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4장. 양염지익
“서천충은 뭐든 빨아먹는다네. 특히 각종 기운과 살을 먹기 좋아하지. 그리고 서천충에는 모두 기연이 존재하여 그것을 연화할 수 있다면 큰 이점을 얻을 수 있네. 이 기연은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네. 무상 공법일 수도 있고, 대단한 무기일 수도 있고, 위력이 엄청난 비보일 수도 있네. 더욱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실력이 크게 강해질 수도 있다네! 변화가 하도 많아서 단정하여 말해줄 수가 없네. 자신의 운에 따르는 것이지.”
“곤충의 몸속에 어떻게 그런 것을 남길 수 있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무상 공법이나 무공은 너무 황당하잖아?”
양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인께서 모르시나 본데 이 서천충은 원래 운으로 태어나는 거라 그 수가 아주 적다네. 몸속에 천도(天道)를 담고 있어 소인도 그 기묘함에 놀라울 뿐이라네.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공법과 무공들은 원래부터 천지간에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어야만 밖으로 전해질 수 있네. 그래서 곤충 한 마리에게서 이런 것들이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네. 더구나 그것은 상고이충이지 않나!”
지마의 말투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가 말을 마쳤는데도 양준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깜짝 놀랐다.
“주인은 믿지 않는 것인가?”
“모르겠어. 하지만 연화할 수 있다니 연화해 보면 그것이 정말로 이토록 신기한지 알 수 있겠지.”
양준은 믿는다고도, 믿지 않는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귀로 들은 것은 가짜고, 눈으로 봐야만 진실된 것이다. 더구나 서천충에 관한 모든 것은 지마도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진실이 어떤지 그도 확실히 알 지 못했다.
양준은 다시 눈을 감고 단전 안의 기괴한 기운과 교류하면서 진양결을 운행했다. 그리고 뜨거운 진양원기로 그것을 연화했다.
일주일, 이주일… 날이 지나면서 그 기운은 연화할수록 점차 변화되었다. 처음에 그 기운은 양준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 곤충왕이 죽으면서 남긴 것이지, 양준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화하면서 그것은 점차 양준의 기운에 물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둘로 나뉘면서 용솟음치더니 다시 양준의 몸속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양준은 등 뒤의 견갑골에서 달군 쇠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통증은 빨리 왔다가 빨리 사라졌다. 양준이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사라져 버렸다.
자세하게 자신의 실력을 느껴 본 양준은 여전히 기동 경지 5단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지마, 이 거짓말쟁이!’
양준은 화가 났다. 그는 지마가 한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실력을 크게 키울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연화한 뒤에도 실력은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다. 무상 공법이나 대단한 무기나 엄청난 비보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
양준은 얼굴이 퍼래져서 눈을 떴다. 지마가 다급히 물었다.
“주인께서 수확이 좀 있었나?”
“수확이 있기는 개뿔. 연화해도 아무것도 없잖아.”
양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럴 리 없네. 이건 전설 속의 서천충이 남긴 천도 기운이 확실하네!”
“전설은 사람을 속이는 거야!”
양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니, 주인은 모른다네. 소인이 전에 싸웠던 상대는 서천충을 연화한 덕에 무상 비법을 얻어 명성을 떨친 것이라네. 이건 전설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난 일이네. 소인이 목숨으로 장담… 신식으로 장담하지.”
지마는 맹세하며 말했다.
지마가 신식으로 장담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양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천도 기운이라면 그는 아무런 수확도 없을 리 없었다.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자 양준은 집중력을 등 뒤의 견갑골 쪽으로 돌렸다.
그 이상한 기운이 연화된 뒤, 견갑골 쪽에서 뜨거운 느낌이 전해졌었다. 그것 말고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
주의력이 집중되었을 때, 양준은 온몸의 원기가 양쪽 견갑골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구속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감각이 전해지자 그는 저도 모르게 원기를 더 많이 내보냈다.
그러자, 갑자기 구속감이 사라졌다.
화악-
소리가 동굴 전체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양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지마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만약 지마의 실체가 있다면 아마도 지금 입이 떡 벌어진 상태일 것이다. 이 늙은 마두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 모른다. 그는 줄곧 봉인된 상태였다가 최근에야 세상에 나타났다. 그만큼 박식하여 세상 일에 놀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게…….”
