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8장. 수라검
양준은 검은 책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바닥에 던져두었던 보따리를 주워들었다. 그 보따리 안에 든 것은 해외 세력들이 삼백 년 전에 잃어버렸던 보물들이었다.
‘내 수중에 들어왔으니, 잘 이용해야지.’
전에 은도에 있을 때부터 양준은 비보 하나를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아직 해외에 있었고, 비보의 금제(禁制)를 건드려 원래의 종문에서 감지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능소각으로 돌아왔으므로 해외에서 십만 리나 떨어져 있었다. 설령 금제를 건드린다 해도 이렇게 먼 거리를 감지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조심해서 사용하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비보는 세 가지가 있었다. 특수한 심법으로 가동해야 하는 태일문의 인감을 제외한, 검과 혈해당은 모두 흡수할 수 있었다.
검의 길이는 석 자 정도 되었고, 전체적으로 새빨간 것이 그 속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양준은 검에서 처참한 울부짖음이 전해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에는 살기가 엄청났고, 몸과 마음을 어지럽혔다. 만약 심지가 곧지 못한 이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바로 주화입마에 빠지고 영원히 사도로 굴러 떨어질 터였다.
이는 바로 수라문의 진문(鎭門) 비보 수라검이었다.
양준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 검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다. 흉악하고 난폭한 검기가 불굴지오를 펼칠 때 뿜어져 나오는 그의 기운과 비슷했다. 이런 유사함 때문에 그는 검과의 벽을 느낄 수 없었다.
검은 적어도 천급 상품의 비보였다. 게다가 살기를 품은 검이었다. 이 검을 가진다면 공격력이 급증할 것이다.
양준은 수라검을 내려놓고 핏빛을 띤 혈해당을 들었다. 이것은 마치 해당화처럼 생겼는데, 요염하기 그지없고 꽃잎마다 칼처럼 날카로우며 기괴하고 위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삼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살기가 남아 있었다.
이 역시 공격 비보였다. 당시 낙화교에서 이 비보로 수많은 적을 죽여 핏빛으로 물든 듯했다.
비보는 둘 다 아주 훌륭했다. 그리고 마치 그의 몸에 맞춰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양준은 두 개를 번갈아 보면서 고민했다. 쉽게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잠시 생각한 끝에 양준은 두 가지를 모두 흡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원기와 시간을 더 많이 소모할 따름이었다. 결심하고 이제 막 비보를 흡수하려는데, 위쪽에서 돌멩이가 우수수 떨어졌다.
양준은 고개를 들고 쳐다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 동굴의 위치는 단 둘만이 알고 있었다. 소안과 하응상이었다.
소안은 떠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이렇게 빨리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굳이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과연 잠시 뒤 하응상이 위쪽에서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마침 양준이 동굴 입구를 막고 있어서 두 사람은 하마터면 크게 부딪칠 뻔했다.
양준은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녀를 잡아당겨 안전하게 곁에 착지시킨 뒤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꼬마 사저, 저 돌아왔어요.”
하응상은 눈에 눈물을 머금은 듯했다. 그 속에는 긴 이별 뒤 다시 만난 기쁨과 흥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이마의 푸른 보석도 여전했다. 양준이 이렇듯 담담하게 말하자 하응상은 두 눈을 깜박거렸다. 하마터면 눈물이 흘러내릴 뻔했다.
양준은 몇 달 전 달랑 서신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 데다, 지금 돌아와서도 그녀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너무하잖아.’
그녀의 눈가가 붉어진 것을 보자 양준은 그녀를 울릴까 두려워 더는 실없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제가 돌아온 건 어떻게 알았어요?”
양준은 그녀의 주의력을 딴 데로 돌렸다.
“소안이 말해 줬어.”
하응상은 코를 훌쩍거리면서 억지로 마음속의 씁쓸함을 참았다.
“소안이 말해 주지 않았으면 난 몰랐을 거야.”
“마침 사저를 만나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양준은 어쩐지 속이 뜨끔했다.
“진짜?”
하응상은 기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정말이에요.”
양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응상은 구슬리기 쉬웠다. 고작 몇 마디로 그녀의 실망과 우울함을 털어 버렸다. 그녀의 마음은 지금 오직 기쁨과 반가움뿐이었다.
“양심은 있네.”
하응상은 입을 삐죽거렸다.
“선물 가져왔어요.”
양준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됐어.”
말은 이렇게 해도 하응상은 분명 웃고 있었다. 눈매가 초승달처럼 굽어졌다. 마음속에는 따뜻함과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무슨 선물이야?”
그녀가 다시 물었다.
양준은 빙그레 웃더니 일어서서 다른 큰 보따리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보따리를 풀어 그 속의 천재지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약재에요.”
“이렇게나 많이!”
하응상은 깜짝 놀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거의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약재들의 이름과 품급을 알 수 있었다.
“사저는 수련할 때 단약을 복용해야 하지 않나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음껏 가져가세요.”
