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60화 (160/853)

제 160장. 정말 떠날 수 있다면 도망쳐 봐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유오청은 위협해도 먹히지 않자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이 곤충들이 우리를 잡아온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닐 거야. 이곳에 더 머물러 있다가는 죽기밖에 더 하겠어? 우리와 함께 나가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양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도망치고 싶지만 이용당하기 싫어. 너희들을 위해 길을 터주기 싫다고. 다들 살아서 도망치면 너희들이 나에게 손을 쓸지 안 쓸지 어떻게 알아?”

“내가 약속할게!”

유오청은 양준의 마음이 흔들린 것을 보고 재빨리 설득에 나섰다.

“네가 앞에서 걷기만 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도망칠 수만 있다면 운하종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아무 말도 하지 마. 난 절대 양심 없는 여인의 말을 믿지 않을 거야.”

양준이 냉소를 짓더니 눈을 감았다.

유오청 일행은 바깥이 이미 이 곤충들이 내뿜은 안개로 자욱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양준은 알고 있었다. 운이 좋아 이 곤충 동굴을 벗어난다고 해도 멀리 도망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괜히 기운을 뺄 필요가 없었다.

“청 사저, 그냥 죽이자! 무식하고 고집이 센 것이 얘기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데.”

묘림은 진작부터 양준을 죽이고 싶었다. 지금 양준이 말을 듣지 않자, 당연히 더 죽이고 싶어졌다.

유오청은 깊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도망치는 것이 가장 급했다. 양준이 비록 괘씸하긴 하지만, 정말 죽인다면 곤충들을 놀라게 할 수 있어 오히려 손해였다.

“도망치려면 쳐. 내가 너희들의 계획을 망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하하, 나도 궁금해. 너희들이 정말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너는 저 곤충들에게 마구 물어 뜯겨 처참하게 죽을 거야.”

유오청은 독한 말로 양준을 저주하면서 다른 세 명에게 말했다.

“가자!”

운하종의 네 명은 조용히 동굴을 나섰다. 밤이어서 그런지 밖에서 망을 보고 있던 몇몇 큰 곤충들은 그들의 기척에 놀라지 않고 여전히 멍청하게 서 있었다.

곧 네 사람은 통로로 사라졌다.

하지만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밖에서는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는 운하종 네 사람의 비명소리도 섞여 있었다. 위치가 발각되어 곤충들에게 공격당한 것이 분명했다.

전투 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양준은 입가에 냉소를 짓고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실 이 동굴을 벗어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운하종의 네 사람도 위치가 발각되었지만, 도망칠 수 있었으니 양준도 당연히 가능했다. 유일한 문제는 바로 그 괴상한 안개였다. 곤충들이 어떻게 이 안개를 만들어냈는지 살상력이 매우 강해 양준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시진 정도가 지나자 양준은 밖에서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전해오는 것을 들었다.

눈을 뜨고 보니 유오청이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피곤한 몸으로 들어왔다. 그 뒤에는 나천천과 묘림이 따르고 있었다.

장옥은 없었다. 보아하니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곤충들은 세 사람을 돌려보낸 뒤, 밖의 수비가 더욱 엄격해졌다.

이때, 운하종의 세 사람은 아까처럼 나대지 못했다. 남은 사람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지친 몸으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는데,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곤충 동굴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하늘을 뒤덮은 곤충들에 의해 결국 앞길이 막히고 말았다. 기운이 빠지도록 곤충을 죽였지만 결국 다 죽이지 못하고 다시 포위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끌려온 것이었다.

유오청과 나천천 두 사람은 바닥에 꿇어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묘림도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유오청은 자신들의 몰골을 보고 양준이 비웃을까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양준은 그녀를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청 사저… 장옥 사저가 곤충들에게 끌려갔는데 어디로 갔을까?”

나천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유오청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리 그냥 모르는 척할 건가요?”

“그럼 어떻게 해? 우리는 지금 스스로도 지키기 어려운데 그녀를 신경 쓸 만한 처지가 되겠어?”

유오청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장옥이 그들과 떨어졌을 때, 그녀는 죽지 않고 중상만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곤충들에 의해 다른 통로로 이끌려 갔다. 그녀가 지금 어떻게 됐을지 그들도 짐작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통로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는데, 마치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장옥의 목소리였다.

