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3장. 진원 경지와의 결투
조정문은 안색이 붉어지더니, 사납게 일갈했다.
“백 공자가 날 아끼시는데 개가 되는 게 뭐 대수라고. 장로께서도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비난해?”
“스스로 본인의 가치를 떨어트리는데 누가 널 존중해 주겠냐?”
“동문인 걸 생각해서 너무 난처하게는 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끝까지 제 무덤을 파는구나. 내가 모질다고 원망하지 마라.”
조정문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체내 원기가 돌자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신법을 펼쳐 양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가 걸음을 옮기고 미처 뛰쳐나가기도 전에 눈앞에서 뭔가 번쩍했다. 십몇 장 밖에 있던 양준이 순식간에 그의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조정문은 깜짝 놀랐다. 곧 얼굴빛을 확 바꾸며 급히 공격을 펼쳤다.
양준은 되는 대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어 그의 주먹에 빛이 번쩍이더니 염양삼첩폭을 내질렀다.
조정문은 가슴팍을 맞는 순간,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 그의 가슴이 푹 꺼져 들어갔고, 그는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주먹의 힘을 해소하려 했다.
겨우 양준과의 거리를 벌렸지만, 이미 체내에 몰려든 사나운 원기가 폭발했다. 나지막한 소리가 연이어 세 번 울려 퍼지더니, 조정문은 피를 내뿜었다.
이 같은 이변에 모든 이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조정문의 실력은 그리 강한 편은 아니지만, 이합 경지 5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양준의 주먹 한 방에 피를 토했다. 비록 무공의 위세를 빌렸다고는 하지만, 양준의 신출귀몰한 속도는 두려울 정도였다.
조정문도 양준이 이렇게 강한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피를 토하고 미처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는데 양준이 또 달려들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황급히 공격을 막았지만, 막아낼 수가 없었다. 한동안 접전을 치르다, 다시 한번 양준의 주먹이 그의 가슴팍을 적중했다.
조정문의 가슴팍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몰려오는 고통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양준의 표정은 냉담했고, 공격도 잔인해 주먹마다 조정문의 급소를 공격했다. 양준이 한바탕 맹공격을 퍼붓자 조정문은 막기만 할 뿐 반격할 겨를이 없었다.
몇 분이 지나자 조정문은 시야마저 흐릿해졌다. 양준이 몸을 날려 발차기를 하자, 조정문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자루처럼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죽지는 않았지만 뼈가 얼마나 부러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몇 개월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듯했다.
모든 이가 깜짝 놀랐다. 동경한은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못 본 4년 동안 양준이 이토록 포악해지다니. 이합 경지 5단계 무인이 몇 분도 버티지 못한 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데, 녀석은 멀쩡하군.’
하늘을 가득 메운 먼지 속에서 양준은 꿋꿋이 서 있었다. 냉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담담하게 둘러보는 모습이 기세등등해 보였다.
백운풍과 범홍의 얼굴에는 약간의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잠시 뒤, 백운풍은 쓰러져 있는 조정문을 힐끗 보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작은 문파에서 배운 수준이 다 그렇지 뭐. 보아하니 내가 직접 나서야 되겠군!”
범홍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곧 의혹이 풀렸다. 백운풍은 백씨 가문의 공자로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겼다. 그는 조정문의 생사 따위는 개의치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영입한 제자이므로 반은 백씨 가문 사람이었다. 지금 조정문이 그의 눈앞에서 남에게 죽도록 얻어맞았으니,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바꿔서 범홍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그 역시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양준에게는 현급 무공이 있었다. 마침 이를 구실로 그를 한바탕 혼내준 다음, 다시 무공의 수련 방법을 캐물을 수 있었다.
범홍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차갑게 본인 뒤에 서 있는 능소각 제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양준은 왜 이 자를 공격하지 않은 거지? 이 자를 때려서 불구로 만들었다면, 나도 공격할 명분이 생기는 건데.’
“백 형, 남의 문파에서 싸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동경한은 양준이 대적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얼른 나서서 저지했다. 백운풍은 진원 경지 1단계였다. 진원 경지와 이합 경지 사이에 격차는 현저했다.
백운풍이 냉랭하게 말했다.
“남의 문파면 또 어때? 감히 백씨 가문의 제자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보여줘야지.”
그는 양준을 혼쭐내려고 결심한 듯했다.
동경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양준을 도우려고 했지만,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막막했다. 남들의 눈에 그와 양준은 우연히 만난 사이일 뿐이었다. 만약 눈에 띄게 행동하면 남들이 허점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양씨 가문은 비록 세력이 크지만 적도 그만큼 많기 때문에,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양준에게는 하나도 좋은 점이 없었다.
동경한이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는데 양준이 몰래 그에게 눈짓했다. 동경한은 그의 시선을 눈치채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운풍이 느린 걸음으로 양준에게 걸어가면서 지시했다.
“두 장로는 옆에서 진법을 치세요.”
