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2장. 곤충왕
양준은 착한 마음에 유오청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 여인은 악독한 것이 절대 선한 부류가 아니었다. 양준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설사 정말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더라도 양준은 그녀의 목숨을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양준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치료해 준 것은 인정을 갚는 셈이었다. 이번에 돌파한 것도 그녀의 덕분이었다. 그녀를 치료해 준다면 서로에게 빚진 게 없는 셈이었다.
그가 지금 먼저 나서는 것은 곤충들의 왕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이곳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곤충왕을 찾아야 했다.
그는 이 며칠간 본 것과 그의 경험을 합쳐 봤을 때, 곤충들이 그들을 잡아온 것은 곤충왕에게 바치기 위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양준이 자신의 처지를 잘 파악한 탓에, 이번에 곤충은 그를 묘림과 나천천을 상대한 것처럼 잔인하게 대하지 않고, 곤충 한 마리를 파견해 앞에서 길을 안내하게 했다. 그리고 몇 마리는 양준의 뒤에 서서 그를 밀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유오청은 멍한 얼굴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올랐다가 또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연히 양준이 죽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말 양준이 죽는다면 그녀는 홀로 남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양준이 살아남기를 바랐다.
곤충 동굴에서 굽이굽이 모퉁이를 돌며 얼마나 걸었는지 한참 뒤에야 양준은 거대한 동굴에 도착했다.
곤충들은 양준을 동굴에 밀어 넣은 뒤,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지마!”
양준은 경계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 뒤, 지마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그런데 항상 부르면 부르는 대로 나타나던 지마가 이번에는 반응이 없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알고 다급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그만 어이가 없어졌다.
지마가 자신의 신식을 봉인한 것이었다.
“뭐해?”
양준은 그의 봉인을 풀면서 물었다.
“주인께서는 일을 다 마쳤나?”
지마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양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유오청이라는 여인과… 흐흐…….”
지마의 웃음소리는 아주 엉큼했다.
“주인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만약 어느 여인과 단둘이 있을 때면 소인더러 스스로 신식을 봉인하라고 말일세. 소인은 그걸 마음에 새겨두었다네.”
양준은 정말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해명하지 않았다.
“나 곧 그 곤충왕인지 하는 녀석을 만나게 될 것 같은데, 내가 그것과 싸울 때, 넌 옆에서 도움을 줘.”
양준이 본론을 얘기하자 지마도 바로 태도가 엄숙해졌다.
“알겠네!”
사방을 둘러본 양준은 이 동굴이 유난히 넓고, 동굴에서 역한 악취가 풍긴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한참을 찾았지만 곤충왕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
동굴 안에는 해골과 시체들만 가득 했다.
운하종의 장옥, 묘림, 나천천은 모두 이곳에 있었다. 그들 세 명은 죽기 전에 커다란 고통을 느꼈는지 눈을 부릅뜬 채, 피와 살이 말라 비틀어져 죽어 있었다. 고목 같은 그 모습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장옥은 가장 먼저 죽었는데, 마른 정도도 가장 심했다. 묘림도 그녀보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오직 나천천만이 육신에 수분이 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저 조금 있는 정도였다.
“주인… 이 곤충왕은 그들의 피와 살을 빨아먹는 것 같네.”
지마가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응.”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나천천의 시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펴보았다. 이 운하종의 여제자는 곤충에게 잡혀갈 때, 묘림과 한창 정을 통하고 있던 중이었어서 지금도 여전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묘령의 미소녀였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곤충왕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양준이 경계심을 품고 있을 때, 나천천의 시체가 살짝 움직인 듯했다. 곧이어 금색 빛이 그녀의 팔에서 쏘아지더니 양준을 덮쳤다.
“주인, 조심하게!”
양준은 안 그래도 경계심을 잃지 않고 있었던 탓에 갑작스럽긴 했으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는 진양원기를 운행하여 보법을 펼쳤다. 그는 순식간에 십몇 장 밖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바로 서기도 전에, 그 금색 빛이 그림자처럼 그의 앞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빨라!’
양준은 안색이 바뀌면서 다시 피했다.
하지만 방금 전과 같이 금색 빛은 다시 한번 그를 향해 날아왔다.
양준은 귓가에서 작게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금빛에서 어렴풋이 아까 곤충들과 비슷한 모습을 본 듯했다. 다만 훨씬 작은 모습이었다.
‘설마 이게 곤충왕인가?’
양준은 곤충왕이 분명 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의 속도는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곤충왕이니 분명 다른 곤충들보다 더욱 잔인하고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양준은 동굴 속에서 곤충왕과 대치하며 손을 쓸 기회를 찾았다.
열다섯 번이나 보법을 연속으로 펼치느라 원기를 단숨에 다 써 버렸지만, 곤충왕은 여전히 양준에게 착 달라붙어 그와의 거리가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더 이상은 피할 수 없게 된 양준은 바로 서서 무거운 표정으로 그 금빛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진양원기가 용맹하게 폭발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주먹은 곤충왕을 때리지 못하고, 오히려 양준의 주먹에서 통증이 느껴지더니 금빛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다급히 주먹을 살펴본 양준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주먹에 자그마한 상처가 생기고, 살이 부어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금빛은 그의 손등에 기어들어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곤충이야?”