유오청과 나천천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의 몸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묘림은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장옥 사저 왜 저러지? 누가 괴롭히나?”

비명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듯했다.

동굴의 두 여인은 다급히 귀를 막고 감히 더 듣지 못했다.

양준은 무덤덤했다. 비록 운하종의 제자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고, 유오청이 일반인들을 화살받이로 쓰려는 생각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괴롭히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었다.

특히 이런 괴롭힘은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장옥의 비명소리는 점점 약해지다가 곧 사라졌다.

“우린 죽었어. 분명 살아나가지 못할 거야.”

묘림은 겁을 먹고 멍하니 있었다. 그는 이 사람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약했는데, 기동 경지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에 운하종이 그에게서 은도의 소식을 알아낼 생각이 아니었다면 그를 데리고 올 리도 없었다.

운하종에서 자신을 나타낼 좋은 기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봉변을 당할 줄이야. 곧 죽게 될 상황에 이르자 술과 여색에 빠져 살던 귀공자 묘림이 이런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럴 리 없어. 우리는 분명 살아서 나갈 거야. 청 사저께서 우리를 데리고 나갈 거야. 그렇지?”

나천천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멍청할 정도로 단순한 그녀였다.

“나가지 못해. 누구도 살아서 나가지 못해.”

묘림이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다 조용히 해!”

유오청이 차갑게 호통쳤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는 양준을 보면서 자신의 사제 사매, 그리고 자신과 비교해 보았다. 순간 그녀는 이 소년의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단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전혀 당황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침착하고 덤덤한 태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유오청은 그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점차 흘러, 묘림과 나천천의 공포심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공포심이 극한에 치닫자 두 사람은 이미 극도로 민감해졌다.

유오청은 그들보다 나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싼 채, 끊임없이 몸을 떨고 있었다. 이 순간, 그녀는 아주 후회되었다. 그녀는 은도라는 큰 섬에 오려고 배를 탄 것을 후회했고, 배가 부서지는 순간, 가장 먼저 아버지를 찾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이 지경에 다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유수평의 보호 아래 있었다면, 상황이 아무리 못해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유오청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정갑자 같은 태상장로도 거대한 촉수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었다. 진원 경지 9단계의 유수평이 죽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 살아 계신다면 어디에 계시나요? 저 곧 죽게 생겼어요.’

지금 그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자, 도도하던 유오청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유오청이 눈을 감고 잠이 들려는 순간, 갑자기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듯한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유오청이 깜짝 놀라 눈을 뜨니, 묘림이 광기 어린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감출 수 없는 뜨거운 욕망이 담겨 있었다.

“묘림, 너 뭐 하는 짓이야?”

유오청은 차갑게 꾸짖었지만 몸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청 사저…….”

묘림은 메마른 입술을 핥으며 실실 웃었다.

“나는 줄곧 사저를 흠모해 왔어. 사저도 알고 있지?”

유오청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묘림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대한 압력을 못 이겨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진 듯한 모습이었다.

“사저처럼 선녀 같은 사람을 아주 좋아하거든. 매일 밤마다 꿈에서 사저를 만났지.”

묘림은 유오청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고백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꿈에서 우리는 서로 진실하게 마주하고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 말을 들은 유오청은 화가 나 묘림의 어깨를 거세게 내리쳤다.

묘림이 그것을 어찌 당해내겠는가? 그는 소리를 지르며 날아갔다. 하지만 유오청도 지금 아주 지친 상태라 그녀의 공격에는 별로 위력이 실리지 못했다. 당연히 묘림을 다치게 하지 못했다.

묘림은 다시 일어나 유오청에게 다가가며 뻔뻔스럽게 말했다.

“나도 사저의 신분이 고귀해서 안목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사저도 경험이 없을 거야, 맞지?”

유오청은 얼굴이 싸늘해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죽여 버릴 거야!”

“흐흐!”

묘림은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죽게 생겼는데 늦게 죽으나 일찍 죽으나 무슨 다른 점이 있겠어?”

유오청은 씩씩거렸다. 그녀는 화가 나 차가워진 두 눈으로 묘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생사가 걸린 이 위급한 상황에서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제가 이토록 미친 짓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유오청은 그가 하려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녀는 살기 어린 시선을 번뜩이며 묘림이 조금만 더 다가오면, 머뭇거리지 않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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