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7장. 악랄한 심보
“여러분, 섬에 들어갈 때 저희 셋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는 바닷가의 어민일 뿐입니다. 만에 하나, 위험이 닥치더라도 당신들처럼 싸우지도 못하고 짐이 될 뿐인데…….”
다른 두 일반인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양준처럼 대담하게 제기하지 못할 뿐이었다. 양준의 말에 그 둘은 기대에 찬 눈길로 유오청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유오청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옥이 예쁜 눈썹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저들을 데리고 가면 짐이 될 뿐이야.”
그녀는 본래 유오청이 일반인 세 명을 이곳에 내버려 두는 것을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유오청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은 우리가 데려온 운하종의 사람이야. 너희를 여기에 남겨 두면 위험할 수도 있어. 우리와 함께 행동하면 그나마 살아서 돌아갈 희망이 있을 거야.”
‘재수 없는 계집!’
양준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유오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아름다운 용모에 고약한 심보를 가진 여인이 이처럼 호의적일 리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은혜에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양준도 이 섬에 대해 잘 몰랐다. 마침 그들을 따라다니며 상황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기필코 도망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밤에 운하종 제자 다섯 명이 돌아가며 숙직을 섰다.
이튿날, 일행 여덟 명은 은도 탐험을 시작했다.
섬에 들어서자마자 유오청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드러냈다. 일반인 한 명을 맨 앞에서 걷게 하고 나머지는 그 뒤를 따랐다.
앞에 선 일반인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유오청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복종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유오청이 왜 일반인들을 데려가려고 고집했는지 알게 되었다. 길을 탐색할 때 화살받이로 쓰려 했던 것이다.
한참 동안 걸어 점점 깊이 들어갔다. 주위는 온통 하늘을 찌를 듯한 고목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 소리는 사람들을 몹시 두려움에 떨게 했다. 맨 앞에서 걷던 일반인은 마치 경궁지조(驚弓之鳥)처럼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내 그는 울며 애원했다.
운하종 제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위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일반인은 다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점심 때가 되자 앞쪽에 줄지어 늘어선 과일나무가 나타났다. 나무에는 새빨간 열매가 가득 열려 있었다. 무슨 열매인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냄새가 향기로웠다.
그들은 지치고 배가 고팠던 터라 과일을 보자 자연히 식욕이 동했다. 모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때, 나천천이 열매 하나를 따 맛을 보려 하는데 유오청이 차갑게 소리쳤다.
“잠깐!”
나천천은 멈춰 서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유오청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유오청은 차디찬 얼굴로 과일을 가져갔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일반인들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안색을 보자, 사람들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열매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남에게 먹여 보는 것이었다. 일반인 둘은 당황해하면서 유오청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양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유오청은 양준을 택했다. 그녀는 양준 앞으로 다가와 열매를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네가 먼저 먹어 봐.”
양준은 화를 참았다. 손에 쥔 열매를 내려다보다가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직감적으로 독이 없다고 짐작했으나, 천하 만물이 어느 것이 유익하고, 유해한지 누군들 확실히 알 수 있겠는가?
“주인, 그냥 먹게. 독이 없다네.”
지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전 나쁜 년이구먼.”
“이게 뭔지 알아?”
양준이 걱정되어 물었다.
“물론.”
만약 지마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양준은 지금 당장 실력을 드러내더라도 큰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마가 독이 없다고 알려주니,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역시 배가 고팠다.
양준은 마음속으로 독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손에 든 열매가 마치 맹독인 것처럼 유오청이 여러 번 재촉해서야 마지못해 한 입 베어 먹었다.
열매는 향긋하고 달았다. 잘 익은 감 같지만 감보다 더 쫄깃쫄깃했다.
“많이 먹어.”
유오청이 차가운 얼굴로 분부했다.
“지마, 내가 만약 이 계집을 죽이면, 이 계집의 혼백을 마구 괴롭혀 줘.”
양준은 속으로 독한 마음을 품었다.
“명령에 따르겠네!”
지마가 흐흐 웃으며 대답했다.
양준이 열매를 다 먹을 때까지 나머지 일곱 명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두 빤히 그의 반응만 지켜보았다.
반 시진을 족히 기다려 양준이 아무 일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오청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먹어도 돼.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묘림과 제원은 서둘러 열매를 땄다. 운하종의 여제자 세 명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묘림과 제원은 열매를 한가득 따다가 여자 셋에게 살갑게 건넸다.
묘림은 열심히 유오청을 칭찬했다.
“그래도 청 사저가 생각이 깊다니까. 이번에 사저가 나서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 며칠 못 살고 독살됐을 거야.”
장옥도 한마디 덧붙였다.
“맞아. 청 사저가 총명하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어. 오늘 직접 보니 과연 명성대로야.”
사람들의 칭찬에 유오청의 차디찬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운하종의 다섯 제자가 한쪽에서 즐겁게 열매를 먹고 있을 때, 양준과 다른 두 일반인도 쉴 새 없이 과일을 입에 넣었다.
