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2장. 운하종으로 출병하다
종묘의 목소리는 원래도 맑고 낭랑했다. 더구나 지금은 새벽인 데다 이곳은 또 장로가 묵는 곳이기까지 하니 주변에는 잡음이 거의 없었다. 종묘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자 사방 십 리는 퍼져 나가 근처의 모든 고운도 제자들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녀를 막고 있던 두 사형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하마터면 땅에 주저앉을 뻔했다.
근처에서 길을 가고 있거나 수련하고 있던 고운도 제자들 역시 깜짝 놀랐다. 잠시 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다급히 도망쳤다. 종묘의 이 외침은 마치 저주처럼 사람마다 도망치기 바빴다.
‘큰일이야. 한 장로의 공작새가 다 죽어 버리다니. 그것들은 한 장로의 자식이나 마찬가진데!’
공작새들은 비록 평범한 동물이었지만, 한 장로의 죽은 부인이 키우던 새들이었다. 한 장로는 정이 깊은 사람이라 아내가 죽은 뒤, 공작새를 키우면서 아내를 그리워했다. 그렇게 자주 찾아가 보고 공작새를 아들보다 더 아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공작새들이 전부 죽어 버렸다니!
이 말을 들은 고운도의 모든 제자들은 한 장로가 어떻게 불같이 화를 낼지 상상이 갔다. 지금 당장 도망가지 않는다면 한 장로가 화를 낼 때, 그들도 연루될 수 있었다.
“너… 넌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
종묘를 막아섰던 사형은 더없이 놀라며 횡설수설했다. 그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누가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한조의 거처에서 분노에 찬 소리가 전해졌다. 이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이 번개처럼 나타나 종묘와 두 고운도 제자의 앞에 착지했다. 바로 장로 한조였다.
한조는 두 눈이 벌개진 채로 잠옷만 입고 맨발로 서 있었다. 옷을 입지도 못하고 미처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급히 뛰어나온 것이 분명했다. 신유 경지의 압력이 느껴지자 종묘와 두 제자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한조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주변을 훑어보더니 시선을 종묘에게 고정하고 엄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공작새가 어떻게 되었다고?”
종묘는 깜짝 놀라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서신을 받들고 공손하게 전해주었다.
한조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공작새를 돌보는 여제자를 힐끔 훑어본 뒤, 손을 뻗어 서신을 받았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마음속의 울화를 억누른 채, 서신에서 누렇게 된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그 순간, 한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마치 추위라도 타는 것처럼 몸을 쉬지 않고 덜덜 떨었다. 목구멍에서는 ‘꺽꺽’ 소리도 났다. 마치 목에 뼈라도 걸린 것처럼 한참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말을 뱉지 못했다.
두 제자는 이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소름이 끼쳤다.
‘큰일 났어, 공작새의 죽음이 한 장로에게 큰 충격을 주었나 봐.’
“한 장로님…….”
종묘는 나지막하게 불렀다.
한조는 그제야 꿈에서 깬 것처럼 누런 종이를 서신 봉투에 밀어 넣고 분노에 치밀어 발을 구르며 종묘를 향해 호통쳤다.
“이렇게 큰일을 왜 진작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냐!”
종묘를 막아섰던 두 제자는 흠칫 놀라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는 자신들까지 연루될까 봐 가련한 눈빛으로 종묘를 바라보았다.
종묘는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아침에야 발견하고 다급히 보고하러 온 것입니다. 이 두 사형이 들여보내지 않아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장로, 저희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두 제자는 다리가 풀려 꿇어앉은 채, 용서를 빌었다.
한조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번개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종묘와 두 제자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숨을 돌리기도 전에 한조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종묘를 훑어본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없지?”
종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잘했어. 따라와!”
한조는 종묘의 팔을 잡더니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꿇어앉은 채, 한참이나 기다린 두 제자는 그제야 천천히 일어나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장로는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공작새가 다 죽었는데 왜 사매더러 잘했다고 칭찬하는 거지? 단단히 혼을 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사매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 고운도 전체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을 텐데 어떻게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지?’
*고운도 주인의 거처.
종묘는 대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주변은 누구도 지나가는 사람 없이 매우 조용했다.
한조는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뒤, 더 이상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종묘는 고운도의 모든 장로와 호법들이 다급히 이 대전으로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일흔이 넘는 노친네들이 모여들어 뭔가를 토론하고 있었다.
반나절이나 기다려서야 그 사람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 나오더니 하나같이 부랴부랴 떠났다. 마지막으로 한조 장로와 고운도의 도주(島主) 고풍(古風)만 남았다.
두 사람은 함께 종묘의 앞에 다가오더니 고풍이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일어나거라.”
“제자가 어찌 감히!”
종묘는 고개를 더욱 푹 수그렸다.
고풍은 껄걸 웃더니 뭔가를 꺼내서 종묘 앞에 던져 주며 입을 열었다.
“이걸 가지고 단당(丹堂)에 가서 필요한 단약을 가지거라. 그리고 온령동(蕴灵洞)으로 가서 폐관 수련하거라.”
그 말을 들은 종묘는 온몸을 흠칫 떨면서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고풍을 바라보았다.
