이요!”

유오청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차갑게 말했다.

“죽고 싶어?”

양준은 그녀의 냉담하고 오만한 태도가 싫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당장 여인에게서 도망쳐 은도로 들어가야 할지 말지를 궁리하고 있었다. 지금이 몸을 빼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그러나 그가 행동을 옮기기도 전에 한쪽에서 놀라움에 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 사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양준은 그 목소리에 얼굴빛이 이상해졌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묘림도 근처에 상륙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상륙한 지 한참 된 듯했다. 그는 옆에 있는 종려나무 숲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묘림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는 운하종의 여제자 한 명이 더 있었다.

운하종 제자만 세 명이었다. 양준 혼자서는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양준은 원래의 생각을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식은 왜 안 죽고 살아 있는 거야!”

유오청은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욕했다. 그녀는 아마 섬에 올라서도 성가신 파리를 만날 줄을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좋은 사람은 명이 짧고, 나쁜 놈은 천 년을 사는 법입니다.”

양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유오청은 냉담하게 그를 노려보더니 입가에 동감의 미소를 지었다.

묘림은 유오청의 곁으로 달려오더니 기쁨에 넘쳐 말했다.

“청 사저,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가워.”

유오청은 담담하고도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눈길을 그의 등 뒤로 던지며 물었다.

“여기는 너희 둘뿐이야?”

묘림이 대답했다.

“응. 내가 좀 일찍 올라왔는데 근처에는 장옥(張鈺) 사저 외에 아무도 없었어.”

장옥이라는 운하종 여제자도 다가왔다. 양쪽이 합해도 겨우 넷뿐인데, 그중 한 명은 일반인으로 가장한 양준이었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유오청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고 바다 저편을 뒤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준도 멀리 바라보았다. 십여 리 떨어진 곳에는 큰 배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해수면은 검붉게 물들었고, 상어들이 여기저기 떠 있는 조각난 사지와 살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

유오청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번에 은도를 찾으면 운하종이 반드시 명성을 크게 떨칠 거라고 생각했다. 뜻밖에도 지금, 돌아갈 수 있는 배가 산산조각 났다. 설령 목숨을 건져 은도에서 무슨 보물을 찾았다 하더라도 운하도로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신유 경지 고수라 해도 튼튼한 배가 없으면 만 리나 되는 먼 길을 날아갈 수 없을 것이다.

슬픔과 불안감이 운하종 제자 세 명의 가슴을 채웠다. 셋은 모두 지금까지 큰 시련을 겪어 보지 못한 젊은 제자들이었다. 하루 동안, 그들은 바다 요수에게 습격당해 많은 동문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하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그들은 운이 좋아 은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니면 지금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바다 요수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지금 또 외딴섬에 갇히게 되었다.집으로 돌아갈 가망이 보이지 않으니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청 사저, 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종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줄게.”

묘림은 마음속으로 무섭고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유오청은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묘림이 이처럼 큰 소리를 치자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네가 요수의 습격을 막을 수 있는 배를 만들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유오청의 질문에 묘림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럼 만 리 길을 날아갈 거야?”

유오청이 재차 따져 물었다.

“그것도 안 돼…….”

“하지도 못할 거면 입 닥치고 있어!”

유오청은 그동안 배에서 억눌렸던 분노를 모두 터뜨렸다. 지금 곤경에 처해 있지 않았다면, 아마 진작 묘림을 처리해 버렸을 것이다.

장옥이 급히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청 사저, 화내지 마. 묘림은 그냥 해 본 소리야.”

“흥!”

유오청은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을 흔들며 해변을 따라 걸었다. 한편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능력도 없으면서 영웅 행세는! 주제 파악을 해야지!”

장옥이 재빨리 뒤를 따랐다.

묘림은 호의로 위로하려다가 유오청에게 한바탕 비웃음을 당했다. 물론 낯빛이 안 좋았다.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던 그의 눈에 독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양준을 힐끗 보더니 살기가 꿈틀거렸다. 자신의 분노를 양준에게 화풀이로 발산하려는 모양이었다.

“그자를 데리고 가자!”

유오청의 싸늘한 목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묘림은 얼른 대답했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길로 양준을 보고서야 앞으로 확 밀쳤다.

넷은 해변을 따라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비록 유오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양준은 그녀가 흩어진 운하종의 제자들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지금 그들은 힘이 없을뿐더러 곁에 어른도 없었다. 당연히 사람을 찾아 합류해야 했다.

하루 종일 바닷가를 헤매다가 겨우 네 사람을 더 찾았다. 그나마 운하종 제자는 둘뿐이고, 다른 두 명은 일반인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은 여덟 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전체적인 실력은 별반 높아지지 않았다. 운하종 제자 다섯 명은 모두 젊은 세대였다.

나중에 만난 운하종의 제자도 남녀 두 명이었는데, 남자는 제원(齊元), 여자는 나천천(羅芊芊)이었다. 실력은 기동 경지 절정에서 이합 경지 사이였다.

유오청은 웃어른들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살짝 당황했다. 이곳에 있는 운하종 제자 가운데서 그녀의 실력이 가장 높았다. 이미 이합 경지 6단계 실력이었다. 또한 그녀는 평소 운하종에서의 지위도 상당히 높았다. 사람들은 자연히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그녀가 선두에 나서 살길을 찾아 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밤이 되자, 일반인 셋은 운하종 제자들의 지시에 따라 땔감을 모아, 바닷가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여럿은 한데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했다.

웃어른들을 다시 찾아보자는 의견도 있었고, 다른 사람이 찾아올 때까지 이곳에 남아 있자는 의견도 있었다. 각자 의견을 고집했다.

결국 유오청이 결정을 내렸다.

“은도에 들어온 이상, 이번 기연을 낭비할 수는 없어. 내일 섬에 들어가 탐색해 보자. 혹 사숙들을 만날 수도 있어. 설령 그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기연을 얻어 이곳을 떠나 운하종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사람들은 모두 유오청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도에 숨겨진 재물과 기연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양준은 그들이 상의를 마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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