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3장. 천금매취루
다만 고풍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도대체 누가 몰래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했느냐는 것이었다. 고풍은 똑똑한 사람이라 그 사람이 운하종과 원한이 있어 그들의 손을 빌려 복수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화생파월공의 행방을 흘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교묘한 일이 있겠어?’
하지만 고풍은 이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의 뜻에 따라 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화생파월공이 고운도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누구지? 머리도 좋고 수단도 있는 것이 절대 만만한 인물은 아니군.’
*바로 이때, 해성의 한 술집에서 양준은 창가에 앉은 채, 술잔을 들고서 덤덤한 얼굴로 멀리 운하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서 날이 저물 때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운하도의 전쟁은 하루 종일 지속되었고, 제자들도 거의 몰살당했다. 운 좋게 위기를 모면하고 빠져나온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전적이 대단했다. 고운도의 사상자는 서른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 삼류 종문을 멸하는 데 이 정도 대가는 가치 있는 것이었다.
밤의 장막이 다시 드리웠고, 양준은 은자를 내놓고는 천천히 술집을 떠났다.
그가 한 일은 화생파월공을 운하종에 버려둔 뒤, 한 장을 찢어 고운도에 보낸 것뿐이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
*해성, 천금매취루.
이곳은 즐거움을 찾는 장소이자 갖은 더러움이 감춰진 곳이었다. 여인들은 짙게 화장을 하고, 요란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서 2층 손잡이에 기댄 채, 웃는 얼굴로 손님들에게 손을 젓고 있었다.
대문 밖에서도 아리따운 여인들이 손님들을 이끌고 있었다. 이따금씩 점잖을 빼거나 옷을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거리 절반은 짙은 분내와 여인의 향기가 진동했다.
양준은 천금매취루 앞에 섰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열여덟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그를 맞이했다. 이 소녀는 화장을 옅게 하여 청순한 얼굴을 전혀 가리지 않았다.
소녀는 아름다운 눈으로 웃음을 지으며 예를 올렸다.
“공자, 안녕하신지요!”
그 목소리는 맑고 듣기 좋아 양준은 눈앞이 환해졌다.
여기는 돈만 내면 도덕에 구속될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다들 연기를 하며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곳이었다. 그저 거래에 불과했다. 하룻밤이 지난 뒤, 누구도 누구를 기억하지 못하기에 욕구를 분출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소녀는 양준의 안색을 살피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이곳이 처음이신가요?”
양준은 얼굴이 빨개지며 짐짓 아닌 척했다.
“아니.”
소녀는 비록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당연히 거짓말임을 눈치챘지만, 내색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양준의 팔을 잡았다.
“공자께서 즐기시려면 소녀가 잘 모시겠습니다. 어떠신가요?”
양준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대당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 대놓고 품 안의 여인을 희롱했다.
소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발끝을 들고 양준의 귓가에 속삭였다.
“공자께서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려나요? 아니면 방을 빌려서 소녀와 함께 밤을 보내실 건가요? 모든 것을 공자의 뜻에 맡길게요.”
“이곳은 너무 떠드는구나.”
“그럼 공자께서 따라오시지요!”
소녀는 가볍게 웃으며 양준의 손을 끌고 옆의 계단으로 갔다. 3층에 오른 그녀는 사람이 없는 방을 골라서 양준을 끌어들였다.
“공자께서 먼저 앉으시지요. 소녀가 음식을 준비해서 올게요.”
소녀가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잠깐.”
양준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소녀는 키득키득 웃다가 입을 가리고 물었다.
“왜요? 공자께서는 급하신가 보죠?”
양준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난 연상의 여인을 좋아해.”
소녀는 당황했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 모두 각자 취향이 있는 법이었다.
“그럼 소녀가 언니를 불러올까요?”
소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양준의 의견을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 너희들의 포주를 데려와.”
양준이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소녀는 순식간에 할 말을 잃었다.
이곳에 즐기러 오는 손님들 중,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기루의 포주는 비록 젊었을 때에는 손님을 접대하는 여인이었다고는 하나, 나이가 들어서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로 인해 손님을 접대할 수 없어 포주가 된 것이었다.
소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정말 어멈을 부르시게요?”
“가서 불러와!”
양준이 은자를 던지면서 말했다.
소녀는 그제야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멈의 뜻을 여쭙고 올게요.”
‘이 공자…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데 왜 늙은이를 좋아하지?’
천금매취루의 어멈은 마흔이 넘었다. 마흔이면 공자의 어머니라 해도 충분한 나이였다.
‘취향이 너무 독특한데?’
