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6장. 반년만에 돌아온 능소각
묘화성은 하는 수 없이 운하종을 들먹였다. 양준이 운하종이 두려워 이쯤에서 그만두기를 바랐다. 그러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운하종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무덤덤하게 그의 가슴에 주먹을 날리고는 가볍게 뒤로 물러섰다. 눈빛은 냉혹하고 무정했다.
묘화성은 심장이 마치 뜨거운 손에 꽉 잡힌 듯 격렬하게 수축했다가 곧 다시 격렬하게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온몸의 살갗이 마치 끓는 물에 데인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바로 죽지 않았지만 큰 상처를 입었다.
이때,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지마가 덮쳤다. 파혼추가 그의 체내에 파고 들어가 그의 목숨을 끊어 버렸다.
‘도대체 누구지. 왜 우리 저택에 쳐들어와서 살육을 일삼는 것일까?’
묘화성은 죽을 때까지 본인이 어디서 이 젊은이를 건드렸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한 묘화성은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해성의 하늘에 바람과 구름이 몰렸다. 방대한 천지 기운이 양준의 주변에 미친 듯이 모여들었다. 하나의 대경지를 돌파했기에 또 한 번 천지간의 시련을 받게 되었다.
양준은 신법을 펼쳐 신속하게 묘씨 저택을 떠났다. 곧이어 그는 바닷가에 나타났다.
이날 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파도가 울부짖었다. 해성의 많은 무인들은 공포에 질려 해변을 바라보았다. 이는 누군가 방금 경지를 돌파해 일어나는 천지간의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현상이 너무나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나머지 그들은 감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저 숭배를 담은 표정으로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틀림없이 고수일 거야! 진원 경지에서 신유 경지로 돌파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아니면 어찌 이리도 흉포하단 말인가?’
해성의 무인들은 전체적으로 실력이 높지 않았다. 당연히 신유 경지의 고수를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이상 현상이 열다섯 살 소년이 기동 경지에서 이합 경지에 이르는 시련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알았다면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소란스러움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비로소 멎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어떤 이는 불덩이 하나가 해변에서 바다 깊은 곳으로 날아가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불빛 사이로 날개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본 이가 있다 하더라도 본인 눈이 침침해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새벽, 운하도.
양준은 오른쪽 섬에 이르러 애당초 강씨 부인과 헤어졌던 산봉우리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운하도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오른쪽 섬에서도 공기 속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었고, 전쟁이 남긴 흔적과 미처 마르지 않은 검붉은 핏자국들이 보였다. 가옥도, 담벼락도 모두 무너져 내려 황폐하고 쓸쓸했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가고 대지는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운하종이 멸문되었다.
양준의 앞에는 해골이 있었다. 해골의 몸에 남아 있는 낡아빠진 청백색 옷은 그날 강씨 부인이 입었던 옷이었다. 해골은 마치 망부석처럼 산봉우리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날 강씨 부인은 그와 헤어진 뒤, 줄곧 이곳에 앉아 해성 묘씨 저택 방향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강씨 부인의 아름다운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마치 먹구름에 가린 하늘처럼 빛도,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죽을 때까지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어젯밤 묘씨 가문이 멸문하고 묘화성이 양준의 손에 죽을 때까지 말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다. 은원은 이미 끝났다. 악인은 결국 벌을 받게 되어 있다.
양준은 술 주전자를 꺼내 부인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녀의 뼈를 묻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해골은 산산이 부서져 땅에 떨어지더니 가루가 되었다.
평지에 광풍이 일며 가루는 바람에 실려 운하도 오른쪽 섬을 넘어 바다에 흩뿌려졌다.
양준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얼굴빛은 슬프고 쓸쓸했다.
그날 그는 강씨 부인을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부인은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이미 죽어 살아도 평생 고통에 시달릴 것이었다. 남편과 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양준은 당시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날 자신의 처사가 옳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마가 양준의 마음속 쓸쓸함을 알아채고 한참 동안 낑낑거리다가 위로했다.
“주인, 자네는 부인이 아니네. 부인에게 있어서 죽음이야말로 해탈이 아니겠는가?”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양염지익을 펼쳐 해변으로 날아갔다.
그녀에게는 해탈이었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양준은 해성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 은도에서 채집했던 기이한 화초들을 양성을 띤 물건들로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양액으로 만들어 단전에 저장했다.
이틀 뒤 한밤중, 양준은 큰 보따리 두 개를 들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양준이 해성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해외의 여러 섬과 여러 세력들은 모두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태일문
“뭐라고? 고운도에서 화생파월공을 되찾았다고? 그게 사실인가?”