온령동! 그곳은 고운도에서 천지 기운이 가장 농후한 수련 성지였다. 그곳에서 수련하면 다른 곳에서 수련하는 것의 세 배에 달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곳은 줄곧 자질이 뛰어나거나 전도가 유망하다고 장로들에게 인정을 받은 사형, 사저들이나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녀 같은 일반 제자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도주가 그녀에게 온령동으로 가서 폐관 수련하라고 하고 있었다.
그것도 단당에 가서 단약을 가져도 된다니? 눈앞의 이 영패는 도주령이었다. 이 영패를 가지고 있으면 도주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고운도의 모든 제자들을 호령할 수 있었다.
“의심할 필요 없다. 네가 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녀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는 한조도 이 순간,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자애로운 모습을 하던 그는 갑자기 화제를 돌려 말을 꺼냈다.
“다만 오늘 일은 누가 너에게 묻든…….”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종묘는 바보가 아니었다. 당연히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한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저었다.
“가거라!”
“도주님, 감사합니다. 한 장로님, 감사합니다.”
종묘는 기쁜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했다. 오늘 운수가 대통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에서 서신을 발견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이득을 얻다니.
‘도대체 어떤 은인께서 이런 복을 남겨 주신 걸까? 이름도 말씀해 주지 않으셨으니 앞으로 은혜를 갚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네.’
도주령을 받은 종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전을 나왔다. 아직도 꿈에서 덜 깬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운도에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들끓었다. 총명한 제자들은 섬의 고수들이 다급히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묘하게 폭풍 전야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자시, 고운도의 고수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배에 올라타고 한 방향으로 떠났다.
배에는 고운도의 이백여 명 되는 고수들이 타고 있었다. 도주가 직접 지휘하고 장로 네 명과 호법 세 명이 모조리 출동했다. 그 외에 진원 경지의 고수들도 많았는데 배에 탄 사람들 중 실력이 가장 낮은 사람도 이합 경지의 무인이었다.
몇몇만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었고,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오리무중이었다.
다음날, 날이 밝을 무렵, 배는 어떤 섬 가까이에 도착했다.
“저건 운하도잖아?”
누군가 운하도를 알아보았다.
“왜 이곳에 온 거지?”
운하도는 비록 삼류 세력이라 고운도처럼 저력이 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종문이었다. 해외의 세력은 모두 각자 발전하는 거라서 서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사람들은 이번 출항 목적이 운하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운하종과 전쟁이라도 치르려는 건가?’
몸집이 장대하고 두 눈이 부리부리하며 단단한 기운을 내뿜는 고풍이 뱃머리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얻은 확실한 소식에 의하면 우리 고운도가 삼백 년 전에 잃어버린 화생파월공이 지금 운하종에 있다고 하오.”
‘화생파월공!’
배에 있는 사람들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그것은 고운도의 무상 공법이었다. 삼백 년 전에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운하종에 나타났단 말인가?
고풍은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늘, 운하종을 수색해서 반드시 화생파월공을 찾아내 우리 고운도 선조들의 아쉬움을 풀어줘야 하오.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죽이고, 거짓말을 하는 자도 죽이시오! 오늘 전쟁은 화생파월공을 되찾기 위한 것이오. 만약 되찾아온다면 우리는 모두 고운도의 공신이오! 모두 섬에 오르시오!”
고풍이 엄격한 명령을 내리며 손을 휘젓자 배의 고수들은 빠른 속도로 운하도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한 비명소리가 운하도에서 울려 퍼졌다. 간혹 격투소리와 욕설을 내뱉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지금은 새벽이라 하루 중 사람들이 가장 방심하고 있을 때였다. 고운도의 사람들은 준비를 하고 온 데다 습격까지 펼쳐 더없는 우세를 차지했다. 운하종의 사람들이 어찌 그들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두 명밖에 남지 않은 태상장로도 힘껏 저항했지만 고운도의 장로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운하종의 종주와 장로들은 반항하다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고운도의 고수들이 지나간 자리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날, 운하종은 피가 강을 이루었고,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운하종의 제자들 태반은 죽거나 다쳤고, 모든 이합 경지 이상의 고수들은 죽임을 당했다.
“찾았다, 찾았어. 내가 찾았어. 하하하!”
한조는 떨리는 두 손으로 운하종의 장로 몸에서 누래진 고적을 찾아냈다. 바로 고운도의 화생파월공이었다.
그는 급히 이 무상 공법을 가지고 배로 돌아와 고풍에게 전해주었다.
고운도의 도주도 눈물을 쏟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이 우리 고운도를 살펴 주고 계셨군. 삼백 년 만에 화생파월공을 드디어 찾아내다니. 우리 고운도 선조들이시여, 드디어 편히 눈을 감게 되셨습니다.”
한조가 흥분된 어조로 물었다.
“도주, 그럼 나머지 운하종의 제자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죽여야지!”
고풍은 차가운 표정으로 운하종의 운명을 결정했다.
화생파월공이 어떻게 운하종의 손에 들어간 것인지 막론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았든지 전부 죽여 버린다면 화생파월공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없게 된다. 고운도의 무상 공법이 외부에 전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 섬을 도살하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