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8장. 탄로난 정체
“우웩……!”
장옥과 나천천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몸을 굽히자마자 옆에서 구토했다. 묘림과 제원은 그녀들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오청은 긴 속눈썹을 불안하게 떨었다. 얼굴과 입술이 혈색을 잃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 역시 안색이 변했지만 장옥이나 나천천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양준과 함께 서 있던 일반인 한 명은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쓰러졌다.
유일하게 침착한 이는 양준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방금 전에 그가 들어갔더라도 아마 같은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유오청이 정말로 그를 강요해 들어가게 했다고 해도, 그는 모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개에 맹독이 있어!”
유오청은 뻣뻣하게 몸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담담하게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자!”
모두들 방금 전 무서운 장면을 보았기에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들은 서둘러 유오청의 뒤를 따라갔다.
단박에 몇 리 길을 걸어 나가고서야 그들은 정신을 차렸다.
큰 위험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 운하종 제자들은 모두 감격 어린 눈빛으로 유오청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조심성이 아니었다면, 그들 중 한 명이 안개에 당했을 것이다.
이 일을 겪고 나서, 그들은 일반인을 화살받이로 쓰기 위해 데려온 유오청의 결정에 더욱 감탄했다.
양준도 기회를 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금 전과 같은 위험을 만나게 되었을 때, 틀림없이 유오청한테 떠밀려 화살받이가 될 것이다. 이 무리들과 더 같이 있다가는 조만간 악독한 유오청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뻔했다.
우선 그들이 허둥지둥 당황해서 다른 일을 전혀 돌볼 수 없는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모두 쉬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지?”
묘림은 두려움에 벌떡 일어났다.
“소리가 들려?”
제원이 귀를 기울였다.
“쉿, 소리 내지 마. 주의 깊게 들어!”
유오청도 뭔가 들은 것이 분명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방에서 꿀벌이 날아다니는 것같이 ‘붕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기척은 분명 꿀벌들보다 훨씬 컸다.
‘붕붕’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발밑에서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땅 위에는 수많은 가느다란 선이 그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땅속에서 무언가 쏜살같이 땅굴을 파며 공격해 오는 것 같았다.
“큰일 났어. 빨리 가자!”
유오청은 얼굴빛이 돌변하더니 소리를 지르며 급히 한쪽으로 달려 나갔다.
운하종 제자들은 재빨리 그녀를 따라갔다. 양준은 기회를 찾아 도망치려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일찍 실력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더욱이 적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운하종 제자들의 손을 빌려 먼저 상대를 알아보려 했다.
몇 사람은 속도가 아주 빨랐다. 유오청의 명령이 떨어지자 나는 듯이 뛰쳐나갔다. 몇 발짝 뛰지 않았는데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달리던 이들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혼비백산했다.
맨 뒤에 따라오던 일반인은 사발만 한 크기의 괴이하게 생긴 검은색 곤충 요수에 싸여 있었다. 비참한 울부짖음 가운데 옷이 찢기고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잠깐 사이에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몇 사람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들은 비록 무인이었지만, 이런 흉악한 곤충 요수를 본 적이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공포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곤충 요수들의 무자비함을 목격한 운하종 제자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다. 누구도 양준을 신경 쓰지 않았다. 도망칠 시간도 없는데 누가 그에게 신경이나 쓰겠는가.
얼마 뛰지 못하고 유오청이 멈추었다. 뒤에서 쫓아오던 몇 사람이 황급히 물었다.
“왜 그래?”
“앞에도 있어. 우리 포위됐어.”
유오청은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모두가 주의 깊게 살펴보니, 아니다 다를까 앞쪽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검은 곤충 요수들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뚫고 나가자!”
유오청은 주저 없이 결단을 내렸다.
운하종 일행은 재빨리 무기를 꺼내 들고 그녀를 따라 곤충 무리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곤충 요수들은 수는 많으나 등급이 아주 낮은 듯했다. 운하종의 다섯 제자는 뿔 모양을 이루어 안쪽으로 공격하며 들어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곤충 요수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나갔다.
일말의 희망을 보게 되자 그들의 손에 힘이 붙었다.
양준은 그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다섯 명의 공격이 곤충 요수들의 주의를 끌었는지, 그는 줄곧 곤충 요수들의 눈에 띄지 않고 무사했다.
“이게 다 뭐야?”
양준은 찌질하게 운하종의 뒤꽁무니를 따르는 한편, 지마에게 물었다.
“나도 본 적이 없네.”
“너도 본 적 없다고?”
양준은 할 말을 잃었다.
지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주인, 이리 오래 살아도 여전히 무지한 것을 용서하게…….”
‘이 늙은 마두가. 지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말장난이나 하고 말이야!’
바로 그때, 제원이 그에게 손을 뻗더니 옷깃을 확 잡아채 앞으로 내던지려 했다.