수라문
“아니, 고운도가 화생파월공을 되찾았어? 그럼 우리 문파의 보물 수라검에 대한 소식은 있는가?”
낙화교
“화생파월공을 찾아왔다며? 그럼 천예혈당화는? 그건 우리 문파의 뿌리야. 그때 화생파월공과 함께 잃어버렸었다고.”
적연종(赤練宗)
“고운도에 가서 우리 종주 신물의 행방을 알아보자”.
운룡도(雲龍島)
“…….”
고운도의 무상 공법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종문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모든 종문들이 똑같이 물건을 잃어버렸었다. 고운도에서 되찾았는데 그들의 것은 아무 소식도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순식간에 각 섬의 고수들이 일제히 출동했다.
고운도는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 해외 큰세력의 고수들이었다. 고풍과 고운도의 장로들은 이들을 접대하느라고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들이 화생파월공을 되찾은 과정을 상세히 밝히자, 십여 개 세력들은 서둘러 운하종으로 달려갔다.
운하종은 삼류 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한 권의 화생파월공 때문에 멸문당했다. 이후 십여 개의 세력들은 운하도를 샅샅이 뒤져 그들 종문에서 삼백 년 전에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물건들은 이미 양준이 가져간 뒤였다. 어찌 그들이 찾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아무리 뒤져도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하자 화가 났다. 하지만 주변에 남은 것이 없어 공격할 대상이 섬밖에 없었다.
사흘도 안 돼 운하도는 산산조각 나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양준은 자신이 떠난 뒤에도 운하도가 이런 비운을 겪게 될 줄을 몰랐다. 지금 그는 이미 능소각에 가까워졌다.
그는 해성에서 적지 않은 양액을 모아 둔 덕에 재빨리 종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특별히 밤에 능소각에서 오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그리고 다시 보법을 펼쳐 계속해 나아갔다.
한 시진 뒤, 양준은 거의 반년 만에 돌아온 능소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씨 부인 때문에 우울했던 심정도 많이 좋아졌다. 그는 종문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자신과 일생을 함께할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준은 커다란 보따리 두 개를 메고 슬그머니 종문에 들어서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주인……!”
지마가 조용히 불렀다.
“상관없어.”
양준은 실눈을 떴다. 방금 전에 몇 갈래 신식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던 것이다.
이전 같으면 양준도 이 모든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신식으로 그를 탐문할 수 있으면 실력이 적어도 신유 경지에는 이르렀거나 자신보다 몇 단계 더 높은 경지일 것이다.
그러나 오색 온신련을 얻은 다음부터 양준의 감각은 매우 예민해졌다. 신식이 다가오는 순간 그는 이미 알아차렸다. 낯선 신식은 결코 능소각의 장로들의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신식들은 탐문만 할 뿐 악의는 없었다. 신식은 그를 훑어본 뒤 더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발견에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능소각에 왜 갑자기 고수들이 많아졌지?’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종문도 결코 조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양준이 능소각에 돌아온 순간, 작은 다락방에서 폐관하고 있던 소안은 번쩍 눈을 떴다.
“돌아왔나?”
소안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붉은 입술을 살며시 오므렸다.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홍조가 떠올랐다. 은연중 누군가 그녀더러 그에게로 달려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 천적이야!’
그가 없는 동안 그녀는 힘든 때도 있었지만 빙심결을 돌리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시련과 저항에 힘입어 심적 경지도 급속히 향상되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되자 빙심결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웠다.
소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온몸에 한기를 감싼 채 흰 그림자로 변해 곤룡골 쪽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곤룡골 옆, 양준은 뒤돌아보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지마, 가서 놀아.”
양준은 지마와 파혼추를 손 가는 대로 던져 버렸다.
“어휴… 큼큼…….”
지마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지금 주인이 날 세 살 먹은 어린아이 취급하는 건가?’.
그러나 지마는 곤룡골 아래쪽의 사악한 기운에 이끌렸다.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곤룡골 옆에 서서 잠깐 기다리자 새하얀 그림자가 신속하게 접근해 왔다. 그림자는 양준에게서 석 장쯤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정답게 마주 보았다.
양준의 눈은 그리움으로 가득 찼고, 소안의 눈동자에는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몇 달 동안 서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 훑어보았다.
양준은 많이 강해지고 건장해졌다. 그러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노련함과 침울함이 서려 있었다. 세파를 겪은 노련함은 이 나이의 젊은이에게서 나타나지 말아야 할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양준에게 성숙함과 진중함을 더해 주었다. 소안은 그의 눈에 비친 옅은 피곤함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양준은 몇 달 동안 밖에 있으면서 적지 않은 일을 겪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