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1장. 폭주
묘림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죽더라도 소원을 풀고 싶었지만, 또 그럴 용기는 없었다. 묘림은 유오청과 이렇게 한참이나 대치하다가 히죽히죽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유오청은 한시름을 덜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녀는 정말 그 누구하고도 싸우고 싶지 않았다.
동굴 안은 매우 조용했다.
하지만 이런 고요함은 얼마 가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이상한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양준과 유오청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시선을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본 양준은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유오청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묘림은 유오청을 설득하지 못하자 다른 곳으로 욕정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소안과 떨어진 지도 이제 거의 3~4개월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과 실력의 향상에 따라 합환공의 영향도 점점 깊어졌다.
만약 예외가 없다면 양준은 능소각으로 돌아가 소안을 찾을 때까지 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준은 누군가 그와 삼 장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양준은 나천천을 대신해 묘림을 때려 죽이고 싶었다.
양준도 괴로운데 유오청이라고 평온할까? 지금 묘림에게 손을 쓰지 않는다면 그도 정신이 흐트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양준이 공격하기도 전에 밖에서 사람 키만한 곤충들이 묘림과 나천천의 앞으로 오더니 뾰족한 발톱을 치켜들고 그들을 무정하게 내리찍었다.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묘림과 나천천은 거의 동시에 관통되어 큰 곤충에 의해 밖으로 끌려갔다.
“사저, 살려줘!”
나천천은 당황하며 비명을 질렀다.
유오청은 겁에 질려 덜덜 떨고만 있는데 어떻게 그녀를 구해 줄 수 있겠는가?
묘림과 나천천은 길에 피를 흩뿌리면서 곤충에게 끌려가 점점 멀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한 비명소리는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졌다.
두 사람의 소리가 사라진 뒤, 한참 지나서야 유오청은 살며시 막았던 귀를 풀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없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을 때, 소년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갑자기 훌쩍 뛰어오르더니 먹이를 사냥하는 표범처럼 용맹스럽게 그녀를 덮쳤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유오청은 비명을 지르며 양준을 내리쳤다.
하지만 양준도 똑같이 주먹을 날리며 염양삼첩폭을 터뜨렸다.
강한 진양원기 세 갈래가 연이어 유오청의 가냘픈 팔로 들어갔다. 이합 경지 6단계나 되는 그녀였지만, 얼마 전에 곤충 떼와 크게 전쟁을 벌인 탓에 지금 원기를 얼마 회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몸과 마음이 불안하여 실력을 삼 할 밖에 발휘하지 못한 터라 양준의 기괴한 술수를 받아내지 못했다.
첫 번째 원기가 폭발했을 때, 그녀는 손쉽게 풀었다. 하지만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전에 두 번째 원기가 또다시 폭발했다. 유오청은 다급한 와중에 원기를 운행하여 막으면서 겨우 위험을 모면했다. 이윽고 세 번째 원기가 폭발하자 유오청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그녀는 줄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팔이 부러진 그녀는 심장을 찌르는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기면서 일어나자 양준은 또다시 주먹을 날려 그녀의 다른 한 팔도 부러뜨렸다.
유오청은 아픔을 참으며 한쪽 무릎을 구부렸다. 양준은 재빨리 몸을 돌려 피하고는 손을 휘둘러 지풍을 쏘았다. 유오청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녀의 허벅지는 축 늘어졌다.
사지 중 세 개가 망가지자 유오청은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다. 공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으며 양준은 옷을 벗었다. 목구멍에서는 미처 억누르지 못한 울부짖음이 전해졌다.
운하종의 공주님은 이젠 반항할 힘이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고 더 이상 울거나 용서를 빌지 않았다. 눈물이 눈가에서 굴러 떨어지게 내버려 두었다.
그녀가 꼼짝없이 당할 거라고 생각할 때쯤, 소년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유오청은 살짝 눈을 떴다. 그러자 양준이 여전히 새빨개진 두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두 눈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때때로 반항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쇠라도 녹일 것 같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일그러진 얼굴은 뭔가를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이 소년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원기가 폭발했다. 그는 훨씬 사악해진 듯했다.
이 원기의 폭발로 인해 그의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강해졌다.