양준은 깜짝 놀랐다. 기세등등하게 이 곤충왕을 해치우러 왔는데 마주치자마자 몸을 내어 주는 막대한 손해를 볼 줄이야.
그는 다급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세세히 느껴 보았다. 온몸에서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 곤충은 그의 몸속으로 들어간 후, 사라진 것 같았다.
“주인, 불편한 느낌이 없는가?”
지마가 물었다.
“없어.”
양준도 이상했다. 운하종의 사람들이 죽은 모습을 보니 곤충왕은 그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피와 살을 빨아먹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자신은 왜 아무 느낌도 없는 걸까?
“아닐 텐데. 다시 한번 잘 느껴 보게. 소인은 갑자기 상고이충(上古異蟲)이 떠올랐는데 이것과 비슷했다네!”
양준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마음을 가다듬고서 곤충왕이 기어들어간 팔에서부터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 뒤, 그는 드디어 어떤 흔적을 발견했다.
이 곤충왕이 지금 양준의 손등에 있는 성도 공간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 성도 공간은 성흔을 수련할 때 만들어낸 것으로 원기를 모아 두는 곳이었다. 이곳에 원기를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한꺼번에 폭발시킬 수 있었다.
그때 지마는 이 무공이 한 번에 승부가 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써 버리면 상대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였다.
지난번 전승동천에서 양준은 성흔에 기대 그 거북 요수에게 중상을 입힌 것이었다.
이 기괴한 곤충왕이 성도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다니. 그리고 양준은 그가 몇 달간 모아둔 방대한 원기가 놈에게 미친 듯이 흡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잠시 동안에 사 분의 일 정도의 원기가 줄어들었다.
그것이 성도 공간으로 기어들어가자 양준은 도저히 그것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발견을 지마에게 말했다. 그러자 지마도 조급해졌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그것이 이 원기를 전부 삼키면 주인의 피와 살도 빨아먹을 것이고, 때가 되면 주인은 분명 죽을 것이네. 주인이 죽으면 소인도 함께 죽는 것이니 어찌하면 좋은가!”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대책을 생각했다.
그는 이 곤충왕이 원기를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기괴할 줄은 몰랐다.
잠시 뒤, 성도 공간의 원기는 또 훨씬 줄어들어 곧 바닥이 날 것 같았다. 양준은 성흔을 쓰려고 원기를 몇 달이나 모아 두었지만 써먹지도 못하고 곤충왕에게 깨끗이 흡입 당했다.
곤충왕이 원기를 다 빨아먹고 피와 살을 노릴까 봐 양준은 재빨리 진양결을 운행하여 경맥의 진양원기를 성도 공간에 주입했다.
곤충왕은 점점 더 신나게 원기를 삼켜 댔다.
비록 이 방법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을 끌 수 있었다. 양준과 지마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대책을 생각했다.
한참 뒤, 양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마, 성도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어?”
지마는 당황했다.
“소인은 해본 적이 없지만 소인이 들어간다고 해도 곤충왕의 상대는 못 된다네. 그것의 속도는 아주 빠르고… 신식도 그에게 먹힐 수 있으니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지마는 스스로 불길 속에 뛰어드는 셈이었다.
“들어갈 수 있는지 해봐!”
양준이 부추겼다.
“정말 들어가라고?”
지마가 불안하게 물었다.
“쓸데없는 말 말고 해봐!”
지마는 하는 수 없이 양준의 말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양준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만큼, 지마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파혼추에 들어가 양준의 손등에 올라갔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몇 마디 중얼거린 다음, 성도 공간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지마가 다급히 도망쳤다.
“그것은 정말로 신식을 삼킬 수 있다네……! 소인 송구하네!”
방금 전에 그가 빨리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곤충왕이 양준의 원기를 삼키지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 위기를 모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들어갈 수 있다면 됐어.”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주인께서 대책이 있나?”
지마는 양준의 말을 듣더니 무척 기뻐했다.
“확신은 없지만 시도해 볼 수는 있지!”
양준은 말을 마치고 바로 불굴지오를 움직여 미친 듯이 금신에서 원기를 빼냈다. 동시에 단전 안의 양액도 끊임없이 폭발했다. 그렇게 한 줄기, 또 한 줄기의 원기로 만들어 끊임없이 성도 공간으로 주입했다.
양준의 몸속에는 원기 창고가 세 곳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손등의 성도 공간이었다. 이것은 성흔을 사용하기 위한 전용 창고로서 원기를 저장할 수 있는 양이 가장 적었다.
두 번째는 단전 안의 양액이었다. 이것은 양준이 전투를 벌일 때 사용하는 근원이었다. 모든 무공과 초식의 위력은 단전 안의 양액에 기대야 했다.
세 번째는 가장 큰 창고인 금신이었다. 금신은 그 어떤 원기도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양준이 단약, 영초, 영과로 섭취하여 얻은 원기는 단전 안의 양액을 총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많았다.
지금 동시에 두 가지 방법으로 보충하고 있으니, 양준의 체내에 나타나는 원기 파동은 놀라울 정도였다.
계속 원기를 주입하자, 성도 공간의 곤충왕도 원기를 달게 삼키며 점점 그것에 심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