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80화 (180/853)

제 180장. 뻐꾸기 양씨 가문

양씨! 아주 평범한 성씨로서 위로는 고관, 무인 세가로부터 아래로는 평민, 길거리 거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양씨 성을 가진 이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동경한(董輕寒)이 특별히 따로 언급할 양씨는 천하에서 하나뿐이었다.

바로 중도 8대 가문 중 하나인 양씨 가문이었다. 양씨 가문은 일처리 방식이 괴이쩍고 평범한 이치를 따르지 않으며, 8대 가문 중 서열 1위의 최상위 가문이었다.

동씨 가문도 한 가닥 하는 세력이지만, 중도 8대 가문보다는 아직 한참 모자랐다. 하물며 그중 실력이 가장 강한 양씨 가문과는 견줄 수가 없었다.

다른 대가문 공자가 이런 외진 곳에서 이름을 숨기고 예비 제자로 있다고 하면, 풍운쌍위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양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자, 풍운쌍위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양씨 가문에서 자제를 키우는 방식은 기괴했다. 그들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모든 직계 자제들을 가문에서 내보냈다. 제각기 기연을 찾아 수련하다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다시 불러들였다.

이런 양성 방식은 매우 위험했다. 직계 자제들은 밖에서 수련할 때 가문의 세력이나 자원을 빌릴 수 없었기에, 만약 다른 이와 충돌이 생기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사실, 밖에 내보내진 양씨 가문 자제들이 일찍 요절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폐단이 있는 만큼, 이점도 있었다.

이런 양성 방식은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들을 독립적이고 강하게 만들었다. 가문에 대한 의존을 털어 내고, 수년 동안 밖에서 수련하면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양씨 가문의 직계 자제들에게서 부잣집 공자의 허풍이나 위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칼처럼 차갑고 날카로우며, 수단이 난폭했다.

또한 양씨 가문은 이런 양성 방식을 빌려 많은 종문의 공법과 무공을 대거 수집해 가문의 저장고를 채웠다. 세상에서 공법과 무공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가문이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양씨 가문이었다.

세상에는 뻐꾸기라는 새가 있다.

뻐꾸기는 다른 새들의 둥지에 알을 낳아 남이 대신해서 부화하고 기르게 한다. 새끼 뻐꾸기들도 성질이 포악하여, 먹이를 빼앗아 먹을 뿐만 아니라, 같은 둥지에 있는 양부모의 새끼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려 죽이고 양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뻐꾸기의 평판이 좋지 않듯이 밖에서 양씨 가문의 평판도 좋지 않았다. 양자의 처사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양씨 가문에서 둥지를 빌려 자식을 키우는 방법은 많은 세력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하지만 양씨 가문은 8대 가문의 으뜸으로서 실력이 뛰어났기에 다른 세력들은 속으로 원망만 할 뿐, 양씨 가문을 괴롭히지는 못했다.

백 년 전, 양씨 가문의 자제가 회천문(匯天門)이라는 일등 종문에 들어갔었다. 양씨 가문의 자제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였고, 회천문의 장문인과 장로들도 그의 재능을 높게 사, 정성을 다해 수련시키고, 심지어 후계자로 삼기로 했다. 외부인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여러 비밀 무공들도 아낌없이 모두 알려 주었다.

그 자제는 과연 하늘이 내린 자질이라, 몇 년이 안 되어 회천문의 각종 무공과 공법을 모두 익혀 스승들이 대견해했다. 그러나 십 년 뒤, 회천문의 수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장문인과 장로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제자가 어느 날 밤에 조용히 종문을 떠났다.

그때서야 회천문에서는 그 제자가 양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천문의 장문인과 장로들은 모두 피를 토했다 한다. 하마터면 큰 병치레를 할 뻔했다. 십 년이란 시간을 허비해 배신자를 가르친 것은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회천문에서 외부인에게 전수하지 않는 비밀 무공까지 모두 배워 가서 양씨 가문의 것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회천문에서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후 회천문에서 양씨 저택을 찾아가 소동을 일으켰지만, 배상만 조금 받았을 뿐이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천하에 있는 종문들과 각종 세력들은 양씨 가문의 자제들을 경계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했다. 만일 십여 년의 시간을 들여 양씨 가문 사람을 양성해 냈는데, 그가 도망쳐 버린다면 또 회천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이는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경계한다 해도 양씨 가문 직계 자제들은 반드시 밖에 나가 경험을 쌓아야 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꽁꽁 숨겨져 있기에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몰랐다. 그들을 실제로 본 이도 적었다. 때문에 양씨 가문 사람들은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었다.

풍운쌍위는 궁리하던 중 양준의 신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4년 전에 양씨 가문에서 확실히 당대 직계 자제들을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는 양씨 가문에서 가장 어린 공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수련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었나? 어떻게 벌써 이합 경지에 이르렀지?’

이합 경지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뒤처진 것도 아니었다.

