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75화 (175/853)

제 175장. 묘화성과의 결투

“제기랄, 도망쳐!”

묘씨 저택의 세 명밖에 없는 이합 경지 호위들이 고작 몇 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절명했다. 살아 있는 기동 경지 무인들이 어찌 감히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밖으로 달아났다.

“낄낄낄… 한 놈도 도망갈 생각 마.”

지마는 미친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파혼추는 이리저리 오가며, 한 번의 움직임에 하나의 생명을 앗아 갔다. 십여 명의 기동 경지 호위들은 얼마 안 돼 모두 땅에 쓰러졌다.

곳곳에 시체들이 널려 있고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양준의 원기는 점점 더 거세지고 포악해졌다. 온몸의 사악한 기운이 하늘로 치솟을 지경이었고, 온몸을 감싼 흑의와 어우러져 꼭 사마 같았다.

벌컥, 하고 앞쪽 방문이 열리며 묘화성이 황급히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뜰의 처참한 광경을 보자마자 안색이 급변했다.

양준이 저택에 뛰어들어 소동을 일으켰을 때부터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원래는 두 명의 미녀와 뒹굴려고 홀딱 벗었던 터라, 밖에서 접전을 치르는 것을 알면서도 옷부터 입어야 했다. 묘화성은 호위들의 비명소리에 조급한 나머지 단추 두 개를 잘못 잠갔다.

그가 부랴부랴 옷을 입고 뛰쳐나오니 호위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모두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눈앞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는 용모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흑의를 입은 사내가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로 걸어왔다. 그의 원기는 들끓고 있었지만 기동 경지 절정밖에 되지 않았다.

묘화성은 이 발견에 마음의 긴장을 늦출 수 있었다.

“웬 놈이야?”

묘화성이 격노하여 경계하는 눈초리로 양준을 주시했다.

양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걸음만 빨라질 뿐이었다.

“죽고 싶어?”

묘화성은 화가 치밀어 양준에게 다가갔다. 둘 사이 거리는 재빨리 좁혀졌다.

서로 삼 장 정도 떨어졌을 때 묘화성은 양준에게 일지(一指)를 날렸다. 날카로운 지풍이 뻗어 나오며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양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한쪽으로 틀었다. 지풍이 어깨를 스치며 혈흔이 생겼다.

묘화성은 놀라서 헉,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일지를 피하다니.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냉소를 흘리더니 다시 한번 일지를 튕겼다.

이 무공의 등급은 높지 않지만 공격 속도가 빠르고 원기 소모가 적어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었다.

지풍으로 습격했지만, 눈앞에서 양준이 종적을 감췄다. 다음 순간 묘화성은 뒤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 잔꾀를!”

묘화성은 양준의 속도에 놀랐다. 그러나 그는 이합 경지 절정의 무인으로서 기본 실력이 있었다. 그가 어떤 신법과 무공을 썼는지, 몸이 괴이하게 앞쪽으로 몇 장 날아올랐다. 동시에 양준의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양준은 곧장 몸을 돌렸다. 묘화성이 공중에서 온몸의 원기를 극한까지 운행시키고는 손바닥을 날리며 외쳤다.

“광풍살(狂風殺)!”

은은히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전해졌다. 묘화성은 두 손을 잔영이 비칠 정도로 빠르게 놀렸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칼바람이 끊임없이 양준에게로 힘차게 날아갔다.

양준은 칼바람의 궤적과 방향을 육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감지할 수 있었다. 그의 신형이 번쩍하더니 급히 칼바람을 피했다.

슉슉슉-

칼바람이 연이어 양준의 옷을 스치면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칼바람에 의해 땅바닥에는 수많은 흔적이 생겼다. 그러나 양준은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옷 조각들이 공중에서 날릴 뿐이었다.

묘화성은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공격 속도를 올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디 이것도 피해 봐!”

십여 갈래의 칼바람이 동시에 들이닥치며 양준이 피할 공간을 막았다.

양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더는 필요 없는 힘을 빼지 않았다. 온몸의 원기가 한순간에 타오르며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두 팔로 앞쪽 급소를 가렸다.

둔탁한 소리가 전해지며 칼바람이 들이닥쳤다. 양준의 몸, 팔, 허벅지는 상처투성이가 되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묘화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초식은 양준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다. 게다가 모두 살갗만 스쳤을 뿐 근골을 다치게 하지 못했다.

‘원기가 얼마나 거대하고 순수하길래 이합 경지 절정의 무공을 막아 낼 수 있단 말인가.’

지마는 양준이 열세에 처한 것을 보자 대노했다. 음산한 웃음소리를 내며 양준을 도와주려 했다. 양준이 마음속으로 그를 불렀다.

‘내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해.’

양준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점검하고 이번 접전을 통해 틀을 깨려 했다. 지마가 도와주면 묘화성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그의 의도와 맞지 않았다.

지마는 그의 결심을 눈치채고 조심하라고 당부만 했다. 더는 제멋대로 굴지 않고 파혼추를 휘감은 채 한쪽에 숨어서 자리를 지켰다.

그때서야 묘화성은 양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열대여섯 살 정도밖에 안 된 소년의 얼굴이었다. 강인함, 냉정함, 침착함, 광기, 혈기. 여러 가지 감정이 그의 표정에 섞여서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동시에 괴이쩍은 느낌을 주었다.

묘화성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있더냐?”