하지만 손님이 어떤 여인을 원하든 그것은 자유이므로 소녀는 당연히 질책하지 않았다. 천금매취루가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것은 돈만 벌면 되는 일이었다.
양준은 방 안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뒤, 문이 열리더니 진한 화장을 한 푸짐한 몸매의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젊었을 때 꽤나 아리따웠을 것 같았지만, 나이가 들어 살이 찌면서 젊었을 때의 매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살만 남아 있었다.
방금 전, 그녀는 소녀에게서 한 공자가 그녀에게 접대를 바란다는 말을 듣고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다급히 건너왔다.
와서 보니 정말 잘생긴 공자였다. 포주는 무척 기뻤다.
‘그래, 내가 그래도 매력이 좀 있지.’
앞으로 다가선 포주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공자께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당기고는 옆의 의자에 앉혔다.
“삭…….”
뾰족한 비수가 그녀의 앞에 꽂혀져 있었다.
포주는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채, 눈알을 굴리며 비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공자, 뭐… 뭘 할 생각인가요?”
포주도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양준이 단순히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 소란을 피우러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물어볼 게 있어.”
양준은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의 앞에 앉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어보세요. 소인이 아는 것이라면 절대 숨기지 않겠어요.”
포주가 겁에 질려 말했다.
“삼사 개월 전에 나이가 서른쯤 되는 미모의 여인을 사지 않았어?”
양준이 실눈을 뜨고 포주를 바라보았다.
포주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자께서 뭉뚱그려 물어보시는데 소인이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우리 기루에서는 종종 여인이 팔려 들어와요.”
“묘씨 가문 사람이 판 사람이야.”
포주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양준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가위로 그어 절대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맹세했지. 그리고 또 운하종에 팔려 갔어! 이렇게 말하면 기억나나?”
포주는 고개를 저었다.
“공자가 말씀하신 그런 사람은 없었는데요…….”
양준은 손을 들어 포주의 뺨을 내리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포주의 얼굴에 손자국이 났다.
“정말 없어요…….”
양준은 또다시 뺨을 내리쳤다.
“공자…….”
짝!
“소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짝!
“소… 소인이 기억났습니다!”
포주는 다급히 말했다. 손바닥의 기세가 대단해 그녀는 눈앞에서 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이도 몇 개나 부러졌다. 더 고집을 피우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았다. 눈앞의 이 젊은이는 보기만 해도 손에 피를 꽤나 묻힌 무인인 듯한데, 어찌 그녀 같은 일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런 여인이 있기는 했지요. 하지만 그녀의 몸은 더럽혀지지 않았어요. 그녀의 얼굴도 스스로 그은 것이니 우리와는 상관없죠.”
“알고 있어.”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물었다.
“그럼… 누가 그녀를 때렸느냐? 그녀가 접대한 손님이냐?”
“그게… 그게…….”
포주는 겁에 질렸다. 그녀는 그 미모의 부인이 이런 뒷배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누구냐!”
양준은 그녀의 앞에 있는 칼을 뽑아 들고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손톱을 다듬었다.
“소인이 때렸습니다……. 공자, 살려주십시오. 저는 그저 채찍만 몇 번 휘둘렀을 뿐이에요. 이곳에 팔려온 여인들 중 손님을 접대하기 싫어하면 다 이렇게 교육을 했었어요. 소인은 그녀가 공자의 사람인 줄 몰랐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그녀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거예요.”
포주는 말하면서 무릎을 털썩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양준은 심호흡을 하고 비수를 포주의 목에 댄 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절 죽이지 마세요!”
포주는 비명을 질렀다.
“소인이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모두 알려드렸어요. 공자께서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준은 손에 든 비수로 원을 그렸다. 선혈이 마구 튀더니 포주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 결국 털썩, 옆으로 쓰러졌다.
비수에 묻은 피를 닦은 양준은 일어서서 방을 나온 뒤,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양준을 데리고 들어온 소녀는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공자, 잘 노셨나요?”
양준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 태도에 소녀는 깜짝 놀라 다급히 3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피바다가 된 바닥에 포주가 눈을 뜬 채로 쓰러져 있었다.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천금매취루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해성, 묘씨 저택.
묘씨 저택은 불빛으로 환했다. 묘씨 가문이 해성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묘화성은 수단과 능력이 좋아 일을 잘 처리했다. 또 영주 가문의 여인을 맞이하여 아들딸을 낳았으니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셈이었다. 그리고 요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발전을 이루웠다. 가문은 크지 않았으나 해마다 은자를 이삼십만 냥 수확할 수 있었다. 묘화성은 풍족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