기동 경지 4단계, 5단계… 8단계, 9단계…….
이합 경지의 원기 파동도 느껴졌다.
그는 이합 경지 2단계까지 돌파한 뒤에야 천천히 안정되었다.
실력이 강해짐에 따라 그의 눈에 어린 광기는 점점 심해졌다. 그러나 반항하는 힘도 동시에 강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유오청의 몸에서 내려오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아니면 결과는 책임 못 져!”
영락없이 당했다고 생각한 유오청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멀쩡한 다리를 구부리고 조금씩 맨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양준은 정신이 아주 말짱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의식은 또렷했다. 결국에는 불굴지오를 써서야 겨우 마음을 억누를 수 있었다.
원기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동굴 전체에 ‘윙윙’ 소리가 기승을 부렸다. 놀란 곤충들은 고개를 들이밀고 안쪽을 살펴보았다.
양준은 무서울 정도로 피부가 새빨개졌다.
지난번 금신에서 불굴지오를 발견한 양준은 이 금신에 또 다른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탓에 깨달음을 얻지 못해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오늘 이 기회를 통해 양준은 다시 한번 크게 느꼈다.
유오청도 눈치가 있는 편이었다. 그녀는 양준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가라앉히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의 주의를 불러일으킬까 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양준의 상황도 점차 좋아졌다. 난폭하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았고, 폭주하던 원기도 잠잠해지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양준의 난폭함이 사라지자 동굴 안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눈을 떴다. 불굴지오 때문에 일시적으로 폭등했던 실력도 점차 사라지더니 경지도 내려갔다.
이합 경지 1단계… 기동 경지 9단계, 8단계… 5단계……!
곧이어 안정적으로 변했다.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가다니, 뜻밖의 수확이긴 했지만 양준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한쪽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깊은 사색에 빠졌다.
이번에 금신의 비밀을 또 한 번 알게 되면서 비록 예상했던 수확은 없었지만,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양준은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 속박만 풀 수 있다면 금신의 또 다른 비밀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쉽게도 그의 지금 실력과 무도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해 이 속박을 풀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기회를 기다려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양준은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구석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유오청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 어떤 여자도 이런 일을 마주하면 평온하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양준은 일어서서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갔다.
“오지 마!”
유오청은 겉으로 매섭게 소리를 질렀지만, 속으로는 겁에 질린 채 힘껏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뒤가 바로 동굴벽인데 어디로 물러날 수 있겠는가?
양준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천천히 꿇어앉았다.
“너 저리로 가!”
유오청은 두 손을 쓸 수 없자, 머리로 양준을 박았다. 양준은 피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가 자신의 이마에 닿도록 내버려 두었다.
퍽!
유오청의 머리가 휘청거리더니 매끈한 이마가 순식간에 빨개졌다.
양준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탈골된 팔을 잡고서 아래로 잡아당겼다가 위로 올렸다. 그러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유오청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고통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더니 본능적으로 양준에게 공격을 날리려고 했다.
양준은 가뿐히 그녀의 공격을 막고는 차갑게 말했다.
“죽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죽여줄 수 있어.”
차가운 말투와 차가운 시선에 유오청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제야 그녀는 탈골된 팔이 다시 맞춰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깜짝 놀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양준은 또 손을 뻗어 그녀의 허벅지를 문질렀다. 그리고 원기를 운행하여 그곳의 상처를 치료했다.
따스한 느낌이 전해지자 유오청은 견디기 힘들었다.
다친 팔과 다리를 다 치료한 뒤에야 양준은 천천히 일어서서 옆에 앉았다.
유오청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소년이 자신에게 이토록 착하게 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난 이 녀석과 친분이 없는 것은 물론, 적대하는 사이인데 왜 이러는 거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오청은 입술을 꽉 깨물고 몰래 양준을 관찰했다.
동굴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양준과 유오청은 동굴의 양쪽 끝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불안해했다. 누구도 입을 열고 말하지 않았다.
대략 하루가 지나자, 밖에서 갑자기 기척이 들려왔다. 곤충들이 또 사람을 잡으러 온 것이었다.
양준은 침착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오히려 유오청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사제, 사매들의 뒤를 잇게 될까 봐 두려웠다.
걱정하고 있는 와중에 양준이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