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9장. 곤충 소굴로 끌려가다
양준은 얼굴빛이 바뀌더니 진양원기를 밖으로 뿜어내며 곤충 요수들 속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방금 전처럼 공격은 손쉬웠다. 곤충 요수들은 날개가 타 버리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많아졌다. 도대체 이곳에 얼마나 많은 곤충 요수들이 숨어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놈들은 주변 하늘을 전부 뒤덮고 있었다.
양준은 빠른 속도로 달리며 곤충 요수들을 죽여 나갔다. 사방이 십여 리나 되는 곳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나 여전히 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고, 그는 저도 모르게 조바심이 났다.
단전 내에 양액이 적지 않아 곤충 요수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체 체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체력이 고갈되면 아무리 많은 양액이 있더라도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인, 군집하는 곤충 요수들은 보통 곤충왕이 따로 있다네. 여왕벌처럼 말일세.”
결정적인 순간, 지마가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이야?”
양준이 바쁜 와중에 지마의 말을 듣고, 바로 물었다.
“곤충왕을 제어하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네.”
“그럼 곤충왕이 어디 있는지 알아?”
“흠흠… 그건 모르네.”
양준은 지마가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나무랄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혹시… 곤충 요수들이 자신을 포위 공격하는 것은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사냥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유오청 일행의 종적이 사라졌지만, 시체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바로 가장 큰 증거였다. 운하종 제자들은 곤충 요수들에게 생포되어 어딘가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곤충 요수의 소굴일 것이다. 일반 꿀벌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꿀벌들이 밖에서 꿀을 채집하면 여왕벌에게 갖다 바쳤다.
‘곤충 요수들의 행동을 꿀벌이 꿀을 채집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그럴듯한 가정이었다. 따라서 양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대담한 계략이 천천히 세워졌다.
그는 자신의 계획의 성공률을 세심하게 추측해 봤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양준은 진양원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숨을 헐떡이며 곤충 요수들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더 이상 반항하지 않자, 곤충 요수들도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겹겹이 에워쌌다.
“주인, 뭐 하려는 건가?”
지마가 아연실색했다.
“한번 시험해 보려고!”
양준은 얼굴을 굳혔다. 아무튼 지금 그는 주변을 에워싼 안개 속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싸우다가는 조만간 힘이 다 빠져 죽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 대항할 능력이 있을 때 계략을 세워 역이용하는 것이 나았다.
만약 그의 추측이 맞는다면, 살아서 빠져나갈 희망이 조금이나마 있었다.
서로 간에 잠깐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곤충 요수 수십 마리가 양준에게 날아왔다.
이때, 지마가 외쳤다.
“주인,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면 안 되네.”
“입 닥쳐!”
양준은 그의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의 신경은 온통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곤충 요수들에게 쏠려 있었다. 양준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며, 잘못된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기쁘게도 곤충 요수들은 그에게 날아온 뒤, 정말로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끌고 당기고 부딪치고 밀치면서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과연 내 짐작이 맞았군!’
양준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렇게 되면 왜 유오청 일행의 시체가 없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아마 그들 역시 온 힘을 다해 싸우다가 곤충 요수들에게 잡혔을 것이다.
주위가 수만 마리의 곤충 요수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는 무서운 장면이었으나, 양준은 무덤덤하게 곤충 요수들이 끌고 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 되어 큰 구덩이 앞에 이르렀다.
큰 구덩이 안에는 거무칙칙한 동굴이 있었다.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야수의 입처럼 흉물스러웠다.
양준은 동굴 입구에서 찢어진 치맛자락을 보았다. 색상과 옷감이 눈에 익었다. 바로 유오청의 것이었다.
‘역시 생포됐군.’
마음속 추측이 확실하게 증명되자 양준은 더는 근심할 것이 없었다. 곤충 요수들이 재촉하지 않아도 그는 곧장 동굴 속으로 뛰어들었다.
동굴로 들어오자, 역겨운 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동굴 안쪽은 길이 구불구불했고, 모두 곤충들이 뚫어 놓은 통로여서 마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한 느낌이 들었다.
양준은 길을 걸으면서 방향을 주의하는 한편, 지나가는 곳마다 몰래 표식을 남겨 두었다.
통로에서도 수많은 곤충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곤충 요수들은 모두 크기가 달랐다. 곤충 요수들도 여러 구분이 있는 듯했다. 어떤 것은 사람과 크기가 비슷하고, 어떤 것은 세숫대야 크기만 하며, 또 어떤 것은 물통 크기만 했다. 이는 무척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제기랄, 곤충 감옥에 갇히다니! 곤충 왕을 찾은 뒤에 단단히 혼쭐을 내주겠어!’
양준은 곤충 요수들에 이끌려 통로를 한참이나 걸어서야 비교적 넓은 공간에 이르렀다.
그곳은 곤충 요수들이 먹이를 저장하는 곳이었다. 양준은 들어서자마자 이곳에 잡혀 온 운하종 제자들과 마주쳤다.