양준도 깜짝 놀랐다. 그는 이렇게 신기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등에 순전히 진양원기로 이루어진 양염지익(阳炎之翼)이 생겨났다. 날개는 크지 않았는데 대략 반 장 정도 되었고, 그것을 이루고 있는 진양원기도 다소 불안정해 보였다. 그것은 양준의 감정 기복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곁눈질로 훑어본 양준의 눈은 좀 떨리고 있었다.
그의 견갑골에서 자란 이 날개는 모양새가 웅장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특히 진양원기의 색깔은 활활 불타오르는 불길 같아서 세속에 구애받지 않는 호방한 느낌을 주었다.
양준과 지마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언어 능력을 잃은 것처럼 모든 정신을 이 날개에 집중했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마, 이건 뭐야?”
지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비천지력(飛天之力)이네!”
“비보라는 거야?”
“아니, 이건 비보보다도 훨씬 귀중하다네. 이건 천도 기운이 주인에게 부여한 능력이네. 그 안의 현묘함은 소인도 모른다네. 주인께서 앞으로 스스로 깨닫게나.”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자 등 뒤의 양염지익도 갑자기 사라졌다. 양준은 고개를 땅에 박고 휘청거리며 곤두박질쳤다.
자세하게 한참 동안 느껴 본 양준은 그제야 그가 서천충에게서 비천지력을 얻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날개는 몸속의 진양원기로 만들어낸 것이 맞았다.
이 점을 확신한 양준은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운하종의 사람들과 함께 은도로 떨어진 이 며칠 동안, 양준은 비록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원 경지까지 수련하여 하늘을 나는 능력이 생긴 다음 나가거나 이 은도에서 하늘을 나는 요수를 잡아타고 돌아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은도는 해성과 만 리나 떨어져 있었다. 신유 경지의 고수도 날아가기 힘든데 하물며 진원 경지에 오른다 해도 가능성이 있을까? 또 그에게 잡힌 요수도 날아가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그는 진양원기를 이용하여 등에 날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양준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이 양염지익은 지마의 말대로라면 서천충이 몸속에 남긴 천도 기운이지 비보도, 무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특수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 능력을 펼치려면 똑같이 적지 않은 원기를 소모해야 했다.
동굴에서는 날개를 시험해 보기 적합하지 않았다. 양준은 마음속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또 뭔가가 떠오른 듯, 지마에게 물었다.
“지마, 밖의 곤충들도……”
“주인, 아니네. 서천충은 아주 희소하다네. 비록 그것들은 후대를 많이 번식하기는 하지만 바깥의 곤충들은 이미 서천충이라고 하기 어렵네. 그저 요수일 뿐이네.”
지마는 양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양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좋은 일이었다. 바깥의 곤충들은 죽이지 못할 정도로 많은데, 그것들 모두 천도 기운을 가지고 있다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표정이 바뀐 양준은 또 말했다.
“서천충을 연화하고 나니, 내가 이 곤충들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마는 놀라며 물었다.
“시험해 보면 알겠지.”
양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밖에서 크고 작은 곤충들이 잔뜩 기어 들어왔다. 그러나 모두 동굴 밖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치 이 동굴이 그들에게 금기된 곳인 것을 아는 듯싶었다.
“하하! 역시 그렇군!”
양준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곤충들은 살상력은 별로 없었으나 수가 많았다. 커다란 곤충들은 대부분 3~4급의 요수들이었고, 두 마리는 5급에 달하기까지 했다.
5급 요수면 진원 경지의 고수에 해당했다.
은도에서 보물을 찾을 때, 그것들의 도움이 있다면 훨씬 쉬울 것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오기 참 잘했네.’
기분이 좋아진 양준은 동굴을 벗어났다. 곤충들은 다급히 물러나며 길을 내주었다. 이를 본 지마는 입맛을 다시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이 끝나고 양준은 이 곤충 동굴을 떠나서 곤충들을 데리고 은도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
‘유오청! 운하종의 공주님이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군.’
만약 그녀가 죽었다면 자연스럽게 모든 은원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면 양준은 그녀를 곁에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다.
그녀를 보살피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은도에는 분명 다른 운하종의 고수들이 있을 것인데 만약 그가 나갔다가 그 고수들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유오청이 그의 손에 있는 게 그나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기억 속의 길을 따라 유오청을 감금한 곳으로 걸어갔다.
한참 걸어가자 드디어 전에 갇혀 있었던 동굴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개를 밀어 넣고 살펴본 양준은 그만 표정이 크게 변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