동경한이 양준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풍운쌍위는 뜻밖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동씨 가문과 양씨 가문은 선대에 혼인관계를 맺었다. 동경한의 친고모가 양씨 가문 넷째 나리에게 시집갔던 것이다. 동경한도 어릴 때 양씨 가문에 몇 번 갔었으니, 둘은 그전에 반드시 만난 적이 있었을 것이다.

“들어와서 얘기해.”

동경한의 눈빛에는 안타까움, 의외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두 사람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은 여전히 단출했다. 다만 탁자 하나가 늘어나 있었고, 그 위에는 차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냐?”

양준은 대범하게 자리에 앉아 다소 의아해하며 요리들을 바라보았다.

동경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있는 몇 년 동안 많이 성장했구나. 양씨 가문의 교육법이 다르긴 다른가 보다.”

“누구든 철들기 마련이지.”

양준은 찻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한 잔 따르고 다시 스스로 잔을 채웠다.

“예전에 나만 보면 덜덜 떨던 녀석이 이젠 주먹도 날리더라?”

동경한은 지금까지도 입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느낌이 들었다. 양준의 주먹이 어지간히 드셌다.

“어릴 적에 괴롭힘 당한 것만큼 이제는 돌려줘야지.”

양준은 코웃음을 쳤다. 눈앞에 외사촌형은 양씨 가문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놀러올 때마다 그를 혼내 주었다. 가련하게도 그 당시 양준은 아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상태였고, 동경한은 그보다 몇 살 연상이다 보니 상대가 되지 못했다. 때문에 매번 얼굴이 시퍼렇게 될 때까지 얻어맞았다.

그때 일을 떠올리자 양준은 이가 갈렸다. 문득 방금 전에 너무 가볍게 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동경한은 얼굴빛이 평온해 아무 감정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그는 찻잔을 단숨에 비우고 잔을 양준 앞으로 밀어 놓았다. 다시 가득 채우라는 뜻이었다.

외사촌형이 사촌 동생더러 차를 따르라는 데 당연히 할 말이 없었다.

둘은 연거푸 몇 잔을 비우고서야 서로를 한 번 보고는 동시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적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양준은 외사촌형이 그저 그가 성에 차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당시 그는 무공을 싫어했다. 그래서 동경한은 주먹다짐으로라도 그에게 무공을 배우게 하려 한 것이었다. 동경한은 어린 시절 양준에게 적지 않은 마음속 상처를 남겨 주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방식이 좀 과격했을 뿐이었다.

“네가 이런 데까지 올 줄은 몰랐다. 이곳에 와서 네 이름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어. 여러 번 탐문해서야 너란 걸 확신할 수 있었지.”

동경한은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께서 보내셨어.”

“어? 그럼 고모부도 예전에 이곳에서 수련하셨나?”

동경한은 다소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그건 모르겠고. 그냥 나보고 이곳에 가라고 했어.”

양준도 줄곧 궁금증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잘 계셔?”

양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동경한은 그를 힐끗 쳐다봤다.

“고모께서 너를 엄청 보고 싶어 하셔. 전보다 많이 야위셨지.”

양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그는 평범했다. 몇 년간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니 부모님은 틀림없이 많이 걱정하실 터였다.

“그리고 고모께서 양씨 가문의 가법에 따라 무려 반년 동안 금족 당하셨다. 고모부는 곤장 서른 대를 맞고.”

쨍그랑-

양준의 손에 든 찻잔이 산산조각 났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눈빛에 흉악한 기운이 감돌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

동경한이 냉소했다.

“고모께서 네가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몰래 뛰쳐나와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려 했던 거야. 그러다가 너희 양씨 가문 몇몇 늙은이에게 발각되었지. 너도 양씨 가문 규칙을 알잖아. 누구든, 밖에서 수련하는 직계 자제들을 만나면 안 된다는 거. 이를 어긴 자는 벌을 받아야 하고. 고모부가 대신 벌을 받지 않았다면, 고모가 곤장 서른 대를 맞을 뻔했지.”

곤장 서른 대. 그것은 보통 곤장이 아니었다. 양씨 가문 형당(刑堂)에는 원기로 가동하는 독특한 비보가 있었는데, 오로지 사람을 때리는 데 사용되었다. 진원 경지 고수라도 몇 대 맞으면 며칠은 자리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 곤장을 서른 대나 맞았으니, 아버지도 몇 달은 누워 있었겠군.’

양준은 심호흡을 해 끓어오르는 기혈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동경한의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단숨에 마셔 버렸다.

“제길! 늙은이들, 가만 안 둬.”

양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4년 전, 당시 그는 수련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수련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똑같은 직계 자제로서 늙은이들에게 쫓겨나 다른 형들과 같이 밖에서 수련할 것을 강요받았다. 결국 열두 살 난 평범한 소년이 천 리 길을 마다않고 능소각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겪은 고초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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