한쪽에 곤충 요수가 너무 많이 나타나 대처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양준을 방패로 사용하려 했다.
양준은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이제 더 이상 실력을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양준은 양손을 뻗어 제원의 팔을 와락 잡았다. 제원이 힘껏 내던지려는 순간, 양준이 몸을 뒤집으며 역으로 제원을 곤충 요수 무리 속으로 던져 버렸다.
“아악……!”
제원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찌하여 자신이 밖으로 내던져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곤충 요수들에 둘러싸였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원!”
장옥은 놀라서 고함을 지르더니 이내 차갑게 양준을 노려보았다.
양준은 냉소를 지었다. 순간 진양원기가 폭발하며 온몸이 타오르는 불덩이처럼 붉은빛을 띠었다.
운하종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이변에 아연실색했다. 그들과 함께 여러 날 움직였던 일반인이 이런 변화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양준은 운하종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원이 날아간 방향을 따라 공격해 나갔다.
곤충 요수들은 재빠르게 그를 감쌌다. 그러나 뜨거운 진양원기 앞에서 날개가 달린 곤충들은 보잘것없었다. 마치 낙엽처럼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양준의 몸에 접근하기도 전에 날 수조차 없었다.
양준은 뜨거운 원기로 온몸을 감싸고 돌파구를 뚫어 멋지게 떠나갔다. 운하종 제자들은 눈을 빤히 뜨고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자는…….”
묘림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집중해. 나를 따라 뚫고 나간다.”
유오청은 매서운 눈초리로 양준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꼭 깨문 이가 부서질 지경이었다.
‘일반인이 아니었어. 실력을 숨긴 무인이었군!’
전에 운하종 제자들이 허둥지둥 대적하는 것을 보고, 양준은 곤충 요수들이 어려운 상대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막상 대적하고 보니 짐작과 달랐다.
유오청 일행에게는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그에게는 손쉬운 상대였다.
곤충 요수들은 날개가 취약하고 등급이 낮았다. 그가 정면으로 부딪쳐 가면 손댈 필요도 없이 오직 뜨거운 원기만으로도 날개를 태워 버릴 수 있었다.
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면 그것들은 양준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요수들의 유일한 우세는 바로 방대한 개체 수였다. 그리고 구멍을 뚫을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땅속을 누비며 행동이 아주 편리했다. 때때로 그의 발밑에서 뛰쳐나와 습격했다.
양준은 신법을 펼쳐 곤충 요수들의 포위망을 재빨리 벗어났다. 앞으로 몇 리를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섰다.
놀랍게도 앞쪽에도 몽롱한 안개가 막고 있었다. 바로 방금 전에 일반인을 녹여 버린 것과 같은 안개였다.
‘어찌 된 거야? 제자리로 돌아왔나?’
양준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돌파구를 찾아 탈출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안개의 가장자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반 시진 뒤, 그의 앞에는 뼈 무더기가 나타났다. 그의 낯빛 또한 급격하게 변했다. 이 뼈 무더기는 전에 녹아 버린 일반인의 것이었다.
양준은 단념하지 않고 계속해 달렸다. 한참이 지나자 그의 얼굴빛이 더 어두워졌다.
멀지 않은 곳에 시체 한 구가 또 있었다. 마구 뜯겨서 모습을 알아볼 수 없지만 시체에 남은 옷은 눈에 익었다. 바로 운하종 제자의 복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변에 있는 무기로 미루어 보아, 이는 바로 전에 그가 던져 버렸던 제원이었다.
반나절을 뛰었지만 빙빙 원을 그렸던 것이다. 주위의 사방 십여 리는 모두 맹독 안개에 싸여 있었다.
이때에야 양준은 곤충 요수들이 겉보기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그의 뜨거운 원기에 확실히 취약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는지 맹독 안개로 넓은 지역을 봉쇄했다.
안개를 꿰뚫지 않으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안개의 침식을 견뎌 낼 수 있을까?’
양준은 자신이 없었다. 한참 동안 생각한 끝에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는 안개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한쪽 손을 내밀었다. 진양결을 극한으로 돌리고 심지어 불굴지오까지 동원했다.
손가락이 안개에 닿자마자 그는 번개같이 뒤로 움츠러들었다.
찌르륵 소리가 손끝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 살피던 양준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하마터면 손끝의 살점이 녹아내릴 뻔했다. 심장을 찌르는 통증이 전해오자 양준은 결단력 있게 그 살점을 잘라 냈다.
옷을 벗어 상처를 싸매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주위를 살펴보았다.
방금 전, 유오청 일행과 이 근처에서 갈라졌었다.
‘어디 갔지?’
사방에 안개가 껴 있어 도망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다른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탈출구를 찾은 건가?’
부스럭 부스럭…….
무수히 많은 곤충 요수들이 마치 피비린내를 맡은 들개들처럼 양준에게로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