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2장. 공정한 거래
범홍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은자 십만 냥이 이런 작은 문파의 제자에게는 대단한 유혹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사실 또한 그러했다. 은자 십만 냥을 탁상 위에 놓자, 조정문이나 능소각의 다른 제자는 호흡이 가빠지며 뜨거운 눈빛으로 탁상 위 은자를 주시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범홍은 태연한 표정으로 은자를 더 꺼내 놓았다.
양준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백운풍이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범 형이 제시한 금액이 너무 적었나 보군? 그럼 내가 이십만 냥을 주겠다. 어때? 이렇게 많은 돈은 평생 벌지 못할 수도 있어. 이 돈으로 평생을 근심 걱정 없이 먹고살 수 있지. 처첩을 줄줄이 거느리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백운풍은 범홍보다 훨씬 대범했다. 범홍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백운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으며 양준을 바라보기만 했다.
동경한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십만 냥으로 양씨 가문 직계 자제가 가진 무공을 사려 하다니. 두 멍청이들의 생각이 정말 참신하군.’
동경한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다 보니 어깨만 약간 으쓱거렸다. 웃음을 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정말 좋은 구경거리야.’
“이십만 냥도 적진 않잖아. 왜, 그래도 부족해?”
백운풍은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 불쾌한 듯 양준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그들은 적지 않은 무공을 사들였지만, 여태까지 이렇게 높은 가격을 부른 적이 없었다. 그 무공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찌 손이 이처럼 클 수 있겠는가?
‘호의를 모르는군! 난 백씨 가문 공자란 말이다. 설령 이십만 냥짜리 무공이라도 나한테는 십만 냥에 팔아야 한다고.’
백운풍은 콧방귀를 뀌었다.
동경한은 백운풍이 화가 난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양준과 친하지 않은 척하며 옆에서 부채질했다.
“난 이십만 냥에 동씨 가문 현원단(玄元丹) 한 병을 추가할게. 어때?”
백운풍과 범홍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동경한을 바라보았다. 동경한이 현원단까지 기꺼이 내놓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현원단은 지급 중품의 단약으로 등급이 높지는 않지만, 약효가 좋았다. 한 알만 복용해도 수련하는 데 배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 무공이 정말 이렇게 큰 가치가 있단 말인가? 동경한이 좀 전에 양준과 이야기를 나눴으니 그 무공에 대해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현원단 한 병을 내놓은 걸 테고.’
“이십만 냥에 범급 상품 비보를 얹어 주지!”
범홍도 즉시 제시 가격을 올렸다.
동경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범 형,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거야?”
범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백운풍이 말을 받았다.
“동 형, 그 무공의 위력이 평범하지 않은 만큼 모두들 원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각자 알아서 가격을 제시하고 제시 가격이 높은 이가 얻는 게 공평하지. 난 삼십만 냥에 범급 상품 비보와 방어용 비보도 하나 주지.”
범홍은 그 말에 잠깐 황당해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백 형, 손 한 번 크네.”
그는 이런 가격을 감히 제시하지 못했다. 백운풍이 이토록 과감할 줄은 미처 몰랐다.
동경한도 웃으면서 말했다.
“백 형이 꼭 원한다면 나도 기권. 더 다투다가는 서로 감정이 상할 테니까.”
백운풍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공수했다.
“양보해 줘서 고마워! 나중에 기회되면 술 한잔 사지.”
셋은 제멋대로 가격을 매기고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마치 이미 무공을 얻는 것이 확정된 듯한 모습이었다. 정작 양준의 의견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양준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난 아직 무공을 팔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백운풍의 미소가 굳어지고 범홍도 깜짝 놀랐다.
“삼십만 냥에 범급 상품 비보, 그리고 방어 비보까지 더하면 그 무공의 가치를 충분히 쳐준 건데,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지 마. 괜히 사람도, 재물도 다 잃을 수 있어.”
백운풍이 냉랭한 목소리로 위협했다.
백운풍 뒤에 서 있던 조정문도 냉소를 던졌다.
“양준, 너무 뻔뻔하게 나오지 마. 백 공자가 이미 충분히 공정한 가격을 제시했잖아. 또 뭘 더 원해?”
백운풍은 부채를 쫙 펼치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여유 있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부채질하는 그의 얼굴에는 무시와 경멸이 배어 있었다.
동경한은 계속 옆에서 상황을 더 부채질했다.
“어? 우리 세력에 들어오고 싶은 거야?”
백운풍과 범홍은 양미간을 찡그렸다. 그들도 이 가능성을 떠올렸던 것이다.
두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조정문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 공자, 이 녀석은 능소각에 온 지 삼 년이 되었지만, 육체 경지 3단계밖에 수련하지 못한 예비 제자입니다. 이리 자질이 평범한 자는 앞날이 전혀 기대되지 않습니다. 이런 녀석을 백씨 가문에 들이면 가문의 망신이 될 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준이 손을 움찔했다. 그의 앞에 있던 찻잔이 튕겨 나가면서 조정문의 얼굴을 덮쳤다.