양준은 호기 넘치게 말하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멀리 밖에 나갔다 오면서 소안과 하응상에게 선물을 가져다줄 생각을 못한 것은 정말 큰 잘못이었다.
“난 필요 없어. 대신 네가 쓸 수 있도록 단약으로 만들어 줄게.”
하응상은 약재들을 일일이 살펴보고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너무 번거로워요.”
한 보따리의 약재를 모두 단약으로 만들려면 며칠이 걸릴지 몰랐다.
“괜찮아. 나에게는 단약을 만드는 것도 수련이야. 오히려 평소 좌선하면서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 높은 등급의 약재를 제련할수록 내게 좋은 점이 더 많아. 사제가 가져온 약재로 내가 수련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선물이야.”
하응상은 방그레 웃었다.
“저를 속이는 건 아니죠?”
양준은 의심스러운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거짓말 안 해.”
하응상이 뾰로통해서 말했다.
“흠흠, 저도 거짓말 안 해요. 그렇다면 부탁드릴게요.”
양준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나는 단약을 만들 테니, 넌 네 일 봐.”
하응상은 분명 기뻐하고 있었다.
양준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약재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약재를 종류별로 나누어 정돈해 놓았다.
양준은 빙그레 웃은 뒤 동굴 입구로 가 다시 자리를 잡고 않아 하려던 일을 이어 갔다.
*동굴 안, 하응상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신기에 가까운 단약 제련 수단을 펼쳤다. 먼저 여러 가지 재료를 액체로 제련한 뒤 다시 단약으로 만들었다.
양준은 전력으로 원기를 이용해 수라검을 흡수했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하응상이 만들어 낸 단약이 점점 많아지고, 보따리의 재료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녀는 단약을 제련하다 피곤하면 쉬었다. 동굴 입구에 앉아 있는 양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얼마 안 돼 만족감을 느끼면 다시 단약을 제련했다.
하응상은 매일 꼭 한 번씩 밖에 나갔다. 몽무애는 그녀를 보물처럼 아꼈다. 만약 어느 날 처소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능소각 전체를 뒤질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 골칫거리를 만들게 될 터였다.
닷새가 지나서야 수라검은 점차 양준과 하나가 되었다.
양준은 점점 더 이 공격 비보의 살기와 강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천급 상품의 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것만 해도 양준의 전투력을 한 등급 높일 수 있었다.
양준은 수라검을 체내에 거두어들인 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여러 날을 허비해 수라검을 흡수하면서 이점도 있었으나, 단점도 있었다. 단전 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던 양액을 거의 다 소진해 버린 것이다.
‘양액을 보충할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양준은 고개를 들어 살펴보더니 신법을 펼쳐 뛰쳐나갔다. 얼마 안 되어 다시 동굴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영초 두 포기가 쥐여져 있었다.
이는 몇 달 전에 심은 적자심으로 남초접에게서 산 것이었다. 영초 두 포기도 이미 여물어 있었다. 양준은 그것을 하응상에게 가져가 단약을 부탁했다. 다시 단약을 먹으니 양액이 어느 정도 비축되었다.
양액이 충분해지자, 양준은 이어서 천예혈해당을 흡수했다.
또 며칠이 지나고 낙화교의 비보도 그의 체내에 흡수되었다.
천급 비보 두 개를 얻게 되자 양준의 실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물론 지금은 두 비보의 모든 위력을 다 사용할 수 없었지만, 원기로 비보들을 꾸준히 키운다면 언젠가는 크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재들도 하응상에 의해 모두 단약으로 제련되었다. 각양각색의 단약이 족히 열몇 개 병에 담겨 있었다. 제련된 단약 중 가장 낮은 것은 지급이고, 심지어 일부는 천급이었는데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단약을 모두 먹는다면 적어도 한두 개 작은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단숨에 먹으면 한참 동안 흡수해야 했다. 양준은 지금 당장 단약을 복용할 생각이 없었다.
양준이 종문에 돌아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이제 슬슬 동굴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펴보아야 했다. 현재 세 개의 세력이 능소각 내에 남아 있고, 그들이 모두 소안을 넘보려 하고 있었다. 양준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있겠는가.
‘내 여자란 말이야.’
현재 능소각 내의 남아 있는 세력은 각각 동씨, 백씨, 자미곡으로 어느 하나 만만한 곳이 없었다. 그들은 중도 8대 가문 다음으로 세력이 강했고, 고수들이 많았다. 이런 세력은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양준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양준은 먼저 공헌당에 가서 몽무애에게 인사했다.
몽무애는 양준을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 마치 양준이 그에게 몇백만 냥의 은자를 빚진 것만 같았다. 그는 그제야 왜 하응상이 요 며칠 음울함과 울적함을 털어내고 매일 기쁜 얼굴로 신출귀몰하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요놈이 돌아왔던 거군. 응상이와도 틀림없이 만났을 테고. 아니면 그 애가 그리 눈에 띄게 변할 리가 없지. 휴, 복인지, 재앙인지. 재앙이라면 피할 수가 없겠군. 다만 응상이가 이 재앙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