“예.”
두 노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경한의 옆에 신유 경지 고수들이 지켜주는데, 백운풍과 범홍의 옆에는 어찌 없겠는가? 그들은 각자 세력에서 뛰어난 인재들인 만큼 그들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그들을 보호하는 이가 따라다녔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우리 백씨 가문에 들어오고 그 무공을 넘겨.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백운풍은 고개를 살짝 쳐들고 오만방자하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냉소했다. 그의 몸속에 원기가 요동치고 전의가 타올랐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좋아. 목숨만은 남겨 두지. 아직 가치가 있으니까!”
백운풍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신형이 희미해졌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연기처럼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아른거렸다.
양준은 냉엄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했다. 백운풍은 부잣집 도련님처럼 건방진 면이 있었지만, 어쨌든 백씨 가문의 공자였다. 실력이 자신보다 하나의 경지가 더 높았다. 이런 상대와 대적할 때는 잠깐의 방심도 치명적이어서 상대방의 일격에 쓰러질 수 있었다.
사실 양준은 지금 시기에 이런 상대와 맞붙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가 온종일 소안의 다락방 앞에 어슬렁거린다고 생각하면 양준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모든 남자는 자신의 여자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비록 백운풍은 소안의 모습조차도 보지 못했지만, 양준은 극도로 불쾌했다.
이때, 양준의 등 뒤에서 이상한 먼지바람이 일더니, 백운풍이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고 나타났다. 그는 양준의 등에 가볍게 일격을 날렸다. 그가 날린 일격은 가벼워 보였지만,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동경한은 안색이 돌변했다. 그는 하마터면 입을 열어 양준에게 알려줄 뻔했다.
양준이 순간 몸을 홱 돌렸다. 이내, 뜨거운 진양원기가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백운풍의 일격에 맞섰다.
세찬 바람이 울부짖고 천지의 기운이 어수선해지며 장풍이 몰아쳤다. 양준의 신형이 진동하더니 곧장 뒤로 십몇 장을 날아갔다. 반면 백운풍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얼굴빛도 담담했다.
이전에 두 사람이 잠깐 맞붙었을 때, 당시 양준은 8할의 힘을 썼고, 백운풍은 황급히 맞서 싸웠기에 막상막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백운풍은 화가 난 상태로 공격을 날린 것이니 전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단 일격으로 양준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는 나가떨어졌다가 재빨리 다시 일어나 무거운 표정으로 백운풍을 바라보았다.
“이합 경지 1단계 주제에 나와 겨룰 생각을 하다니. 죽으려고 환장했군.”
백운풍은 냉소했다. 그의 신형이 다시 변했다. 무슨 기괴한 신법과 무공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양준은 이를 악물었다. 눈빛에 냉기가 넘치면서 주위의 움직임을 각별히 경계했다.
“네까짓 게 방어할 수 있겠어?”
백운풍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곧이어 그의 그림자가 양준의 석 자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여전히 무심하게 일격을 내질렀다.
염양삼첩폭!
양준은 더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곧장 그를 향해 무공을 펼쳤다.
백운풍의 얼굴에 신중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단번에 이 일격의 흉포함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백씨 가문의 공자로서 더욱이 진원 경지 고수로서 어찌 물러설 수가 있겠는가? 그는 물러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양준을 쓰러뜨려 둘 사이의 격차를 확실히 보여주려고 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양준은 또다시 뒤로 밀려났다. 온몸의 원기도 무질서한 기미를 보였다. 반면 백운풍은 여유 있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입을 열어 비웃으려는 순간, 그의 얼굴빛이 급변하더니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곧 손을 털어 양준이 그의 체내에 주입한 진양원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세 가지 변화라!”
백운풍의 눈에는 이채가 번뜩였다. 양준이 이런 비범한 무공을 갖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 무공은 위력이 엄청나고 변화무쌍해 틀림없이 천급에 달할 수 있었다. 방금 그의 부주의로 하마터면 큰 손해를 볼 뻔했다. 신속하게 반응해 양준의 원기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이 무공도 괜찮네. 널 쓰러트린 뒤에 이것도 같이 받아 가마.”
백운풍은 잔인하게 웃더니 다시 먼지바람으로 변했다.
양준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더욱더 주의 깊게 주위의 변화를 감지했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 빛이 번쩍이더니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그의 손에서 원기가 폭발하자,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양준이 허공에서 손바닥을 내리누른 채 원기를 폭발시키자 백운풍이 급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의아함과 낭패감에 젖은 얼굴로 황급히 물러서면서 양준의 일격을 간발의 차이로 가까스로 피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신유 경지 고수들은 일제히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신식을 수련했기에 백운풍의 움직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이 능소각의 제자는 어떻게 백운풍의 움직임을 간파한 거지? 이합 경지 1단계라서 신식도 없을 텐데, 겨우 몇 번 겨뤄본 것만으로 백운풍의 비밀을 알아차린 것인가?’