그는 이 얼굴이 눈에 익은 듯하면서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몇 달 전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양준은 얼굴에 땟물이 흐르는 거지였다. 묘화성은 지금 사악한 기운이 넘치는 양준을 그때 당시의 거지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건방진 놈이 감히 우리 묘씨 저택에 와서 방자하게 굴다니.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묘화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신법을 펼쳐 양준 앞으로 달려가 공격을 날렸다.

양준 역시 보법을 펼쳐 그와 맞섰다. 양손은 때로는 장법으로, 때로는 권법으로 바꾸며 묘화성과 접전을 치렀다.

둘은 실력 차이가 워낙 컸다. 족히 하나의 큰 경지 차이가 있었다. 양준은 곧 열세에 처해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묘화성은 점점 더 용맹해져 우세를 점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조소를 던졌다.

양준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합 경지 절정 고수와의 싸움에서 열세에 처해 위험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굴지오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는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 자신만의 무도를 각성해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틀을 깨야만 했다. 이것은 우호적인 대련이 아니라 생사를 건 결투였다. 양준의 행위는 고공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이를 지켜보는 지마는 온몸이 떨렸다.

몸의 상처가 많아지면서 체내의 원기는 점점 더 요동치고 뼛속의 열기도 점점 더 강해졌다. 금신의 기운을 억제하지 못해, 스스로 용솟음쳐 나올 것만 같았다. 양준은 이 기운을 억누르면서 기동 경지 절정의 실력으로 묘화성과 맞섰다.

묘화성은 나이가 있는지라 평생 수련한 무공도 적지 않았다. 여러 무공을 엇바꿔 가며 공격했지만 양준을 죽일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 몸에 상처만 가득 내고 회심의 일격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묘화성은 어렴풋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화입마에 빠진 것만 같았던 소년은 온몸의 요동치던 원기가 수그러드는 기미가 보였다. 또한 공격할 때도 좀 전의 틀이 없어졌다. 공격이 제멋대로이고 아무 규칙이 없자 오히려 대처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양준의 입가에는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속박하는 틀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곧장 한층 더 주의를 기울여 생사를 가르는 결투를 치르며 체득하고 있었다.

그의 초식은 점차 자유분방해졌다. 더는 틀에 구애받지 않았다. 직접 창조한 보법도 전보다 훨씬 매끄러워졌고, 자연스러운 초식과 결합하면서 점차 방어에서 공격으로 바뀌었다.

싸움이 길어지자 양준은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원기가 체내에서 요동치며 주먹과 발길질에 가져다주는 힘을 느끼고 초식의 흔적과 상대의 대응을 느껴 보았다. 양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경월살(鏡月殺)!”

묘화성이 울부짖더니 마침내 가장 강한 한 수를 썼다. 원기가 폭발하자 사방팔방에서 묘화성의 그림자 열몇 개가 나타났다. 마치 분신이라도 된 듯 묘화성들은 모두 주먹을 들고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양준을 내리쳤다.

이는 묘화성의 필살기였다. 십여 개의 그림자는 허와 실이 섞여 있어 같은 등급의 무인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오늘 기동 경지 절정의 소년을 대적하기 위해 경월살을 쓰다니. 묘화성의 분노를 알 수 있었다.

‘됐어. 이젠 끝이야. 경월살을 펼치는 순간 저놈은 기필코 죽을 것이다.’

묘화성은 자신감이 넘쳤다.

양준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조용히 주위의 그림자를 둘러보았다. 줄곧 막연해하던 눈동자가 순간 밝아졌다.

‘본심을 지키자. 무도가 이합(離合)을 하니, 정도면 어떻고 사도면 어떤가. 본심을 유지하고 내 식대로 하는 것이 바로 내 무도이다.’

원래는 곧 잦아들려 하던 포악한 원기가 다시 세차게 솟구쳤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도 몇 배나 더 강렬했다. 마치 산사태가 일어난 듯했다. 묘화성은 흉악한 기운에 얼굴빛이 돌변했다.

‘이놈이… 정말 주화입마에 빠진 건가?’

양준은 그의 앞에서 경지를 돌파해 이합 경지에 이르렀다. 경지를 돌파하는 찰나, 양준은 불굴지오를 펼쳤다.

금방 이합 경지에 이른 실력은 급격히 상승해 이합 경지 절정에 다다랐다.

묘화성과 같은 경지가 된 것이다.

양준이 침착하게 주먹을 내지르자 진양원기가 맹렬하게 뿜어져 나갔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묘화성의 그림자들은 마치 깨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났다.

묘화성은 신음을 흘리면서 피를 뿜더니 거꾸로 날아갔다.

같은 등급으로 맞붙으면 묘화성은 양준의 한 주먹도 당해 내지 못했다.

묘화성은 어렵게 몸을 일으키고는 경악하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얼굴빛이 냉담하고 침착했다. 그러나 눈에는 피에 굶주린 듯한 잔인한 빛과 광기가 넘쳐흘렀다. 양준이 번쩍하고 그의 앞에 다가섰다.

“도대체 누구냐. 난 너와 아무 원한이 없는데.”

묘화성은 소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두려웠다. 지금은 소년이 왜 찾아왔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묘화성은 가슴이 답답해 큰 소리로 말했다.

“살려줘. 내 아들 묘림은 운하종의 제자다. 운하종의 장로들이 그를 매우 중히 여긴다. 날 죽이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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