많은 눈길이 양준에게로 향했다. 이때 악의가 담긴, 마치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듯한 냉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묘림의 웃음소리였다.
운하종 제자들은 모두 몸에 상처가 있었다. 의기소침해서 땅바닥에 앉아 있던 그들은 악의가 가득 찬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곤충 요수들은 양준을 이곳으로 끌고 온 다음, 그대로 가 버렸다. 입구 밖에는 사람보다 더 큰 곤충 몇 마리가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경계해 지키고 있었다.
양준은 운하종 제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외진 구석에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유오청은 싸늘하게 양준을 지켜보았다. 양준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 채 전혀 말할 기미가 없는 것을 보고서야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양준은 눈을 뜨고 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운하종의 배에 올라탄 거지? 진짜 실력을 숨기면서까지 잠입한 이유가 대체 뭐냐고!”
유오청은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양준는 그녀를 하찮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첫째, 내가 너희들 배에 잠입한 게 아니야. 운하종에서 나를 데리고 온 거지. 둘째, 내가 실력을 숨기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셋째, 나는 그냥 살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야. 너희 운하종이 곳곳에서 사람을 잡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어?”
“감히 내 앞에서 그딴 말을 해?!”
유오청이 냉소했다.
“네가 뭐 얼마나 고귀해서?”
양준은 그냥 무시해 버렸다.
“청 사저, 저 녀석이랑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방금 전에 저 녀석이 제원 사형을 죽였잖아.”
묘림은 증오에 찬 눈길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제 사형을 위해 복수해야지.”
“허허.”
양준이 웃었다.
“왜 웃어?”
묘림은 이를 갈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너 죽고 싶어?”
“바보 같은 놈!”
양준이 비웃는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배에서 잡일을 할 때, 이 여인이 너희들 유 장로에게 하는 말을 들었거든. 은도를 찾으면, 널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고 하던데. 네가 그걸 모르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 따로 없군!”
유오청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녀는 서둘러 부인했다.
“아니야, 나는 그런 말한 적 없어!”
그러고는 다시 한번 묘림을 바라보며 변명했다.
“저딴 놈이 하는 말은 믿지 마.”
묘림은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함부로 지껄이며 청 사저를 비방한다고 내가 그걸 믿을 거 같아? 청 사저, 변명할 필요 없어. 난 사저를 믿어.”
유오청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말한 적 있는지, 없는지는 저 여자가 더 잘 알겠지.”
양준이 유오청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나를 어쩔 생각 하지 마. 아니면 곤충 요수들을 불러올 수도 있어.”
유오청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마음속의 살의를 가라앉혔다. 그녀는 양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대화할 때 언성을 높이자, 밖에 서 있던 곤충들이 놀라서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양준을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감히 손쓸 수가 없었다.
한차례의 말다툼은 그렇게 어물쩍 마무리되었다. 양준도 그냥 묘림의 마음속에 가시를 심어 두려 했을 뿐이었다. 지금은 운하종 쪽이 인원수가 많아, 그들이 마음을 먹고 그를 대적하면 양준에게 불리했다. 그들 서로 간에 의심하게 하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동굴은 온통 암흑천지였다. 양준과 운하종 제자들은 옆으로 나란히 앉아서 회복하고 있었고, 가끔씩 밖에서 곤충들이 움직이는 기척이 들려왔다.
운하종의 네 사람은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 뛰쳐나가서 곤충 요수들을 전부 죽이고,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들은 회복하는 시간 동안 양준이 듣지 못하게 낮은 소리로 소곤거리며 토론을 했다.
하룻밤 뒤에 그들은 드디어 작전을 펼치려고 했다. 살그머니 몸을 일으킨 뒤, 천천히 양준을 향해 다가갔다. 유오청의 얼굴은 살기로 가득했고, 묘림도 마찬가지였다. 장옥과 나천천은 그들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양준과 일 장 가까이 다가갔을 때, 양준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운하종의 네 명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준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그는 곤충들을 놀라게 할까 봐 걱정되어 목소리를 매우 낮게 깔았다.
“너희들은 지금 날 아주 죽이고 싶지?”
유오청이 싸늘하게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알지. 그건 너의 특기잖아. 다른 사람들을 너의 방패막이로 쓰는 거. 이번 여정에서 난 이미 여러 번 봤어. 지금 나를 앞에 내세워서 곤충들에게 던져주고 그 틈에 탈출하려는 거지?”
유오청은 잠깐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싸늘하게 말했다.
“알고 있다면 반항할 생각하지 마. 아니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양준이 비웃으며 말했다.
“날 죽이려면 애 좀 써야 할 걸? 싸우는 소리가 저 곤충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어디 덤벼 봐.”
유오청은 눈빛이 멍해졌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움직인 것은 바깥의 곤충들의 주목을 끌까 두려워서였다. 양준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경고하는데 나를 어찌할 생각은 하지 마. 도망치고 싶다면 자신의 능력에 맡기라고.”
양준은 코웃음을 쳤다.
“난 너희들에게 길을 터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