한 줄로 늘어선 과일나무에는 열매가 많이 열려 있었다. 그들은 한참을 먹고, 가져갈 것까지 챙기며 모든 과일을 싹쓸이했다.
일행은 배불리 먹고 다시 길에 나섰다. 양준이 시식하면서 적지 않은 위험을 감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도 그를 선두에 세우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일반인을 앞세웠다.
얼마 안 가 제원이 한쪽 옆을 가리켰다.
“저기 봐! 뭔가 반짝거려!”
사람들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멀리 보이는 풀숲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 보자.”
유오청이 말했다.
곧이어 그들은 빛이 반짝이는 곳에서 삼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유오청의 신중함이 또 한 번 재현되었다. 여전히 일반인 한 명더러 가서 보게 하고 자신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명줄이 남의 손에 쥐여져 있는지라 일반인은 유오청의 위엄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휘청거리며 앞으로 다가가 살펴보더니 말했다.
“단지 잡초일 뿐입니다.”
그의 말에 운하종 다섯 제자는 저도 모르게 안심했다. 장옥이 다급하게 물었다.
“어떤 모양이야?”
“새하얀 게 예쁩니다.”
일반인이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한마디 더 덧붙였다.
“꺾을까요?”
“건드리지 마!”
유오청이 차갑게 일갈했다. 그제야 그녀는 운하종 제자들을 거느리고 앞으로 다가갔다. 양준도 따라나섰다. 가까이 다가가자 운하종 제자들은 모두 감탄했다.
그것은 순백색의 작은 풀로 아름다운 옥처럼 맑고 투명했다. 잎맥에서 형광 빛을 발하는 기운이 흐르는 것이 은은하게 보였다.
“맙소사!”
장옥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빙기옥골초(氷肌玉骨草)야.”
유오청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지급 상품 영초군.”
나천천도 기뻐했다. 제원과 묘림은 침착한 편이었다.
빙기옥골초는 오로지 여인들이 쓰는 영초였다. 이는 양준이 운하도 오른쪽에서 얻은 미인예와 거의 비슷한 약효를 가지고 있었다. 미인예가 여인의 용모를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빙기옥골초는 여인의 피부를 신생아 피부처럼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면 추녀가 미인으로 바뀌고, 거의 환골탈태하는 효과가 있었다.
여인들은 미를 추구하는 법이다. 여기 있는 여자 셋 중에서 누구인들 더 예뻐지고 싶지 않겠는가? 그녀들은 빙기옥골초를 보자 자연스럽게 기뻐했다.
“은도에 들어서자마자 이런 보물을 얻다니. 이번 탐험에 큰 수확을 얻을 것 같군.”
묘림은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유오청도 머뭇거리지 않고 직접 허리를 굽혀 빙기옥골초를 채집했다. 그러고는 품 속에서 옥함을 꺼내 조심스레 넣었다.
장옥과 나천천은 눈을 빤히 뜨고 바라보면서 우물쭈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유오청이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종문으로 돌아가면 단약으로 만들 거야. 물론 두 사매의 몫도 챙겨 줄게.”
그녀도 지금은 동문과 실랑이를 벌일 때가 아님을 알고 사매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그제야 장옥과 나천천이 활짝 웃었다.
“청 사저, 고마워. 단약을 만들려면 아무렴 청 사저가 나서야 하지.”
지급 상품 영초를 얻게 되자 운하종 일행은 근심과 초조함을 말끔히 털어 버렸다. 여럿의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감도 점차 사라졌다. 그들은 이곳에 조난당한 것이 아니라 보물을 찾으러 온 것만 같았다.
은도에는 얼마 동안 인적이 닿지 않았는지 많은 천재지보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은도에서 이틀간 탐험하며 많은 수확을 얻었다. 진기한 화초만 해도 족히 십여 종을 채집했다. 모두 지급 중품 이상이었다. 심지어 천급의 약초도 한두 포기 찾아냈다.
수확이 있자, 운하종 일행은 더욱더 열의가 넘쳤다.
이날 길을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짙은 안개가 나타나 그들의 시선을 가렸다.
안개는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선두에 서서 걷던 일반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주저함과 두려움이 서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유오청을 바라보았다.
“안 가고 뭐 해!”
유오청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얼굴은 몰인정하기 그지없었다.
일반인은 하는 수 없이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이 안개 속에 들어서는 순간, 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짧게 튀어나왔다. 곧이어 그는 땅바닥에 쓰러지더니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모두들 낯빛이 급변해 일제히 뒤로 물러나는 한편, 놀란 눈초리로 일반인의 변화를 살폈다.
일반인은 마치 뜨거운 기름 솥에 던져진 것처럼 몸에서 끊임없이 연기가 솟아나왔다. 피와 살은 뼈에서 떨어져 검붉은색의 핏물로 변해 흘러내렸다.
불과 찰나의 순간, 산 사람이 땅 위에 뼈만 남아 있었고, 공기 중에는 형언할 수 없는 냄새가 가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