탁상에 앉아 있던 이들의 얼굴색이 변했다. 특히 백운풍은 얼굴빛이 더욱 안 좋았다.
“양준, 죽을래!”
조정문은 크게 노하여 바로 공격하려다가 백운풍에게 저지당했다.
“개를 때릴 때도 주인을 봐야지.”
백운풍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늘 내게 만족할 만한 해명을 못하면 여기서 살아서 나가진 못할 거다.”
“해명이 필요하다고?”
양준은 냉담한 표정을 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진 무공은 현급이야. 이 정도 해명이면 충분해?”
사람들은 이 말에 다시 한번 얼굴빛을 바꾸었다. 동경한조차 그 자리에서 아연실색했다.
현급!
그들은 양준이 얻은 무공이 천급 정도일 거라고 짐작했지, 현급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령 동씨 가문, 백씨 가문, 자미곡과 같은 일등 세력이라 할지라도 현급 무공은 별로 없었다. 때문에, 가문의 후계자 정도가 아닌 이상 큰 세력이라 할지라도 현급 무공을 수련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귀한 무공이었다.
“사실이냐?”
동경한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젠장, 진작 현급 무공인 줄 알았으면 내가 왜 구경이나 하고 앉아 있었겠어. 양준과 무공을 바꾸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지금은 백운풍과 범홍 저 두 바보까지 끼어들어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군.’
“전승동천 안에서 내 실력은 개원 경지 7단계밖에 안 됐어. 그런 내가 6급 요수를 물리쳤으니 이 무공의 등급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양준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몇 명의 숨소리가 달아올랐다. 그들이 다시 양준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더는 경멸과 무시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나같이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까 말한 조건도 다 들어주고, 널 우리 백씨 가문에 영입하마.”
백운풍은 심호흡을 하고서 결정을 내렸다. 제자 신분 하나로 현급 무공을 바꾼다면 백씨 가문에서는 크게 이득을 보는 거래였다. 양준이 백씨 가문에 들어간 다음의 대우는 본인의 자질에 달려 있었다.
“우리 자미곡에서 널 영입하겠어. 최상의 수련 환경을 제공할 것을 맹세하지.”
범홍도 급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 가문에 들어가는 건 관심 없어. 내 무공을 얻고 싶으면 같은 등급의 다른 무공을 가져와.”
양준은 더 이상 그들과 장황하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범홍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외부인에게 전해지지 않는 우리 무공이 목적이냐?”
“같은 현급이면 바꿔도 서로 손해 안 볼 텐데. 이래야 공정한 거래 아닌가?”
양준이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백운풍이 비웃었다.
“그건 아니지. 가문에서 전해 내려온 무공을 외부인에게 알려 주면 안 되니까.”
“그럼 더 얘기할 것도 없겠네.”
양준은 자리를 뜨려고 몸을 일으켰다.
“가려고? 오늘 그 무공을 내놓지 않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 하지 마.”
백운풍은 낯빛을 바꾸더니 냉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양준의 길을 막았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자, 백운풍은 강제로 무공을 빼앗으려 했다. 한낱 능소각의 제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꺼져!”
양준은 원래부터 백운풍이 매우 언짢았다. 그가 먼저 도발하자, 망설임 없이 사납게 주먹을 날렸다.
백운풍은 콧방귀를 뀌며 손바닥으로 맞섰다.
쾅-
굉음과 함께 사나운 원기가 폭발하면서 오두막이 사분오열되었다.
슉- 슉- 슉-
그림자 몇 개가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
동경한, 백운풍, 범홍, 양준 그리고 조정문과 다른 능소각의 제자였다. 모두들 얼굴이 먼지투성이였다.
“감히 내게 덤비다니!”
백운풍은 울화통이 터져 얼굴빛이 험상궂게 변했다. 방금 전 접전에서 타격은 없었지만, 양준에게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다만, 양준의 강렬한 원기가 의아할 따름이었다. 분명 이합 경지 1단계밖에 안 되는데 뜻밖에도 자신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다.
“백 공자, 귀하신 몸을 직접 움직이지 마시고 제게 맡기십시오.”
조정문은 자발적으로 나섰다. 방금 전 양준에게 물벼락을 맞고 체면을 단단히 구겼던 터라 체면을 되찾고 싶었다. 게다가 백씨 가문에 들어갔으니 기회를 봐서 잘 보여야 했다. 양준을 한바탕 두들겨 패서 백운풍의 노기를 풀어줄 수 있다면, 훗날 수많은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백운풍은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발을 부러뜨려 버려. 내게 대들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려줘. 보잘것없는 작은 문파의 제자가 이처럼 방자하게 굴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진작 이 녀석을 혼쭐내고 싶었습니다.”
조정문은 연신 냉소를 던졌다. 그러고는 십몇 장을 사이에 두고 양준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말했다.
“양 사제,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백 공자 앞에 기어가서 머리를 조아리면 혹여 백 공자께서 용서해 줄지도 몰라. 그렇지 않으면 좀 고생해야 할 거다.”
양준은 조소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의 집 개가 되더니 아주 의기양양해지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